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순종 『임나일본부는 없다』 저자고대사학계의 거짓말 잔치(30) 이번호부터는 지난 호에 이어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 비판을 세부적으로 20여회 연재하려고 한다. 우리 역사의 뿌리를 잘라내어 고사시키고 자기들의 역사가 우리보다 더 오래되었다고 주장하는 악랄한 논리인데, 조선총독부가 아닌 현재의 우리나라 정부와 고대사학자들이 자발적으로 그것을 추종하여 학생들에게 그대로 가르치고 있으므로 우리 역사와 역사교육을 바로잡는 데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뿌리가 되는 일본 학자들의 주장부터 비판한 후에 우리나라 학자들이 어떻게 그들의 주장을 따르고 있는지를 자세하게 분석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일본학자는 가장 대표적인 쓰다 소키치의 주장부터 본다.
쓰다 소키치의 학문을 가장한 정치적 조작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는 방대한 저서를 남겼는데 『고사기 및 일본서기 연구』와 『일본 상대사 연구』같은 저서가 그의 대표작이다. 그런데 쓰다 소키치의 연구방법은 『삼국사기』 자체를 연구한 것이 아니라 『고사기』 및 『일본서기』 같은 일본 고대 사서를 연구하면서 그 내용을 토대로 『삼국사기』를 비교한 것이었다. 『일본서기』와 『삼국사기』를 비교하여 그 내용이 서로 다르면 『삼국사기』의 내용을 가짜라고 몰아가는 방식을 썼다. 그러나 두 책의 내용이 다를 때 언제나 『일본서기』가 옳고 『삼국사기』는 틀린다는 식의 논리는 한마디로 비학문적인 방법임이 확실한 것이다. 더구나 『일본서기』가 너무나 많은 허위 기사로 넘쳐난다는 사실은 쓰다 자신을 위시하여 오늘날의 일본사 연구자들에게는 상식으로 통하고 있다. 한 마디로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이란 이처럼 조작된 것이며, 학문이란 가면을 쓴 정치적 조작에 불과했다.
최재석 교수의 처 고(故) 최재석 선생은 이러한 쓰다의 잘못된 『삼국사기』 비판에 대해 면밀히 분석하여 그 허구성을 밝혔다. 즉 쓰다가 『삼국사기』를 부인한 내용이 모두 55가지나 되는데 그 중 「신라본기」가 20개, 「백제본기」11개, 「고구려본기」24개라는 것이다. 그 중 몇 가지만 예를 들면 이렇다.
*신라 6촌을 형성한 조선 유민은 중국인이다. 즉, 신라는 중국인을 기초로 건설되었는데, 박혁거세는 중국인 같지 않다. *4~5세기에 일본인이 임나일본부의 영토인 가야를 근거로 하여 신라와 대결한 명백한 사건이 나타나지 않으므로, 신라 상대(上代)의 기록은 허구이다. *신라 상대의 기사는 전부 공허하기 때문에 왜(倭)에 관한 기사는 모두 거짓이다. *백제의 왕명·계보·즉위·사망 등의 연대는 『일본서기』가 『삼국사기』보다 더 정확하다. *고구려 왕 중에 존재가 뚜렷한 이는 주몽·유류왕·대주류왕 밖에 없다. 신라를 형성한 사람들이 중국인이라거나, 왜가 신라에 해적질하러 쳐들어온 내용 위주로 50여 회나 기록한 내용을 거짓이라 매도하는 것은, 임나일본부설을 기정사실화하기 위해 억지를 부린 것이다. 백제의 왕들에 관한 기록이 『일본서기』가 더 정확하다거나 고구려의 왕들을 거의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도 상식으로만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 쓰다 소키치가 『삼국사기』를 대하는 방식은 일본의 사무라이가 농민을 대하는 방식을 연상시킨다. 일본에서는 사무라이가 새 칼을 만들면 잘 드는지 시험하기 위해 지나가는 농민을 베는 경우가 있었다. 이 농민은 아무 잘못도 없이 그때 그 자리를 지나갔다는 이유로 시험 대상이 되어 죽어야 했다. 이 사무라이는 아무런 죄책감도 없었고 또한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쓰다가 우리 3국의 역사를 난도질한 것이 꼭 이런 식이다.
▲ 2012년 동북아역사재단이 미의회조사국에 보낸 106년경 지도(신라 백제 없고 예와 마한만)
▲ 초등 사회 5-1 24쪽 지도(백제 신라는 없다)
문헌조작에 이어 유적ㆍ유물 조작하던 전통이 지금도 쓰다 이후 『삼국사기』 불신론은 오타 아키라(大田亮)를 거쳐 이마니시 류(今西龍)에 이르러 절정에 달한다. 이마니시 류는 도쿄 제국대학 최초의 한국사 전공 박사로서 일제 강점기 초기인 1916년에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고적조사화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한국의 문헌사료는 물론 유적·유물의 조작에 나섰으며, 1925년에는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의 요원이 되어 학술적·행정적으로 한국사를 말살하는데 선봉에 선 자이다. 이 과정에서 이병도 같은 여러 한국인 제자를 길러냈으며 이들이 광복 후 한국 사학계를 장악함으로써 고대사 분야에서 매국사학이 계속 지배하는 기현상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특히, 2012년 미국 의회조사국의 요청에 따라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정리하여 보낸 고대 한중간의 국경선 관련 자료 중 106년 경 지도에 한반도 남부에는 신라와 백제가 아닌 예와 마한이 있었다고 표시하고 있었다. 동년 12월 11일 미국의회조사국(CRS)에서는 이를 책자로 발간하여 상원에 제출했으니, 이제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은 우리가 세계적으로 인정하는 꼴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