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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變種)된 사대주의를 경계하자!

송화강 2019-05-27 (월) 16:51 6년전 3289  

변종(變種)된 사대주의를 경계하자!

 

변종(變種)된 사대주의를 경계하자!



[단군신화]가 사실과는 동 떨어진 거짓으로 꾸며낸 이야기쯤으로 치부해버리려는 <교원대 송호정 교수>같은 분의 앵무새 같은 말을 듣다보면 오늘날 우리 역사학계엔 그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습니다. 그것이 스스로도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뼈 속 깊이 해독을 끼치는 전향적인 사대주의적 발상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혹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일제식 역사교육으로 단군신화를 축소*은폐하려는 마지막 수단이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몇몇의 열성적인 개신교 신자들이 성서(聖書)의 기록은 사실처럼 인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말문을 닫으면서 우리 민족의 바탕인 단군신화는 허무맹랑한 허구로 의식하려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지 더욱 안타깝습니다. 더욱이 아담과 하와(이브)가 인류의 최초의 인간이자 조상으로 말하면서 단군은 우리의 조상이 될 수 없다는 어이없는 생각들이 매우 위험하고 무섭기조차 하다는 것입니다.


성서에서 아담과 하와에겐 두 아들이 있었던 것으로 나옵니다. 바로 [카인과 아벨]입니다. 과연 <카인>은 하나님께 사랑받는 것을 질투하여 돌로 동생 <아벨>을 쳐서 죽였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홀로 남게된 카인은 과연 누구와 결혼을 하였던 것일까요? 그럼 모든 인간을 카인의 후예로 말하는 기독교에서는 정작 본인들은 카인의 후예가 아니라는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어머니와 근친상간하는 폐륜아가 될 수밖에 없는 성서의 모순이 드러나는 셈이죠.


히브리인들이나 중국인들이 기록문화가 발달했던 이유로 그들의 역사만이 정확하고 확실한 역사이고 기마민족이면서 유목민족이었던 옛날의 우리민족은 꾸며낸 역사만이 존재하는 역사가 없는 민족으로 밖에 생각이 안 됩니까? 참으로 식민지근성만이 살아있는 불쌍하고 가련한 인간들입니다. 비록 오랜 이동과 유목생활로 기록된 역사가 없지만 주변국가의 생생한 역사기록을 통하여 찬란하고 웅대하였던 발자취를 여러 곳에서 분명히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중국의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았던 이유야말로 그들이 멸시(蔑視)하면서 말하는 오랑캐의 무서움과 두려움을 오히려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요? 현재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는 많은 민족 중에는 그때 그들이 오랑캐로 멸시(蔑視)하였던 동*북방 민족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 당시 한족(漢族)들은 4方의 이민족(異民族)을 오랑캐라고 하여 동이(東夷)·서융(西戎)·남만(南蠻)·북적(北狄) 등으로 멸칭(蔑稱)하였습니다. 하지만 한자(漢字)를 자세히 살펴 보십시요. [동이]는 동쪽에 큰활(弓)을 잘 쓰는 이민족을 나타내는 글자고, [서융]은 창을 잘쓰는 이민족을 표현한 글자입니다. 그리고 [남만]은 섬유( )와 말(言)과 벌레(蟲)들이 많은 곳을 가리키는 글자이고 북적은 동물(狸)을 불(火)로 구워먹는 형태의 글자입니다.


우리가 쓰는 한글 즉 훈민정음이 15세기에 만든 글자이고 보니 그 옛날 우리의 역사기록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민족의 이동이 무척 많았고 사냥과 유목을 주로 하였던 시기였기에 글자와 기록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리하여 선사시대부터 고조선과 부여.동예.읍루.선비.옥저.고구려.백제.발해등의 역사기록들이 제대로 남아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럼 중국인의 눈으로 본 동이족(東夷族)에 관한 기록을 보지요.


중국의 정사(正史)중에 하나인 『25사』의 맨 첫 번째 책인 『사기』권1에 황제 헌원(軒轅)과 천자 치우(蚩尤)의 전쟁에 대해서 기록이 나옵니다. 현재 기왓장 도깨비문양으로만 남아있는 서기전 2700년경 배달나라(檀國)의 제14대 자오지 한웅(桓雄)인 바로 치우천왕에 대한 글입니다. 치우(治尤 혹은 蚩尤)는 상고시대(BC2700년경)의 인물로서 이른 바 '천하융사지주(天下戎事之主)'라고 평가되던 전설적 영웅입니다.


