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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논문] 역사탐구를 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가져야 할 태도는 무엇인가? [3]

송화강 2019-05-27 (월) 17:05 6년전 5892  

역사탐구를 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가져야 할 태도는 무엇인가? [3]

 

 

 

역사가에게 <프로이트>는 두 가지 점에서 특히 중요하다. 


첫째 그는 사람들의 행동은 그들이 스스로 주장하고 믿고 있는 행위의 동기를 통해서 사실상 적절하게 설명될 수 있다는 오랜 환상의 관에 최후의 못질을 했다. 

둘째 맑스의 작업을 보충하면서 역사가에게 자신과 역사 속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그의 시각을 결정한 민족적 배경과 사회적 배경을 그리고 과거에 대한 관념을 형성시키는 미래에 대한 관념을 심문해보라고 촉구했다. 


학문에서든 역사에서든 사회에서든, 인간사에서의 진보는 기존질서의 점진적인 개선을 추구하는 일에 스스로를 제한시키지 않고 현존질서에 대하여 그리고 그것이 의지하고 있는 공공연한 또는 은폐된 전제들에 대하여 이성의 이름으로 근본적인 도전을 감행했던 인간들의 그 대담한 자발성을 통해서 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를 가장 불안하게 만드는 사실은 영어사용권 세계의 지식인들과 정치 사상가들 사이에서 이성에 대한 신념이 약화되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세계관과 역사론에 대한 충만하고 혁신적이며 개척자적인 감각이 상실되었다는 사실이다. 아집과 신조류에 대한 저항과 파괴와 그리고 고답적인 담론의 맹신 이외에는 아무것도 내다보지 않으면서 진보에 대한 모든 신념과 역사의식에 대한 더 나은 진화에 대한 모든 전망을 어리석은 짓이라고 배제해버리는 오늘날의 회의주의와 교조주의의 조류는 엘리트주의의 한 형태라는 믿음으로 고착되고 있다. 



(처음으로 밝히는 순수한 내 입장 한마디) 


[비교적 손쉽게 한 가지만 이야기 하겠다. 나는 분명히 신념과 낙관주의로 가득 찬 위대한 빅토리아 시대 중에서도 대낮이 아닌 저녁놀을 바탕으로 삼고 성장하여 아직도 글을 쓰고 있는 극소수의 역사학도들 가운데 한 사람이며, 그래서인지 나에게는 끊임없이 또한 돌이킬 수 없이 쇠퇴하고 있는 역사인식을 생각하는 것이 지금까지도 끔찍하고 어려운 일이다. 어쨌든 미래에 대한 보다 건전하고 보다 균형잡힌 전망을 주장하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다] 


상식적인 역사관은 역사를 개인에 의해서 쓰여진 개인에 관한 어떤 것으로 간주한다. 이런 견해는 19세기의 자유주의 역사가들에게 의심 없이 수용되었고 또한 조장되었는데, 실제로 그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그것은 너무 단순하고 부적절하게 보이므로, 좀 더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역사가의 지식은 오로지 그만의 개인적인 소유물이 아니다. 아마도 여러 세대의 사람들이 그리고 수많은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그 지식의 축적에 참여해왔을 것이다. 역사가가 그 행동을 연구하고 있는 사람들은 진공 속에서 행동한 고립된 개인들이 아니었다는 이야기이다. 



역사가는 역사를 이루어가는 행렬 속의 1인 일 뿐이다. 


