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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논문] 역사를 탐구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가져야 할 태도는 무엇인가? [2]

송화강 2019-05-27 (월) 17:04 6년전 5662  

역사를 탐구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가져야 할 태도는 무엇인가? [2]

 

 

 

[제1부]에서 우리는 역사가가 사실을 선택하고 배열하여 역사적 사실로 만드는 것에서 역사가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검증되었다고 보는 모든 사실이 고정불변의 역사적 사실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과 비역사적 사실 사이의 구별은 엄격한 것도 아니고 고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어떠한 사실도 일단 그것의 적절성과 중요성이 밝혀지면 역사적 사실의 지위로 말하자면 승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역사가와 그의 원인의 관계는 역사가와 그의 사실의 관계와 똑같이 이중적이고 상호적인 성격을 가진다. 



(이해를 돕기 위한 쓴 소리 한마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역사학계에서 하*상*주 삼대를 논할 때 하와 상은 전설의 왕국이며 사료에서만 허황되게 꾸며 놓았지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하였다. 그야말로 실증적 사관의 백미이다. 그러나 그 반면에서 그 왕조의 실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은 백안시되는 과정에서도 연연히 꿈틀거렸다. 허나 은허유적이 발견되고 죽서의 발굴 등으로 하*상 왕조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로 갑자기 전화한다. 허황된 고대 기록들이 실체로 둔갑하는 극적인 흐름을 보면서 그동안 그토록 맹렬히 매도하였던 역사학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런 학자들이 이제는 화살을 돌려 만몽의 하가점과 신락과 부신 등의 제의와 성곽규모로 보아 왕조에 필적하는 유물상을 다시 폄하하고 있다 



의문을 가지고 시작하는 과학자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역사가의 세계도 사진을 찍어놓은 것과 같은 현실세계의 복사판일 것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역사가가 효과적으로 현실세계를 이해하고 지배할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작업 모델을 요구한다. 결국 역사란 역사적 중요성이라는 측면에서 이루어지는 최상*최적인 선택의 과정이다. <톨콧 파슨스>는 말한다. 역사탐구는 있을지도 모를 실체에 대한 인식적 지향의 선택체계일 뿐만 아니라 그걸 가능하게 만들려고 모든 방법을 동원하는 인과적 지향의 선택체계이다. 


역사가는 끝없는 사실과 비사실의 바다에서 자신의 목적에 중요한 것을 선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양하고 무수한 인과적 전후관계 중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실을 오직 그런 것만을 추출해 내기 위해 모든 자료를 활용하고 도출해낸다. 그리고 그 역사적 중요성을 가르는 기준이 되는 것은 오직 그 전후 관계를 자신이 만들어낸 합리적 설명과 해석의 모형에 짜 맞추는 역사가의 편협되지 않은 능력이다. 그 밖의 다른 인과적 전후 관계들을 우연적인 것으로서 배제되어야 할 때 필히 지켜야 할 금과옥조 같은 이유는 원인과 결과 사이의 관계가 특별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전후 관계 자체가 적절하지 못하기 때문이어야만 한다. 



역사가는 ‘왜?’라는 질문에 더하여 ‘어디로?’라는 질문도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역사의 연구는 원인에 대한 연구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가는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렇기에 어떤 대답을 바라는 한 그는 쉴 수가 없으며 어느 것도 티끌만한 단서를 찾을 수만 있다면 함부로 버릴 게 없다. 위대한 역사가란 새로운 것들에 관해서 또한 새로운 맥락에서 ‘왜?’라는 질문을 줄기차게 제기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맥락으로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는 그의 책 첫 머리에서 자신의 목적을 이렇게 규정했다. 우리는 언제나 그리스인들과 야만인들의 역사말살행위에 관한 기억을 보존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역사적 탐구태도를 견지하게 된다. 아시아의 고대문명과 마찬가지로,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문명을 대하는 관점도 기본적으로는 비역사적이었던 것 같다. 


