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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 한국신화 기행 2

송화강 2019-05-12 (일) 22:47 6년전 4461  

 

 

6. 곰,빛과 어둠을 아우르다

 

 

한 사물에 이름이 지어지면 사물은 그 이름을 한동안 위태롭게 간직해야 한다. 사물은 저에게 붙여진 이름이, 붙여진

의도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승인하고, 그 해석이 이름이라고 하는 갓 괸 물을 휘정거리더라도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면 물은 샘물 자체의 속성에 따라 그 물을 괴게 한 주변의 율법에 따라 되맑아지게 마련이다.

붙여진 이름이 붙여진 의도와 다르게 해석되는 사태는, 그 사물에 조금도 비극적인 것이 아니다.

이름이 겹뜻으로 새겨진다는 것은 그 사물의 생명 활동이 씩씩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다.

사물이 온전한 이름을 얻는 순간, 그 사물에 대한 해석이 하나로 고정되는 순간, 이름과 해석은 그 사물의 감옥이

된다. 

신화의 세계에서도 그렇다. 완벽한 이름짓기와 빈틈 없는 해석은 신화의 감옥이다.

전라도 무주의 적상산(赤裳山)에서 무엇을 보고 ‘적상’이라고 하느냐고 물었더니 안국사의 한 스님은 적상산 정상의

치맛말 같은 붉은 바위를 ‘붉은 치마 바위’라고 부른 데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했고,

또 다른 스님은 봄이면 차례로 산 사면을 덮는 벌건 진달래와 철쭉꽃 무리를 ‘붉은 치맛말’같다고 한데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했다.

한탄강이 ‘은하 여울(漢灘)’같다고 해서 그렇게 불린다는 사람도 있고 부하 왕건에게 쫓기던 궁예가 한탄(恨歎)하면서

건넜다고 해서 ‘한탄강(恨歎江)’이라고 불린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중의성(重義性)은 ‘한탄강’이라는 이름의 의미를 강화시킬지언정 약화시키지는 않는다.

환웅천왕의 시험을 이기고 마침내 사람으로 몸을 바꾸고 그의 자식을 가지게 되는 짐승이 범이 아니고 곰이었던

까닭과 의미를 검토하면서 나는 범이 지닌 강경함에 대한 곰이 지닌 순후함의 승리, 죽이기의 명수인 범의 남성적

원리에 대한 부활, 신생, 풍요를 상징하는 곰의 여성적 원리의 승리를 암시했다. 

나는 우리와 같은 알타이어계(語系)에 속하는 나라 터키의 아르테미스(풍요의 여신) 축제에 등장하던 곰으로 분장한

처녀들, 즉 ‘아르크토이(곰들)’ 이야기도 버리고 싶지 않다.

1999년 터키를 여행하면서 나는 터키인들이 북쪽의 흑해(黑海)를 ‘카라 데니즈(Kara Deniz)’, 남쪽의 백해(白海)를

‘악 데니즈(Ak Deniz)’라고 부른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내가 알기로 ‘악(白)’은 우리말의 ‘딙’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알타이 조어(祖語) 같고, ‘카라(黑)’는 일본어의 ‘구로(黑)’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알타이 조어 같은데요.”

터키 민속을 전공한 국내의 한 인류학교수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한 말은 다음과 같다.

“잘 보셨습니다. 우리말과 같은 알타이어계여서 터키 말 배우기가 참 쉬워요.

1년만에 논문 쓸 수 있게 된다면 믿어지세요.”

알타이 샤머니즘에는 두 종류의 샤먼이 있다.

천상의 신들과 교통하는 ‘백 샤먼’, 그리고 명계의 신들과 교통하는 ‘흑 샤먼’이 이들인데 ‘백 샤먼’은 알타이어로

‘악 캄(Ak Kam)’, ‘흑 샤먼’은 ‘카라 캄(Kara Kam)’이라고 부른다(A V 아노킨).

‘악’은 우리말의 ‘딙’, ‘카라’는 일본어의 ‘구로(黑)’, 혹은 ‘가라스(까마귀)’에 대응한다.

혈거 생활하던 사람들에는 ‘굴’은 굴 속의 어둠(구로)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캄’은 샤먼인 동시에 ‘신(神)’을 지칭하는 일반 명사이기도 하다.

사령(邪靈)을 지칭하는 우리 무속어 ‘가물’, 신령을 지칭하는 ‘가망’, ‘신’을 뜻하는 일본어 ‘가미(神)’는 여기에서

유래한다(서정범 ‘우리말의 뿌리’).

‘왕검(王儉)’은 ‘왕’, 곧 임금과 ‘검’, 곧 제사장을 겸하던 분이다.

그가 맡고 있던 제사장은 샤먼 직분이었을 가능성이 있는데 그렇다면 ‘검’은 샤먼인 동시에 ‘캄(신)’이기도 하다.

그가 도읍했던 왕검성은 ‘검잣(神市)’, 즉 거룩한 도시, 혹은 ‘검터(神城)’, 곧 거룩한 성으로 불렸다.

빛의 아들 환웅천왕의 아들 왕검이, 어머니 웅녀를 통하여 드디어 어둠을 초극, 혹은 화해하고 거룩한 인신(人神)

으로 육화한 것이다.

