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왜곡] 풍류도와 선맥 그리고 차축시대 - 김상일(한신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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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일 풍류도
종교학자들은 우리나라 무선층의 유래를 단군에서 찾으려고 한다는 점에서는 의견이 같다. 그러나 대종교의 강무학은 이는 어불성설이고 일제가 단군을 미신화하려는 말살정책에서 유래한 것이라며 반발한다. 무속행위는 고려 태조 때부터 통치자들이 통치수단으로 자행한 민심을 추스리고 무마하려는 술수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무속과 복술의 시작은 차라리 중국의 복희 팔괘에서 유래하며, 단군은 홍범구주라는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방법을 채택했다는 것이다(강무학, 1982, 122). 강무학의 이러한 주장은 무속을 한갓 저열한 종교형태로 보려는 일제나 서양의 또 다른 세뇌에 의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무층은 개인의 의식이나 문명의 층에서 가장 넓고 크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층이다. 무층을 부정하면 뿌리를 자르고 줄기만 남은 나무와 같다. 즉 무층에서 발전된 선층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직면한다. 우리의 문화전통과 풍속은 무와 선의 층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부여의 영고, 예의 무천, 삼한의 끽음(喫飮), 가야의 끽라(喫儸), 고구려의 동맹, 백제의 교천(郊天)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종교적인 형태로는 신시교‧신선도‧대신교가 고구려에서는 경천교‧선인도‧동맹제로, 신라에서는 경천교‧풍류도‧화랑도로, 백제에서는 왕신교‧풍월도로, 발해에서는 천신도‧진종대도로, 요금에서는 천신교로, 고려에서는 왕검교‧팔관회‧연등제로, 조선에서는 대종교‧단군교가 있었다(이강오, 1995, 395). 동학은 바로 우리 민족의 기나긴 전통을 물려받아 등장한다. 그리고 구한말 우리나라에 소개된 서교 또는 기독교는 비로소 자기 고향에 온 것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고, 그리고 한국 기독교인들은 전혀 낯선 종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랜 동안 잊혀진 ‘하날님’을 다시 만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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