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를 위서라고 주장하는 세력 가운데 일부는 “환단고기는 한국이 아니라 일본에서 먼저 출판됐다”고 주장했다. 계연수가 만든 환단고기는 없고 그의 제자라는 이유립이 환단고기를 출판사를 통해 인쇄해 내놓기 전에 일본에서 환단고기가 나왔다면 이유립은 거꾸로 일본판 환단고기를 베껴 한국에서 출판했을 수도 있다.
지금까지 확인한 바로는 한국 출판사에서 출간된 환단고기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1985년 김은수씨의 ‘주해 환단고기’(가나출판사)와 임승국씨가 1986년 5월 정신세계사에서 내놓은 ‘겨레를 밝히는 책들-한단고기’이다. 임씨는 이유립씨와 함게 국사찾기 운동을 한 사람인데, 그는 ‘환단고기’가 아니라 ‘한단고기’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일본인 가지마 노보루가 쓴 ‘실크로드 흥망사’라는 부제가 붙은 ‘환단고기’가 1982년 ‘역사와 현대사’에서 출간된 것으로 확인됐으니 기자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수밖에….
가지마 노보루가 출판한 환단고기가 일본인들이 창작한 것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동북공정에 맞서기 위해, 환단고기를 ‘민족의 시원을 밝혀주는 역사서’ ‘민족의 철학을 밝혀주는 지침서’로 흠모했다면 정말 어리석은 민족이 될 것이다. 다급해진 기자는 환단고기를 출간한 국내 출판사를 하나씩 접촉하며 어떤 경위로 이 책을 내게 됐는지 알아봤다.
가지마 노보루의 환단고기와 국내에서 출간된 환단고기를 비교하는 과정에서 기자는 가지마 노보루의 환단고기 원문(한자)과 국내에서 출간된 환단고기의 원문이 똑같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러한 발견은 한편으로는 가지마 노보루의 환단고기 해석을 한국어로 번역해 출판했다는 오해를 나을 수도 있으므로 기자의 마음은 다급해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위서 시비가 있는 책인데….
조급함은 곧 불안감으로 증폭됐다. 놀랍게도 가지마는 환단고기를 일본 신도(神道)에 접목시켜놓았기 때문이었다. 가지마는 일본 신도의 원류를 찾는 작업의 일환으로 환단고기를 번역했다고 밝혔다. 그는 ‘일본서기는 모략위서(謀略僞書)다’라는 제목을 단 머리글에서 위서 시비가 있는 일본서기의 일부 내용을 부인하며 환단고기 내용을 토대로 새로운 신도 이론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反유교 反조선 기치 내건 개화기 일본
가지마는 어떤 생각을 했기에 일본 신도의 정통성을 바로 세운다며 환단고기를 출간한 것일까. 그 답을 찾아준 이는 서울 청운동에 있는 ‘국학연구소’의 김동환 연구원이다. 일본 신도를 연구하는 김 연구원은 가지마를 ‘의식 있는 일본의 재야사학자’로 정의했다. 김 연구원으로부터 일본 신도의 역사와 가지마 노보루의 역할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도 일본에 가면 불교의 절과 신도의 신사(神社)가 함께 있는 것을 숱하게 볼 수 있다. 일본의 근대화는 조선 퇴계에서 비롯된 성리학적 세계관과의 결별에서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도쿠가와 막부 시절의 일본이 친(親)유교(성리학), 친(親)조선이었다면, 근대화가 시작된 이후의 일본은 반(反)유교 반(反)조선이라 할 수 있다. 근대화를 위해서는 봉건제에서 벗어나야 하므로 일본은 한반도로부터 문화가 들어왔다는 것을 부정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일본에도 고유한 문화가 있었음을 보여줘야 했고, 메이지(明治)시절 일본의 엘리트들은 ‘일본서기(日本書紀)’와 ‘고사기(古事記)’ 등 일본의 고유 자료를 강조했다. 이런 움직임은 성리학을 수용한 막부를 날려버리고 일본적인 것을 상징하는 천황 중심으로 뭉치자는 주장으로 이어져, 천황 숭배가 강화됐다. 일본 천황의 위패는 대개 신궁에 모시니 신도를 부흥시킬 필요가 있었다.
일본은 불교가 들어온 7세기부터 신사와 절을 공존, 융합시키는 ‘신불습합(神佛習合)’의 전통을 이어왔다. 신사와 절이 함께 있고, 가정에는 신도의 제단인 ‘가미다나(神棚)’와 불교의 제단인 ‘불단(佛壇)’이 함께 놓인 것이 바로 신불습합의 전통이다.
신도를 부흥하려 한 일본의 엘리트들은 불교도 봉건적이고 외래적인 것으로 보고 불상과 불경을 훼손하고 거부하는 ‘폐불훼석(廢佛毁釋)’ 운동을 일으켰다. 그러나 불교는 신도만큼 민중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지라 척결할 수 없었다. 그러자 엘리트들은 불교 탄압을 중단하고 신불습합을 인정하며 신도 부흥에 매진했다.