그런데 조금 놀라운 것은 곰을 나타내는 데는 ‘웅(熊)’자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금(金), 왕(王), 검(儉), 견(堅), 군(君),

환(桓) 등의 글자들도 차자(借字)로 쓰였다는 주장(渡光敏, ‘일본어는 없었다’)이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웅(熊)’은 아들의 이름인 ‘검(儉)’과도 같은 뜻 다른 글자, 지아비의 이름인 ‘환(桓)’과도 같은 뜻 다른

글자가 아닌가. 그렇다면 환인천왕과 웅녀와 왕검은 삼위일체(桓熊儉)가 아니었는가.

곰나루의 슬픈 전설

웅녀 이야기는 까마득한 옛일로 잊혀 있다가 백제가 한강유역의 하북 위례성과 하남 위례성에서 남쪽의 금강유역

으로 도읍을 옮길 즈음 다시 ‘곰나루(熊津) 전설’로 가냘프게 나타난다.

웅진은 공주의 당시 지명이다. 읽기는 ‘고마 나루’로 읽었다고 한다. 북쪽에서 발생한 신화 웅녀 이야기로 모습을

조금 바꾸고 금강유역에서 다시 얼굴을 내미는 것은 아무래도, 북쪽에서 남하한 백제와 당시 금강유역에 자리잡고

있던 마한(馬韓) 문화 충돌의 산물이었던 것 같다.

공주의 곰나루 웅신단(熊神壇) 마당에 서 있는 비석(熊神壇碑)에는 그 사연이 이렇게 새겨져 있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3’에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금강의 물이 남동쪽으로 휘어돌고
여미산 올려다뵈는 한갓진 나루터
공주의 옛 사연 자옥하게 서린 곳
입에서 입으로 그냥 전하여 온
애틋한 이야기

아득한 옛날 한 남자
큰 암곰에게 몸이 붙들리어
어느덧 애기까지 얻게 된다
허나 남자는 강을 건너 버리고
하늘이 무너져내린 암곰
자식과 함께 강물에 몸을 던진다
여긴 물살의 흐름이 달라지는 곳이어서
배는 자주 엎어지곤 하였다
곰의 원혼 탓일까 하고
사람들은 해마다 정성을 드렸는데
그 연원 멀리 백제에까지 걸친다.
공주의 옛이름은 웅진, 고마나루
그 이름 여기에 아직 있어
백제 때 숨결 남기고 있다.

‘고마나루(熊津)’는 ‘곰 주(州)’가 되었다가 고려 이후로는 공주(公州)가 되었다. 우리는 이제 공주를 ‘고마나루’라고

부르지 않는다. 하지만 백제에 문화적 부채의식이 있는 일본인들은 아직도 이 도시를 ‘웅진(熊津)’이라고 써놓고는

저희 독법대로 ‘구마쓰’라고 부르지 않고 꼭 ‘구마나리’라고 부른다. ‘곰’과 ‘구마’는 빛과 어둠을 아우른다.

 

 

 

7. 3의 비밀을 찾아서

 

 

 

‘옛날 옛적 딸 셋이 있는 집에 상머슴이 하나 들어갔는데, 이 상머슴을 두고 큰딸은 옷 떨어졌다고 구박하고,

둘째딸은 머리를 안 빗는다고 구박하지만, 막내는 옷이 떨어지면 기워주고, 머리가 헝클어지면 빗어줘.’
셋째딸의 승리는 우리에게 매우 자연스럽다. 맏딸이 승리하는 민담이나 전승이 없지 않으나 우리는 어떻게 된

셈인지 맏딸의 승리에 박수를 보내는 데 인색하다. ‘삼국유사’가 전하는 짤막한 단군신화는 온통 ‘3’의 향연이다.

…하늘님이 몸소 삼(!)위태백산을 굽어다 보니… 아들에게 천부인 세(!) 개를 주어… 환웅은 무리 3(!)천을 이끌고…

바람 맡은 이, 비 맡은 이, 구름 맡은 이, 이 셋(!)을 거느리고… 곰은 삼(!)칠일, 곧 스무하루를 삼가 사람의 몸을 얻고….

삼위태백(三危太伯)의 ‘위’에 대해서는 중국의 산 이름 앞에 붙는 관형사라는 설명을 비롯, 여러가지 해석이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일연 스님이 하늘님을 명백한 인도 이름인 ‘인드라(환인·桓因)’로 부른 만큼 힌두 신화와 관련지어

보는 것도 한 방법일 것 같다.

대승불교는 인간 세상의 고통을 ‘업(業)’ 혹은 ‘위(危)’라고 한다.

그렇다면 ‘삼위’는 ‘삼업’, 즉 사람들이 세 가지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인간 세상’이 될 것 같다.

아무래도 ‘인간 세상’을 규정하는 규정어일 개연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규정어여야 하늘님이 인간 세상을 ‘널리 이롭게(홍익·弘益)’해주고자 한 까닭에 대한 설명이 된다.

그래서 하늘님이 아들에게 준 것이 천부인 3개다.

 ‘3’은 환웅이 거느리는 세 신하, 즉 바람 맡은 이, 비 맡은 이, 구름 맡은 이에서 고스란히 변주된다.

이들이 누구일까. 하늘님, 즉 환인이 힌두 신화의 ‘인드라’인 것에는 이견이 없다.