역사에서의 <객관성과 개연성>이라는 논지는 잘 알려진 어려운 문제가운데 핵심이다. 역사론을 포함한 사회과학은 주체와 객체를 분리시키고 관찰자와 관찰대상 사이의 엄격한 분리를 강요한 인식론에는 따를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제부터 우리에게는 그들 사이의 상호연관과 상호작용의 복잡한 과정을 올바르게 다룰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 역사의 사실들은 순수하게 객관적일 수 없는데 왜냐하면 그것들은 역사가가 부여하는 특정한 의미에 의해서만 역사의 사실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심각한 오류 즉 객관성과 개연성을 빙자한 착시가 있어 날 수 있는 소지가 얼마든지 발생하게 된다. 역사에서의 객관성은 사실만의 객관성일 수 없으며, 오로지 관계의 객관성 즉 사실과 해석 사이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사이의 관계의 객관성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런 까닭으로 현재의 많은 역사론자들은 역사의 바깥에 역사로부터 독립된 어떤 절대적인 가치기준을 미리 세워놓고서 역사적 사건을 평가하려는 시도를 비역사적인 것이라고 거부하고 있는데 그 이유들을 다시 끄집어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역사가도 당면한 목적과의 연관 속에서만 중요성을 판별할 기준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역사탐구나 역사적 사실의 변화는 언제나 고정불변한 어떤 기준에 의해서 설명되어야만 한다는 전통적인 가설은 그동안 많은 학설이 새롭게 진화하고 소멸되는 역사가의 경험과 상반된다. 이는 <헤겔>로서부터 비롯한 그의 절대자에게 세계정신이라는 신비한 형태의 외피를 입혔고 역사발견과 사실추정의 과정을 미래의 발견 속에서 그려보는 것 대신 현재의 기준에서 멈추게 한 중대한 오류를 범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가 어느 역사가를 객관적이라고 칭찬하는 것은 혹은 이 역사가는 저 역사가보다 객관적이라고 말하는 판단은 어떤 의미에서일까? 그것은 단순히 그가 그의 사실을 올바르게 입수한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올바른 사실을 잘 선택한다는 달리 말하자면 그가 중요성에 관한 올바른 기준을 적용한다는 뜻임이 분명하다. 우리가 어떤 역사가를 객관적이라거나 개연성에 충실하다고 말할 때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그 역사가에게는 사회와 역사 속에서 자신의 위치로 인해서 제한되어 있는 시야를 넘어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그 역사가에게는 자신의 시야를 미래에 투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그런 만큼 자신이 처해 있는 바로 그 위치에 전적으로 속박된 사고방식을 가진 역사가들보다 과거에 대해서 더 심원하고 더 지속적으로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이것이 참된 객관적 시각이며 진정한 개연성의 탐구이다. 그러므로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이야기 했을 때, 오히려 역사란 과거의 사건들과 서서히 등장하고 있는 미래의 추구목적들 사이의 격의 없는 그리고 울타리 없는 대화라고 이해해야 한다. 예전의 해석은 결코 모두 거부되는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해석에 포함되어야 하며 또한 대체되어야 역사탐구의 정도(正道)이다. 



(17~18세기의 역사적 합리론 rationalism - 歷史的合理論) 


비합리적이며 우연적인 것을 배척하고, 이성적(理性的) 논리적 필연적인 것을 중시하는 태도를 말한다. 합리론 이성론 이성주의라고도 한다. 실천의 기준으로서 이성적인 원리만을 구하는 역사태도를 가리킬 경우도 있다. 형이상학적으로는, 이성이나 논리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어 이 세상에는 존재이유(存在理由)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고 주장하는 설로 그리스 고전철학(古典哲學)의 관상적(觀想的) 합리주의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인식론적 견지에서는, 경험론과 대립하여 모든 인식은 생득적(生得的)이고 명증적(明證的)인 원리에서 유래한다고 하는 입장으로, R.데카르트, B.스피노자가 그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 경향으로서는 데카르트, 스피노자, G.W.F.라이프니츠, C.볼프 등 이른바 대륙의 합리론에서 전형적인 것을 볼 수 있듯이 감각적 경험론을 혼란된 것이라 경시(輕視)하고 수학적 인식관을 원형으로 하는 태도와 같은 논증적(論證的) 역사관을 중시한다. 


데카르트는 수학*자연 연구에 흥미를 갖고 주로 수학의 방법에 의해 '확실하고도 명증적(明證的)인 인식'으로서의 학문을 확립하려고 하였다. 즉 종합과 분석의 수학적인 방법에 의해서 물질적인 사상 일반(事象 一般)을 다룰 것을 생각하여, 물질을 모습이나 크기와 같은 순수하게 기하학적인 성질에 의해서 파악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자연히 종래의 스콜라 철학적인 물질관과 대립하게 된다. 물체 속에 영혼 비슷한 것의 존재를 혼입시킴과 동시에 마음이나 영혼의 작용 가운데 영양이나 운동과 같은 신체적 작용도 섞어서 생각하던 종래의 사상에 대항하였기 때문에 그는 먼저 물질로부터 일체의 심적(心的)인 것은 배제하고 동시에 마음을 일체의 물질적인 것에서 해방하려는 작업을 해야 했다. 



그리하여 우선 확실하며 명증적인 인식을 얻기 위해서는 일체의 선입감을 버리고 그와 동시에 장래 일어날지도 모르는 의혹을 미리 예방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불확실한 것이라고 생각되면 모조리 의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때로는 수학적인 진리와 같은 것도 의심해야 한다. 즉 일체의 사물에 대하여 의심할 수 있고 또 의심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을 이와 같이 의심하더라도 의심하고(생각하고) 있는 우리 자신의 존재가 있다는 것만은 의심할 수 없다. 그리고 회의(의심을 품다)한다는 것은 사유(思惟)의 하나의 방법이라는 데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가 제 1원리로서 세워지는 것이다. 여기에서 회의는 의심하기 위한 의심이라는 회의론자의 회의와는 달리 확고부동한 진리를 획득한다는 목적을 위한 적극적 회의이다. (강성위 역, 서양철학사, 이문출판사, 1988, pp. 159∼172) 

하지만 이걸 역사론에 대입하면서 고정관념과 기준이 생겨난 것이다. 허나 역사적 의문은 수학적 의심과는 명백히 다르다. 역사인식의 파국점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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