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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왜곡] 역사 탐구를 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가져야 할 태도는 무엇인가? [1]

송화강 2019-05-27 (월) 17:04 6년전 5858  

역사 탐구를 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가져야 할 태도는 무엇인가? [1]

 

 

 

[머리말] 

* 역사가는 모름지기 자신이 소재로 삼고 있는 사건을 하나의 틀에만 얽매이지 않고 다양하고 종합적으로 면밀히 비교하여 분석적으로 해석하고, 또한 역사소설가는 단 하나의 가능성이라도 염두에 둔 채 어떤 것이든지 겸손한 마음과 미래지향적인 태도로 체를 걸러내어 금을 찾는 마음으로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진정한 가치를 소설에 투영을 시켜야 한다. 


[문제의 제기] 

최근 일어난 일련의 사태를 회고하면서 제 논지에 대한 반론과 명확한 근거를 적시하지 않은 진정한 역사논쟁의 범주에서 많이 벗어난 가지를 가지고 나무등걸을 왜곡하며 호도하거나 이현령비현령식으로 잡동사니 역사지식을 끌어내어 그동안 여러 고현高賢들의 글에 대한 치졸한 폄하를 하는 글을 보고 문득 깨닫는 바가 있어 그동안 모아두었던 여러 석학들과 제현諸賢들의 글을 하나로 묶어 제 입장과 함께 밝혀두는 바입니다 


[첫번째] 역사가와 사실(FACT) 



[케임브리지 역사논쟁] 


액턴 경(1896년 10월) - 우리의 경험에 기초한 논리적 귀결로 보아 완전한 역사는 가능할 것이다. 
조지 클라크 경 (1957년) - 모든 역사적 판단에는 인간과 관점들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이 판단은 저 판단과 마찬가지로 옳으며 따라서 ‘객관적인’ 역사적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액턴 경과 조지 클라크 경의 이 충돌은 두 사람의 발언 사이의 기간 동안 사회현상과 역사적 논점에 관한 우리의 견해 전체가 크게 변화했음을 반영한다. 따라서 우리가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려고 할 때, 우리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의 시대적 위치와 지식과 경험으로 저도 모르게 고착된 관점을 반영하게 되며,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관해서 어떤 역사적 견해를 가지고 있는가라는 더욱 폭넓은 질문에 대한 대답의 일부가 된다. 


사실 19세기는 오로지 현시적이고 증명된 [사실 FACT]들만을 숭배한 위대한 시기였다. 1830년대에 <랑케>는 올바르게도 역사의 교조적인 도덕주의화에 항의했고 그러는 가운데 역사가의 임무는 단지 <그것은 실제로 어떠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그러자 그다지 심오하지도 않은 이 격언은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때를 놓치지 않고 과학으로서의 역사를 열렬히 주장한 <실증주의자>들은 이러한 사실 숭배에 강력한 영향을 발휘했다. 


우선 사실들을 확인하고, 그리고 나서 그것들로부터 결론을 이끌어내라고 실증주의자들은 말했다. 영국에서 이러한 역사관은 영국철학의 지배적인 경향이었던 경험주의적 전통과 완전히 일치했다. 경험주의적 인식론은 주체와 객체와 완전한 분리를 전제한다. 사실들은 감각적인 인상과 마찬가지로 외부로부터 관찰자에게 부딪혀 들어오며 또한 그의 의식과는 독립해 있다. 역사는 확인된 사실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역사가는 생선장수의 좌판 위에 있는 생선처럼 문서나 비문 등에 있는 사실들을 집어 들 수 있다. 역사가는 그것들을 모은 다음 집에 갖고 가서 자기 마음에 드는 방법으로 그것들을 요리하여 내놓는다. 그러나 이 이론은 이미 해묵은 결정론으로서 철 지난 생선이 좌판위에서 ??어가는 가치로 전락해버린 지 오래이다. 