그렇다면 ‘삼위’가 힌두 신화에서 발전한 불교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위의 전제에서 위태롭게 한 걸음 더

나아가 본다.

세 개의 천부인, 그리고 각각 바람과 비와 구름을 맡은 환웅의 세 신하는, 인드라 신의 삼지창(Trisula)과 무관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인드라는 빛의 신인 동시에 폭풍의 신이기도 하다. 인드라의 삼지창 세 갈래는 각각 창조·유지·파괴를 상징한다.

힌두 신화에 등장하는 시간의 신 시바의 삼지창 세 갈래는 각각 과거·현재·미래를 상징한다.

삼지창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천공(天空)의 신이자 벼락의 신인 제우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주무기

트리아이나(Triaina)이기도 하다.

포세이돈의 삼지창은 정확하게 ‘바람·비·구름’에 대응한다.

포세이돈은 외래신들이 그리스로 들어오기 전에는 대지의 신이었다.

외래신에 의해 바다로 내몰리면서 그의 삼지창은 오로지 ‘바람과 비와 구름’을 다스리는 무기로 전락한다.

그리스 신화가 힌두 신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증거는 인구어(印歐語)의 조상인 고대 그리스 어와 고대 인도에서

쓰이던 산스크리트 어의 친연관계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술의 신 디오뉘소스가 인도에서 그리스로 유입되는 과정에 이르면 그리스 신화에는 고대 인도의 종교 상징(예컨대

남근 상징인 팔로스)과 인도의 지명이 공공연히 등장한다.

그러므로 제우스의 벼락과 포세이돈의 삼지창 ‘트리아이니’는 인드라의 삼지창 ‘트리술라’와 무관하지 않을 개연성이

있다.

하지만 태백산(太白山), ‘한딙산’, 혹은 ‘한불산’의 신단수(神壇樹)인 ‘딙달’로 이 땅에 내린 환웅은 더 이상 천신 및

군신의 피붙이가 아니다.

환웅이 아버지 환인으로부터 받은 세 개의 천부인과 삼성신(三聖臣)은 아무래도 권능이 한층 축소된 인드라 삼지창

(트리술라)의 변형인 것 같다.

일연 스님은 이 대목의 환웅 모습에서, 바즈라(Vajra), 즉 금강고(金剛金古) 중에서도 가지가 셋인 삼고(三金古)를

든 바즈라파니(금강신·金剛神)를 상상했는지도 모르겠다. 

금강신이 든 금강고(금강 벼락) 역시 인드라(환인)의 삼지창과 무관한 것이 아니다.

인도는 고대에는 그리스에 신화의 상징 체계를 공급하기도 했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정(東征) 이후로는 공급

받기도 했다.

환웅이 삼성신을 거느린 전례를 좇았기 때문인가. 우리는 옛 이야기에 세 아들, 세 딸, 세 신하 등장시키기를 좋아

하는 것 같다.

환웅의 삼성신은, 고주몽이 부여에서 고구려로 데리고 온 세 사람(오이, 마리, 협보)과 무관한 것인가.

그가 오던 도중 모둔곡에서 만난 세 사람(재사, 무골, 묵거)과 무관한 것인가.

김유신에게 고구려 첩자의 정체를 일러준 세 산신(나림, 혈례, 골화)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환인이 내린 세 개의 천부인은, 소지자가 여느 인간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내린 왕(천왕)임을 증거하는 증표다.

그것은 아무래도 공격 무기 혹은 직능신의 표상인 삼지창 같은 것이 아니라 천제(天祭) 지내는 대제사장(큰 무당)의

신분증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환웅이 최초의 무당이라는 명문상의 증거는 안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의 하강을 둘러싸고 있는 신화적 모티프에서 알타이 무속 신앙의 원리는 유추해볼 수 있다.

단군이 사후에 산신으로 화했다는 기록을 방증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김열규 ‘한국 신화와 무속 연구’)

세 개의 천부인이 무엇이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는 대목에서는 이견이 분분하지만 오늘날의 무구(巫具)를 청동기

출토품으로 실증할 경우 그것은 ‘거울(명두), 칼, 방울’이 우세한 것 같다.

이 세 무구는 알타이 무속 및 우리와 밀접한 신화 체계를 공유하는 일본 무속과도 거의 일치한다.

우리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세계의 신화가 관심을 두고, 노래하고 또 노래하는 것은 이 ‘3’이 지닌 신묘한 균형과

견제의 힘이다.

세 나라가 세발솥(정·鼎) 형상으로 벌려 서서 서로 균형을 잡고 서로 견제하는 것을 ‘삼국정립(三國鼎立)’이라고

하지 않던가.

신라·고구려·백제가 삼국시대를 열었고 통일신라·후백제·태봉국이 후삼국으로 이었다.

삼성신(三聖臣)이 지상에서의 통치 수단이었다면 세 개의 천부인은 천상과의 교통 수단이었을 것이다. 

고대 중국과 우리 천제에 쓰이던 제기로서의 향로는 반드시 세 발 향로여야 했다.

그리스 신화 한 대목을 여기에서 또 들추어도 무방하다.

