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군은 허구다 - 동화속의 한사군 [3]
(국회청문회에서 임승국님의 논지)
□ [역사 지리적]으로 본 [한사군] 문제
[사진자료 1-출처:연합통신 사진검색]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요서지역 해안도시인 진시시(금서시錦西市) 소황띠(소황지小荒地)라는 고대 성곽에서 출토된 "임둔태수장(臨屯太守章) 봉니"와 "승(丞) 자 봉니"입니다. 금서(錦西)는 중국 군사지도에 의하면 변경 전 지명이 연산(連山)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바로 "산해관"에서 북쪽으로 출발하는 고구려 천리장성 남단에 있군요. 위쪽을 흐르는 강은 "대릉하"입니다



[사진자료 2-사리원]

1. 국회청문회 임승국 -[낙랑군 수성현]은 <하북성 산해관> 유역에 있었다
고 <임승국> 교수는 중국에서 태어나 중학교 4학년까지 살았다고 합니다. 밤낮으로 [갈석산]을 보고 자랐는데 근처도 안 가본 이들이 글자가 같다고 <황해도 수안>이 [갈석산] 지역이라고 한다는 군요. 참 무엇으로도 말릴 수 없는 사람들이다. 차라리 틀렸으면 고개 숙여 반성하고 고치기라도 하였으면 좋으련만......서울도 안 가본 이들이 우긴다고......꼭 그 꼴이니! 아래는 청문회 시 문답내용이다.
(문) 낙랑군 수성현은 어디에 있었나요?
(답) 사료에 의하면 하북성 산해관 서쪽 "갈석산" 인근이라 합니다.
(문) 허나 <이병도> 씨에 의하면 황해도 "수안"이 수성현(遂成縣)이라는데요. 근거가 있나요
(답) 그거야 수성현(遂成縣)의 첫 글자 수(遂)자가 황해도 수안(遂安)과 같지요. 그러니 같은 지명일 것이라는 주장이지요.
(문) 그래서 하북성 수성현이 바다건너 황해도 수안이 되었다는 겁니까?
(답) 뭐 이병도 씨도 저명한 박사인데 설마 거짓말 했겠어요?
.......유구무언.......이건 뭐! 산해관 서쪽 "갈석산" 인근이 "낙랑군 수성현" 이라 했는데, 황해도 수안이 "낙랑군지"라고? 도대체 정신은 있는지?


이제부터는 [한사군] 문제와 연관시켜 [역사 지리학적인 측면]을 살펴 보겠습니다.
요동이라고 하는 땅은 오늘날 요동반도라고만 생각들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여 글자 그대로 "요하동쪽"이라는 뜻의 요동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상고(上古) 사회의 요동은 현 요동반도가 아닙니다. 요동이 아니라고 하는 한 가지 자료를 소개하겠습니다. 즉, "갈석산의 사료"입니다
"갈석산(碣石山)은 “재한수성현(在漢遂成縣) 진축장성(秦築長城) 동절요수(東截遼水) 기어차산(起於此山)"이라 기록되었지요. 이는 옛날 요수에 대한 "절대사료"입니다 - 이 사료에서 [갈석산]은 한나라 낙랑군 수성현에 있다고 했다.
무슨 얘기냐 하면 [갈석산]은 중국의 산해관 동쪽 해안에 있는 산 이름 인데 한나라 낙랑군 수성현에 있다. 진시황의 만리장성이 동쪽으로 요수를 끊고 이 산에서 일어났다. 꼭대기에는 장성의 유적이 아직도 있다는 말입니다.
저는 중국태생입니다. 제가 지금 말씀드린 이 [갈석산]을 아침저녁으로 보면서 해방 전까지 중학교 4학년 생도로서 중국 땅에서 태어나서 거기에서 컸어요. 그렇다면 그 [갈석산]이 어디에 있어요? 바로 "낙랑군 수성현에 있었다"했습니다. 그런데 갈석산은 지금도 산해관 동쪽 해안에 있습니다.
알기 쉽게 말하면 만주와 중국 국경사이에 자리한 국경도시인 <산해관>에 있습니다. 산해관의 해안 쪽을 내려다보면 바위로 된 돌산인 나무가 하나도 없는 산이 보입니다. 이것이 [갈석산]입니다. 그리고 이 산이 바로 만리장성의 출발점입니다. 또한 "갈석산(碣石山)은 재한수성현(在漢遂成縣)"이라 하였으니 여기가 낙랑군 수성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병도>는 황해도 수안(遂安)의 "수"자가 수성현의 "수"자와 같다고 하여 황해도 "수안"이 "수성현"이라고 어처구니없는 일을 서슴지 않았는데 그의 책을 보면 이 "수성현"을 한반도 황해도의 "수안"이라고 했어요. 그놈의 "수"자가 같은 "수"자라네요. 아무튼 "수안"이 왜 그놈의 "수"자를 쓰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수"자가 같다고 중국에 있는 "수성현"이 하루아침에 황해도 땅으로 올수 있어요?
