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자료] [환단고기 위서론 반론] 열번째, 환단고기 진서론
열번째, 환단고기 진서론 74. 단군 마휴 시절 조수 현상 검증 ,썰물 기록 조작가능성은 전혀 없다 (클릭) 75. 실존을 기록한 문헌들 (클릭) 76. 열두 나라 이름은 여러 문헌상에 나타난다 (클릭) 77. ‘신시’, ‘청구’를 기록한 문헌들 (클릭) 78. 1만 년 전 농경문화에 대한 의문 『환단고기』에서 찾을 수 있다. (클릭) 79. DNA를 통해본 인류의 기원이나 이동 경로는 『환단고기』를 뒷받침해준다. (클릭) 80. 환인 시절은 『장자』에도 나와 있다 (클릭) 81. 고인돌 유적은 『환단고기』의 사료 가치를 높인다. (클릭) 82. 강원도 고성군 문암리 유물과 유적은 『환단고기』를 뒷받침해준다 (클릭) 83. 『환단고기』에 나오는 낭야성(번한 왕 낭야가 쌓은 성)이 지금도 중국 지명에 남아 있다. (클릭) 84. 고려사에 나온 「신지비사」 일부는 『환단고기』를 통해서 전문이 확인된다. (고조선 삼한관경제 근거 자료) (클릭) 85. 매금이란 신라왕 호칭은 국내사서로는 유일하게 『환단고기』에만 전한다. (클릭) 86. 호태왕 비문 속 광개토태왕 17세손의 비밀과 당의 시어사 가언충이 말한 고구려 900년 유국설이 『환단고기』로 풀린다. (클릭) 87. 고구려의 감숙성 평량시 정복은 『환단고기』에서만 역사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클릭) 88. 덕흥리 고분의 벽화를 통해 고구려가 옛날 유주, 지금의 북경 일대까지 장악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환단고기』를 통해서만 뒷받침이 된다. (클릭) 89. 고구려 요서 10성의 명칭과 위치를 알려주는 『환단고기』 (클릭) 90. 함화 4년 석불비상(石佛碑像)에 나온 연호는 『환단고기』에 실려있다 (클릭) 91. 전란에 의해 『환단고기』류의 고사서古史書들이 소실되었다. (클릭) 92. 환단고기를 위서로 몰아가는 학계의 현실 (클릭) 93. 식민사학은 어떻게 역사학계의 주류로 자리 잡았는가? (클릭) 94. 박성수의 『환단고기』에 대한 견해 (클릭) 95. 임채우의 『환단고기』에 대한 견해 (클릭) 96. 박병섭의 『환단고기』 위서론에 대한 견해 (클릭) 97.『환단고기』가 위작이 아니라는 정재서의 견해 (클릭) 98.『환단고기』가 위작이 아니라는 우대석의 견해 (클릭) 99.『환단고기』가 위작이 아니라는 이덕일의 견해 (클릭) 100. 홍윤기의 『환단고기』 역주본 추천사 (클릭)
출처:새로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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