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자료] [환단고기 위서론 반론] 고고학적 및 과학적 증명의 문제
여섯째, 고고학적 및 과학적 증명의 문제 39. 『환단고기』와 『단기고사』에 설명된 수메르(수밀이)와 티베트(지백특)까지 진출한 거대한 제국으로서의 고조선의 유적(거주지나 무덤)이 전혀 없다? (클릭) 40. 배달국의 유물로서 현재 출토된 것이 없다? (클릭) 41. 『환단고기』는 발해의 왕 계보를 14대로 기록하고 있으며 13대 대현석과 14대 대인선의 시호를 각기 경제와 애제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20세기 중엽 김육불에 의해 발해의 14대 왕인 대위해가 발견되면서 발해의 군주는 모두 15명임이 확인되었으며,대현석 및 대인선의 시호 역시 당시 신라의 왕 경애왕을 오독하여 나타난 것임이 밝혀졌다. 이는 『환단고기』가 발해의 왕에 대한 정확한 옛 기록을 참고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된다? (클릭) 42. 『환단고기』의 천문 기록을 통한 증명에 대한 반론도 제기되었다. 전용훈 박사는 오성취합이 5세기 경 중국의 천문 서적에서 계산 방법이 밝혀진 것임을 지적하며 후대에 하나라가 상나라로 교체되는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계산하여 기록한 것을 『환단고기』에서 사용한 것임을 지적하였다. 실제로 『죽서기년』에는 하나라의 마지막 왕 걸왕 때의 오성착행(五星錯行)이 기록되어 있으며 그 시기도 『환단고기』와 근사하다? (클릭) 43. 계연수가 『환단고기』를 1911년에 편찬했다는 것은 신빙성이 없다. 예를들어 1923년 중국 낙양에서 발굴된 천남생 묘지를 통해서 연개소문의 할아버지‘자유子遊’의 이름이 최초로 세상에 알려졌는데, 그 ‘자유’라는 이름이 『환단고기』에 있다는 것은 모순이다. 따라서 『환단고기』는 1923년 이후에 쓰인 기록이다? (클릭) 44. 『환단고기』가 말하는 장수왕의 연호 ‘건흥’은 1915년 충주에서 발견된 불상 광배에 새겨져 있다. 그러므로 『환단고기』는1915년 이후에 쓰인 책이다? (클릭) 45. 환단고기에는 신화적이고 종교적인 믿기 어려운 내용들이 많이 나온다. 어떻게 3301년 동안 7명의 환인이 통치를 할 수 있었는가? (클릭) 46. 그 전에 환단고기 내용을 인용한 책이 없다. 이전 기록에 제목이 알려져 있는 경우는 있으나 비교 검증할 내용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클릭)
출처:새로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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