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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사학실태] ‘매국사학 생존술’의 진수를 보여준 이기백

송화강 2019-05-27 (월) 19:55 6년전 6424  

 

‘매국사학 생존술’의 진수를 보여준 이기백

황순종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의 저자

 

황순종 2017/07/31 [13:05]

 

 

고대사학계의 거짓말 잔치(39) ‘매국사학 생존술’의 진수를 보여준 이기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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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순종 『임나일본부는 없다』 저자
지금까지 약 20회에 걸쳐 고대에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소위 임나일본부설이 허구였음을 논증했으며, 임나일본부설을 조작하기 위해 우리 삼국의 역사를 난도질한 ‘『삼국사기』초기 기록 불신론’을 엄밀히 비판했다. 이제 현명한 독자들은 고대사학계에서 70여 년 동안 한 일이 국민을 기만하여 우리의 역사주권을 팔아넘긴 거짓말 잔치였음을 분명히 알게 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제부터는 고대의 한·일 관계의 진실은 어떠하였는지 보기로 하겠다. 먼저 이기백의 말을 들어보자.

“한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일본은 문화적인 후진국이었고, 따라서 그로부터 받아들여야 할 문화라고는 없었다.…이에 대해서 일본의 입장에서 볼 때 한국은 선진국이요, 그 문화는 선진 문화였다. 그러므로 그것은 항상 동경의 대상이 되어 왔다. 토기의 제작 기술에서부터 그러하였으나, 청동기나 철기의 제작에 이르면 그 욕구는 심각한 것이었다. 도작(稻作) 기술의 전파는 경제적인 발전을 일본에 가져왔다. 기마(騎馬)의 풍습이 전해진 것은 전쟁 수단의 획기적인 변화를 초래하였다. 한자나 불교·유교 같은 것도 한국으로부터 일본이 배워간 것이며 이것이 일본 문화에 끼친 영향은 여기서 자세한 설명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게 한다.…사회와 문화의 발전에 원동력이 되는 모든 중요한 것들이 전해졌다고 함이 오히려 타당할 것이다.”(‘고대 한일 관계의 검토’, 「신동아」, 1990년 8월)

이기백은 고대 한일 두 나라 사이의 문화가 한국의 절대적인 우세 속에서 전개되었다고 설명했다. 오랜만에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그러면서도 조선총독부에서 고대 일본이 한반도 남부에 임나일본부를 설치하기 위해 조작한 ‘삼국사기 불신론’ 또한 여전히 사실로 믿고 있다. 한 사람의 머릿속에 서로 상반된 내용이 상호 충돌 없이 공존하는 신기한 구조다.

국가체제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우리나라가 어떻게 선진국으로서 선진문화를 일본에 전할 수 있을까?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사기술에 불과하다. 대중지 기고문은 학문적 주장과 전혀 다른 것이다.

또한, 『일본서기』의 한ㆍ일 간 전쟁과 외교에 대한 기록을 보면 터무니없는 조작과 왜곡으로 일관하고 있다. 즉 삼국이 일본에 조공했다는 기사가 4~7세기에만 약 170건에 이른다. 같은 기간 신라왕이 항복했다는 기사가 3회나 되며, 일본이 신라·백제는 물론 고구려까지 공격했다는 기사가 10여 건이나 된다. 물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공상의 기록이거나 사실을 거꾸로 기록한 것들이다. 『삼국사기』에는 신라에 왜구(倭寇)가 수없이 쳐들어와 노략질을 한 기록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기백도 왜구와 임나일본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에 걸치는 시기에 있어서의 왜의 침략인데, 광개토대왕릉비문에는 이것을 왜구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때의 왜군의 활동은 일시적인 것이었지만, 그것이 백제와 관계가 있음은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그리고 이 왜군은 고구려군에 의해서 격멸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래 일본 학자들은 『일본서기』의 기록을 그대로 믿어서 임나일본부라고 하는 일본의 식민통치기구가 낙동강 유역의 가야에 설치되어 있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이미 비판되고 있는 바와 같이 날조된 사료에 근거를 둔 그릇된 주장이다.”(위와 같음)

이 대목이 중요하다. 이른바 ‘매국사학 생존술’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기백은 임나일본부설이 날조된 사료에 의한 것으로, 그릇된 주장임을 명백히 했다. 옳은 판단이다. 그렇다면 임나일본부설을 만들기 위해 조작한 『삼국사기』 불신론도 당연히 함께 폐기해야 한다. 그러나 그는 앞에서 보았듯이 ‘백제는 근초고왕 때에나 건국되었다’면서 학문적으로는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불신하는 식민사학을 따른다. 

이기백이 살아남는 방식은 이와 같이 「신동아」 등 대중지에는 식민사학을 비판하는 것처럼 호도하면서, 학술지에는 어려운 말로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부정하는 글을 싣는 것이다. 가히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두 얼굴로 사는 것이 아니겠는가?

2017073147518715.jpg ▲ 이기백의 『한국사신론』

 

 http://www.ngo-news.co.kr/sub_read.html?uid=97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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