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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자료] 단재 신채호 - 동양고대선교고(東洋古代仙敎考)

송화강 2019-05-12 (일) 22:43 6년전 4291  

동양고대선교고(東洋古代仙敎考) 


동사(東史)를 열(閱)하건대 선교(仙敎)는 동국(東國) 고대에 성행한 자(者)라 당시 서적이 산결(散缺어지러이

흩어짐)하야 기(其) 원류를 고(考)키 난(難어려움)한 고(故)로 혹자는 시(是)를 지나 도교의 동입(東入)한 자로

인(認)할 이이(而已뿐이)나 좌우로 참호(參互)하건대 차(此)가 동국에 고유(固有)한 자요 지나에서 내(來들어

옴)치 아니한 증좌(證左증거)가 실다(實多)하도다.


천선(天仙) 국선(國仙) 대선(大仙)의 명칭이 삼국 이전 급(及) 삼국초에 누현(累現여럿 나타남)하였는데 도교의 경전은 고구려 영류왕 시(時)에 시래(始來)함이 (1)이오 도교의 동입(東入)함이 불교후에 재하거늘 선교(仙敎)

는 불교(佛敎) 수입 이전부터 유함이 (2)오 


도교는 노자에 시(始)하였는데 기년람(紀年覽)에 단군(檀君)을 천선(天仙)이라 칭하였으며 삼국사(三國史)에

단군을 선인(仙人)이라 칭하였은 즉 단군과 노자의 선후를 계(計셈함)하라.


단군은 천수백년 이전인이오, 노자는 천수백년 이후인이니 천수백년 이전인이 어찌 천수백년 이후인의 창설한

교를 수입하리오.

차(此)가 어불성설됨이 (3)이오 선교가 만일 삼국시대의 인군(人君)이 지나로부터 수입한 것일진데


동명성왕(東明聖王)과 대무신왕(大武神王)도 피(彼) 한무제(漢武帝) 선제(宣帝)같이 방사(方士)를 해중에 유

(遺)하여 불사약(不死藥)을 구하였을지며


명림답부(明臨答夫)와 김유신(金臾信)도 피(彼) 장량(張良) 이필(李泌)같이 곡(穀곡식)을 설하고 도인(導引)을

학(學)하였을지어늘 차(此)가 무(無)함이 (4)오


도교는 비록 천사진인(天師眞人)의 봉작이 유하나 시(是)가 당송(唐宋) 이후에 시(始시작)하였을 뿐더러 우지

(又只또 다만) 제초(齊醮) 등을 사(司)할 뿐이오 정치상에 하등 실권이 무(無)한 자어니와 여제(麗濟)의 조의

(早衣) 대선(大仙) 등은 기권력이 당시 왕자(王者)와 상지(相持서로 의지)하야 서양 고대의 야소교(耶蘇敎예수

교) 승정(僧定)과 여(如같음)함이 (5)오


지나 도교는 피세(避世)의 교(敎)요 외사(畏死죽음을 두려워함)의 도(道)라 고(故)로 제왕된 자가 시(是) 교(敎)를 신(信)하면 만승의 위를 탈(脫)사같이 관(觀봄)하고 백일승천(白日昇天)을 구하며 사민(士民)으로 시(是)

교(敎)를 산에 입(入)하야 금단(金丹)을 련(練)하되


동국(東國)의 선교(仙敎)는 불연(不然그렇지 않음)하야 명림답부는 대선(大仙)이로되 폭군(차대왕)을 폐하고

외구(공손도)를 각(却물리침)하였으며


우(愚바보) 온달(溫達)은 대형(즉 선인)이로되 선비(鮮卑)를 척(斥)하야 강토를 척(拓넓힘)하며 우(又또) 신라

와 격전하다가 사(死)하였으며


김흠순(金欽純) 김인문(金仁問)은 선도(仙徒)로되 개(皆모두) 전장에 종사하던 명장이오 관창(官昌) 김영윤

(金令胤) 김흠운(金歆運)도 역(亦또) 선도(仙徒)로되 국사(國事)를 위하야 시사여귀(視死如歸죽음을 두려워

하지 아니함)함이 (6)이라.


연즉 기(其) 선교(仙敎)라 칭함은 단지 당시 한문학자가 여차(如此이와 같음)히 역(譯)함이오 기실은 장생

불사의 미신을 포(抱)한 지나 선교(仙敎) 즉 도교와는 성읍취미(聲邑趣味)와 기(其) 역사가 전혀 부동하도다.



최고운(崔孤雲) 난랑비서(鸞郞碑序)에 왈(曰) 「국유현묘지도 선교시이(國有玄妙之道 仙敎是已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선교가 그것이다)」라 하고 우왈(又曰이어 말하길) 「설교지원 비상선사(說敎之源 備詳仙史설교

의 근원은 선사에 자세하다)」라 하니


희라 선사(仙史)가 금(今지금)에 전한 자가 유(有)하면 민족진화의 원리를 고거(考據)함에 대재료가 될 뿐더러

차(且) 동양 고대 제국(諸國모든 나라)에는 보통역사만 유(有)하고 종교 철학 등 전문사는 무(無)한되 독(獨

홀로) 선사는 시(是) 동국에 특산된 종교사인 즉 우(又또) 사학(史學)상에 일대 광채를 첨(添더할)할지어늘 

석호(惜呼애석토다)라 기(其) 서(書)가 금(今)에 부전하였도다.


