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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 피라밋의 유래와 한국의 고산 숭배 사상

송화강 2019-05-13 (월) 14:55 6년전 4897  

 

 

 

피라밋의 유래와 한국의 고산 숭배 사상

 

 

김상일

 

 

피라밋의 유래

 


오래 된 문명일수록 높은 산이 그 배경을 이루고 있음은 하나의 공통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조사한 바로는, ‘한’에 관계된 문명은 거의 예외 없이 고산(高山)이 그 배경으로 등장하고 있다.

서양인들이 가장 오래 된 문명이라고 하는 수메르 문명, 즉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창조해 낸 수메르인들의

유래를 추적함에 있어서도, 그들의 고산 숭배 사상이 가장 유력한 단서가 되고 있다.


A. A. 트레버는 『고대 문명의 역사』(History of Ancient Civilization)에서, 수메르의 초기 문명의 특징

이 많은 점에서 중앙아시아의 어느 고원 지대에서 내려온 고산족(a highland people)의 것과 같다고 했다.1)

 

수메르 연구 학자인 S. N. 크래머도 『The Sumerians』에서, 수메르의 서사시 등을 살펴볼 때에, 수메르족은 ‘본향이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 없기는 하지만, 그들이 높은 산꼭대기에서 그들의 신들에게 예배한 것으

로 보아, 그들이 산악 고원 지대에서 내려온 것 같다2)고 했다.

크래머는 대략 카스피안해 근처에 있는, 아라타로 알려진 도시 국가에서 내려온 것 같다고 했다. 


L. 울리 경도 수메르의 신들이 항상 높은 산 위에 내리는 것으로 보아서, 수메르족이 그들의 본 고장에서는

그들의 신들에게 ’높은 장소, 혹은 높은 고원‘(on high places and on every high hill)에서 예배했음이

분명하다고 하면서,3) 그들의 공향은 산이 많은 곳이라 결론하고 있다.4)

 

수메르에서 신들이 모여 회의하는 장소를 ‘에쿠르’(Ekur)라 하는데, 이 말은 ‘산의 집’(house of the moun

tain)이란 뜻이다.

신전의 선체 영역을 두르-안-키(Dur-an-ki)라 했는데, 의미는 ‘하늘과 땅의 둘레’(bond of heaven and

earth)이다.

높은 산은 신과 인간을 하나로 묶는 접촉점이다.5)

어떤 신에게는 ‘산’이란 명칭을 붙여 주었는데, 엔릴(Enlil)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앗시리아의 신인 아슈르(Ashur)도 ‘큰 산’(the great mountain)이란 뜻이다.

아슈르의 성전을 ‘큰 산의 집’(house of the great mountain)이라 했다.6)

 

  이와 같이 수메르인들은 메소포타미아의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 유역의 충적 평야로 기원전 3500년

경에 내려오기 이전에 고산 지대에서 오랫동안 살았기 때문에, 평야 지대에 내려와서도 그들의 고산숭배

신앙을 쉽게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수메르인들은 홍수가 한번 지나가면 강 연안에 쌓인 진흙을 빚어서 그것을 구워 인조 산(artificial mountain)을 만들었는데, 이를 지구랏(Ziggurat)이라 한다.

그리고, 이것을 언덕 성전(hill-temple)이었다. 이 지구랏을 ‘하나님의 산’(the mountain of God), 혹은

‘하늘 언덕’(the hill of heaven)이라 불렀다.7)


지구랏의 모든 부분, 그리고 모든 선들은 정교하게 장식되어, 하나하나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수메르인들의 종교신, 즉 고산 숭배 신앙을 상징화하고 있다. 지구랏은 태고의 언덕(primeval‎ hill)이며, 이를 G. E. 케언즈는 ‘파르스 프로토토’, 즉 부.분.이. 전.체.를. 나.타.내.는. 신앙이라고 했다.

 

지구랏의 밑면은 정사각형 혹은 직사각형이었다.

지구랏이 세워지기 시작한 연대는 기원전 3000년으로 볼 수 있으며, ‘창세기’에 기록된 바벨탑(The Tower of Babel)이 바로 지구랏을 두고 하는 말이다.(창세기 11장)


지금 우르에 있는 지구랏은 밑넓이가 205 피트×140 피트이며, 높이가 70 피트이다.

수메르의 지구랏이 과연 이집트인들의 피라밋(pyramid)과 같으냐 할 때, G. C. 볼드윈은 그렇다고 대답하면서, 지구랏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피라밋이라고 했다.8)


이집트인들이 처음으로 피라밋을 세운 것은 기원전 2700년경이다.

이 때는 이미 이집트인들이 수메르로부터 문자, 원기둥 건물 양식, 다른 문화적 영향을 강하게 받은 이후라 할 수 있다.

이집트인들이 수메르인들로부터 피라밋을 건축하는 기술을 배워 갔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집트인들은 피라밋을 ‘마스타바스’(mastabas)라고 했으며, 즉 ‘의자’(bench)란 뜻이다.

피라밋을 제일 처음 건축한 기사가 임호텝(Imhotep)이며, 그가 수메르로부터 건축 기술을 배워 갔음을 쉽게 추측할 수 있다.9)

가장 큰 피라밋을 건축한 사람은 쿠푸(Khufu)인데, 그 피라밋은 밑넓이가 13에이커(756×756피트)나 되며, 높이가 500피트나 된다.

벽돌이 무려 230만 장이나 된다.

피라밋이 지구랏의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양자가 그 목적이나 모양에 있어서 완전히 같다고는 할 수 없다.

수메르의 지구랏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예배 의식용으로 만들어졌다면, 피라밋은 죽은 자를 묻기 위해 만들어졌다.

아직도 그 용도가 확실하지는 않으나, 왕의 시신이 그 속에 있는 것으로 보아서 그렇게 추리할 수 있다.


그러나, 그밖에 천체 관측, 그리고 공동 집회소로서도 씌어진 것 같다.

그 모양에 있어서도 피라밋과 지구랏은 상당히 다르다.

피라밋은 완전 삼각뿔이다. 그리고, 옆면이 밋밋하다.

그러나, 지구랏은 위가 평평하여 발코니 모양으로 되어 있으며, 옆면은 밑에서 위까지 오르내리도록 층계

가 만들어져 있다.

이점은, 양자가 서로 깊은 관계 속에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외양에 있어서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두 민족의 용도가 달랐기 때문이라 할 수 있겠으나, 필자가 생각하기로는, 두 가지 용도가 모두

산 신앙에 와서는 모아질 수 있다고 판단되어진다.

즉, 원시인들에게 있어서 산은 집회 장소요, 천체 관측소요, 죽으면 가 묻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피라밋이나 지구랏은 고산 신앙에서 그 목적이 일치한다고 결론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피라밋과 지구랏

 


이와 같이 이집트의 피라밋과 수메르의 지구랏은 실질적으로 깊은 연관 속에서 만들어졌음이 확실하다.

그런데, 수메르의 지구랏과 그 모양이 매우 비슷한 것이 남북 아메리카의 인디언들의 세계, 즉 마야 잉카

문명권 속에서도 나타난다.

이 신세계에 나타난 피라밋은 수백개 정도가 아니고 수천 개를 헤아려, 실로 그 수효가 엄청나다.

 

이집트의 피라밋과 인디언의 그것은 서로 역사적인 상관성 석에서 만들어진 것인가?

아니면, 우연의 일치로 비슷한 것인가?

 

이집트의 피라밋이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기원전 16세기의 아모세 Ⅰ세(Amose Ⅰ) 때이다.

그런데, 그 때에 아메리카 신세계에는 아직 피라밋이 없었다.

심지어는 느붓카넷살 Ⅱ세가 바벨탑을 세운 기원전 600년경에는 아직 대부분의 인디언들은 피라밋을

모르고 있었다.

 

멕시코와 중앙아시아 일대에 흩어져 있는 피라밋과 이집트 피라밋은 어떤 상관이 있는가?