이름이 그리스 문자 델타(Δ)로 시작되는 도시 델포이의 신전 무녀는 ‘세발 의자(트리포우스)’에 앉아야 무신(巫神)의

신탁을 내릴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어부가 바다에서 건져올린 황금 세발 솥에는 ‘가장 현명한 철학자를 위하여’, 이런 명문이 있었다고

한다.

 

 

 

8.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1968년, 스물 한 살 때 언필칭 청운의 뜻을 품고 대구에서 상경, 처음으로 다른 지방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그들

외모는 내 고향 사람들 외모와는 달라도 많이 다르구나, 거참 이상하다, 이런 느낌을 자주 경험했다.

입대한 뒤 다른 지방 사람들과 한 주거 공간에서 밀착 생활하면서부터는 북쪽 산악 사람들과 남쪽 해안 사람들이

달라도 많이 다른 것 같다는 느낌을 본격적으로 받았다. 심지어는 외모로 고향을 짐작해 보기도 했다.

짐작이 더러 적중하는 사태에 나는 경악했다.

하지만 이상하다는 나의 느낌을 남들과 나눈 적이 없다.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라는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분단된 남쪽을 또 나누고 싶어 한다는 혐의에 걸리면 누구든 무사하기가 어렵던 시절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막연한 느낌은 대체로 이런 것들이다.

“북쪽 사람들 중에는 키 큰 사람이 많고 남쪽 사람들 중에는 목이 굵고 가슴이 두꺼운 사람이 많은 것 같지 않은가.

영남 사람들에 견주어 호남 사람들은 수염이 짙은 것 같지 않은가.

김씨 중에서도 특정 본관을 쓰는 김씨에 유난히 피부가 검은 사람이 많은 것 같고, 장씨 중에서도, 특정 본관을 쓰는

장씨에 외모가 서구적인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이상한 일이 아닌가. 우리는 모두 단군의 자손들, 따라서 단일 민족,

한 핏줄이 아니라는 말인가. 우리는 웅녀에게서 태어난 단군의 자손이 아니라는 말인가.”

90년대 들어 와서야 서울교대 조용진교수의 글을 통해 나는, 나의 예감이 터무니 없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한국인을 구성하는 유전형질이 시베리아에서 빙하기를 경험한 북방계와

그렇지 않은 남방계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구약성서 ‘창세기’1,2장은 저 유명한, 야훼가 세상 만물과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를 만든 내용을 싣고 있다.

하지만 제 4장에 이르면 진술이 되집힌다.

아담과 이브의 아들 카인이 아벨을 죽인 직후, 야훼로부터 추방령을 받고 하소연하는 대목에 이런 내용이 등장한다.

‘오늘 이 땅에서 저를 아주 쫓아내시니, 저는 이제 하느님을 뵙지 못하고 세상을 떠돌아 다니게 되었습니다.

저를 만나는 사람마다 저를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카인이 아벨을 죽였으니, 이 세상에 인간이라고는 부모인 아담과 하와, 그리고 카인 자신밖에 없어야 한다.

그런데도 카인은, ‘저를 만나는 사람마다’라는 진술을 통하여 자신이 인류 조상인 아담과 하와의 유일한 아들이라는

사실을 전면적으로 부정한다. 

‘창세기’의 기자(記者) 모세의 실수였을까. ‘창세기’와는 달리 ‘삼국유사’는 환웅 천왕과 웅녀를, 혹은 두분 사이에서

태어난 단군 왕검을 우리 조선 민족의 유일한 조상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단군의 아버지 환웅이 이 땅으로 하강하기 전에도, 그리고 하강한 뒤에도 우리 땅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음을 밝히고

있으니, ‘환웅이 인간 세상을 탐내었다.… 아버지 환인이 아들 뜻을 알아차리고… 굽어다 보니 아닌 게 아니라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해줄만도 했다.…

웅녀는, 혼인해서 함께 살 사람이 없어 날마다 신단수 아래서 아기 밸 수 있기를 빌었다’는 대목이 그것이다. 

환웅 및 웅녀가 조선 민족의 조상이 아니라, 조선 땅으로 건너온 지배 계급, 혹은 막강한 정치 세력일 수도 있다는

암시같다. ‘북방계’일까, ‘남방계’일까. 우리가 지닌 외모의 차이에서 느꼈던 나의 불편하던 심정은 예감의 더듬이가

이 수수께끼쪽으로 뻗으면서 시작되었던 것 같다.

‘삼국유사’는 두 차례에 걸쳐 단군이 나라 이름을 ‘조선’으로 정했다는 내용을 전한다.

‘지금부터 2000년 전에 단군 왕검이 있었다. 그분은 ‘아사달’에 도읍했다. 아사달은 백악(白岳)이라고도 하는데…

지금의 백악궁(白岳宮)이다. 단군 왕검은 여기 도읍을 정해 나라를 세우고는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고 했다.’

‘단군은 평양에 도읍하고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고 불렀다.…’

‘조선’에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최남선에 따르면 ‘조’는 ‘날이 새다’, ‘선’은 ‘싱싱하다’에 해당한다.