<베리>는 그의 취임강연에서 <몸젠>의 위대함은 [로마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비문을 집대성했다는 사실에 그리고 로마 헌법에 대한 그의 연구 업적에 있다고 우겨댔는데 그런 식의 주장에 대해서는 지금도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그것은 역사를 그저 익히 알려진 사료들의 편찬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실증주의적 역사론자>의 주장과 흡사해 보이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진정한 역사가는 묻혀지고 비틀려진 역사를 새로이 발굴해내는 행렬 속의 1인으로서 끈임 없이 왜곡되고 하찮게 여겨지는 역사기록의 진흙탕 속에서 보물을 찾아내야하는 탐험가이며 모험가인 동시에 도전적인 행동으로 [왜?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라는 질문을 던지고 의문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를 논한다고 조금이라고 입을 여는 여러분이라면 역사가 자신이 연구영역에 들어가면서 가지게 되는 근본적인 태도와 입장을 파악하지 않고서는 역사연구를 충분히 이해하거나 평가할 수 없다. 그렇게 해야만 하는 입장 자체는 어떤 사회적*역사적 배경에 뿌리박고 있다. 언젠가 <마르크스>가 말했다. “교육자 자신이 반드시 교육을 받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요즘 말로 하면 세뇌하는 사람의 머리 자체가 벌써 세뇌되어 있는 것이다. 역사가는 역사책을 쓰기 시작하기 이전에 이미 역사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역사가 잘못된 방향으로 접어들게 되자 역사의 의미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의 이단이 되어 버렸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토인비>는 이러한 직선적인 역사관을 순환론으로 대체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가 결국 실패한 후 영국의 역사가들은 역사에는 일반적인 패턴이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것으로 만족스러워했다. 즉 1914년 이래 우리 사회의 성격과 사고방식에서 나타난 근본적인 역사인식에 대한 잘못된 변화의 산물이자 표현으로 생각할 것이다. 극명하게 말한다면 <한 사회가 교조적으로 서술하거나 감히 서술하지 못하는 역사는 어떤 종류의 역사인가? 하는 문제보다 그 사회의 성격을 더 의미심장하게 지시해주는 척도는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으로 바뀌는 데는 그 후 많은 시간이 흘렀다. 



역사가들의 사유도 다른 사람들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시대와 장소에 의해서 형성된다. 


어떤 역사철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은 역사를 연구하기에 앞서 역사가를 연구하라” 이제 나는 이렇게 덧붙이려고 한다. “여러분은 역사가를 연구하기에 파서 그의 역사적*사회적 환경을 연구하라. 왜냐하면 역사가는 개인이면서 또한 역사와 사회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은 바로 이 두 가지의 관점에서 역사가를 바라보는 법을 반드시 배워야만 한다. 


이제 역사가에 관해서는 그만 이야기하고 이러한 등식의 다른 항을 동일한 문제 틀에 비추어 고찰해보도록 하자. 


역사가의 연구대상은 개인의 행동인가? 아니면 사회적인 힘의 작용인가? 여기에서 ‘나쁜 존 왕’ 역사이론-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개인의 성격과 행동이라는 견해-이라고 부르려고 하는 역사이론은 유구한 족보를 가지고 있다. 개인의 천재성을 역사의 창조력으로 간주하려는 욕망은 역사의식의 원시적인 단계에서 나타나는 특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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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이 임진왜란을 구했다는 식의 판단은 왕조사를 쓴 선비들과 왕이 이순신 사후에 생각한 것일 수 있습니다. 실제 적혀진 기록이 그러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 문서들은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임진왜란 종전사를 새롭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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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존 왕과 좋은 여왕 베쓰 


이 이론은 최근의 시대로 내려올수록 특히 유행하고 있다. 공산주의의 기원과 성격을 분석하는 것보다는 그것을 ‘칼 맑스의 창작품’이라고 부르는 것이 볼세비키 혁명의 깊은 사회적 원인을 연구하는 것보다는 그 혁명이 니콜라이 2세의 어리석음 때문에 또는 독일의 자금 때문에 발생했다고 보는 것이 그리고 20세기의 두 세계 대전을 국제 관계 체제에서의 어떤 근원적인 붕괴가 빚어낸 것으로 생각하기보다는 빌헬름 2세와 히틀러의 개인적인 사악함이 빚어낸 것으로 보는 것이 더욱 쉬운 일일 수도 있다. 