바로 여기에서 <포워크>의 말을 들어보자 “오늘날에 이르러 역사를 새롭게 그리고 전향적으로 해석하려는 열망은 너무도 뿌리 깊은 것이어서, 만일 우리가 과거에 대하여 무엇인가 건설적이고 비판적이며 예측적인 탐구심과 혁명적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그들처럼 자칫 신비주의나 교조주의 또는 냉소주의에 빠지게 된다.” 



[역사적 사실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우리가 좀더 꼼꼼히 생각해보아야 하는 중요한 질문이다. 상식적인 견해에 따르면 모든 역사가들에게 똑같은, 말하자면 역사의 척추를 구성하는 어떤 기초적인 사실이 있다. 


첫째 역사가들이 주로 관심을 가지는 것은 역사적 사건의 벌어진 연도 수나 확인에 그치는 고착화관념이 아니다. 이러한 것들을 아는 것은 그가 하는 작업의 필요조건이지만 본질적인 기능이 아니다. 


둘째 기본적인 역사적 흐름 속에서의 연속된 사실을 확정해야 할 필요성이 눈에 보이는 사실 자체의 어떤 성질에 따라서 좌우되지 않고 오직 역사가의 선험적이고 탐구적인 결정에 따라서 좌우된다. 사실은 역사가가 허락할 때에만 이야기한다 즉 어떤 사실에게 발언권을 줄 것이며 그 서열이나 차례는 어떻게 할 것이냐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역사가이다. 



(이해를 돕기 위한 쓴 말 한마디) 


19세기 <실증주의의 팩트 논리>는 성공을 위해서 어떠한 전제 조건이 없다면 불가능합니다. 자료가 반드시 개인이 읽기에는 너무 많아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고정관념이나 개인의 시각으로 선택된 자료에 몰입하게 됩니다. 실증주의의 창시자로 알려진 <랑케>는 그래서 공인된 그리고 그 당시 주류를 형성하던 정부의 사료만을 읽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시장에서 물물교환되는 증서도, 아직은 구체적인 방증이 없는 시장 속의 이면계약문서들도 전제조건 없는 실증주의라면 충분한 근거 자료일 것입니다. 그러나 대개는 역사가의 믿음에 기초한 비판적인 의식 속에서 의도적이며 선택적으로 모여지게 되겠지요. 


<역사적 사실>이라는 딱딱한 속 알맹이가 객관적으로 파악되어질 수 있으며 그리고 역사가의 다양한 해석과는 독립하여 존재한다는 믿음은 정말 어리석은 오류이지만, 그러나 뿌리 뽑기에도 매우 어려운 착시현상이다. 




[두 번째] 고대사와 중세사의 매력 


[알려져 있는 소수의 사실이 역사의 사실 전부일까?] 


이 시대에 대한 역사적 무지는 대단히 흥미롭고 다양한 탐구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매력적인 요소이다. 때문에 한편으로는 역사가들의 관점을 단순화시키고 명료하게 만드는 또한 입장에 맞추어 선택하기도 하고 그럴듯한 이유를 들어 임의로 빼버리기도 하는 그 무지는 역사가들이 가장 빈번하게 활용하는 제1조건이다. 하지만 근대사가는 무지의 이점들을 그 어느 한 가지라도 누리고 있지 않다. 너무나 잘 알려지고 밝혀진 사실들 때문에 그는 논리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필수적인 무지를 스스로 계발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대사가는 전혀 다르다. 그는 소수의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여 그것들을 역사의 사실로 전환시켜야 하고 이와 동시에 수많은 하찮고 비상식적으로 보이는 것이라도 거기에서 가장 깊숙이 숨어있는 단 한 가지 티끌만한 보석을 골라내어 추려내야 하는 이중의 임무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케임브리지 근대사] 1권 서론을 보면 <액튼 경>은 “역사가에게 학자가 아니라 백과사전 편찬자가 되라고 위협하고 있다.”는 명제를 내세워 역사가들에 대한 묘비명이라 공언하면서 19세기의 사실 숭배에 편승하여 공인되고 기록된 문서들에 대한 숭배주의로 완성시켰고 정당화되었다. 그래서 경건한 역사가는 머리를 숙이고 문서들에게 다가 갔으며 그것들에 관해서 비판과 선택적인 인용을 할 엄두도 못 내고 다만 황송스러운 어조로 기록에 충실하여 이야기해야만 했다. 여기에 심각한 논리적 오류가 발생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현대적 관점에서 볼 때 사료는 역사가가 그것을 연구하기 시작하여 참된 의미를 밝히고 묻혀지고 숨겨지고 왜곡되고 폄하된 진실을 끄집어내어 해독하기 전까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구스타프 슈트레제만>은 이렇게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때의 기록들에는 한 가지 공통적이 특징이 있다. 상대방의 주장들은 대부분 빈약하고 혼란스럽고 설득력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며 매도의 대상이 된다. 이것은 모두의 기록에서 나타나는 흔한 특징이다. 마치 마녀사냥과 같은 역사적인 탐구와 사고에 대한 모욕이다. <실제로 무엇이 일어났는가?>는 그들의 고정관념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그걸 탈피하여 새로운 시도를 욕구하는 역사가의 마음속에서 재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사실들과 문서들은 역사가에게 필수적이다. 그러나 그것들을 금과옥조처럼 숭배하지는 말아야 한다. 사실들은 스스로 역사를 구성하지 않는다. 