따라서 ‘아침이 싱싱한 땅’쯤으로 새겨질 것 같다. 이병도에 따르면 ‘조선’은 단군이 도읍한 ‘아사달’, 즉 ‘아침의 땅’을

나타내는 한자말이다. ‘삼국유사’를 번역한 북한학자 이상호는 이승휴가 ‘제왕운기’에서 환웅천왕을 ‘단웅천왕

(檀雄天王)’ 혹은 ‘단수신(檀樹神)’이라고 부르는데 주목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단군’의 ‘단(檀)’, 즉 ‘박달’은 오늘날 식물학적으로 정교하게 분류된 그 ‘박달나무’를 칭하는

말이 아니다. ‘박달’은 ‘딙달’, 즉 ‘아주 밝은 산’, 혹은 ‘불의 산’이다.

그렇다면 ‘밝은 아침의 산’을 뜻하는 ‘아사달’, ‘밝은 산’을 뜻하는 ‘백악’, ‘한딙산’을 뜻하는 ‘태백산’, 심지어는 단군의

이름인 ‘딙달’은 모두 동의어다.

그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단수신(檀樹神)’은 ‘밝달(檀) 수신(樹神)’이다. 한족(漢族)이 ‘조선’을 ‘발식신

(發息愼)’, ‘발숙신(發肅神)’이라고 한 것은 ‘딙달 수신’을 저들 나름의 방법으로 부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상호는 단군 신화에서 곰의 승리는, 호랑이 토템 부족에 대한 곰 토템 부족의 승리를 에둘러 표현한 것이라고

주장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난 2월 22일의 한 조간신문은 또 하나의 놀라운 소식을 전하고 있다.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조선은 아침의 나라가 아니다. 우리의 전통 국호 ‘조선’이 ‘아침’의 뜻이 아니라 순록 키우는 북방 유목 세력을 지칭

한다는 파격적인 학설이 나와 논란이 예상된다.… 주채혁 강원대 사학과 교수는 논문을 통해 조선을 아침이라는

뜻으로 읽는 문헌 해석은 잘못된 것이며 이는 우리 민족의 뿌리인 원시 북방 몽골 인의 순록 유목 생활을 상징한

이름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순록의 먹이감인 흰 이끼를 일컫는 ‘선(蘚)’은 ‘야트막한 산’을 뜻하는 ‘선(鮮)’에서 자란다.

 ‘선(鮮)’이라는 글자는 이끼가 자라는 시베리아의 작은 산이며, 조선 겨레는 본래 이끼가 자라는 동산을 찾아 떠도는

순록 유목민을 일컫는다.

말하자면 이들이 수렵민화하면서 남하, 고조선, 부여와 초기 삼국을 형성한 세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주교수의 주장에 대한 손보기 단국대 석좌교수의 반응은 더욱 흥미롭다. 

‘국내 유적에서도 순록 그림이나 비슷한 짐승 뼈가 발굴된 바 있어 순록 유목 이민설은 가능성이 있는 주장이며…

농경문화에만 집착했던 민족 기원 연구에 새 화두를 던져준 셈’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땅의 선주민(先住民) 자손일 수도 있고 단군의 자손일 수도 있으며 북방 유목민의 자손일 수도 있고 남방

도래인의 자손일 수도 있다. 

‘삼국유사’가 전하는 단군 이야기는 이 땅이 사람으로 가득 차는 과정을 그린, 신화의 정점에 있는 가장 오래된,

따라서 가장 귀중할 수도 있는 신화다. 

우리가 지켜야 하는 신화이지 버려야 하는 신화가 아니다. 나와는 조상이 다른 자손의 신화도 찾아서 두고두고

지켜주고 싶다.

 

 

 

 

9. 모든것은 ‘알’로부터 시작되었다

 

네 차례 그리스를 여행했다, 그리스에 머문 기간은 합하면 100일 가량 된다.

수도 아테네에 있는 유네스코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지정한 파르테논, 그 신전이 있는 아크로폴리스

(우뚝 솟은 곳)에는 모두 일곱 차례 올랐다. 그리스 답사 여행 경험은 나의 자랑거리 중 하나다.

경주를 수십 차례 여행했다.
경주에서 머문 기간은 합하면 100일이 훨씬 넘는다.

경주에 있는 남산, 우리의 노천 박물관이라고 해도 좋을 그 남산을 겨우 두 차례 올랐다.

목적은 고적 답사가 아니었다.

용장사 터 가까이에 있는, 막걸리 맛이 기막히게 좋은 산채 식당 때문이었다.

술 마시러 남산을 오르는 나의 눈에는 삼릉(三陵)의 아름다운 소나무 숲도 보이지 않았다.

1993년의 일이다. 다른 일에 매달려 있었기는 해도 경주에서 100일 가까이 머물렀지만 박물관에는 한번도 가지

않았다. 경주 여행 경험은 나의 치부 중 하나다.

그리스와 로마 신화의 텍스트라고 할 수 있는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를 여러 차례 읽었다.

영어로도 읽고 일본어로도 읽었다. 나의 자랑거리 중 하나다.

우리 신화의 텍스트라고 할 수 있는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를 비롯, ‘제왕운기’, ‘동국이상국집’을 읽기 시작한 것은

그리스를 여행하기 시작하고나서다. 나의 치부 중 또 하나다.

나에게 경주는 보이지 않는 도시, 해독되지 않는 텍스트였다.

경주가 보이기 시작한 것은 그리스 구석구석을 답사하고 나서부터였다.