이는 <훌륭한 역사소설은 역사에 기여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역사소설은 하나의 문학에 속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아울러 비슷하게 준용한다면 무의식적인 동기나 본인이 인정하지 않으려는 기록을 통찰하지 않겠다는 태도는 일부러 한쪽 눈을 감고서 일하겠다는 식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 따르면 역사가들은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여러분이 <존 왕이 나쁜 것은 그의 탐욕이나 어리석음 또는 폭군이 되고자 한 그의 야망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하는 데에 만족하는 한 여러분은 아이의 역사수준에서도 이해될 수 있는 개인의 성질 이야기나 누구나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단절적이고 단선적인 역사배우기와 역사 찾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파악하려는 역사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므로 엄청난 재산을 소유하지도 않으며 전투를 벌이지도 않는다. 반면에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은 소유하고 싸우는 이들은 오히려 인간, 즉 현실의 살아있는 인간들이었다. 비록 그러한 역사의 기나긴 흐름이 [환국]으로 불리었건 [한국]으로 내려왔건 또는 [한후]나 [예맥]으로 칭하였던지 간에 우리 민족이 현재 나타난 작은 자료에만 근거하여 어느 날 갑자기 출현한 집단라고 보는 것이 옳은 것일까? 아니면 유구한 인류의 삶속에 같이 움직이면서 연연히 맥을 이어온 집단이라고 보는 게 옳은 것일까? 그런 까닭으로 난 나쁜 존 왕보다는 좋은 여왕 베쓰가 되고 싶은 것이다 


내가 반대하고 싶은 견해는 유구한 민족의 삶과 흐름을 일방적으로 공인된 자료에만 의거한 역사의 밖에 놓아둔 채 믿을만한 가치이기 때문에 그것만 역사에 넣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즉 어떤 나라를 마치 알 수 없는 혹성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온 외계진입자로 만들면서까지 역사의 연속성을 방해하는 <요술 상자 속의 소년 잭?과 같은 존재인양 생각하는 태도이다. 


진정한 역사가가 보는 [이러리라는] 가정과 [이렇구나!]라는 사실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의 과정은 즉 내가 현재와 과거 사이의 잊혀지고 묻혀 지고 버려진 안타까운 대화라고 불렀던 그 과정은 추상적이고 고립된 별개의 나라 사이의 단절된 대화가 아니라 오늘날 밝혀진 국가와 어제의 장막 속에 가려진 원초적 집단 사이의 연결점이다. <부르크하르트>가 말을 대신해주고 있다. 


“역사란 이미 알려진 한 시대가 묻혀 진 다른 시대 속에서 이음매를 찾아내는 주목할 만한 것에 관한 기록이다. 과거는 현재에 비추어질 때만 이해될 수 있다. 또한 현재도 과거에 비추어질 때에만 완전히 이해될 수 있다. 인간이 과거의 사회구성체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그리고 현재의 사회구성체에 대한 인간의 이해와 발굴을 증대시켜주는 것 이것이 역사의 이중적인 기능이다” 


그래서 현대 역사학자들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자신들이 조사하고 신화를 재해석하고 비현실성을 현실에 맞게 탐구하는 행동은 사실(fact)이 아니라 사건(event)이라고 말하고 있다. 




연구과정에서 역사가가 이용하는 가설의 지위는 과학자가 이용하는 가설의 지위와 대단히 유사한 듯이 보인다. 



역사에서의 시대구분에 관한 논쟁도 이 범주에 들어간다. 역사를 몇 가지 시대로 구분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필요한 가설 또는 사유의 도구로서 그것은 무엇인가를 설명해줄 수 있는 한에서 유효하며 그런 유효성은 해석에 좌우된다. 중세가 언제 끝났는가? 하는 문제에 관해서 의견을 달리하는 역사가들은 어떤 사건에 관한 해석에서도 의견을 달리한다는 말이다. <소렐>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누구나 자기의 길을 더듬거리며 (그는 분명히 이렇게 썼다) 걸어 나가야 할 것이다. 누구나 그럴 듯해 보이는 부분적인 가설들을 철저히 시험해보아야 하지만 수정의 여지가 항상 남아 있도록 잠정적인 근사치에 만족해야만 한다.” 