두 문명 사이에는 어떤 유사성이 있는 것일까?

이집트인들과 아즈텍과 마야인들은 모두 상형 문자를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양쪽 모두 무덤 앞에 비석을 세우고, 거기에 이름과 글을 새기지 않는가?

양쪽 모두 조각 예술이 뛰어나지 않았던가?

양자 사이에는 역사적으로 어떤 영향을 서로 주고 받았음이 명확하지 않은가?

 

G. C. 볼드윈은 서로 간의 영향을 부정하고,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피라밋은 그들의 종교 관념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난 것이라 결론하고 있다.10)

볼드윈은, 양자 사이는 둘 다 ‘피라밋’이란 이름밖에는 같은 점이 없다고 한다.

이집트의 피라밋은 밑이 정사각형이고, 바깥벽에 층계가 없고, 발코니도 없고, 꼭대기에 방도 없다.

그리고, 주로 이집트의 피라밋은 왕들의 무덤용으로 씌어졌다.


그러나, 중앙아메리카 일대에 퍼져 있는 피라밋은 무덤용이 아니라 건물용으로 만들어져, 성전이나 궁전

같이 씌어졌다.

꼭대기로 올라가는 층계가 있고, 꼭대기 위에는 발코니가 있다.

그래서, 아메리카의 피라밋은 수메르와 바빌론의 지구랏과 그 모양이 많은 점에서 같다는 것이다.11)


그러나, 지구랏과는 차이가 있다.

지구랏이 성전용으로 하나의 높은 공간, 즉 산 같은 것으로 건축되어졌다면, 중앙아메리카의 피라밋은

성전용으로서 뿐만 아니라 공공 건물용으로 건축되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구랏과는 아무 상관  없다고 결론하고 있다.

 

D. 아담손도 어떤 역사적 관계성을 강하게 부정한다. 인디언들이 지구랏과 이집트의 피라밋을 보고 자기

들의 피라밋을 세웠다고 할 수 없다고 하면서, 다만 신비스러운 물체인 해와 별 같은 천체에 더 가까이

접근하려는 호기심의 발로에서 세워졌다고 한다.12)

 

볼드윈이나 아담손의 결론은 모두 그 타당성이 정확하지 않다.

만약 이들 서양학자들이 아메리카 인디언들과 수메르․이집트를 매개시켜 주는 극동아시아 문명, 즉 한

문명을 알았더라면, 훨씬 자연스러운 결론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메소포타미아와 남북미 대륙은 수천 마일이 상거해 있다.

이 두 대륙 사이를 직접 상관시키거나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말하는 것은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 두 문명권을 새의 날개라고 상상한다면, 좌우 날개를 폈을 때, 그 새의 머리 되는 부분이

한반도와 그 북쪽에 있는 만주, 시베리아 일대이다.

이 부분을 바로 좌․우 문명이 퍼져 나간 중심부라고 상정할 때에, 그리고 이 중심부가 양대 문명을 매개

시켜 주는 점이라고 상정하면, 엉클어진 실이 풀리듯이 쉽게 풀려질 수 있다.

 

 

 

고산 숭배로 본 피라밋

 


핼포드 맥킨더(Halford V. Mackinder 1861~1947)는 영국의 지리학자로서, 1904년 그의 유명한 ‘심장

지역 이론’을 발표하였다.

즉, 바다로부터 고립되어 있는 유라시아 대륙의 내부 지역을 ‘심장 지역’(Heart Land)이라 부르고, 대서양,

지중해, 인도양, 태평양을 따라 바다에 접하는 지역을 ‘해안 지역’(Maritime Land)이라고 구분하였다.

 

그리고, 핼포드 맥킨더는 ‘⋯⋯심장 지역을 지배하는 사람이 유라시아를 지배한다.’라고 했다.

적어도, 제 4 빙하기 이후에 지금과 같은 땅의 모양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심장 지역에서부터 인류가

여러 곳으로 퍼져 나갔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남 북극의 얼음이 완전히 녹으면 해면은 지금보다 약 70m 정도까지 높아질 것이며, 해면이 20~30m

정도 높아지면 아빙기가 온다.13)

빙하기 이전에는 거의 지면이 물에 덮여 있어서, 인간들은 고산 지대에 모여 살 수 밖에 없었고, 지구상의

가장 높은 지역은 맥킨더의 심장 지역에 해당된다.


시베리아 앙가라강을 중심한 앙가라 대륙이라 할 수 있고, 앙가라 대륙을 중심하여 만주를 중심한 동북아

시아의 해륙 분포나 산맥, 강줄기 같은 것이 결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인간들은 이 산악․하천의 줄기를 따라 퍼져 나갔다고 추리할 수 있다.

 

 

최남선은,

 

중앙아시아의 파미르 고지는 세계의 용마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파미르 고지에서 보면, 손가락을 편 것처럼 산맥이 사방으로 찢겨 나간 중에, 웅대하고 기찬 것은 그

동방에 갈라진 가지이니, 북쪽으로 치우쳐 나간 것은 천산계요, 남에 치우친 것은 히말라야산계요, 그

중간에 타고 나간 것은 곤륜산계요, 여기서 다시 허다한 산맥이 곁가지로 찢겨 나갔다.14)

라고 했다.

 

세계의 인류를 세 부류로 나누었는데, 황인이라고 부르는 몽고계, 백인이라고 부르는 코카서스계, 흑인

이라고 부르는 아프리카계가 그것이다.

그 가운데 특히 황인종인 몽고계는 지금부터 한 일만 년 전까지 심장 지대인 파미르 고원을 중심한 중앙

아시아를 중심하여 사방의 골짜기 혹은 냇가에 각각 무리 지어 살았다고 한다.

같은 근원에서 나와서 같은 경로를 따랐다 하더라도, 이주 시대의 선후와, 문화발달의 높낮음에 따라

인종 분포가 다르게 이루어졌다.

이러한 분포현상의 차이는 각 인종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분포에도 그대로 나타나 있다.

 

고대 페르시아어가 바빌론어, 엘람어가 합쳐져서 되어졌다는 사실에서, 즉,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바빌론, 페니키아, 아람, 히브리 등⋯⋯이들이 원래에는 하나의 산맥에서 시작하여, 산맥의 가지가 여러

개로 갈라지면서 흩어지고, 그래서 언어가 서로 다르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즉, 이들 민족들 간에는 빙하기쯤 하여 공통 언어가 있었는데, 산 줄기에 따라 이동하다 보니 우랄

알타이계, 이집트․셈어계, 인도․아리안계, 그 후 인도․유럽어계로 나뉘어졌을 것으로 본다.

 

산맥의 흐름과 언어학의 관계에서 볼 때에, 수메르족은 천산계 쪽으로 붙어 나간 동북아시아의 몽고 정통계인 것 같다.

그러나 그들도 고대 이집트족이나 바빌론족, 페니키아족, 아랍족, 히브리족⋯⋯등등과 모두 처음에는 우랄․

알타이어족이 살던 이란 지역이나 어느 곳에 흩어져 살다가, 중앙아 쪽으로 올라갔다가, 그 후 다시 후퇴하

여 카스피해 서쪽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빙하기적 언어로 우랄 알타이어계, 그 후에 다시 이집트․셈어계, 인도․아리아어계, 그 후 다시 인도․유럽어계로 분리되기 이전의 원시 공통 잡어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15)


이렇게 볼 때에, 수메르족은 아득한 빙하 시대에는 카스피해 부근에서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중앙아 고원

으로 들어섰던 원시 중근동 잡종의 하나로 좌회진-남하의 후퇴를 한 종족이라고 이정기 교수는 결론하고

있다.16)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이 중앙아의 유목민들이 건조한 저지대의 초원에서 메소포타미아의 동북쪽 높은

장벽을 형성하는 (자그로스) 산맥 속으로 밀려들어왔다.

