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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 [우리문화의 수수께끼] <18> 암각화

송화강 2019-05-22 (수) 14:09 6년전 5440  

[우리문화의 수수께끼] <18> 암각화

 

울산시를 가로지르는 태화강 지류, 대곡천을 거슬러 올라가면 돌병풍에둘러싸인 절경 속에 반구대 암각화가 나타난다. 거기서 상류로 불과 2㎞ 지점엔 천전리 암각화가 자리잡고 있다. 1971년 발견된 이래, 세인들의 각광을 받아왔으나 내력은 정작 풀리지 않고 있다.

 

뭍짐승과 바다동물이 새겨져 흡사 선사시대 동물원에 온듯한 느낌을 주는 반구대 암각화와 기하학적 무늬가 중심인 천전리 암각화는 둘다 우선 조성 시기부터 불투명하다. 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 원삼국 초기, 철기시대 등 설만 무성할 뿐이다. 암각화의 용도에 대해서도 동물수호신에 게 받치는 제사터, 사냥에 관한 교육장소, 신이 강림하는 신성한 성역 등학자마다 견해가 다르다. 분명한 것은 대곡천 일대가 모두 신성구역이었 을 가능성이다. 좁고 길게 뻗은 대곡천 계곡의 고즈녘한 풍경은 지금도 신성스런 분위기에 휩싸이게 한다. 신라시대 화랑들의 수련장이었다는 전설도 전해지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옛부터 선경이었음이 분명하다.

 

반구대의 경우 바다와 뭍동물의 그림이 다수를 차지한다고 하여 동물에만 관심을 두면 당대 사회가 수렵사회였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지모신의 풍요다산과 관련된 남성기의 심볼, 동물을 사육하는 울타리의 정착 생활 흔적 등에 주목할 경우 반구대는 정착 농경생활을 영위한 청동기시 대의 산물로 간주되기도 한다.

 

반구대는 동물그림이 주종인데, 왜 같은 강줄기에 있는 천전리 것은 기하학적 무늬로 일관하고 있을까. 기하무늬들은 신석기시대 무늬토기인과 관련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학자에 따라 보는 견해가 다르다. 부호화된성기 형상으로 해석하는가 하면, 청동기시대 농경생활과 직결된 태양, 곡물의 성장과 숙성, 여성의 성기 등의 상징으로 보기도 한다.

 

암각화는 반구대와 천전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남원 대곡리, 여수 오림동, 남해 평리, 고령 양전동·안화리, 영일 칠포리와 인비리, 영천 보성리, 영주 가흥동, 경주 금장대 등 남부지방에만 10개소 이상에서 암 각화가 발견되었고, 지금도 속속 발견되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더 많은 암각화가 발견됨으로써 상호 비교방식을 통해 암각화가언제 만들어졌는지, 왜 만들었는지 등 갖가지 의문을 풀 수 있는 실마리 가 엿보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추가로 발견된 중요 암각화의 대부분이 반구대 것과 달리 기하학적 문양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 새 암각화들은 공통적 으로 동심원 또는 패형(牌形) 문양을 가장 빈번하게 가지고 있는데, 암각화 전문가 임세권 교수(안동대)는 패형에 대해 사람 얼굴을 형상화한 것 으로 해석하는가 하면, 패형과 청동기 시대 의례도구를 연결시키는 학자 도 있다.

 

개별 문양에 대한 해석은 백가쟁명이지만, 그동안 관심을 두었던 반구 대의 동물형 암각화가 특수 사례이고, 이후에 발견된 암각화들의 기하학 적 문양이 오히려 보편적이라는 데서, 암각화의 외래영향설보다는 `한국 식의 암각화는 기하학적 문양'이라는 자생설이 학계에서 대세를 모으고 있는 중이다.

 

울주땅 반구대에만 동물그림이 집중적으로 새겨져 있는 이유에 대해서 는 아직까지 학계의 정설은 없다. 예나 지금이나 울주군은 감포바닷가의 길목으로 물산이 집결되는 곳이며, 울산만은 동해안에서 고래가 자주 잡 히던 곳이다. 그렇다고 하여 울산만으로부터 무려 20㎞나 떨어진 곳에 고래 그림을 새길 필요가 있었을까. 당시의 고생태, 고지형에 대한 연구성 과가 나온다면 반구대 비밀의 일부나마 들춰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반구대 형식의 동물그림 암각화는 한반도에서 더 이상 발견되지 않고 있지만, 시베리아 등 동북아시아의 다른 지역에서는 반구대와 비슷한 동 물그림 형식의 암각화가 계속 발견되고 있다. 유별나게 동물그림을 선호 한, 반구대 암각화 주인공들은 당대에 한반도의 이방인이었을까.

 

대부분의 암각화가 경북 내륙에 분포하는 것도 의문이다. 단정적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영남지방이 중부기호지방이나 호남지방보다 밀집 되어 있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왜 경상도 지방에 집중적으로 나타났는가.

민족이동 시절에 경상도 방면으로 진출한 일군의 세력이 암각화문화를 지닌 세력이었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분명한 것은 하나 있다. 암각화가 아무데서나 발견되지는 않는다는 것 이다. 암각화는 대체로 대곡천의 계곡, 금장대의 강벽, 칠포리의 바닷가 처럼 물맑고 전망좋은 절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뭔가 신성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선사시대 사람들이 의례를 거행하는 신성구역에 암각화를 새겼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현재 암각화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찾아 많은 학자들은 몽고와 만 주, 시베리아로 향하기 시작했다. 동아시아적 보편성과 한국적 특수성의 가려진 비밀들이 언젠가는 드러날 것을 기대하면서, 동북아시아 전반의 연관성을 비교문화사적으로 추적하기 시작한 것이다.

 

문자가 없던 시절에 선사시대 사람들이 남긴 바위그림들이야말로 가장 생생한 삶의 흔적이 아닐 수 없다. 인류 최초의 예술행위이기도 한 암각 화는 풀리지 않는 선사시대인들의 수수께끼를 지닌채 지금도 속속 새롭게발견되어지길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주강현 민속학자·경희대 강사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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