이것은 과학자들이 그리고 <액턴>과 같은 역사가들이 잘 검증된 사실을 축적하면 논쟁거리가 되는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해줄 일단의 광범한 지식을 언젠가는 확립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고 있었던 19세기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이다. 오늘날의 과학자나 역사가 모두보다 겸손한 희망, 즉 자신의 해석을 매개로 하여 사실을 분리하고 그 사실로써 자신의 해석을 검증하는 가운데 하나의 단편적인 가설에로부터 또 하나의 단편적인 가설로 점진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다는 걸 역설적으로 증명해준다. 


그러므로 나에게는 두 분야 사람들이 일하는 방법이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역사란 ‘결코 사실 그것이 아니라 일련의 인정된 판단들’이라는 <배러클리프>교수의 말을 인용하고 싶다. 따라서 역사가의 진정한 관심은 특수한 사실의 객관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특수한 사실 안에 있는 일반적인 가정의 추적과 탐구에 있다. 따라서 일반적인 가설이 지금 공인된 역사와는 관계없다고 하는 것은 몰상식한 말이다. 역사는 많은 일반화된 이론들과 가정들 위에서 번성하는 것이다. 일반화가 특수한 사건들이 반드시 끼워 맞추어지는 어떤 거대한 체계를 세울 수 있도록 해준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역사는 특수한 것과 일반적인 것의 관계를 다룬다. 여러분이 역사학도라면 사실과 해석을 분리시킬 수 없듯이 그 두 가지를 분리시키거나 어느 하나를 다른 하나보다 우월한 것으로 취급할 수 없다. 


역사의식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고정된 역사가 거의 반복되지 않는 이유는 두 번째로 공연할 때의 등장인물들은 첫 번째의 공연의 결말을 알고 있고 따라서 그에 관한 지식이 그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이는 과거에 허구로 여겼던 가설이 현실로 드러날 때의 경우를 생각해 보라) 


<볼세비키>는 프랑스 혁명이 결국 <나폴레옹>이라는 인물에게서 끝장났다는 것을 알았으며 그래서 자신들의 혁명도 똑같은 방식으로 끝나지나 않을까 두려워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의 지도자들 중에서 <나폴레옹>이라는 인물을 가장 닮은 <트로츠키>를 불신했고 <나폴레옹>을 가장 닮지 않은 <스탈린>을 신뢰했던 것이다. 그 결과가 어찌되었는가? 




물리학자들의 자연계와 역사가의 세계 사이에 두드러진 유사성 



첫째, 그들의 연구결과에는 불확실성 또는 불확정성의 원리가 포함되어 있다고들 말한다. 

둘째, 현대물리학에서는 공간상의 거리와 시간의 흐름을 재는 척도가 관찰자의 움직임에 좌우된다고들 말한다. 


18세기 그리고 19세기 내내 지배적이었던 고전적인 인식론들은 모두 인식하는 주체와 인식되는 객체라는 뚜렷한 이분법을 전제했다. 오늘날 과학자는 대체로 자연의 힘을 맞서 싸워야 할 어떤 것으로 생각하기보다는 협력해야 하고 자신의 목적에 이용해야 할 어떤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이제 고전적인 인식론은 보다 새로워진 과학, 그 중에서도 특히 물리학에는 적합하지 않다. 지난 50년 동안 철학자들이 그 인식론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하여, 인식과정은 주체와 객체를 뚜렷이 분리시키는 과정이 아니라 그것들의 상호관계와 상호의존을 일정한 정도까지 포함시키는 과정이라고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론을 포함한 사회과학에 대해서는 대단히 중요하다. 이제 나는 사회과학 전체는 주체이면서 동시에 객체인, 검사자이면서 동시에 검사대상인 인간과 관계하므로 주체와 객체의 엄격한 분리를 선언하는 어떤 인식론과도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싶다. 사회학이 일관된 학설 체계로서 자립하고자 노력한 가운데 지식사회학 이라고 불리는 한 분야를 설정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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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세상을 보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보여 지고 있습니다. 보여 지고 있다는 것에 지나치게 얽매여서 자기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한다면 그 어떠한 순간에도 보여 지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여 남을 잊는 것도 떠한 큰 문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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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인적으로 역사의 완결성은 역사의 의미와 중요성을 좌우하는 어떤 초역사적인 힘에 대한 신념과 조화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역사가는 그와 같은 신적의 힘에 전혀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역사는 다시 말하자면 조커 카드가 없는 다양한 트럼프와 같다는 것을 전제하고자 한다. 아울러 역사학도들이 저도 모르게 아니면 의식적으로 저지르는 도덕적인 판단과의 관계는 더욱 복잡하며 그것에 관한 과거의 논의들도 몇 가지 애매모호한 문제들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역사가는 자신이 신봉하는 책에 등장하는 사실에 대하여 도덕적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 옆길로 새지 않는다. 역사가 해야 할 일은 다른 것이다. 