이것은 "넌센스"예요
다음으로 "진축장성(秦築長城) 동절요수(東截遼水) 기어차산(起於此山)“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진시황이 쌓은 만리장성이 동쪽을 요수를 끊고...."라는 뜻입니다.
여러분들 ! 그럼 요수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백번을 다시 보아도 만리장성을 끊고 흐르는 강 그게 바로 요수입니다. 지금 여기에 지도가 있습니다. 바로 이곳이 [산해관]이고 바로 여기가 [갈석산]입니다. 그리고 이 만리장성이 동쪽으로 끊고 흐르는 강이 있는데 오늘날엔 그 강의 이름은 난하( 河)라고 불리우고 있습니다.
이 강이 옛날엔 "요수"였던 것이에요. 물론 최근의 요수는 현 요동반도를 남류하는 요하인데 바로 여기입니다. 지명이라고 하는 것이 항상 이동합니다.
(난하가 옛 요수)

2. [패수浿水]는 한반도에 있지 않았다.
패수에 대하여 기존사학계에서는
(1) 대동강
(2) 청천강
(3) 압록강
등등 시간이 흐름에 따라 위치가 점차 북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패수(浿水)는 중국대륙에 존재한 것으로 북한학자 <이지린>은 [수경]이라는 책을 통하여 [패수]의 <한반도 존재설>을 주장하는 남한 학자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럼 여기에서 우리는 정말 최초의 요동이 어디였는지 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최초의 요동은 여러분들 한번 상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고지도를 한번이라도 들여다 본 사람이라면 바로 산서성에 "요"지역이 있음을 금방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렇지요. 최초의 요동(遼東)은 산서성에 있었습니다. 꼭 한번 찾아보세요. 왜 이런 자료를 그렇게 누누이 알려주어도 찾아보지도 않고 엉뚱한 궤변으로 자꾸 반대만 하는지 모르겠어요. 자! 보세요. <산서성>에 "요遼“라고 하는 지명이 있습니다.
"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주1)라고 하는 책은 중국의 최대지리서입니다. 거기에서 "요주"를 찾아보세요. <산서성 조목>에 있다고 나와 있어요. 바로 거기에 "요산"이 있고 "요수"가 있고 거기에 "요양"이 있고 현 남만주라는 “요동”의 지명이 다 있습니다. 최초의 요동은 바로 이곳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많은 일반사람들은 무엇에 혹하였는지 13세기 이후에 나타나는 [현 요동]만을 <요동>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참으로 답답한 일입니다.
3. 북한학자 <이지린>은 중국 [수경]지를 인용하여 패수가 대동강이 아님을 증빙하고 있다.
나는 북한의 사학(史學)을 되도록 소개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마는 부득이하게 하나 만 딱 말하겠습니다. <이지린>이라고 하는 학자에 대해서 여러분도 잘 아실 줄 믿습니다. 그가 쓴 역사책을 나는 국토통일원 도서관에서 읽어 보았습니다. 헌데 이 사람도 요동개념에 대해서 신랄한 얘기를 했습니다. 그가 동원한 자료는 패수(浿水)의 위치에 대한 대목이었습니다.
"패수출낙랑군누방현 동방과출어임패현 동입간해"
"浿水出樂浪郡鏤方縣 東方과出於臨浿縣 東入干海"
(패수는 낙랑군 누방현에서 흘러나와 동쪽으로 임패현을 지나서 동쪽으로 바다에 흘러든다)
여기에 나오는 [패수]를 어떤 학자들은 모두 <대동강 또는 청천강> 이라고 하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많은 분들도 그렇게 알고 있지요. 지금까지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기 때문입니다. 요새는 패수의 위치가 조금씩 북상해서 모두 청천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 패수가 사서(史書)에서는 낙랑군 누방현에서 흘러나오는데 동쪽으로 임패현을 지나서 "동입간해(東入干海)" 즉 "동쪽으로 바다에 들어간다" 했습니다. 이는 "수경(水經)"(주2)이라고 하는 책의 기록이며 물에 관한 기록으로서는 중국 최초의 지리서입니다.
그런데 이 책에 [패수]를 "동쪽으로 바다에 들어간다" 이렇게 적었어요. 헌데 [대동강, 청천강, 압록강]은 모두 서쪽 바다로 흘러들어갑니다. 동서남북의 방위 착각을 일으키지 않는 분이라면 아마 다 아실 거예요. 우리 한반도의 물은 모두 "서입간해"지요.
<대동강>도 서쪽으로 흘러들어가며 그 많은 물들이 모두 동쪽으로 흘러드는 물은 아마도 두만강 이외에는 없을 거예요. "서입간해(西入干海)""가 반도에 있는 수류(水流)의 기본방향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패수]는 분명히 동쪽의 바다로 들어간다(동입간해)고 했어요. 이런 [패수]를 지금의 <대동강 또는 청천강>이라고 하니 이 사람들이 정신이 어떻게 된 분들 아닙니까?
