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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흑치국의 흔적이 아닐까요?

송화강 2020-06-05 (금) 20:45 4년전 2737  

ball1.gif 이것은 흑치국의 흔적이 아닐까요?  

이것은 흑치국의 흔적이 아닐까요? 중국 남부지방의 소수민족 따이족의 기사입니다. 본문이 너무길어 좀 잘라 버렸지만 아까운 내용들 이었습니다. 흑치국 씨리즈의 마지막장 으로 올립니다.

 

따이족

 

태족은 중국의 남부지방에 약 1백 2만여 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는(1990년) 55개 소수민족 중 하나이다. 주요 거주지역은 운남성 "西雙版納(서쌍판납)" 태족 자치주와 "德宏(덕굉)" 태족 경파족 자치주 및 耿馬(경마)와 孟連(맹련) 두 개의 자치현에 주로 분포되어있다. 국경지대의 태족지구는 미안마와 라오스, 베트남과 경계를 접한다.

 

태족은 첩첩한 산이 둘러싸고 있는, 하곡 평원지구의 아열대 기후에 속하는 지역에 많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 지역은 사계절이 모두 온화하고 강수량이 많아 산천이 매우 수려하며 토지 역시 비옥하다. 이러한 천혜의 자연환경 덕분에 벼, 사탕수수, 장뇌, 커피, 사이잘 삼, 고무, 셸락, 레몬 등 경제적인 작물들을 많이 생산된다. "西雙版納(서쌍판납)"지역의 특산품인 普 茶(보이차)는 오래 전부터 국내외로 명성이 높았고, 망고, 야자수, 파인애플, 바나나 등의 아열대 과일이 일년 내내 생산된다. 산간지대에는 원시산림들이 온 산을 덮고 있으며 티크, 자란, 두메밤나무 등의 진귀한 수목들이 자라고 있다. 또한 세르펜티나, 키니네 등은 매우 진귀한 약재 중 하나이다. 지하자원으로는 동, 철, 금, 은 등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으며 "西雙版納(서쌍판납)"지역의 원시산림과 길게 이어져 있는 산맥에는 야생 코끼리와 호랑이, 표범, 사슴, 물소, 원숭이, 공작 등의 진귀한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물가나 숲 깊은 곳에서는 공작이 아침햇살, 혹은 저녁 석양을 받으며 아름다운 춤을 추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사람들은 이곳을 "공작의 고향"이라고 찬양하기도 한다.

 

태족의 언어는 "한족어계 장동어족 장태어지"에 속하며 "德宏(덕굉)"방언과 "西雙版納(서쌍판납)"방언, "金平(금평)"방언이 있다. 또한 그들은 그들만의 표음문자가 있지만 표기방식에는 지방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

 

태족은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소수민족 중 하나로 기원전 1세기 중국의 역사서에 이미 그들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다. 漢晉時期에는 "전월", "탄" 등으로 불리어졌고, 唐宋 문헌에는 "金齒(금치)", "黑齒(흑치)", "銀齒(은치)", "繡脚(수각)", "繡面(수면)", "茫蠻(망만)", "白衣(백의)" 등으로 불리어졌다. 元明時期에도 여전히 "金齒(금치)", "白衣(백의)" 등으로 불리어졌으며, "白衣(백의)"는 "百夷(백이)", "白夷(백이)", "伯夷(백이)" 등으로 표기되기도 하였다. 淸代이래로 줄곧 "擺夷(파이)"라고 칭해지다가 해방 후 태족 인민들의 염원을 담아 정식으로 지금의 "태족"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태족은 일찍부터 중국 내륙 지방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는데 기원전 109년(元封 2년), 한무제가 西南지역을 개발, 益州郡(익주군)을 건설할 때, 태족지구는 益州郡(익주군)의 서남 변방 지역이었다. 서기 69년(東漢明帝永平 12년) 東漢에 의해 永昌郡(영창군)이 건립될 시, 태족지구는 永昌郡(영창군)관할 하에 들어간다. 당시, 태족의 수령은 일찍부터 사절의 자격으로 중국황실에 入朝하였는데, 이때 여러 특산물을 바쳤을 뿐만 아니라 악사와 마술사를 함께 데리고 가서 특색있는 공연을 보여주었으므로 東漢황실로부터 크게 환영을 받았다. 東漢의 황제는 그러한 공로를 인정, 태족의 수령에게 "漢大都尉"의 작위를 주었다. 그 이후로 東漢왕조와의 종속관계가 구축되어졌으며, 태족과 한족간의 우호적인 관계가 발전해 나가기 시작한다.

 

8세기부터 13세기까지 태족은 彛族과 白族에게 종속되어지는데, 이 당시 태족은 이미 농업사회로 발전해 나가고 있었다. 9세기 경에 지어진 중국 역사서를 보면 당시 태족은 소와 코끼리를 이용하여 논을 경작하였고, 벼를 대량으로 생산하였으며, 상당한 규모의 수리시설이 있었다고 쓰여져 있다. 수공업 역시 상당한 발전이 보였는데, 목면을 이용하여 옷을 지어 입었고, 금속류의 무기제작과 금, 은을 이용한 장식품 등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金齒(금치)", "銀齒(은치)"라는 호칭 역시 이 당시에 생긴 것이다.

 

(중략)

 

음식은 쌀이 주식이었다. "德宏(덕굉)"지역 태족의 경우 멥쌀을 먹었고, "西雙版納(서쌍판납)"지역의 태족들은 찹쌀을 주로 먹었다. 육류로는 돼지, 소, 닭, 오리 고기 이외에 새우와 같은 수산물도 즐겨 먹었고, 채소로는 배추와 무, 콩류를 먹었다. 술은 태족이 즐겨 마시는 음료 중에 하나이고 檳 (빈랑)나무의 열매도 즐겨 찾는다.  (이하생략)

 

http://www.bc8937.kr/WEFH67489SDFffgtr/read.cgi?board=FREE_BOARD&y_number=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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