그런 태도는 현재의 법정이 (사법적인 것이건 도덕적인 것이건) 살아서 활동하고 있는 위험한 인간들을 상대로 설치한 현재의 법정이며, 그 밖의 다른 위험한 인간들은 이미 그들의 시대의 법정 앞에 세워졌기 때문에 두 번씩 유죄 판결을 받을 수 없다는 그 커다란 차이를 잊고 있다. 어떤 법정이든 간에 그 앞에 서야 할 책임을 그들에게 지울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과거의 판사에 배당되는 인물들 이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논지의 구속을 받지 않는다는 것 때문이다. <크로체>가 다시 이점을 강조하고 있다. 


“역사를 쓴다는 구실로 재판관처럼 부산을 떨면서 여기에서는 유죄판결을 내리고 저기가 오직 역사의 신민으로서 있어야 할 장소뿐이라는 것을 주장하고 그렇기에 오직 이쪽만이 역사의 충실한 신민일 뿐이라는 것 따라서 그들은 그들 행위의 정신을 통찰하고 이해하는 판결 이외의 다른 판결에서는 다 용서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며 바로 그것이 역사적 직무라고 생각하기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역사 감각이 없는 자들이라고 인정된다” <베이컨>도 동조하고 있다. “인습의 완강한 유지는 혁신만큼이나 난폭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첨언하겠다. 역사란 운동이라고도 이야기 한다. 그리고 운동은 비교를 의미하기 때문에 역사가들이 흔히 ‘선’이나 ‘악’처럼 타협이 불가능한 적대적인 용어보다도 ‘진보적’이라거나 ‘반동적’이라는 말과 같이 비교할 수 있는 성질의 용어로 자신들의 도덕적인 판단을 애써 표현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한 역사가란 모든 가치의 성격이 역사적으로 조건 지어진 것임을 인정하는 사람이지 자기가 생각하는 가치야말로 역사를 초월하는 객관성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다. 


역사가 과학에 연결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관해서 내가 말하고자 한 것을 요약해보자. 역사가 과학이 아니라는 주장의 주요한 이유는 그런 주장이 이른바‘두 문화’ 사이의 틈새를 정당화하고 영속화하기 때문이다. 그 틈새 자체가 앞에서 말한 편견의 산물이다. 다시 말해 이를 극복하는 하나의 해결책은 우리 역사학의 수준을 향상시키는 것이며 역사학을 감히 말하건 더욱 과학적 영역[끈임 없이 왜? 라는 의문을 가지고 진취적으로 분석하며 어떻게? 라는 고민으로 다양한 방법을 찾아내고 무엇일까? 를 향해 목표의식을 가지고 진화하는 속성들]으로 발전시키는 길을 만들어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진정한 요구사항을 더욱 엄격하게 제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틈새를 메우기 위한 또 하나의 방법은 과학자들과 역사가들의 목표가 동일하다는 점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촉구하는 것이다. 요즈음 역사학파 가운데 과학사와 과학철학에 대한 새로운 관심의 증대가 지니는 주요한 의의도 거기에 있다. 



[덧 글] 


역사가도 여느 다른 과학자처럼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동물이다. 아울러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역사 소설가는 모름지기 자신이 소재로 삼고 있는 사건을 해석하고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가치를 소설에 투영을 시켜야 한다. - 이 문제 즉 역사소설가는 무엇을 어찌해야 하는가? 라는 주제는 다음에 따로 올릴 것입니다.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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