[왜 그동안 역사가들이 일반적으로 역사철학에 대해서 무관심했는가?] 


19세기 역사가와 지식인들에게는 자신감과 낙관주의를 한껏 드러내고 있었던 편안한 시대였다. 그들이 신봉하는 [사실]들은 대체로 만족스러운 근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만큼 그것에 관해서 귀찮은 질문을 던지고 그것에 새로운 시도로서 도전하는 경향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실제로 <랑케>는 이렇게 자신감을 드러낸다. “우리 스스로가 사실들을 하나하나 돌아보면 근거로 포장된 역사의 의미에 대해서는 어떠한 도전도 물리칠 것이며 신의 섭리가 보살펴줄 것이라고 경건하게 믿고 있다” 이렇듯 19세기 자유주의적 역사관은 자유방임의 경제학설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누구나 자신만의 일에 힘써라, 다른 엉뚱한 학설이나 공인된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것들은 조작되고 첨삭된 것이다 그러면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가 지향하고 있는 보편적인 조화를 이끌어줄 것이다. 의문과 새로운 해석을 배재한 역사의 사실 그 자체만 가지고도 보다 더 나은 상태를 향한 진보가 은혜롭게 그리고 분명히 끝도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지고의 사실주의 표현이었다. 


여기쯤에서 분명하게도 <딜타이>의 말을 인용할 필요가 있다. “1880년대와 1890년대에 역사해석에서의 [사실의 우월성과 자율성]을 주장하는 학설에 대하여 최초의 도전이 이루어진 곳은 19세기에 팽배한 자유주의의 안정적인 지배를 뒤엎는 일에 대단히 큰 공헌을 했던 나라인 독일이었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역사철학자인 <크로체>는 말한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적인 관점에서 그것은 역사란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을 통해서 그리고 현재의 문제들에 비추어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며 역사가의 주요한 임무는 다만 근거를 맹신하여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자료를 들추어 의문 속에서 비교분석하고 평가하는 것이다. 1910년 미국의 역사가 <칼 베커>의 이야기도 들어보자. “어떤 역사가에게든 역사의 사실들은 자신이 그것들을 어느 한쪽에 치우쳐 비판하는 게 아니라 보든 걸 종합하여 새로이 창조할 때까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이 시점에서 꼭 명심해야할 금언(金言)이다. <크로체>는 진정으로 역사철학에 기여한 금세기의 유일한 영국인 사상가로서 역사철학은 과거 그 자체에 관한 것이나 과거 그 자체에 대한 역사가의 사유에 관한 독점이 아니라 상호 관련되는 그 두 가지에 관한 것이라고 피력한다. 이 진술은 시사점이 많다. 다시 말해 ‘역사’라는 단어의 널리 알려진 두 가지 의미를 명쾌하게 적시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가에 의해서 수행되는 연구와 그가 추구하는 일련의 과거의 사건들을 어떤 시각으로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역사가가 연구하는 과거는 역사 이전부터 이어온 그 민족의 꾸준한 핏줄내림과 삶의 양태를 무시하고 단절하는 죽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도 살아 있는 과거’를 끄집어내는 일이다. 그러므로 ‘모든 역사는 사유의 역사’이며 역사란 사유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는 역사가가 그 사유를 자신의 정신 속에 재현하는 것이다. 



