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대륙 동단 고한반도와 연해주 지역에 구석기인이 처음 도착한 것은 100만∼70만 년 전 무렵으로 추정된다. 한반도의 가장 오래된 구석기 유적으로, 평안남도 상원군 흑우리 검은모루 유적(약 100만∼70만 년 전)과 절골 유적(약 93만 년 전), 충북 단양군 도담리 금굴 유적(약 70만 년 전)이 이미 발굴돼 있기 때문에 이를 알 수 있다. 이 밖에 한반도·만주·연해주 일대에서 발굴 보고된 주요 구석기 유적이 50개가 넘는다.
그러나 약 5만3000년 전 구석기 인류에게 대재앙이 닥쳐왔다. 지구 기후의 급격한 변화로 혹한의 ‘최후 빙기’가 닥쳐온 것이다. 태양광선의 95% 이상이 먼지에 가려져 5% 이하만 지구 표면에 닿았다. 이 시기에는 유라시아 대륙의 북위 40도 이북 지역은 긴 겨울에는 모두 얼어붙은 동토(凍土)가 돼 생물이 생존할 수 없었다. 예컨대 우랄 지역의 1월 평균 온도는 영하 30도였다. 수마트라 섬 적도의 평균 온도는 8도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유라시아 대륙 구석기인들은 북위 40도 이남의 생존 가능한, 따뜻한 지역의 동굴을 찾아 이동한 소수 구석기인을 제외하고는 거의 사멸했다.
동아시아에서도 최후 빙기에 북위 40도 이북 지역에서는 인류가 상주(常住)하지 못했다. 물론 여름에는 사냥감을 뒤쫓아 북위 40도 이북에서 사냥하면서 계절적 일시 거주는 했다. 그러나 북위 40도 이북에 집단 상주지를 형성하고 문명을 만들지는 못했다. 동아시아의 북위 40도선은 한반도 신의주와 중국 베이징(北京)을 지나간다. 그러므로 고한반도의 압록강 최하류와 고중국의 베이징 이북은 최후 빙기 약 4만 년 넘게 인류가 상주할 수 없는 얼어붙은 동토였다. 그러므로 한국민족이 시베리아 고(古)아시아족에서 기원했다거나, 톈산산맥 또는 바이칼 호수에서 기원해 내려왔다는 학설은 기후변화를 모르던 시절의 낡은 학설에 불과하다.
동아시아의 북위 40도 이남 지역에서 구석기인들이 혹한을 피해 들어갈 수 있는 동굴이 가장 많은 지역이 바로 산지가 비교적 많은 고한반도였다. 한반도의 자연 동굴 총수의 90% 이상이 석회암 동굴이다. 한반도의 북위 40도 이남의 카르스트(Karst) 지형 석회암 지대는 한반도 중부 차령산맥·소백산맥 일대에 가장 잘 발달해 있다. 이 지역이 고한반도 ‘제1동굴지대’다. 그다음이 멸악산맥 일대의 ‘제2동굴지대’다. 중국에서는 남방 양쯔강 유역과 광시(廣西)성·구이저우(貴州)성·윈난(雲南)성 지역에 가야 석회암 동굴 지대가 나온다. 고한반도는 최후 빙기 겨울철 동토에 연접한 북방한계선의 매우 추운 지역이었다. 그럼에도 동아시아 최대 석회암 동굴 밀집 지역이었기 때문에, 기존 고한반도의 구석기인과 유라시아 대륙 동남부 해안을 따라 남방에서 꾸준히 이동해 올라온 구석기 신인(슬기슬기 사람)이 합쳐져서, 이 기간에도 종착지 고한반도는 세계 인구밀집 지역의 하나가 됐다.