나는 이제 뉘우침을 통해 죄인에서 새 사람으로 거듭나 서울에서 ‘서울(서딗)’의 조상 ‘새벌(신라·新羅)’로 자동차를

몰 수 있다. 

이제 겨우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리스에 ‘아크로폴리스’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아크로무세이온(우뚝 솟은 박물관)’이

있다고, 그리스 인들에게까지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나의 자랑거리가 치부를 가려내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가장 멀리 떠나 있던 자가 가장 확실하게 돌아올 수

있다는 믿음을 위안으로 삼는다.

그래서 나는 내 조상들께 용서를 빌면서 주말이면 내 집과 우리 신화의 고향을 오르내린다.

우리에게는 ‘아크로무세이온’이 있다.

알에서 나온 사람들

경부고속도로를 통해 경주로 들어가면 탑정동 초입에 오릉(五陵)이 나온다.

오릉으로 들어가지 말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야트막한 구릉을 오르면 조그만 사당이 있다.

신라정(新羅井)이다. 정식 명칭은 나정(蘿井)이다.

아득한 옛날에는 우물 자리였다고 하지만 지금은 언제 우물이 있었나 싶게 황량하다.

나정에서 100여m 떨어진 곳에 초기 신라의 6부 촌장을 모신 양산재(楊山齋)가 있다. 

양산재 위에는 6촌장 중 한 분이자 뒷날 배씨(裵氏)의 시조가 되는 금산(金山) 가리촌 어른을 모신 경덕사(景德祀)가

있다. 신라의 건국 신화,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탄생 신화는 이 양산재에 모셔진 여섯 촌장에서 시작되어 나정에서

꽃으로 피어나 오릉에 진다. 이 모든 유적이 반경 500m에 들어온다.

양산재에서 경덕사로 오르면서 길가에서 본 당간지주(幢竿支柱)를 잊을 수 없다.

당간지주는 당간을 받치는 2개의 받침대이고, 당간은 절집에서 행사가 있을 때 깃발(당)을 거는 기둥이다.

당간지주는, 농부들이 모를 심으려고 물을 대어 잘 삶아놓은(써레로 논흙을 밀어 노골노골하게 만들어 놓은)

논 한가운데 서 있었다. 

‘옛 사람들 무덤 위에서 오늘날의 사람들이 밭을 간다(고인총상금인경·古人塚上今人耕)’이니 그럴 수도 있겠거니

싶었다. 양산재 뜰에서, 신문지 고깔을 만들어 쓰고 잔디밭에서 잡초를 뽑고 있는 여남은 명의 경주 아낙 중에

나정이 어디냐고 묻는 내 질문에 시원하게 대답하는 아낙이 없었다.

나정은 거기에서 겨우 100m 떨어져 있다.

 폐사지에 모를 심는 경주 농민이나, 지척에 있는 나정을 알아보지 못하는 경주 아낙네를 원망하지 않으려고 했다.

혁거세 신화는 신라 건국의 기틀이 되는 6부 촌장 중 첫 자리를 차지하는 알평(謁平) 촌장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알평은 양산(楊山) 자락에다 알천 양산촌(閼川楊山村)을 세운 분이다.

알평이라는 이름과 이분이 세운 마을 알천 양산촌에 ‘알’자가 들어 있는 것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알평은 하늘에서, 지금의 경주시 천북면 동천리에 있는 표암봉(瓢峰)으로 하강했다는 신인이다. 

동천리 표암봉에는 표암, 즉 박바위가 있다.

전설에 따르면, 동천리의 한 할머니가 큰 바위 아래 박을 심었는데 어찌나 큰지 바위를 덮었고, 어찌나 단단한지

마치 차돌과 같았다.

할머니가 이 박을 가르자 한 동자가 걸어나왔는데, 바로 알평이었다.

이와는 조금 다른 전설에 따르면 알평은 허리에 박을 차고 온 도래인(渡來人)이다.

그가 차고 온 박을 바위 아래 두었더니 박 덩굴이 자라 바위를 덮었고, 그래서 그 바위가 ‘박바위’라고 불린다는 것이다.

‘알’과 ‘박’ 이야기는 혁거세 신화에서 고스란이 되풀이된다. 봄빛 화사한 양산재 뜰에서 ‘삼국유사’를 폈다.

“진한 땅에는 옛날에 여섯 마을이 있었다… (알평을 위시한) 6부 촌장은 모두 하늘에서 내려온 모양이다.…

기원전 69년 3월 초하룻날 6부 촌장이 각각 자제들을 데리고 다 함께 알천 둑에 모여 의논했다.

‘우리들이 위로 백성들을 다스릴 만한 임금을 가지지 못하고 있어 백성들이 모두 방종하여 제멋대로 놀고 있으니

덕이 있는 사람을 찾아내어 그를 임금으로 삼아 나라를 창건하고 도읍을 정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제서야 모두 높은 곳에 올라가 남쪽을 바라보니 양산(楊山) 밑 나정 곁에 이상한 기운이 번개처럼 땅에 드리

우더니 웬 흰 말 한 마리가 무릎을 꿇고 절하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6부 촌장이 달려가 살펴보니 보랏빛 알 한 개가 놓여 있었다. 말은 사람들을 보자 울음 소리를 길게 뽑으면서 하늘로

올라갔다.

그 알을 쪼개니 형용이 단정하고 아름다운 사내아이가 있었다.

