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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 노중평의 우리 별 이야기 (3) - 중용, 제사법, 삼신, 샤먼

송화강 2019-05-12 (일) 21:49 6년전 5316  
德敎의 핵심은 '중용지위덕中庸之爲德'


노중평의 우리 별 이야기<9> 마고시대 천체의 운행에서 찾아낸 '德'
단군왕검이 세운 조선, 운삼사성환 사유 발전시켜 덕교를 국가철학화

 
 

마고시대로부터 인간은 천체의 운행을 보면서 하늘이 땅에 베푸는 덕을 찾으려했다.

천체의 운행에서 덕德이 생성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천체의 운행에서 생성되어 나오는 각가지 현상과 변화를 개념화하고 정의하면서 덕의 실체를 찾아내어 덕교德敎라

이름지어 가르쳤다. 

이런 역사가 한국桓國시대로부터 조선시대까지 1000년이나 계속됐다. 

진주소씨의 족보서문인 <동근구보서東槿舊譜序>에 덕교의 실체가 무엇인가를 밝혀 놓았다. 

5548년 전 기묘년 여름에 축융祝融(한인천제의 호)씨 때, 갈천지세葛天之世(문명이 단순하고 소박했을 때)에,

한국의 땅에서 자라는 것들의 근본을 소蘇라고 하였고, 소리를 들어 음악을 만들어 소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알렸다. 

덕교가 백성에게 '풍이風夷의 도道'를 가르치니 소씨의 성씨가 되었다.

옛날의 인군人君이 삼가고 근신하여 덕을 닦고 행동을 어질게 하는 일이 木의 덕에서 나왔다.

목덕木德은 소목蘇木의 덕이다. 소목은 풍도風道의 대본大本이다. 

때문에 부소扶蘇의 희경공僖景公이 일찍이 부소扶蘇는 목근木槿이라고 하였다.

또 화랑花郞의 대본이 목근을 이어 나라의 기초가 된다고 하였다.

적제赤帝(필자 주, 한인천제)의 후손이 목근에서 나와 번성하여 풍風 강姜 희姬 기己 등 여러 성이 되었다. 

적제의 61세 손 태하공太夏公(호는 곤오昆吾 휘諱는 풍豊)께서 본성本姓 기己씨의 근원이 목근에서 비롯하였으므로

목근을 시작하는 蘇씨로 바꾸었다.

이리하여 적제 한인천제 및 적제의 대통을 이은 태하공의 행적이 나라 이름 벌閥이 되어 가히 덕이 후함을 드러내니

빛이 후세에 비추었다. 

이러한 사실史實은 <한국사桓國史>, <조선비사朝鮮秘詞>, <태백사太白史>, <태백유기太白遺記>, <조대기朝代記」 「>,

<변설지공기太辨說誌公記>, <표훈천사表訓天詞>, <도증기道證記>, <신지비사神智秘詞>, <동천록動天錄>,

<지화록地華錄>, <통천록通天錄> 등 여러 사서에 상세하게 기재되어 있다. (<東槿舊譜序>) 

<동근구보서>는 “덕교가 풍도를 숭상한다(德敎尙風道)”고 하였다.

즉 풍도를 숭상하는 것이 덕교라 한 것이다.

풍도란 풍이風夷가 지켜야 할 도리를 말한다. 

풍도는 목덕木德에서 나온다 하였다. 목덕은 목근木槿에서 나온다. 목근이란 천지화天旨花 곧 무궁화無窮花라는 뜻이다.

천지화를 심은 나라를 목국木國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본신화>에 나오는 목국은 한국桓國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13세 단군 흘달 무술 20년(BC1763) 소도를 많이 설치하였고, 천지화를 심었다.

미혼의 자제로 하여금 글을 읽고 활을 쏘는 것을 익히게 하며 이들을 국자랑國子郞이라 부르게 하였다.

국자랑들이 돌아다닐 때 머리에 천지화를 꽂았으므로 사람들은 이들을 천지화랑天旨花郞이라 불렀다. (<단군세기>) 

<동근구보서>에 나오는 목근木槿이 <단군세기>의 기록으로 보아 천지화임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젊은이들이 학문과 무예를 닦으며 그 표시로 천지화를 머리에 꽂고 다녔으므로 풍도의 한 단면을 여기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풍도는 근신하고 삼가 하여 옛날의 人君이 덕을 닦고 어진 행실을 행하는 일(謹按古之人君以修德行仁之事)'

(<동근구보서>) 이라고도 하였다. 