『25사』의 맨 첫 번째 책인 『사기』권1에는 중국 한족(漢族)과 이민족간(異民族間)에 최초의 전쟁이 중국의 탁록( 鹿)에서 이루어졌으며 맞상대는 황제(黃帝)와 구려(九黎)의 통치자인 치우(蚩尤)였는데 치우가 황제의 명을 듣지 않으므로 [탁록]의 들에서 싸워 드디어 사로잡아 죽였다고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중국의 역사서인 『산해경』에서는 치우(蚩尤)가 병(兵)을 동원하여 황제(黃帝)를 정벌(征伐)했다고 기록하였습니다.(치우작병벌황제 蚩尤作兵伐黃帝)


이같이 중국의 사서에서도 기록이 엇갈리고 있다는 사실은 내용을 조작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는 증좌입니다. 이에 대하여 중국인 <임혜상>이 저술한 『중국민족사』에서 중국 역사상 최초의 전쟁은 바로 황제와 치우의 탁록戰이며 황제는 한족(漢族)의 영수(領袖)이고 치우(蚩尤)는 묘족(苗族)의 추장(酋長)이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런 치우천왕을 구려(九黎)*묘족(苗族)의 추장(酋長)으로 축소*약화시켜 중국 소수민족의 하나로 한족(漢族)들은 밝히고 싶었던 것입니다. 물론 구려와 묘족은 동이족의 한 갈래입니다. 결코 중국의 한족(漢族)이 아닌 것입니다. 동이족(東夷族)은 바로 우리 조상들을 가리켰던 한족(漢族)들의 멸칭(蔑稱)이었음은 누구나 인정할 것입니다.


<송호정>교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단지 남겨진 기록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허구이니 날조이니 말하는 것 자체가 항상 남의 떡만 커 보인다고 중국의 역사만을 정통의 역사로 믿는 것과 함께 변종 사대주의발상이 아니고 무엇이겠 습니까? 위에서처럼 [춘추필법]에 놀아나 중국에 대한 환상 속에서 한국의 역사를 축소*은폐*왜곡하려는 태도가 마치 양심과 양식이 있으면서 정직하고 순수한 역사학자의 모습인양 가장하는 처신이 정말이지 가증스럽습니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바로 아담과 이브(하와)가 모든 인류의 조상으로 말하는 것과 똑같은 얼빠지고 삐뚤어진 [변종 사대주의]인 것입니다.


분명히 카인은 어머니인 이브(하와)와 결혼하지 않았고 다른 이민족과 혼인하였던 기록들이 성서 속에 나옴으로 해서 아담과 이브는 인류 최초의 조상이 절대로 될 수 없고 이스라엘민족의 조상이었음을 밝혀졌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모순은 덮어두고 [단군]에 대한 기록이 중국역사서에 나오지 않는다고 무시하고 외면하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모습으로 자가당착에 빠지는 셈입니다. 단군은 결코 이름이 아니고 직함일 뿐입니다. 다만 우리민족의 많은 통치자 중에 [단군왕검]이라는 통치자를 하나의 조상으로 상징화하여 우리의 시조로 의식할 뿐인 것이죠.


직접 뵙지 못하였다고 조상이 없다고 할 수 없듯이 우리를 낳아준 최초의 조상을 한자(漢字)로 차명하여 단군왕검(檀君王儉)이었다고 한들 그것이 그토록 잘못된 신화이고 역사인지 의아스럽기만 합니다.

 

끝으로 이러한 얼빠진 몇몇의 역사학자들은 이스라엘인들이 <카인>과 <아벨>이 아닌 또 다른 아담의 아들인 <셋>의 자손이라고 하여 스스로를 하나님의 백성이며 선택받은 민족으로 말하는 것에는 뭐라고 시비조차 걸지 않으면서 우리민족이 천손(天孫)의 자손이라고 말하는 것에는 기겁을 하며 너도 나도 없이 부인하고 떠들어대는 모습이 일제를 통해 굴종의 역사만을 배워오고 이어져 온 역사연구자들의 또다시 변형된 사대주의속에 숨겨진 참모습이 아닐까? 하고 진정으로 묻고 싶습니다.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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