[세 번째] 역사적 사실 찾기 


역사의 사실들은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존재할 수도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 결코 ‘순수한’ 것으로 다가서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들은 기록자의 마음을 통과하면서 항상 굴절된다. 이럴 경우 역사가가 편협되 사고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마음속에서 움직인 것만을 반드시 고정 불가변의 사유 속에서 재현하려 한다면 이번에는 독자가 그러한 역사가의 마음속에서 움직이는 허상을 깨고 진실을 찾아야하는 어려움을 겪거나 전혀 엉뚱한 19세기적 실증주의의 사고관에서 헤매야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가는 자신이 다루고 있는 과거나 그 시기 사람들의 마음은 물론 그러한 행위의 배후에 있는 생각을 상상적으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19세기에 고대사나 중세사 연구가 빈약했던 이유는 중세의 미신적 교조적 신앙들과 거기에서 비롯된 야만적이고 폐쇄적인 역사말살 행위들이 고대인들의 삶과 민족의 맥을 추구하려는 연구에 대한 상상적인 이해를 이단시하면서 너무나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일 새로운 시도와 철학적 사고관을 지닌 역사가가 자신의 서술대상인 사람들의 마음과 어떤 식으로든 접촉할 수 없다면 역사는 바로 쓰여 질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 또 한 번 강조하는 점은 현재를 사는 우리는 오로지 현재의 눈과 관점을 통해서만 과거를 조망할 수 있고 과거에 대한 우리의 정확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역사가의 기능은 과거를 고정된 독선과 아집과 집착에 가두고 스스로 정확하게 역사를 사랑하고 있다는 오만한 착시나 그걸 이용하여 자신을 과거로부터 도전해오는 다양한 견해로부터 해방시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이해하기 위한 열쇠로서 과거를 단절시키지 않고 민족역사의 처음 흐름과 맹아를 현실로 드러내어 일관성 있는 역사동력으로 지배하고 보다 넓게 이해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역사의 의미는 무한하므로 그 어떤 해석도 그것과 다른 어떤 의미보다 더 올바르거나 바꾸어지지 않는 것이 없다는 걸 이해해야만 한다. 



(이해를 돕기 위한 쓴 소리 한마디 - 실용적 견해로 빠질 위험성 제거) 


그렇다면 21세기 초반에 살고 있는 우리는 사실에 대한 역사가의 의무를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 

자신의 사실을 존중해야 한다는 역사가의 의무는 자신의 사실이 정확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의무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연구하고 있는 주제나 자신이 제시하려는 해석과 어떤 의미에서건 연관되어 있는 모든 사실들을 자신이 알고 있거나 알 수 있는 모든 사실들을 무시하거나 이단시하거나 배척하지 말고 보다 넓은 포용력을 바탕으로 하나하나 비교분석하여 진실을 찾아내면서 갑자기 튀어나오지 않았을 한 민족의 처음을 찾기에 노력하고 알차게 그려내도록 애써야만 한다. 


나는 내 글의 프롤로그에서 밝힌 것처럼 진정한 역사가라는 이름에 값하는 모든 역사학도들에게는 경제학자가 ‘투입’과 ‘산출’이라고 부르는 그 두 과정이 비록 역사연구과정에서는 다른 형태로 전화되었지만 동시에 진행되며, 또 실제로 그 두 과정은 단일한 과정의 부분들이어야만 한다고 확신한다. 역사가와 그가 접하는 아니 접해야만 하는 모든 사실의 관계는 어느 하나 물리치거나 집어던질 수 없는 평등한 위치에서 주고받는 관계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역사 찾기란 역사가와 그가 접하거나 지닌 사실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말로 [1부]를 끝내고 싶다.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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