때로는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안의 평원까지 꿰뚫고 들어왔다.⋯⋯ 중앙아에서 부족인들 사이에 심한

소동이 벌어질 때마다, 파도처럼 그들은 메소포타미아로 밀고 들어섰다.

게다가, 페르시아 서쪽 대 자그로스 산계는 너무도 높아서, 가장 좋은 목초지가 이으면서도 그 고대의 들은 눈에 덮여 고통을 주었다. 그래서,⋯⋯ 반유목민들은 산으로부터 쫓겨나야 했다.

 

 

이러한 조건으로 메소포타미아는⋯⋯유목민이 침해해 들어오는 것에서 옴쭉달살을 할 수 가 없었다. ⋯⋯

BC 3000년엔 ⋯⋯수메르족 문명이 ⋯⋯이룩되었다.

다음, BC 2500년경엔 서쪽 사막지대로부터 셈족의 유목민이⋯⋯아카드의 사르곤(Sargon) 왕 아래 그

세력의 절정에 이르렀다.

BC 2370년경은 자그로스 산맥에서 북서쪽으로 구티(Guti) 유목족이 내려와⋯⋯근 1세기 가량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하류의 비옥한 땅을 지배했다가, 다시 수메르족의 새 왕조의 의하여 격퇴 당했다.⋯⋯17)

 

 


이러한 결론을 종합하여 볼 때에, C. J. 볼은 수메르가 혈통적으로나 언어적으로 고산 지대에서 온 듯한

특징이 많다고 했다.

더 나아가 C. J. 볼은, 수메르인은 중국인이라고 『중국어와 수메르어』(Chinese and Sumerian)에서

결론하고 있다.18)

여기서 볼이 지적하고 있는 중국은, 중국이 아니고 동이족(東夷族)의 문명이었으며, 그의 중국어와 수메

르어의 비교는 재검토되어져야 한다.

왜냐 하면, 수메르어는 접착어인데, 중국어는 접착어가 아니고, 어순이 중국어와는 다르고, 우리 한국어와

같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따로 논하기로 한다.

 

산맥이 갈라진 흐름, 그리고 산맥에 따라 분포된 언어의 갈래로 살펴볼 때에, 인류 문명의 기원은 중앙

아시아 고원 지대에서 찾는 것이 합리적이라 할 수 있다.

북․남 미주의 경우에도 문화가 고원 지대에서 저지대로 옮겨 간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안데스 고원에서 정치가 전지역을 통치하는 기능을 갖게 되었고, 저지대로 퍼져 나간 것을 발견할 수 있다.

19)

이들이 고산 지대에 오래 살다가 저지대로 내려왔기 때문에, 그들의 피라밋 건축 연대가 뒤로 늦어진 것

같다.

 

이와 같이, 문명이 오래 된 지역은 예외 없이 고산 지대이며, 이에 따라 고산 숭배 신앙이 생겨났으며,

피라밋이 생겨 난 것이다.

따라서, 몽고 문명, 수메르․이집트 지역, 즉 근동아시아 문명과 북․남미, 즉 신세계20)의 문명은 피라밋이란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고, 이 공통 분모는 다름 아닌 중앙아시아의 고산 숭배에서 유래했고, 양쪽 문명이

모두 중앙아시아에서 기원했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결론은, 산과 산이 갈라져 나간 맥과, 이에 따라 분포된 언어를 통해서도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을 뒷받침할 만한 더 많은 연구 결과가 나와야 함은 물론이다.

이제 한국을 중심한 고산 숭배 사상을 더 자세하게 검토해 보기로 한다.

 

 

 

 

한국의 ‘밝’산 사상

 


‘환웅이 무리 삼천을 이끌고 태백산 위에 내렸다’라는 짧은 단군 신화의 한 구절에서, 인류 문명의 기원을

캐는 데 있어서 단서가 되는 고산 숭배 사상을 발견할 수 있다.

이집트 피라밋이 수메르의 지구랏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고, 수메르인들이 중앙아시아 고산 지대의

고산 숭배 사상을 그대로 메소포타미아 유역에 가지고 와서 지구랏을 통해 전파했다면, 우리의 단군 신화는 인류 문명사적 관점에서 재조명해 보아야 한다.

 

종교는 그 생겨난 생태학적(Ecological) 관점에서 볼 때, 사막을 배경으로 한 종교와 숲을 배경으로 한 종교로 대별할 수 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전자에 속하고, 대부분의 동야 종교, 즉 불교, 도교, 힌두교 등은 후자에 속한다.


우리 ‘한’ 문명의 종교는 어디에 속하느냐 하면, 양쪽을 다 포함하고 있으나, 후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단군 신화는 고산, 그리고 숲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인류 문명의 기원이라는 맥락에서 볼 때에, 단군 신화의 고산 숭배 사상은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문명의 기원이 동에서 서로 산맥을 따라 흩어져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이집트의 피라밋이 지구랏, 그리고

고산으로 그 순서가 올라감에도 불구하고, 이 순서를 거꾸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즉, 고대 이집트의 피라밋과 비슷한 분묘가 옛 고구려의 도읍지인 만주의 퉁구에도 있으며, 남한에서는

경남 함양에 가락국 마지막 왕의 분묘로 알려져 있는 구형 왕릉이 있다.

이 왕릉은 일반 무덤과는 달리 층단을 이룬 네모진 돌무덤이라 한다.

돌이 네모진 절석이 아니고, 일반 자연석을 모아서 쌓은 것이다.21)

그런데, ‘⋯⋯이와 같은 돌로 이루어진 분묘는, 어쩌면 먼 곳에 있는 이집트 피라밋의 영향이 미친 결과일

지도 모른다22)고 추측하는 것은, 선후가 바꾸어진 판단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피라밋은 그 위에 제단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지구랏과 유사하다.

그러면, 왜 한국에서는 피라밋같이 거대하게 발달하지 않았느냐가 의문이다.


이은봉 교수는 이를 고산 숭배의 퇴화(退化)라고 한다.23)

서낭당의 돌무덤 같은 것도 고산 신앙의 퇴화라고 본다.

퇴화의 원인은, 한국의 경우에는 고산이 이미 있는 곳이기 때문에 구태여 피라밋이나 지구랏 같은 인조

산을 따로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강화도의 마니산의 경우는 산 전체가 하나의 피라밋이며, 올라가는 층계는 지구랏의 층계와 같고, 산 꼬

대기에 쌓아 놓은 제단은 지구랏 위의 제단과 같다.

마니산 위의 제단은 하나의 퇴화된 산이다.

산 위의 산이라 할 수 있다.

산 전체가 하나의 지구랏이기 때문에, 산 꼭대기에 상징적인 제단을 만들어, 그 곳을 특별히 신이 강림

하는 곳으로 만들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다.


이러한 산을 중심으로 하여 생각하면, 수메르의 지구랏, 이집트의 피라밋, 그리고 인디언의 그것이 모두

종합된 제단, 무덤, 별 관측소, 집합소의 성격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산의 종합적 의미가 각 지역에 가서 어느 한 부분적 의미만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지구랏의 제단적 성격, 이집트 피라밋의 분묘적 성격이 그것이다.

이와 같이 고산 신앙이 지구랏, 그리고 피라밋 순서로 발전되어 나갔는데, 그 역으로 이집트 피라밋의

영향으로 우리의 장군총 같은 피라밋형 무덤이 만들어졌다고 함은, 선후가 바뀌어진 생각이라 할 수 있다.


실로 조선에 있어서의 고산 신앙은 남달리 뚜렷하여, 문명의 거의 전부가 산과 관계되어 이루어졌음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은봉 교수에 의하면, 한국의 고산 신앙은 ① 산의 인격화 ② 신(神)의 거주처(居住處) ③ 사령(死靈)이

가는 곳 ④ 산신당(山神堂) ⑤ 산신제(山神祭) ⑥ 여산신(女山神) 등의 여섯 가지 의미가 있다고 했다.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이, 산은 이집트의 피라밋같이 분묘적 성격도 있고, 수메르의 지구랏이나 인디언의

피라밋같이 제단적 성격도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은, 여산신(女山神) 신앙이다.