연(然그러나)이나 기(其) 동린서조(東鱗西爪)로 구비(口碑) 급(及) 잔서(殘書)에 수집하건대 선교(仙敎)의

일반(一斑)을 가규(可窺엿볼수 있음)할지라.



고기(古記)에 기(記)하되 환인(桓因)이 자(子) 환웅(桓雄)을 유(遺)하야 도(徒무리) 3000 을 솔(率)하고

태백산에 강(降내려)하니 시(是)가 환웅천왕(桓雄天王)이라.


환웅천왕이 인간 길흉화복을 주재하며 자 단군을 생(生)하였다 하였으나 기년람(紀年覽)에는 왈(曰) 환인은

천(天)이오 환웅은 신(神)이라 하였으니 환인 환웅 단군은 즉 소위 삼신(우왈 삼성)이오

삼신은 즉 선교 창립의 조(祖)라.


연즉(然則그런 즉) 환인 환웅은 실재의 인(人)이 아니오 즉(卽) 추상의 신(神)이니 기(其) 의(義)가 대략 야소

교의 삼이일체와 불교의 삼불여래와 여(如같음)한 자이어늘 후세 편사자(編史者)가 왕왕 단군의 조(祖)가

환인이오 부(父)가 환웅이라하니 어찌 가소(可笑웃기지)치 않느뇨.



지금까지 아(兒아기)가 생(生)하매 삼신(三神)에 도(禱빌다)함이 즉(卽) 선교의 유규(遺規남긴 법)됨이 무의

(無疑확실함)오 사(斯이) 교(敎)의 신앙조건은 세(世)에 무전(無傳)하였으나 신라사(新羅史)에 재(載실린)한

사군이충 사부이효 교우이신 임전무퇴 살상유택이 억기조건(抑其條件)의 일(一)이로다.


묘향산에는 단군 굴(窟)이 유(有)하며 금수산에는 동명왕의 기린굴(麒麟窟)이 유(有)하며 석다산(石多山)에는

을지문덕 굴(窟)이 유(有)하며 중악산(中岳山)에는 김유신 굴(窟)이 유(有)하니


단군시대는 서궐유간(書闕有間)이라 난고(難考)어니와 약(若만약) 삼국시대는 결코 혈거(穴居)시대 민족이

아닐지며 차(且) 문덕 유신 양공은 경천위지(經天緯地천하를 잘 다스림)의 대인물이거늘 하고(何故)로 굴처

(窟處)가 유(有)하뇨.



의자(意者)컨대 시(是)가 석가의 영산과 모하메드의 동굴과 여(如같음)히 선교도가 심술(心術)을 수련함에

필야(必也반드시) 굴처(窟處)를  이(以)함인저.


근세사가가 개(皆모두) 한국고대에 일종 만교(蠻敎)가 유행하였다 하니 숙신족의 배호(拜虎호랑이 숭배)와

예맥족이 배사(拜蛇뱀 숭배) 등은 시(是) 배물(拜物)의 만교어니와


이상 소론(所論)에 거하건대 부여족은 시(是곧) 배신자(拜神者신을 수배하는 사람)오 배물자(拜物者물건

숭배하는 사람)가 아니로다.



대저 사(斯이) 교(敎)가 삼국시대에는 불교와 결렬한 경쟁을 행한지라.

고(故)로 불교가 초 수입하매 신란 군신이 개(皆모두) 이도(異道)로 척(斥물리침)하였으며 (여제는 사결불가

고) 이차돈이 불교를 확장코자 할새 심지 기(其) 신(身)을 자살하였도다.


즉이(卽而)오. 나말여초에 불교 대성을 제(際)하야 경(竟드디어) 멸절(滅絶)하였으니 시(是)가 기(其) 교리의

조직이 정오(精奧)치 못하야 우승열패의 공례를 면치 못함인가. 

억혹(抑或설령) 기(其)  설교 규모가 당시의 시세와 인심에 부적(不適)하여 자연 쇠절(衰絶)함인가.

차(此)가 중고사(中古史)상에 일대 연구이 가치가 유한 자어늘 김문열(金文烈김부식) 정하동(鄭河東정인지)이

차(此)를 개(皆) 모호간과하고 유(惟오직) 순암안씨(順庵安氏안정복) 「동사강목」에 선교 시말의 난지(難知)

를 탄(嘆)하였도다.


고서적의 산망을 한(恨)하며 구사씨(舊史氏)의 노망(魯莽)을 연(憐)하야 차(此)를 각(各) 서중(書中)에서 촬록

(撮錄모아 기록)하야 독사자(讀史者)의 참고에 공(供이바지)하노라.


(「대한매일신보」 191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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