이 시기 일본은 총리대신 밑에 전국의 신궁과 신사를 관리하는 ‘신기국(神機局)’을 뒀다. 신기국은 일본서기와 고서기를 그들이 원하는 대로 조작하는 일을 진두지휘했다. 일본을 한국보다 오래된 전통문화를 가진 나라로 바꾼 것이다. 신기국을 통해 일본은 조선에도 일본의 토속신을 모시는 신궁과 신사를 만들게 했다.

가지마 노보루가 1982년 일본어로 번역 출판한 환단고기와 서문. 표지에는 ‘실크로드 흥망사’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국민은 국가가 결정한 것을 그대로 따르는 민중이다. 이 때문에 군국주의자들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자 했을 때 일본인들은 이를 비판 없이 수용했다. 가지마 노보루는 비판 없는 맹종이 일본인에게 패전과 피폭(被爆)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을 가져왔다고 보았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할 때까지 일본 헌법에는 신기국을 둔다는 조항이 있었다. 그러나 일본을 패망시키고 군정을 실시한 미국은 ‘정치와 종교를 분리시킨다’는 원칙에 따라 새로 만든 헌법(평화헌법)에는 신기국을 둔다는 조항을 넣지 않았다. 이로써 일본 신도는 메이지 시대 이전처럼 자력으로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시절로 되돌아갔다.
이때 ‘신도를 지켜내야 한다’고 생각한 일본인들은 ‘신도의 위기는 비판 없는 일본인의 근성에서 비롯됐다’고 보았다. 이들은 ‘국민’이란 단어에는 ‘무비판’과 ‘무조건 수용’의 뉘앙스가 담겨 있으니 이제 일본인은 국민이기를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본이라는 국가의 인민임은 부정할 수 없어 ‘신국민’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일본의 지식인 가운데 한 명이 가지마 노보루다. 다음은 이유립에게 환단고기를 배운 창해출판사 전형배 사장의 의견이다.
이는 미국과 영국의 관계와 비슷하다. 미국은 영국에서 갈려나온 방계이지만 지금은 영국을 제치고 세계의 중심이 됐다. 그와 마찬가지로 일본인도 동북아의 주무대에서 갈려 나온 방계이지만 지금부터는 동북아의 중심이 돼야 한다며 그 일을 할 주체세력으로 신국민을 설정했다. 한반도와 만주에 살던 형님이 못한 일을 섬에 살던 일본인이 대신해서 하자며, 신국민을 그 일의 중추로 삼은 것이다.
이러한 의지는 중국에 문화적으로 편입돼 있는 조선은 물론이고 아예 중국의 영토가 된 만주를 중국에서 떼어내 일본과 같은 역사를 만들어온 공간으로 삼자는 ‘만선(滿鮮)사관’과 궤를 같이한다. 만주와 조선에 있는 형님이 잃어버린 정신을 일본에 살던 동생이 대신 세우겠다는 것이 만선사관과 신국민에 담긴 의지다. 가지마는 그들의 뿌리를 찾기 위해 환단고기를 번역한 측면이 있다.”
“미국이 영국 대신하듯 일본이 한국을 대신한다”

이유립 선생이 타계한 후인 1987년에 출간된‘대배달민족사’(전5권).
신국민사는 신도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일본 재야 사학자와 재야 국학자들의 모임이 됐다. 가지마는 이 모임의 핵심이기에 ‘환단고기’ 서문에 ‘일본서기와 고서기는 모략위서다’라는 제목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가지마 노보루는 불교와 유교가 들어오기 전 한반도와 일본에는 고유한 종교가 있다고 봤다. 일본에서는 이를 신도라 하고 한국에서는 선도(仙道)라 하는데, 가지마는 일본의 신도와 한국의 선도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을 것으로 여겼다. 중국에서는 유교 외에 신도나 선도와 비슷한 도교(道敎)가 생겼는데, 이 셋이 영향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게 가지마의 생각이다.
‘鬼道 檀君敎’
가지마는 한·중·일 3국의 토속 종교 간의 영향을 분석하는 것이 일본 신도의 이론을 세우고 발전시키는 초석이라고 여겨 한국인보다 먼저 환단고기를 번역 출판한 것이다. 그 후 가지마는 역시 신국민사를 통해 ‘신도이론대계(神道理論大系)’라는 신도 교과서를 펴냈는데, 여기에서 그는 한국의 선도를 연구한 속셈을 분명히 밝혔다.
‘신도이론대계’의 제5장은 ‘신교오천년사(神敎五千年史)’란 제목인데 여기에 ‘귀도 단군교(鬼道 檀君敎)’란 문구가 있다. 가지마는 홍암 나철이 만든 민족종교인 단군교를 귀신 숭배하는 종교로 정의한 것이다. 그리고 단군교는 일본 신도의 영향을 받아 탄생했다고도 규정했다.
고대에는 일본의 신도가 한반도의 선도나 중국의 도교로부터 영향을 받았겠지만 근대에는 거꾸로 일본의 신도가 한국과 중국에 영향을 줬다는 것이 가지마 노보루의 주장이다. 만주와 조선은 일본인의 역사공간이라는 만선사관으로 무장한 일본의 우익을 우리는 어떤 논리로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그리고 중국의 동북공정은 또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