이은봉 교수는 ‘한국의 민속에서는 가끔 산신의 모습이 백발 노인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그것은 후대적인

관념이고, 원래는 여성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24)라고 했다.


우리 나라의 산들의 명칭을 대체로 훑어보면, 남성보다는 여성이나 모성(母性)의 명칭을 띠고 나타나는

것이 많다.


그 예를 들면, 대모산(大母山 : 경기도 광주), 대모성산(大母城山 : 강화도), 모산(母山 : 이천), 모악산(母岳山 : 金溝縣), 모후산(母后山 : 순천), 불모산(佛母山 : 창원), 여귀산(女貴山 : 진도군), 오모산(吾母山 : 흥양군) 등이다.25)

 

‘마고’ 할머니가 세상에서 제일 높은 곳에 살았다는 『부도지』(符都誌)의 기록은 재조명되어져야 할 것이다. 수메르의 에덴 동산 딜문(Dilmun)의 주신은 닌후르삭(Ninhursag)이라는 여신이다.

이와 같이, 문명이 오래 된 곳은 산과 여신이 상관되어져 나타난다.

고대 원시 사회에 고산과 모계는 하나의 관계로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육당 최남선은 일찍이, 한국 문명을 고산 숭배, 즉 밝산(白山) 숭배 사상을 중심하여 인류 문명사적 관점

에서 고찰하고, 「불함 문화론」(不咸文化論)26)을 1925년에 발표했다.

그의 연구 방법에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착안은 탁월했다고 할 수 있다.

 

최남선은 세계의 인류를 세 부류로 나누고, 황인이라 부르는 몽고계, 백인이라 부르는 코카서스계, 흑인

이라 불리는, 아프리카계가 그것이라 했다.

그 가운데 특히 황인종인 몽고계는 시방부터 한 1만년 전까지 심장 지대인 파미르 고원을 중심한 중앙

아시아를 중심하여, 그 사방의 골짜기 혹은 냇가에 각각 무리 지어 살았다 한다.

그런데, 이 몽고계 안에는 한 가지 공통된 현상으로 고산 숭배 사상이 있어서, 산악과 하늘은 둘이 아닌

하나인 관계에 있으며, 하늘과 인간이 왕래하는 곳이 산이었다. 즉,

 


그네들은 일찍부터 하늘을 무서워하여 섬기고, 날마다 한 바퀴씩 하늘을 막질러 건너가는 해를 세계의

임자로 믿고, 고산의 꼭대기는 하늘을 통해 다니는 발판인 동시에 하나님의 인간에 와 계시는 대궐로

생각하여, 하늘과 해와 고산을 한 끈에 꿰듯한 굳은 신앙을 가졌었다.

넓은 하늘과 빛나는 해와 높은 apt부리를 우러러보고는, 지극히 크고 먼 기상을 기르는 사람의 씨앗이

었다.27)

 


그리고, 이 몽고계 안에 있는 산악에는, 이름에 있어서 한 가지 공통되는 점이 있었는데, 산의 이름들이

거의 ‘박’(白)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심장 지역의 용마름 되는 파미르를 중심하여 동북쪽으로 퍼져 나가 ‘우랄․알타이’족이 사는 모든 지역에는

반드시 하늘과 조상을 배합하는 신산(神山)이 있어서 그것을 ‘박’산이라 했다.28)

이들 ‘박’산으로 연결되어지는 아시아 북계의 문화를 한자로 불함 문화(‘불함’은 ‘박’의 한자적 적음)라

불렀다.

최남선의 불함 문화론을 중심하여 살펴본 수메르 문화와 한국 문화의 관계를 고산 숭배 관점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물론, 최남선 선생이 불함 문화를 쓸 당시에 수메르 문화를 전개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양자는 우연의 일치라기에는 신기할 정도로 같은 점을 많이 내포하고 있다.

 

  우선, 최남선은 불함 문화 계통이 인류의 가장 오래 된 것임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불함 문화는⋯⋯인류는 영아기의 모습을 보유함으로써 그 아득한 한 기원을 짐작케 한다.

원시 인류가 아직 극히 협소한 지역 내에 거주하고, 습속, 칭위 등의 나뉘어짐이 다 왕성하지 않았을 대에

중요한 유물인 듯한 것을 불함 문화 안에서 찾을 수 있다.29)

 


고대 원시 인류 시대에 수메르와 조선족은 ‘박 문화’라고 하는 공동문화권 속에서 살다가 갈라졌음을 가정

해 본다.

지금까지 동․서 문화는 별개의 것이요, 서양 문화 가운데서도 히브리가 헬라는 별개의 것이라고 여겼는데,

박 문화를 통하여 동서 문화가 교감하는 인류 생활의 원시적 세계성에 도달케 하는 데에 수메르 문화는 그

문화적 가치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불함 문화는 인류의 가장 오래 된 문화일 뿐만 아니라, 그 발달 계통으로 볼 때에 가장 넓은 지역에 분포

되어 있는 문화라는 것이다.

불함 문화의 지역은 카스피해와 흑해 부근 조선과 자매 관계에 있는 일본 및 동부지나는 물론이요, 면악을

위시하여 구바․고보우․구보우 등의 신앙이 있는 유구를 남극으로 하여 장백산의 만주․몽고․중앙아시아로,

서쪽으로 그 연결을 명백하게 찾을 수 있어서, 적어도 발칸 산의 발칸 반도까지는 그 분포 범위로 상정할

수 있다.30)

 

그런데, 이렇게 넓고 오래 된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불함 문화에는 그 특질로서 신산․신읍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 지적한 대로 불함은 ‘’의 한역이니, 하늘과 신과 천도(天道)와 신정(神政)을 의미하는 것이 이 말

가운데에 있어서, 이 문화 계통의 관념 및 사실 전체가 흠뻑 포함되어 있다.31)


최남선은 말하기를, 이 불함 문화는 아득한 옛날부터 일관해 전승해 온, 세계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문화

계통이 분명하다 하면서, 그 분포의 구역이 아시아의 북방 심장 지대를 차지하여, 세계 최대의 문화권을

이루었다고 했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이 문화의 정통이요 중심이요 또 전형인 자(者)는 실로 조선 문화라는 것

이다.32)

 

조선 문화는 불함 문화계 안에서도 가장 오랜 일토일민(一土一民)의 역사를 가진 자이며, 동방에 있어서

이 문화의 중심지가 된다.

 

  그러면, 지금부터 주로 한국을 중심하여 발전되어 내려온 고산 신앙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고산 신앙은 널리 몽고계 인종, 특히 그 북계 종족들 사이에 행해진 신앙이지만, 그 중에서 조선 지파는

특히 천제의 아들로 뽑혀서 인간을 다스리는 자가 되어 내려왔다고 믿음으로써, 스스로 일컫기를 ‘한’

또는 ‘닥’ 또는 ‘박’ 등 천인(天人)이라고 스스로 일컫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네들은 나라를 대개 높고 큰 산에 의지하여 배치하고, 그네들의 생활은 이 산을 천으로 숭봉

하는 제사로써 중심을 삼아서, 자기들이 있는 곳이면 반드시 저절로 천국인 줄로 알았었다.

그러므로, 자기들이 개척하는 땅에는 흔히 ‘발’이라는 이름을 붙이니, ‘발’은 ‘밝’의 약칭이요, ‘밝’은 신명

(神明)의 원 뜻으로부터 옮겨진 광명의 뜻을 가지게 된 말이며, 후에 하자로 번역하여 맥(貊), 발(發),

부리(夫里) 등으로 지어졌고, 다시 요약되어 번(番), 방(方), 부여(夫餘) 등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33)

 

‘한’, ‘닥’, ‘밝’은, 이들이 점차로 남쪽으로 이동, 산동 지역으로 들어감에 따라서 그 본국은 ‘한’이라 하고,

그 씨계는 ‘닥’이라 하고, 그 족의 이름은 ‘박’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모든 말들의 의미는 천국에서 나온 천제의 무리라는 것을 내포하게 되었다.


