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도 부정하고 일본 사람 추종하는 고대사학계
황순종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의 저자
황순종 2017/07/24 [09:26]
고대사학계의 거짓말 잔치(38) 이병도도 부정하고 일본 사람 추종하는 고대사학계
지난 호에서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의 보고서에 고구려의 건국이 17대 소수림왕 때라고 한 것을 언급했다. 그런데 이 보고서는 한·일 양국의 학자가 공동으로 집필한 것이 아니라, 홍익대 교수 김태식이 쓴 것이다. 그러나 물론 자신의 개인적 견해를 쓴 것은 아니며, 노태돈·여호규·임기환 등의 주장을 짜깁기하여 매국사학을 편 것이다. 고구려는 졸지에 4세기 후반에야 국가체제를 완성한 나라로 전락하고 말았다.
매국사학자들은 그동안 미천왕 때인 313년에 막강한 낙랑군을 무너뜨렸다고 주장해 왔다. 막강한 한나라 군현을 무너뜨렸을 때도 고구려는 국가체계를 완성하기 훨씬 전이라는 것이다. 노태돈과 여호규 등은 3국의 왕권이 미약해서 고대국가를 형성하지 못하고 부(部) 체제로 유지되었다는 황당한 주장을 내놓았는데, 그렇다면 고구려의 낙랑군 축출 때 어느 부에서 했는가? 또 그때 부 체제였던 고구려는 후에 수·당나라의 수백 만 군대와 싸워 이길 때인들 고대국가 체제를 완성했겠는가? 왕명에서 벗어난 부가 나가 싸워 이겼을 테지!
이병도 주장도 부정, ‘백제는 고이왕 후기에 초기 고대국가로 성장’백제의 건국에 대해 『한·일역사공동연구보고서』는 뭐라고 썼을까?
“한강 유역 백제의 정세는 어떠했을까? 『삼국사기』「백제본기」에 의하면 고이왕 27년 조에 6좌평 및 16관등제 등의 중앙집권적 관료제를 완비했다고 나오나, 이는 후세 백제인들의 고이왕 중시 관념에 의하여 조작된 것이다. 이 시기 백제의 발전 정도는 좀 더 낮추어 보아야 할 것이다. 유적 분포를 살펴보면 3세기 후반에 백제의 왕성인 서울 강동구의 몽촌토성과 풍납토성이 축조되었으며, 3세기 전반부터 4세기 전반의 시기에 백제 강역이 충남 이북까지 설정되고 그 지역의 일부 주요 세력들에게 백제의 위세품이 건네진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3세기 후반에 해당하는 고이왕 후기에 백제는 한 군현의 간섭과 마한 소국연맹체의 테두리를 벗어나 독자적으로 부 체제를 시행하는 초기 고대국가로 성장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한·일역사 공동연구보고서』, 2005, 59쪽)
매국사학의 교주 이병도가 백제는 고이왕 때 건국되었다고 한 주장을 부정한 것이다. 김태식이 이를 부인한 근거는 노태돈이 “고이왕 때 좌평 제도를 정비했다는 『삼국사기』「백제본기」를 믿을 수 없다.”고 쓴 것을 그대로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매국사학자들은 살아 있는 사람의 논리를 따른다. 죽은 이병도보다는 살아 있는 노태돈이 더 높다. 현실적으로 자신에게 돌아오는 뭔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예외다.
신라는 19대 눌지 마립간 때 초기 고대국가 형성다음으로 신라의 건국에 대해서는 뭐라고 썼을까?
“결국 신라는 4세기 후반 내물이사금 때 고구려의 지원을 받아 초기 고대국가를 이룩할 단서를 잡았으나 고구려의 간섭 속에 이루지 못하고, 5세기 전반 눌지마립간 때에 와서 단위 정치체인 6부를 왕권에 종속적으로 연합하여 초기 고대국가를 형성하였다.” (같은 보고서, 64쪽)
이병도가 17대 내물왕 때 신라가 사실상 건국되었다고 했으나, 이 보고서는 그것이 아니라 19대 눌지왕 때 건국되었다고 더 늦춰 잡은 것이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은 이에 대해 식민사학의 교주 쓰다 소키치의 주장을 그대로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쓰다 소키치의 말은 18대 실성왕 때의 『삼국사기』「신라본기」기사에도 허구로 보이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19대 눌지왕(417~458) 때부터야 사실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5세기 초반 눌지마립간 때 신라가 초기 고대국가가 되었다’는 『한일역사공동연구보고서』의 내용과 정확히 일치한다. 신라가 사실상 5세기에 건국되었다는 황당한 내용이다.” (이덕일,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2009, 237쪽)
『삼국사기』의 기록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고, 식민사학의 교주인 일본인의 주장을 따른 것이다. 그 이유라는 것이 “『삼국사기』 18대 실성왕 때의 기사에도 허구로 보이는 내용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황당한 보고서가 국민 세금으로 쓰였다. 세금으로 비행기 타고 일본으로 왔다갔다 유람이나 하면서 우리 역사 죽이기를 자행한 것이다.
그래도 서울대학교에 입학할 때는 머리 좋은 학생이었을 텐데 서울대학교 국사학과가 어떤 곳이길래 말도 되지 않는 이런 황당한 소리에 자신을 팔아먹는 사람으로 만들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