또한 최후 빙기에 서해가 얼어 없어져 고중국 관내와 이어졌고, 대만과 중국 본토와도 이어졌으며, 북위 40도 이북의 연해주는 동토였기 때문에, 고한반도는 전체 유라시아 대륙의 가장 동쪽 끝 유일한 동해안이었다. 최후 빙기에도 구석기 신인이 태양이 솟는 동쪽을 향해 꾸준하게 이동해 들어오다가 바다에 막혀 더 동쪽으로 갈 수 없어서 정착하는 종착지가 고한반도였다. 약 1만2000년 전(일설 1만2500년 전), 인류는 최후 빙기의 대재난 시대를 견뎌내고 새 시대를 열기 시작했다. 지구 주변의 먼지가 걷혀 태양광선이 모두 땅에 닿으면서 기후가 대체로 오늘날처럼 온난해졌다. 지구 기후가 온난화되자 유라시아 대륙의 동토에 인접해 있던 구석기인들은 모두 동굴에서 나와 부근 강변과 해안에 움막을 짓고 새로운 용구로 마제석기(磨製石器)와 토기를 만들어 사냥·어로·식료 채집을 하면서 신석기 시대를 열었다. 구석기인이 신석기인으로 진화하게 된 것이다.
신석기 시대에 인류 최초 문명 탄생의 첫째 조건이 된 것은 신석기인들의 농업경작(agriculture) 시작이었다. 종래 사냥과 채집으로 한 가족을 부양하는 데 수천 에이커의 토지가 필요했던 데 비해, 농경을 시작하면서 약 25에이커의 토지로 충분해졌다. 그러나 농업경작이 어느 곳에서나 가능했던 것은 아니었다. 비옥한 토지, 온난한 기후, 풍부한 물과 함께 야생종(野生種)을 인공적으로 재배하고 육성하려는 의지를 가진 현명한 인간 집단이 필요했다. 농업경작은 신석기인을 특정 지역에 장기간 정착시켰다. 인간의 유랑 시대를 정착 시대로 바꾼 것이다. 농경 마을과 읍락이 형성되고 이것은 대대로 전승됐다. 신석기인의 토지에 결부된 농업경작의 장기 정착은 인류 사이 수천 개의 상호 소통되지 않는 언어족을 만들어 냈다.
사회학적으로 신석기 농업혁명은 완전히 새로운 혁명적 사회변동을 가져왔다. 식량 생산 공급의 잉여 증가는 인구 증가를 결과했다. 잉여 생산물의 축적은 분배 과정에서 갈등과 투쟁을 자주 발생시켰다. 갈등과 투쟁을 해결하기 위해 권력을 위임받은 우두머리와 그 집단이 출현했다. 가족들이 집합해 씨족이 형성되고, 씨족들이 통합해 부족이 형성됐다. 부족들 사이에 갈등과 투쟁이 일어나면, 패배한 부족의 포로는 노예가 되고 승리한 부족장과 그의 무장들은 노예를 소유하는 세습 귀족이 돼, 신분과 계급이 발생했다. 부족장들은 다른 부족들을 통합해 대부족장 또는 군장(chief)이 되고 준(準)국가인 군장사회(chiefdom)를 형성했다. 강력한 군장은 다른 군장을 통합해 고대 국가를 형성했다.
또한 잉여 생산물의 축적은 농업에 통합돼 있던 수공업을 분리시켰고, 농산물과 수공업 제품의 교환을 중심으로 한 상업이 분화됐다. 수공업의 발전으로 강한 생산용구와 무기를 만들기 위해 자연동과 주석의 합금인 청동기를 발명·제조하기 시작했고, 이어서 철기 제조가 시작됐다. 이 최초의 고대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인류는 최초의 문명을 탄생시켰다. 인류 최초 문명 탄생의 첫째 조건이 바로 신석기 농업혁명, 청동기와 철기 제조, 고대 국가의 형성, 신앙의 통일, 언어의 통일과 문자 발명, 초기 과학과 문화예술의 성립 발전 등이었다.
따라서 인류 최초의 문명은 말기 신석기인이 거주한 모든 지역에서 균등하게 탄생한 것이 아니라, 매우 일찍 농업경작이 성립 발전하고, 인구가 밀집되고, 지적 성능을 활용한 과학적 수공업 기술이 성립되고, 고대 국가가 형성된 특정 지역에서 형성되고 탄생했다. 이 최초의 특정 지역 구심점이 유라시아 대륙의 두 곳에 뚜렷이 출현했다. 그 하나가 동방 고한반도의 한강과 대동강 유역에 성립돼 전파되기 시작한 ‘고조선 문명’이다. 다른 하나가 서방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초승달 지역에 성립돼 전파되기 시작한 ‘수메르(메소포타미아)’ 문명이다.
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