‘한’은 나중에 한자로 ‘환’(桓) 혹은 ‘한’(韓)이라 쓰고, ‘닥’은 ‘대’(大) 흑은 ‘이’(夷)(고음 닥)라 쓰고, ‘박’은 ‘백’(白) 혹은 ‘박’(朴)(원음 박)이라고 쓰게 된 것이며, 자기들이 사는 지역을 통틀어 ‘’라 일컫고,

그 중에서 동쪽으로 치우치는 지방을 별로 ‘’ 혹은 ‘신’이라고 부르니, ‘’는 후에 한자로 ‘발해’로

번역하게 되었고, ‘신’은 ‘선’(鮮), ‘진’(震), ‘전’(展) 등으로 해석하게 되었다.

 

진역에 있어서 가장 높은 산은 백두산이니, 산맥과 그 주봉은 일찍부터 높은 산을 하늘로 여겨 이 민족의

사는 곳에는 반드시 자기네를 호위하고 보육해 주는 신산(神山)이 있어서, 여러 작은 신산을 거느리는

으뜸되는 산을 ‘’이라 부르게 되니, 백두산은 이 민족의 ‘신산’이라 할 수 있다.

 


박산은 무릇 조선 계통의 문화와 민부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이 신앙에 인하는 천의 표상인 산악이 있어서⋯⋯.

 

모든 백산이 부족의 단합과⋯⋯ 통일로 인하여 나중에는 일국토 일민족(一國土一民族)의 안에 동성질․동지

위의 백산이 우글우글하게 되고, 그리하여⋯⋯ 그 사이에 배경과 유래와 내재적 다른 이유로 인하여 그

사이에 대소 존비와 종류간 계급 관계가 생기니, 태백이니 하는 대소의 차이가 이래서 생겼다.34)

 


그러면, 우리에게 있어서 고산 숭배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고산 숭배는 우리의 옛 신앙에 있어서, 고산과 천계는 둘이 아니요 하나라는 철저한 신앙 위에 근거해 있다. 하늘이 인간 속에 내려오는 곳이 산악이요, 산이 최대한으로 된 것이 곧 천(天)이다. 산악은 천에의 관문

이요, 인천(人天)의 만남점, 연락점인 것이며, 인간에 있는 천적 최고 실재(天的最高實在)가 산악이다.


그래서, 산(山)과 천(天)은 동일한 ‘밝’으로써 칭호되니, ‘밝’이란 이름을 통하여 산과 천은 동일한 관념의

대상이 되어 있다. 그래서 밝산(山)이란 천산(天山)이란 말과 같다.

이 관념이 기본이 되어서 원시적 우주관 내지 인생관이 형성되어 신앙으로 발전되고, 그것이 종교에서는

경전, 역사에서는 건국 신화로 나타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밝’산은, 조선 계통의 문화 속에서 천(天)의 표상인 산악이 있어서, 다 각각 ‘밝’으로 일컬어

지게 되었다.35)


최남선은 산과 천을 하나로 하는 데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의미가 있다고 했다. 즉,

 

  ① 고대에 있어서 신(神)을 접하는 행사가 산(山)을 영지(靈地)로 하여 발생함.

  ② 제사를 지내기 위해 신직자(神職者) 등이 주로 산 위에 올라가서 모인다.

  ③ 이러한 종교적 회합이 모든 사회적․민족적 대사를 결정하는 기회가 되었다.36)

 


천(天)은 막연한 추상적인 것이 아닌, 태양이란 구상적인 존재로서 천을 대표하게 만들었다.

신산은 태양이 나타나는, 곧 다시 말해서 하늘이 구상화되어지는 고이다.

그래서, ‘조선에 있어서 신산이란 결코 타에 있어서와 같은 통례의 고산 숭배가 아니라, 천계의 인간적

존재, 또는 태양의 나타남, 혹은 태양의 궁거(宮居)와 같은 곳이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신체(神體)로서 산이 Park-Parkan(-ai)으로서 호칭되었으니, 이 말은 신인 산이란

의미이다.

이 경우에 있어서 Park은 단순히 신을 의미하게 된다.37)

 

옛날부터 조선에서는 해뜨는 동방을 향하여 정성스럽게 예배했다.

동방은 생명의 근원, 진인(震人)의 고향이었으며, 특수한 명절에는 전 민족이 모여 동방과 태양에 예배하는 처소가 부족마다 있었으니, 이러한 고대의 신산 중에는 산의 이름 글자가 ‘밝’ 대신 ‘살’ 혹 ‘술’로 전하여

이것이 ‘선’ 혹은 ‘성’이 되었다.

(예 : 평양의 대성산, 개성의 성거산 등, 선, 성, 송, 운이 들어가는 산은 모두 이에 속함.)

 

산곡대기에는 신읍을 두고, 그 안에 신단을 만들고, 준기한 석봉이나 직립한 암석을 신체(神體)로 하여 경사(傾斜)의 도(度)를 펴니, 이것을 신시라 하고, 이 자리를 소도라고 했다.38)

이 일을 맡은 이를 ‘당굴’이라고 했다.

여기서 신시는, 번역하면 영역(領域)이란 뜻이니, 대개 고산의 꼭대기를 에워서 일종의 석위(石位)를 베푼

것이요, 뒤에 많이 산성하고 섞이게 된 것이며, 소도는 높은 축을 의미하며, 번역하면 신단이니, 높은 산꼭

대기의 자연 직립석이다.

평지에서는 지면에 단을 모으고, 그 위에 긴 뾰족한 석주를 얹었으니, 뒤에 돌무더기 조탑(造塔)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렇게 신단이 있는 곳에 그 단을 봉위(封位)하는 신목이 있으니, 이것을 신단수, 나중에는 당산나무라 했고, 신시가 있는 산이 곧 ‘밝’산, ‘’산이 되었다.

 

이와 같이 하여 조선 민족은, 천은 광명의 세계요, 그 주제자는 태양이요, 자기는 천국의 민이요, 천신의

아들로서 이 지계로 내려왔다고 믿게 되었다.

그들은 해뜨는 곳을 거룩하게 보았으며, 동방을 흠모하는 풍습이 그들 사이에 생겨나게 되었다.39)

 

최남선은 여기서, 고산 숭배는 동이 조선(東夷朝鮮)에서 시작되었으며, 그것이 중국의 것과는 다르다고 했다. 중국인의 태산 숭배․본선(本仙)이나 동악 대제(東岳大祭)가 중국인의 고유의 것이 아니라, 태산을 중심으로 예로부터 그 주위에 분포되어 있던 동이의 유풍을 계승 또는 삽입한 것이요, 그것을 곧 ‘박’에 제사하는 한

형식에 불과하다.40)

중국의 중요한 의식은 천자의 제천이요, 민간 신앙 중에서 가장 융성한 것은 고산 숭배라 할 수 있다.

이 양자는 모두 본래 태산 숭배가 양분되어 나타난 것이다.

최남선은, 제천의 풍속이 지나의 것과 같은 줄로 아나, 그 근본에 있어서 다르다고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① 제 일은 오직 하늘을 시배(是拜)하고 제신(諸神)을 배(配)치 아니함이요,

  ② 지나에서처럼 왕이 독행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 전체가 같이 함이요, 

  ③ 국조 혹은 국토 진혼신(國土鎭魂神)과 뭇 제(祭)가 다 한 몸임을 믿음으로써 고유한 신앙임을 알 수 있다.41)

 


고산 숭배 사상은 중국의 문명과 한국의 문명을 구별하는 표상이 되기도 한다.