놀랍고도 이상하여 아이를 동천(東泉)에서 씻기자, 아이 몸에서 광채가 나고 새와 짐승들이 춤을 추어 천지를

진통케 하고 해와 달이 맑고 밝았다. 그래서 이름을 ‘혁거세왕’이라 하고 왕위의 칭호는 ‘거슬한’이라고 했다.

당시 사람들이 다투어 치하하여 이렇게 말했다.

‘이제 천자님이 이 땅에 내려왔으니 마땅히 덕 있는 여자 임금을 찾아서 배필을 정해야 하겠다.’

… 사내 아이는 알에서 나왔는지라 알은 바가지 같이 생긴데다 그 고장 사람들이 바가지를 ‘박(朴)’이라고 하므로

이로써 성(姓)을 삼았다.”

어째서 다른 산 자락이 아니고 ‘양산’, 즉 버들 산 자락인가.

고구려 시조 고주몽의 어머니도 ‘유화 부인’, 즉 ‘버들꽃 부인’이었다.

혁거세는 어째서 알에서 태어나는가. 고주몽도 알에서 태어나고, 가야의 여섯 임금도 알에서 태어난다.

어째서 ‘박’인가. 버들과 알과 박은 신라 건국 신화의 전반부에 자주 등장하다가 나라의 바탕이 잡히면서 사라지는

신화 모티프다. 2000년 전에 신라인들이 낸 수수께끼를 좇아 본다.

 

 

 

 

10. ‘알’과 ‘앎‘

 

 

이승휴가 지은 ‘제왕운기’는 운문(韻文)으로 노래한, 중국과 우리나라 왕들 이야기다. 박혁거세 탄생 신화도 몇 줄

나온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는
그 태어남이 여느 사람 같지 않다.
하늘에서 푸른 알이 내리니
알 크기는 박만한데 붉은 실에 묶여 있더라
알 속에 오래 있어서 <박>으로 성을 삼으니
이 어찌 하늘이 점지한 바가 아니랴…’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양산 밑 나정 곁에 이상한 기운이 번개처럼 땅에 드리우더니 웬 흰 말 한 마리가 무릎을

꿇고 절하는 시늉을 하고 있어 6부 촌장들이 달려가 살펴보니 보랏빛 알 한 개가 놓여 있었다’와는 내용이 조금

다르다. ‘제왕운기’에 흰 말은 등장하지도 않는다.

알의 색깔도 ‘보랏빛’이 아닌, ‘붉은 실에 묶여 있는 푸른 알’이다. 하지만 말이 다를 뿐, 내용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나정(蘿井)은 신라정(新羅井)이라고도 불린다. 그렇다면 ‘나정(羅井)’이어야 할 터인데도 어찌된 일인지 지금까지도

‘나정(蘿井)’이라고 불린다.

 ‘나(蘿)’는 ‘댕댕이 덩굴’, ‘담쟁이 덩굴’을 뜻하는 글자다.

댕댕이와 담쟁이의 열매는 자주색, 보라색과 매우 가까운 색깔이다.

보라색은 실의 색깔인 ‘붉은색’, 박의 색깔인 ‘푸른색’을 섞으면 나오는 색깔이기도 하다.

파란 색은 하늘을 상징하는 색깔이고 붉은 색은 땅을 상징하는 색깔이다.

이 두 색깔을 아우르는 자주색, 혹은 보라색, 즉 댕댕이와 담쟁이의 열매 색깔인 자주색, 혹은 보라색은 하늘의

뜻과 땅의 사람을 잇는 존재, 즉 임금 재목의 상징이다.

조선시대의 나이 어린 왕세자나 왕세손은 자적룡포(紫赤龍袍)를 입었다. 

중국이 아무래도 그 원조인 것 같다.

베이징(北京)에 있는 명·청(明·淸)시대 궁전은 이름부터가 ‘자금성(紫禁城)’이다.

서양도 마찬가지다. 보라색 염료의 원료인 튀로스 조개는 로마 황제와 교황청 추기경들의 독점 품목이었다.

그래서 ‘보라색(purple)’은 ‘제왕’이나 ‘국왕’을 지칭하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보라색으로 태어났다(born in the purple)’는 말은 ‘왕가에서 태어났다’는 말과 동의어로 쓰인다.

‘제왕운기’에는 ‘알을 지키는 흰 말’ 대신 ‘푸른 알을 묶은 붉은 실’이 등장한다.

 ‘하늘로 날아올라간 백마’는 비마(飛馬)다. ‘날개 달린 말’은 땅으로 내리는 하늘의 전령을 상징하는 보편적인

상징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날개 달린 말 페가소스를 떠올려도 좋다. 천마는 하늘과 땅을 잇는 매개다. 
‘푸른 알을 묶은 붉은 실’은 이 알이 하늘에서 드리워졌음을 뜻한다.

땅에서 솟아났다면 실이 달려 있을 턱이 없다. 그러므로 두 고전에서 보이는 작은 차이는 신화를 말하거나 옮기는

방법의 차이일 뿐이다. ‘삼국유사’도 ‘제왕운기’도 알을 낳은 주체는 누구인지, 혹은 어떤 짐승인지 밝히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것을 짐작하게 하는 실마리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같은 날 사량리 알영정(閼英井)에 계룡(鷄龍)이 나타나 왼쪽 옆구리로 여아(女兒)를 낳으니 용모가 뛰어나게

고왔으나 입술이 닭의 부리 같았다.

