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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 [우리문화의 수수께끼] <19> 여신과 남신

송화강 2019-05-22 (수) 14:10 6년전 5242  

[우리문화의 수수께끼] <19> 여신과 남신

 

성해방, 성차별 철폐 따위가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된 지 이미 오래다.


신들의 세계에서도 그런 화두가 있었을까. 그리스신화에서 제우스와 아프로디테를 해박하게 논하면서도 정작 우리의 여신과 남신이 어떻게 자리잡아 왔는지를 주목하는 이들은 드물다.

 

우리 민족 최초의 신은 여자였을까, 남자였을까. 단군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남자였을 것 같지만 사실은 여자였다. 단군신화 이전의 먼 옛날, 세상에는 여신 마고할머니가 있었다.

 

마고할머니는 민간에서 구전되어 온 `거인(巨人)'으로 중국신화에서 천지를 창조했다고 하는 `반고'에 해당한다. 현재 학계에서는 단군신화를 역사적 실체로 보면서, 그 이전에 홍수신화나 마고신화 따위가 생성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대세를 이룬다.

 

마고는 위력이 엄청난 여신이었다. 오줌을 누면 강이 되어 넘쳐 흘렀고, 한숨을 쉬면 태풍이 불었다. 남해를 건너다가 물이 깊어 빠졌는데 고작치마자락만 젖었다고도 하며, 치마를 벗어서 널어 놓으니 월출산을 휘감 아 버렸다고도 한다. 막강하기만한 여성의 위력이 아닐 수 없다.

 

마고할머니는 서구 신화학 용어로 지모신(地母神)에 해당하며, 우리식 으로는 신모(神母)다. 천지를 창조한 마고시대까지는 적어도 여신들의 독무대였다. 어머니의 힘이 위대하듯, 신화시대의 초기도 어머니들이 장악 하고 있으니, 여성들이 헤게모니를 잡았던 모계사회의 흔적이다.

 

단군신화에 이르면 여신과 남신이 함께 등장한다. 환인의 아들 환웅이 강림하고, 곰과 범이 사람이 되고자 환웅에게 빈다. 곰은 웅녀가 되었으 며, 웅녀가 환웅과 결혼하여 단군을 낳았다. 동북아시아 전역에서 널리 모시는 토템의 대상이었던 곰도 여자다.

 

통치적 주권을 상징하는 천제의 아들 환웅과 자연의 신인 웅녀의 결합 은 가부장문화와 모계사회의 결합으로 여겨진다. 서울대 조동일 교수(국 어국문학)는 웅녀나 유화가 각기 단군과 주몽의 어머니라는 설정을 신모 신화의 연장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더 이상 여신들의 독무대는 허락되지않는다.

 

본격적인 역사시대가 열리면서 나름의 새로운 신들을 요구하게 된다.


민중들의 세계관에 자리잡게 된 신들은 주로 무속신들이 태반을 차지한다. 서구에서 기독교가 보편화하면서 헬레니즘적 신관이 쇠퇴한 것과는 달 리 우리는 외래종교인 불교가 토착화에 성공함으로써 전통적인 토속신앙 이 근세에 이르기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따라서 마을마다 나름의 마을신 들이 자리잡게 된다. 장승, 당산, 탑, 서낭 따위가 그것이다.

 

그리스신화의 주인공들이 시기, 질투, 음모, 겁탈 따위를 일삼는 데 반해 우리 신화의 주인공들은 조금은 `점잖다'고 할까. 자연과의 친화, 남 녀의 합일 따위로 `정숙'하게 존재하고 있다. 그리스신화를 식민지전쟁과대량살육, 가부장적 전횡 따위의 표본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우 리 신들의 세계는 이야기의 흥미진진함에서는 뒤떨어질지는 몰라도 훨씬 `평화적'이다.

 

마을신들은 대개 남녀를 함께 모신다. 수탑과 암탑, 남근과 여근,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남서낭과 여서낭, 용왕과 용궁부인 식으로 남신과 여신이 음양의 조화를 이룬다. 음양조화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신에서 압권을 이룬다. 당산할머니와 당산할아버지, 골매기할머니와 골매기할아버지 가 그것이다.

 

부부관계의 친화력은 인격신에서도 분명하다. 서해바다 조기잡이의 신 인 임경업 장군 옆에는 `임 장군 마누라', 개성 덕물산의 최영 장군 옆에는 `최영 장군 마누라'가 따라붙는다. 신들의 세계에서 부부관계를 반드 시 고려했음은 무속의 신관이 그만큼 현실적이었다는 반증이며, 음양의 상생조화에서 유래했음직하다.

 

조선시대 제의에서는 남신 우위가 확실하다. 여신보다도 남신이 먼저 상을 받는다. 당할아버지에게 올리고 난 다음에 당할머니에게 젯상을 차 리는 식이다. 신들의 세계에도 당시 사회의 가부장적 권위가 은연중 반영됐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러나 여신들의 권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강릉단오제에서 모시는 대관령국사성황의 여성황은 절대적 힘을 지닌다. 최영 장군이나 임경업 장군의 `마누라'가 별난 힘을 지녀서 간혹 남편이 미처 챙기지 못하는 일도 도와준다는 믿음 때문에 여성들이 지성껏 모신다.

 

우리 주변을 보면 여성에게 신내림이 많고, 굿판을 주재하는 무당도 대부분 여성이고, 무당의 굿판이나 점쟁이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의 대부분도여성이다. 그 까닭은 현실세계에서는 약한 여성이 신들의 세계에서는 `해방'된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이 아닐까.

 

여성이 지닌 임신과 출산의 힘이 세상 창조와 풍요의 다산으로 반영된 마고할머니 신화는 시대가 여러차례 바뀌어도 끊임없이 지속되면서 은연 중에 여성의 힘을 관철해 왔을 뿐만 아니라, 진정한 여성해방의 시대를 약속하는 상징으로 작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주강현 민속학자·경희대 강사

<한겨레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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