중국은 고산 숭배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다.

최남선은, 그들에게 남아 있는 태산 숭배는 동이족의 흔적이 중국에 남아 있는 결과일 뿐이라고 하면서,

밝산(白山) 숭배 사상이 아직까지 한 나라 한 민족(一土一民) 속에 그 순수한 모습대로 남아 있는 곳은

조선뿐이라는 것이다.

 

 

 

‘山’의 고대 어휘들

 


여기서, 산을 의미하는 언어의 기원을 문명 기원사적 입장에서 살펴보는 것은 중요하다.

 

산악(山嶽)이 거란어로는 ‘타끼’이고, 이 말은 몽고어에서 왔다. 수메르어는 산을 ‘쿠르’(Kur)라 했는데,

한자로는 ‘구루’(句婁)표기되었고, ‘구려’는 ‘구르’에서 기원했다고 본다.

‘구르’는 지금까지도 ‘구릉’(hill), 즉 ‘언덕진 땅’으로 씌어지고 있다.

수메르어에서 산을 의미하는 ‘쿠르’는 상형문자로 다음과 같이 표기되어 있다.42)

 

수메르어   

아카드 문자   

바빌론 문자   

앗시리아 문자   

은나라․갑골문   

 


인류 초고대 언어 가운데 위의 다섯 언어는 모두 산의 글자를 매우 유사하게 표시하고 있다.

이러한 공통성은 과거 어느 때 인류는 어느 고산 지대에서 같은 생활을 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수메르어의 ‘쿠르’는 ‘땅’(land)을 의미하기도 하여, ‘수메르’ 자신을 ‘쿠르갈’(Kurgal)이라 하여 ‘큰 땅’

(great land)을 의미한다.43)

'쿠르‘는 이와 같이 수메르가 스스로 산의 종족이라는 것을 밝히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쿠르‘는 수메르 신화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쿠르‘는 종종 땅과 바다 사이에 있는 빈 공간, 즉 한국의 ’용왕 세계‘와 매우 유사하다.

인안나(Inanna) 여신이 바다 밑 세계로 내려갔을 때 바로 ’쿠르‘에 갔다.

이것은 용왕 세계로 우리에게 알려진 세계이다. ’쿠르‘는 바빌론 신화에 나오는 티아맛(Tiamat)과 같다.

우주는 곧 티아맛의 몸 자체이다.44)

이런 점에서 거란어의 ’구르‘가 수메르어의 ’Kur)와 일치하고, ‘타끼’가 ‘다강’과 일치하고 있는 것은 매우

기이한 일이다.

일본어로는 ‘미다께’로, 거란의 ‘다께’와 형제어라 할 수 있다.

중국어의 ‘가꾸’도 상관 없다 할 수 없다.

중국음 ‘산’(山)은 쿠르에서 전음, 즉 Kur>Cur>Char>Shan>San>⋯⋯Shen>Sen으로 변했다고 한다.45)

 

한국에서 산을 이야기할 때에 삼산(三山) 혹은 삼신산(三神山)이라고 ‘산(山)’과 삼(三)‘을 항상 붙여 사용

하는데, 이를 박용숙 교수는 ’산(山)과 천(川)은 만물의 시원을 뜻한다.46)

그리고, 삼(三)은 세 개의 산이란 뜻이 아니고, 하나의 산이 세 뿔을 가졌다는 것을 뜻한다‘고 했다.

삼각산(三角山), 삼신산(三神山), 삼소(三蘇)는 모두 ’세뿔뫼‘란 뜻이다.

 

 

피라밋이야말로 산의 본래의 의미가 삼각추(三角錐)임을 알게 해 주는 확실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이집트인들은 이렇나 피라밋이 그들의 최고의 신(神)인 일신(日新) 오시리스(Osiris), 월신(月神) 이시스

(Isis), 성신(星神) 호루스(Horus)의 삼신(三神)이 사는 집으로 알고 있다.

물론 이런 풍경은 이집트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중앙아시아나 인도의 우주산(宇宙山)으로 알려진 ‘슈멜’도 모두 피라밋형으로 되어 있으며⋯⋯어쨌든,

피라밋이 사막 지대에 사는 이집트인들의 산임이 분명하다.47)

 

 

박용숙 교수는 ‘수경주’(水莖注)의 말을 인용, 산은 분(墳 : 무덤), 구(邱 : 둔덕), 묘(墓 : 묘), 능(陵 : 능)

이라고 하여, 위에서 지적한 피라밋과 지구랏이 겸하여진 의미가 산에 모두 포함되어져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48)

 

 

 

한국과 이스라엘의 ‘山’

 


근동아시아 문명권의 고산 혹은 거룩한 산 숭배에 관한 이야기는, 창세기 11:1~9에 기록된 바벨탑(The

Tower of Babel)에 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창세기 11:4의 신나르(Shinar) 광야는 수메르를 지칭한다. 학자들은 ‘신나르’와 ‘수메르’가 어원이 같다고

본다.

그리고, 바벨탑은 두말 할 나위 없이 지구랏이다.49)

'바벨‘이란 말이 언어를 ’혼잡‘(confused)시켰다고, 즉 ’바랄‘(balal)에서 유래했다고 하나, 사실은 ’하늘의 문‘(the gate of the Gods)이란 뜻이다.

하늘의 문은 바벨의 본뜻이고, 이는 지구랏이며, 산을 지칭한다.

 

야곱의 베델(Beth-띠)에서도 환상도 가나안 의식을 반영한다.(창세기 28:10~17) 자기 아버지의 노함을

피하여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가는 도중, 밤에 꿈 가운데서 본 ‘땅에서 하늘에 닿는 층계’(and the

top of it reached to heaven)(12절) 역시 지구랏의 층계이다.

이것은 ‘그 층계를 하나님의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했다’는 것으로도 분명해진다.

야곱은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여기가 바로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의 문이로구나’(17절) 하고 감탄했다.

이것은 수메르 엔릴 영웅이 ‘왕위가 하늘에서 내려온 후에’라고 하여, 자기의 왕권이 지구랏 제단을 통해

받은 것이라고 한 고백과 상통하고 있다.

‘층계’ 혹은 ‘사닥다리’(ladder'라는 ‘술람’(sullam)이라는 말은, 지구랏의 층계이다.

수메르와 구약의 상관성은 ‘베델’이라는 말에서 더욱 뚜렷해진다.

이 말은 ‘엘(El)의 집(Beth)'이란 뜻이다. '엘’은 가나안 종교의 신이 아닌가.

여기서 우리는, 메소포타미아 종교의 영향이 고산 숭배 사상을 통해 직접적으로 구약에 관련되었음을

발견하게 된다.50)

 

구약 속의 고산 신양은, 시내산에 와서 그 뚜렷한 모습이 더욱 선명해진다.

이스라엘 민족이 시내 광야에 나온 후, 모세는 시내산에 올라갔다.

산에 오른 지 셋째 날 아침, ‘천둥소리와 함께 번개가 치고, 시내산 위에 짙은 구름이 덮이며, 나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자, 진지에 있던 백성이 모두 떨었다. ⋯⋯시내산은 연기가 자욱하였다. 야훼께서 불 속에서

내려오셨던 것이다. ⋯⋯야훼께서 시내산 봉우리에 내려오셔서, 모세에게 산봉우리에 오르라고 하시자,

모세가 올랐다.’(출애굽기 19:16~19)

 

야훼가 그의 하늘 집에서 내려와 산 위에 머무셨다.

산은 그가 세상과 만나는 접촉점이다.

수메르의 지구랏이 바로 이런 목적으로 세워졌고, 우리 한국의 거의 모든 산들은 하나님이 세상에 내려

오는 하늘 문이요, 그 만남의 접촉지였다.

환웅이 내려온 태백산, 김수로왕이 내려온 구지봉(????旨峯) 바로 하늘의 관문 역할을 한다.

