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분, 이제까지 말한 것처럼 아버지와 아들 관계에
그토록 오랫동안 혼란과 갈등을 일으키게 한 삼위일체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들려 드릴까요?
이 ‘삼위일체’ 교리는 누가 정립시킨 것일까요? 신의 세계에 도통한 사람이
한 걸까요? 체험을 통해, 하나님에게 인정을 받은 사람이 한 걸까요? 아닙니다. 여기에는 당시 로마 황제였던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압력이
있었습니다. 삼위일체론은 예수가 세상을 떠난 지 삼백여 년이 지난 4세기까지도, 확고하게 정립된 교리가 아니었습니다. 많은 성직자, 평신도들이
예수에게 하나님의 권위를 부여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죠.
본래 삼위일체 논쟁은 <요한복음> 1장 1절에 나오는
‘말씀’에 대한 해석에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아타나시우스(297∼373)는, 그것을 해석할 때, ‘말씀이 육화된 예수’가 본래부터 하나님과 같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리우스(258∼336)는 하나님은 근원적인 존재이며 말씀은
하나님의 ‘창조의 도구’로 만들어졌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예수도 창조된 인간에 지나지 않으며, 오로지 철저한 순종과 자기 희생에 의해
하나님에게서 신성을 부여받게 된 것이라는 거죠. 아타나시우스와 아리우스는, 각기 신 중심[神本主義] 사고와 인간 중심[人本主義] 사고의 대변자
역할을 한 것입니다. 그것은 진리를 보는 중도적 안목을 벗어난 배중률적 논리의 산물입니다. 극단주의적 사고 성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렇듯 아타나시우스는 “예수가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했고, 아리우스는
“아들은 아버지와 동등하게 공존할 수 없다”고 주장하여, 서로 팽팽하게 맞섰습니다. 이러한 갈등이 많은 사제들과 지식인들 사이에 파급되어 대립이
심각해지자,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끼어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종교 고문관인 오시우스를 보내어 진상을 조사하게
했습니다.
오시우스는 조사를 마치고 돌아가, 황제에게 아타나시우스를 지지하라고
했습니다. 그는 만일 “예수가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한다면 기독교 교리가 허물어지고 믿음에 혼돈이 생겨, 교회의 권위가 파괴되어 분열을 일으킬
것이며, 결국 로마제국까지 흔들리게 될 것이라고 판단한 겁니다.
그 당시는 유럽, 이집트, 서남 아시아의 전 지역에 퍼져 있던 미트라
신앙이 쇠퇴하고 그 대신 기독교가 국교화(313)된 시점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기독교 교리의 절대적인 힘을 빌리지 않고는 로마제국을 강력하게
통치할 수 없다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세속적, 정치적 속셈이 들어 있었죠.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두 사람의 논쟁을 불식시키기 위해 니케아에 주교단을
소집했습니다. 그는 친히 회의를 주도하고 토론에도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회의에 참석한 주교들 대부분은 극단의 양 견해를 피하고 중간자적인
입장에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아타나시우스의 주장이 채택되도록 주교들에게 압력을 가했습니다. 결국 단 두 명을 제외하고는
모든 참석자가 아타나시우스에게 표를 던졌죠.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이 니케아의 결정이 신의 감화에 의한 것이라고
자랑했지만,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닙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본래 페르시아의 태양신 미트라를 섬기다가 죽을 때가 되어서야 세례를 받은, 신학적
논리에는 아주 어두운 인물이죠
기독교의 뿌리는 미트라 신앙
기독교 뿌리와 관련된 흥미있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기독교 세력에
밀려난 미트라(Mithras) 신앙과 기독교 사이의 관계에 대한 겁니다. 흔히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이들이 미트라 신앙을 고대의 잡신 신앙이나
원시 신앙으로 매도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 미트라 신앙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면 기독교의 뿌리를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태양신으로 널리 알려진 미트라에 대한 신앙은 약 사천 년 전, 페르시아에서
시작되었죠. 이 미트라 신앙은, 동으로는 인도에서 중국까지 서로는 로마 국경의 전 범위, 즉 스코틀랜드에서 사하라 사막, 스페인에서 흑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습니다. 미트라를 숭배했던 장소들이 영국, 이태리, 루마니아, 독일, 헝가리, 불가리아, 터키, 페르시아,
아르메니아, 시리아, 이스라엘, 그리고 북아프리카에서도 발견됩니다.
미트라 신앙은 로마 제국에서 로마 군인들의 종교가 되었고, 제국
전역에 사원과 성전이 세워집니다. 그들은 미트라에움이라는, 자연적인 동굴 모양을 모방해서 만든 사원에서 의식을 행했는데, 반드시 황소를 제물로
바쳤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가르침이 국교화 되는 과정에서, 이 미트라 신앙의 의식이나 제도, 관습, 교리 등이 없어지지 않고 초기
기독교에 의해 대부분 수용됩니다.
천국과 지옥의 존재, 죽은 자가 부활하는 심판의 마지막 날, 어둠에 대한 빛의 승리를 위하여
현존하는 모든 것들을 파괴하는 최후의 전쟁, 구세주에게 12사도가 있었다는 것, 최후의 만찬, 구세주의 고통과 형벌이 신자를 구원하게 되리라는
교리, 영을 통해 거듭 태어난다는 것, 구세주가 사망한 자 가운데서 일어났으며 앞으로 재림할 것이라는 믿음 같은 것이, 그대로 기독교로 흘러
들어갑니다.
페르시아 신화에 따르면, 미트라신은 처녀한테서 태어났습니다. 그것처럼 예수도 처녀에게서 태어났죠. 또 미트라의 탄생을
경축하는 축제가 12월 25일에 열렸습니다. 이를 기독교에서 그대로 차용하여 예수의 생일로 쓰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두 종교 의식에 모두 세례
의식과 피와 포도주에 의한 성화 의례가 있습니다.
기독교 사제의 명칭인 파더(Father)는 미트라교 사제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이며, 미트라교의 주교는 자신들 직책의 상징으로 미트라 또는 미테르(주교관)를 썼는데, 기독교의 주교들 또한 이러한 미테르를 지금까지 쓰고
있습니다.
미래의 부처 마이트레야, 미래의
구세주 메시아
또 하나 꼭 기억해 둘 만한 사실이 있습니다. 석가모니가 훗날 도솔천의
천주님 미륵(마이트레야)이 새 진리를 가지고 올 것이라고 예고했는데, 그 미륵(마이트레야)이라는 이름이 광명신 미트라에서 왔다는 것입니다. 또한
기독교의 메시아라는 말도 이 미트라에서 왔습니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나 불교에서 말하는 메시아가 같은 어원에서 나왔다는
말입니다.
상제님께서는 “누구든지 한 사람만 오면 각기 저의 스승이라 하여 따르리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런 지구촌 동서의 문화사적인 사실을 통해서, 신의 이름이 다르다고 해서 각기 다른 분이 아니라 결국은 한 분이라는 진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류 보편 의식을
확실하게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