또한 <이지린>이라는 사람은 <수경>의 [패수]기록을 인용하면서 뭐라고 그랬는지 아십니까? 바로 우리 남쪽사학을 공격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경>이러고 하는 책의 서문을 보면 <수경>이 오늘날 만리장성 남쪽과 양자강 이북 사이에 있는 물에 관한 기록이지 만주에 관한 기록이거나 바다나 대륙을 훌쩍 건너뛰어서 한반도의 물에 대한 기록을 적은 책이 아니다"
라고 했습니다. 이거 아주 명쾌한 얘기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우리 한반도의 강물이 대동강(패수) 밖에 없나요? <청천강 압록강 두만강 낙동강> 등 얼마든지 많습니다. 그런데 [수경]속에서 하필이면 <대동강>의 [패수]만을 뽑아서 적었을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앞서 말했다시피 [수경]이라고 하는 책의 서술범위가 장성(長城) 이남의 중국 하천에 관한 기록이지 한반도의 하천에 관한 기록은 아닙니다. 그런데 왜 우리 나라 사람들이 이런 [패수]를 갖다가 <대동강>이다 <청천강>이다 하는 웃기는 소리만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열하일기]를 적은 우리 실학의 대표 <박지원> 선생은 열하성까지 여행을 하고 돌아와서 그 책을 썼습니다. 그걸 읽어보면 중국의 [패수]를 직접 보고서 적은 글이 있어요.
"或指大洞江 爲浿水 或指鴨綠江 爲浿水 或指淸川江 爲浿水 是朝鮮舊彊不戰自虞矣 혹지대동강 위패수 혹지압록강 위패수 혹지청천강 위패수 시조선구강역불전자우의" 즉,
"어떤 자는 대동강을 패수라 하고 어떤 사람은 압록강을 패수라 하고 또 어떤 자는 청천강을 가리켜 패수라 하나 이는 조선의 옛 땅을 싸우지도 않고 남에게 내어주는 꼴이다"
라고 패수의 한반도 위치설에 대하여 개탄하였습니다(조선구강역불전자우의! "朝鮮舊彊不戰自虞矣)
요새 우리들도 혹시 이런 짓을 안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열하일기의 주인공 <박지원> 선생의 탄식처럼 사학적인 왜곡과 첨삭과 부조리가 우리에게 과연 없는지 궁금합니다.
정말이지 앞으로가 더 큰 문제입니다. 그러면 저는 이상으로 [한사군]에 관한 결론을 내리고 시간이 많이 간 것 같습니다만 이제 이 자리를 뜨겠습니다.
[주1] 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
중국의 역사지리서.
저자 : 고조우(顧祖禹)
시대 : 1678년
명말(明末) ·청초(淸初)의 고조우(顧祖禹:1631~1692) 찬술.
본편 130권. 1659년에 착수하여 1678년에 완성하였다. 내용은 중국 전역에 걸쳐 역대 주역(州域)의 지세(地勢)를 약술하고, 이어 성별(省別)로 부주현(府州縣)의 연혁 ·위치 ·산천 등을 적었으며, 끝에는 천독(川瀆:하천 등)으로 하도(河道)·조운(漕運)의 변천과 분야(分野:천문)에 관한 것을 실었다. 한족(漢族)을 중심으로 한 강렬한 민족의식으로 일관되어 있으며, 정치에의 참고를 목적으로 한 측면도 지니고 있다. 청본(淸本)은 수권(首卷)과 4권으로 묶어졌다.
[주2] 수경주(水經注)
중국 북위(北魏) 때의 학자 역도원이 저술한 중국의 하천지(河川誌) 40권. 황허강[黃河] ·화이허강[准河] ·양쯔강[揚子江] 등 1,252개의 중국 각지의 하천을 두루 편력하여, 하천의 계통 ·유역의 연혁 ·도읍 ·경승 ·전설 등을 기술하였다. 책의 이름은 원래 《수경(水經)》이란 저작(著作)이 있어서, 거기에다 주(注)를 붙인 것이다.
《수경》은 3세기경에 이루어진 작자불명의 책으로, 하천의 발원지·경류지(經流地)·합류지 또는 입해지(入海地) 등을 간단히 기록해 놓은 것으로서 <역도원>은 그것을 골격으로 하여 자신의 광범위한 여행 경험과 많은 문헌을 통해 얻어낸 풍부한 지리적 지식을 훌륭하게 정리해 놓았다.
10세기경부터 내용의 5권이 분실되어 그 부분에 잔여의 부분을 충당하여 40권의 체재를 맞추는 등 체재 ·순서 등이 혼란을 빚었기 때문에 18세기 이래 중국에서는 이 보정(補訂) 작업에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중에서도 전조망(全祖望)·조일청(趙一淸)·대진(戴震) 등의 연구업적이 중요한데 이들의 연구결과의 결정판이 양서우징[揚守敬]의《수경주소(水經注疏)》이다. 이것은 청(淸)나라 말과 중화민국 초에 그 일부가 간행되었는데 그 일을 슝훼이천[熊會貞]이 이어 완성시켜 1957년에 출판되었다.
- 이상 국회 국사청문회 속기록에 있는 <임승국> 교수님의 진술내용
(원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