일본에 있어서도 카미(kami : 神)는 신들에 적용되는 말이지만, 큰 힘을 가지고 있는 산들에 적용되는

것이기도 하다.51)

 

성거산(聖居山)의 경우,

 

고려 태조가 일찍이 고을 서쪽 수헐원에 거동했다가 동쪽을 바라보니, 산 위에 오색 구름이 있는지라,

이는 신(神)이 있는 것이라 하여 제사지내고, 드디어 성거산(聖居山)이라 일컬었다.

(新增東國與地勝覽 卷16)52)

 


  이와 동일한 예로,

 


오산군의 남쪽 2리에 진산(鎭山)이 있다.

동쪽에 한 골짜기가 있어 고사동(高沙洞)이라 하는데, 하늘에서 장차 바람이나 비가 오려면 먼저 알려서

운다.

구름 기운이 솟아서 구름이 골짜기 안으로 들어가면 비가 오고, 구름이 골짜기 밖으로 나오면 바람이 불며, 크게 울면 그 날로 효험이 있고, 작게 울면 2, 3일 사이에 효험이 있다.(같은 책 卷 26)53)

 


구름이 만들어지는 곳도, 천둥이 만들어지는 곳도, 비가 만들어지는 곳도 모두 산이다.

위의 오산의 경우는 그 울음소리로 바람과 구름, 비를 예고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한국인의 고산 경험, 모세의 시내산 경험은 많은 점에서 유사하여, 비교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시내산 위에서의 모세의 경험인 ‘천둥소리와 함께 번개가 치고, 시내산 위에 짙은 구름이 덮이며’(출애굽기

19:16)는 결코 한국 사람들에게 생소한 표현이 아니다.

 

모세가 소명을 받은 산은 호렙(Horeb) 산이다.

여기에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난다.

이 천사는 모세에게 가부장적 선언을 한다.

‘나는 네 선조들의 하느님이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출애굽기 3:6)

라고, 한국의 산이 어머니상과 연관되어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며, 수메르의 그것과도 대조적이다.

이미 이 때는 산이 남성신의 거주지로 바뀌어진 다음이다.

한국에서도 후대에는 산신령이 남성적인 존재로 바뀐다.

삼신 할머니가 삼신산에 살았는데, 후에 가부장 제도에 탈색되어, 산신령이 나이 많은 노인으로 변한다.

모세가 10계명을 받은 데서 시내산은 그 절정에 이르게 된다.

 

시편 기자가 ‘⋯⋯사랑하시는 시온산이었다. 거기에 당신께서 머물 거룩한 집을, 땅처럼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터 위에, 하늘처럼 드높이 세우셨다’(시편 78:68~69)고 할 때에, 시온산의 영상은 분명히 수메르의

지구랏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54)

시온산은 적을 방어하는 산성이며,(시편 48) 신이 나타나는 곳이며,(열왕기하 8:10~11) 신들이 모여

회의하는 곳이며,(이사야 6:1~2) 왕이 왕관을 받는 곳이다.(시편 2, 110)

이 모든 성격은 한국의 산이 가지고 있는 성격과 다른 것이 하나도 없다.

이스라엘 민족이, 살기는 광야에 살면서도, 그들의 종교 신앙은 산악 신앙이었다.

 

시내산과 시온산은 야훼의 거주처이며, 야훼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머문 곳이다.

모세에게 자기의 이름과 자기의 정체를 밝힌 곳이며, 토라(율법)을 선포한 곳이며, 심판과 구원을 알린

곳이며, 왕들에게 사명을 맡긴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산의 기능은 신약성서에도 그대로 계승되어진다.

예수께서 ‘산’에서 행하신 기능은 야훼가 행하신 것과 같다.

신약에서는 ‘산’이 희랍어의 ‘to oros'로 번역되었는데, 이것은 단순히 ’언덕‘(a hill)을 의미한다.

예수가 시험을 받으실 때 마귀는 ’매우 높은 산‘(a very high mountain)으로 예수를 이끌고 올라갔다.

(마태복음 4:8)

산은 예수가 군중들을 잠시 피하여 기도하던 곳이다.

’산에 오르사 기도했다.‘(마가복음 3:13~17)

이것은 야훼가 호렙산에서 모세를 불러 사명을 부여하는 장면과 같다.

이러한 거룩한 임무를 부여하는 처소로 산을 택한 것은, 수메르와 구약성서의 전통을 예수가 그대로 물려

받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55)

예수가,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정체성(Identity)을 밝힌 곳도 산이다.(마가복음 9:2~9), 마태복음

17:1~8, 누가복음 9:28~36) 베드로, 요한, 야곱, 세 제자들과 변화산상에 올라가,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

임을 밝힌 곳이 바로 산이다.

이 장면은, 출애굽기 24장에 모세와 아론, 그리고 70 장로가 산 위에 올라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고,

모세의 얼굴이 변화 받은 장면과 비교가 된다.


신약과 구약의 양자는 모두,

 

  ①  두 사건이 모두 산에서 일어났고,

  ②  신은 구름 가운데 나타나 거기에 있던 사람을 휩쌌으며,

  ③  신의 음성이 구름 가운데서 들려 왔고,

  ④  산 위에 있던 사람들이 함께 변화를 받는다.

 


마지막으로, 신약성서의 산은 종말론적 왕국이 이룩되는 곳이다.

구약에서도 이미 시온산은, ‘주님의 날’에 모든 나라들이 모여들어, 주님의 토라를 배우고 무기를 바꾸어

보습을 만드는 곳이다. 시온산은 만국의 백성들이 모두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받는 곳이다.

시온산은 만국의 백성들이 모두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받는 곳이다.

샤롬(평화)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요한 계시록에서는, 예수의 마지막 사역이 성취되는 곳이 산으로 묘사되어 있다.

요한은 묵시 가운데 한 천사가 자기를 ‘한 크고 높은 산으로’(to a great and high mountain) 인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계시록 21 : 9)

 

시온산에서는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계시록 21 : 27)

이러한 완상은 에스겔(47장)이나 스가랴(14장)가 경험한 것과 유사하다.

즉, 구약과 신약의 전체 내용 속에 흐르고 있는 산의 영상은 율법과 복음의 처음이요 마지막이라 할 수 있다.

 

우주와 역사는 산으로부터 시작하여 산으로 끝난다.

산은 인간과 신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곳인 동시에 성취되는 곳이다.

우리 한국에서도 태백산은 신이 내려와 인간과 역사를 시작하는 곳이요, 계룡산은 역사의 종말이 이루어

지는 곳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사막에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산악 신앙을 가지게 된 것은 두말 할 것 없이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문명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졌다 할 수 있고, 수메르의 고산 숭배 사상은 중앙아시아

일대에서 형성된 종교 신앙을 떠나서 이해될 수는 없을 것이다.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와 이렇게 번창 일로에 있는 것은, 신․구약성서 속에 나타난, 그 처음과 마지막을

이루고 있는 산악 신앙을 떠나서는 이해될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기독교를 한국에 접목시키고 토착화시키는 데에 결정적인 영향을 한 것이 바로 산일 것이다.

한국 크리스챤들은, 산에 가야 하나님을 만난다고 생각하는지, 유달리 산 기도를 좋아하고, 산을 찾아

명상하기를 즐기는데,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그러했던 것과 유사하다.

이와 같이 종교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산에 대한 연구를 새삼 하여야 할 것이고, 인류 문명 기원사적

으로 재검토되어져야 할 것이다.

성서에 나타난 산의 의미를 새삼 음미하고 나면, 한국 트리스챤들이 한국 종교와 단군 설화를 이해하는

눈도 달라질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몽고에 있는 피라밋들에 의해 더욱 분명해진다.

우리는 아직까지 몽고에 피라밋이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

그 연대가 약 6000년 전 것으로 추측되는, 이집트 피라밋의 약 두 배가 되는, 1000피트 높이, 1500평방

피트 넓이의 피라밋이 모고 쉔시(Shensi)에서 발견되었다.56)

그야말로 산을 방불케 하는 이 몽고 피라밋은 쉔시에 약 8개 가량이 있다.