사람들이 월성 북쪽 냇물에 가서 씻겼더니 그 부리가 ‘퉁겨져(撥)’ 떨어졌다. 사람들은 그 냇물을 ‘발천(撥川)’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이 남산 서쪽 기슭에 궁실을 짓고 신성한 이 두 아이를 모셔 길렀다…

여아는, 처음 나온 우물 이름을 따서 ‘알영’이라고 했다.

신성한 아이가 열 세 살이 되던 기원전 57년, 나라 사람들은 남아는 왕으로 삼고 여아는 왕후로 삼았다.

나라 이름은 ‘서라벌’ 혹은 ‘서벌’이라고 하였다(지금 ‘경·京’자를 우리말로 ‘서울’이라고 새기는 것은 이 때문이다)…

왕이 닭우물(계정·鷄井)에서 났으므로 ‘계림국(鷄林國)’이라고도 했다.

혁거세는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만에 세상을 떠나 하늘로 올라갔는데, 이레 뒤에 유해가 다섯 토막으로 나뉘어

다시 땅에 떨어졌다. 그 직후에 왕후도 죽었다.

나라 사람들이 두분을 합장하려고 했지만 뱀이 나와 합장을 방해하므로, 다섯 토막으로 나뉜 몸뚱이를 다섯 능에

장사하고 이름을 ‘사릉(蛇陵)’이라고 했다….’

‘삼국유사’는 혁거세를 품은 보라색 알이 놓여 있던 ‘나정’을 ‘닭우물’로 고쳐 부르고 있다.

신성한 닭과 인연이 있다는 암시같다.

알영이 상서로움을 상징하는 상상의 동물인 ‘계룡(鷄龍)’의 왼쪽 옆구리에서 태어났다는 대목에 ‘닭’에 대한 간접적인

언급이 등장한다.

여아의 이름 ‘알영’의 ‘알(閼)’ 역시 오늘날과 같은 의미(‘막는다’는 뜻)로 새겨지기보다는 ‘알’의 형태로 탄생했음을

암시하는 것 같다.

‘알영은 용모가 뛰어나게 고왔으나 입술이 닭의 부리 같아서…’라는 대목에는 ‘닭의 부리’라는 말이 명시적으로 등장

한다. 이 신화는, 혁거세와 알영 부부는 둘 다 알에서 태어났다, 알을 낳은 주체는 닭이었다, 이렇게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알은 무엇인가. 우주적인 알, 즉 ‘우주란(宇宙卵, cosmic egg)’은 생명원리의 출발점이다.

분화되지 않은 전체성과 잠재성의 상징이자 존재의 숨겨진 기원과 비밀의 상징이다.

불교의 알은, 껍질을 깨고 나와 무지(無知)를 벗고 시공을 초월한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상징한다.

 병아리가 알껍질을 깨고 밖으로 나오려면 안에서 껍질을 쪼고 어미닭은 밖에서 쪼아야 한다.

병아리 부리질을 ‘줄(口卒)’이라고 하고 어미닭 부리질은 ‘탁(啄)’이라고 한다. 

병아리 부리질(口卒)과 어미닭 부리질(啄)이 같은 순간(동기·同機)에 이루어질 때(줄탁동기·口卒啄同機), 병아리는

비로소 어둠을 뚫고 밝은 세상으로 나올 수 있다. 깨달음의 과정도 그렇다. 제자는 오랜 수행으로 깨달음으로 다가

가고, 스승은 교시를 주어 한 순간에 껍질을 깨게 하는 것,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줄탁동기’다.

종교철학자 오강남 교수(캐나다 리자이나 대학)의 책 ‘길벗들의 대화’는 ‘R형’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취하고 있다. 

오교수는 수신자를 ‘R형’이라고 상정한 것은 그가 ‘알려고 하는 마음’, ‘알만한 마음’, ‘알이 든 마음’의 소유자라고

밝힘으로써 ‘알다’는 동사가 ‘알’에서 나왔음을 암시하고 있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지 못하던 시대에도 둥근 알은 천지창조의 모태였다.

알의 열림 혹은 깨어짐은 밝음의 시작이었다. 중국 창세 신화의 주인공 반고(盤古)도 알을 깨고 나왔다.

이집트의 태양 신 ‘라(Ra)’는 나일 강의 기러기(Nile Goose)가 낳은 신이다.

그렇다면 왜 닭인가. 닭은 울음 소리, 즉 계명성(鷄鳴聲)으로 어둠을 몰아내고 아침을 여는 동물이다.

닭은 사람의 눈 앞에서 알을 낳는 거의 유일한 동물이다.

기독교 상징체계에서 암탉은 신도들을 보호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이기도 하다.

도래인(渡來人)일 가능성이 큰 초기 신라의 6부 촌장들의 다음과 같은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스스로를 어미닭 무리로 여기는 대신 병아리 무리로서 어미닭을 옹립하고자 했다.

‘우리들이 위로 백성들을 다스릴 만한 임금을 가지지 못하고 있으니…

덕이 있는 사람을 찾아내어 임금으로 삼아 나라를 창건하고 도읍을 정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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