이집트의 피라밋과는 달리 꼭대기가 지구랏같이 평평하다.

몽고 피라밋은 흙을 이겨서 만들었다. 외관상으로 보면 산 같다.

 

추측컨대, 몽고의 피라밋은 중앙아시아의 고산 숭배 사상이 수메르의 지구랏으로 전해지는 중간 지대에서

만들어진 것 같다.

그 모양이 지구랏과 피라밋을 복합한 것과 같다.

즉, 지구랏같이 위는 평평하게 넓고, 옆은 피라밋같이 아무런 장식 없이 경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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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lbert A. Trever, History of Ancient Civilization (New York : Harcout, Brace and Company,

1936), p. 20

2) Samuel N. Kramer, The Sumerians (Chicago and London :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63), p. 42.

3) C. Leonard Woolley, The Sumerians (New York : W. W. Norton and Company, 1965), p. 141.

4) C. Leonard Woolley, The Sumerians (New York : W. W. Norton and Company, 1965), p. 7.

5) Foster R. McCurley, Ancient Myths and Biblical Faith (Philadelphia : Fortress Press, 1983),

p. 130.

6) Foster R. McCurley, Ancient Myths and Biblical Faith (Philadelphia : Fortress Press, 1983),

p. 131.

7) C. Leonard Woolley, The Sumerians (New York : W. W. Norton and Company, 1965), p. 142.


8) Gordon C. Baldwin, Pyramids of the New World (New York : G. P. Putnam's sons, 1971), p.

11. Pyramid의 PYR은 그리스어 PYRO에서 파생된 말로서, 불, 열을 의미한다.

우리말의 불(PUR)과 유사하다. AMID 역시 그리스어 MESOS에서 나온 말로서 중심이란 말이며, ‘중심

에서 타는 불’을 의미한다.

 

9) Gordon C. Baldwin, Pyramids of the New World (New York : G. P. Putnam's sons, 1971), p. 13.

 

10) Gordon C. Baldwin, Pyramids of the New World (New York : G. P. Putnam's sons, 1971),

p. 23. Pyramid의 PYR은 그리스어 PYRO에서 파생된 말로서, 불, 열을 의미한다.

우리말의 불(PUR)과 유사하다.

AMID 역시 그리스어 MESOS에서 나온 말로서 중심이란 말이며, ‘중심에서 타는 불’을 의미한다.

 

11) Gordon C. Baldwin, Pyramids of the New World (New York : G. P. Putnam's sons, 1971), p. 23.

12) David Adamson, The Ruins of Time (New York : Praeger Publishers, Inc., 1975), p. 114.

13) 千寬字 편, 『韓國上古史의 爭點』, (서울, 一潮閣, 1978), p. 56.

14) 최남선, 「아시조선」, 『최남선 전집』 2, (서울, 현암사), p. 157.

15) 이정기, 「리 原形文化와 檀君神話」, 『民族正統思想의 硏究』, (서울, 주간시민사, 1978), p. 46.

16) 이정기, 「리 原形文化와 檀君神話」, 『民族正統思想의 硏究』, (서울, 주간시민사, 1978), p. 50.

17) 이정기, 「리 原形文化와 檀君神話」, 『民族正統思想의 硏究』, (서울, 주간시민사, 1978), p. 51.

18) C. J. Ball Chinese and Sumerian, (London : Oxford University Press, 1913), p. 5.

19) 崔夢龍, 『人類文化의 發生과 展開』, (서울, 東星社, 1985), p. 90.

 

20) ‘신세계’란 말 자체는 백인들이 만들어 놓은 말이다. 그들에게 신세계이지, 인디언들에게 그 말이

해당될 수는 없다.

 

21) 朴杓, 『超古代 文明에의 招待』, (서울, 드라이브사, 1983), p. 146.

22) 朴杓, 『超古代 文明에의 招待』, (서울, 드라이브사, 1983), p. 146.

23) 李恩奉, 『韓國古代宗敎思想』, (서울, 集文堂, 1984), p. 120.

24) 李恩奉, 『韓國古代宗敎思想』, (서울, 集文堂, 1984), p. 111.

25) 李恩奉, 『韓國古代宗敎思想』, (서울, 集文堂, 1984), p. 112.

26) ‘불함’은 ‘밝’의 한자음 표기. 중국 문헌에 그렇게 표기되어 있다.

27) 최남선, 「아시조선」, 『최남선 전집』2, (서울, 현암사), p. 156.

28) 최남선, 「不咸文化論」, 『최남선 전집』2, (서울, 현암사), p. 48.

29) 최남선, 「不咸文化論」, 『최남선 전집』2, (서울, 현암사), p. 63.

30) 최남선, 「不咸文化論」, 『최남선 전집』2, (서울, 현암사), p. 62.

31) 최남선, 「아시조선」, 『최남선 전집』2, (서울, 현암사), p. 172.

32) 최남선, 「아시조선」, 『최남선 전집』2, (서울, 현암사), p. 172.

33) 최남선, 「아시조선」, 『최남선 전집』2, (서울, 현암사), p. 158.

34) 최남선, 「檀君神典의 古意」, 『최남선 전집』2, (서울, 현암사), p. 196.

35) 최남선, 「檀君神典의 古意」, 『최남선 전집』2, (서울, 현암사), p. 196.

36) 최남선, 「檀君神典의 古意」, 『최남선 전집』2, (서울, 현암사), p. 216.

37) 최남선, 「不咸文化論」, 『최남선 전집』2, (서울, 현암사), p. 45.

38) 최남선, 「아시조선」, 『최남선 전집』2, (서울, 현암사), p. 177.

39) 최남선, 「아시조선」, 『최남선 전집』2, (서울, 현암사), p. 183.

40) 최남선, 「不咸文化論」, 『최남선 전집』2, (서울, 현암사), p. 51.

41) 최남선, 「不咸文化論」, 『최남선 전집』2, (서울, 현암사), p. 51.

42) 川崎眞治, 「‘契丹神話‘와 ’잃어버린 十部族’의 함수」, 『自由』1981. 1. (서울, 自由社, 1981), p. 113.

43) S. N. Kramer, Sumerian Mythology(Chicago :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53), p. 76.

44) S. N. Kramer, Sumerian Mythology(Chicago :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53), p. 76.

45) 川崎眞治, 「‘契丹神話‘와 ’잃어버린 十部族’의 함수」, 『自由』1981. 1. (서울, 自由社, 1981), p. 115.

46) 朴容淑, 『韓國古代美術文化史論』, (서울, 一志社, 1978), p. 109.

47) 朴容淑, 『韓國古代美術文化史論』, (서울, 一志社, 1978), p. 111.

48) 朴容淑, 『韓國古代美術文化史論』, (서울, 一志社, 1978), p. 112.

49) Foster R. McCurley, Ancient Myths and Biblical Faith (Philadelphia : Fortress Press, 1983),

p. 139.

50) Foster R. McCurley, Ancient Myths and Biblical Faith (Philadelphia : Fortress Press, 1983),

p. 140.

51) 朴容淑, 『韓國古代美術文化史論』, (서울, 一志社, 1978), p. 101.

52) 朴容淑, 『韓國古代美術文化史論』, (서울, 一志社, 1978), p. 101.

53) 朴容淑, 『韓國古代美術文化史論』, (서울, 一志社, 1978), p. 101.

54) Foster R. McCurley, Ancient Myths and Biblical Faith (Philadelphia : Fortress Press, 1983),

p. 151.

55) Foster R. McCurley, Ancient Myths and Biblical Faith (Philadelphia : Fortress Press, 1983),

p. 168.

56) Fred Meyer Schroder, 'Pyramids of Shensi' The Man's Magazine (Downey, California : MM,

1985), p.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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