'木德'이 '東夷'의 근원
 
목덕木德이 무엇인데 이토록 갈고 닦으려고 하였을까?

목덕이란 동쪽의 덕이다.

춘분春分의 기氣가 오는 곳의 덕이 목덕이다.

춘분의 기는 춘추전국시대에 나온 <태현경>의 이괘夷卦에서 이夷-춘분의 기, 각수角宿라 하였다.

목덕이 동이東夷의 근원임을 밝힌 것이다. 

한웅천왕이 세운 신시배달나라 시대를 마감하면서 단군왕검이 선포한 조선나라시대가 시작되었다.

풍이風夷가 풍이의 시대를 마감하고 배달족의 동이시대인 목덕의 시대로 넘어간 것이다. 

한인천제가 세운 한국은 마고가 세운 마고지나의 사상인 율여를 팔여의 음으로 나누고, 팔여의 음에서 <천부경>사상을

완성하여 일석삼극一析三極의 삼신사상三神思想을 도출했고, 또한 팔여의 음을 팔풍八風으로 확대하여 풍도風道로

확정하였다.

풍도는 다른 말로 풍류를 의미하였다. 

한웅천왕이 세운 신시배달나라는 일석삼극의 원리를 사유체계로 한 태백진교太白眞敎라는 국가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단군왕검이 세운 조선은 일석삼극의 사유체계에서 운삼사성환運三四成環의 원리(태양이 공전하여 사계절을

완성하는 원리)를 사유체계로 발전시켜 덕교德敎라는 국가철학을 가지게 되었다.

태백진교의 사상은 천부天符이고, 국가체제는 신시神市이고, 의사결정은 화백和白제도이고, 정치는 치덕治德으로 하되

치덕의 결과는 임금이 책임을 지는 책화責禍로 하였다. 

조선은 이를 명덕明德으로 발전시켰다.

덕교의 사상은 덕을 밝히는 明德이었다.

자연이 순환하는 이치인 원형이정元亨利貞에 따르고 사계四季를 숭상하는 검덕儉德(단군왕검의 덕)을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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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진교는 수리數理로 보면 3을 숭상하는 사유체계이다.

하나에서 셋이 나온다는 것으로 삼태극, 음양조화, 삼신사상이

이 안에 있다.

우리는 태백진교를 세상에 펼침으로써 '재세이화在世理化의 도'를

이룩하였다.

조선에서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이론체계가 서기전에 이미

배달나라에서 '재세이화의 도'로 완성되었던 것이다.

재세이화의 도는 태백진교라는 다른 말로 표현이 되었다. 

삼신신앙이 실현되는 사회가 재세이화의 도가 실현되는 사회이고

태백진교를 가르치는 사회이다.

태백진교를 가르치는 사회가 덕교가 실현되는 사회이고 홍익인간을

가르치는 사회이다.

홍익인간을 가르치는 것을 덕교라 하였다.
 
덕교는 수리로 보면 4를 숭상하는 사유체계이다.

1에서 시작한 3이 지구의 궤도인 황도를 공전하면서 완성하는 수가 4이다.

이 4가 원형이정이다.

4가 운행하여 생겨나는 것이 춘하추동 사계이다.

사계는 인간을 이롭게 한다.

원형이정이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다고 해서 홍익인간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이롭게 하는 사회성에서 나오는 홍익인간이 아니라 우주의 원리에서 나오는 이익利益됨으로써 홍익인간

이다. 

자연의 이치대로 따라 살면 그것이 곧 인간을 홍익하게 된다. 따라서 한웅천왕이 세운 신시배달나라를 재세이화의

도를 실현하는 나라로 보고, 단군왕검이 세운 조선을 홍익인간을 실현하는 나라로 구분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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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이정은 사덕四德이다. 사덕이 인간을 고루 이롭게 한다. 사덕은 태양이 태양의 공전궤도인 황도를 운행하면서 생겨나는 결과이다. 우리가 봄(元)에 씨 뿌리면, 싹이 나서 여름(亨)에 성장하고, 가을(利)에 결실을 거두게 된다. 원형이元亨利가 정貞을 낳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성地星인 지구는 이러한 우주의 원리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이 원리에는 균형을 잡아주는 이치가 있다. 지구가 23.5도 동북쪽 간방艮方으로 기울어져 있으면서도 쓰러지지 않는 이유가 균형을 취하게 하는 어떤 힘이 작용하는 데서 오기 때문이다. 지구가 어느 한쪽에 치우쳐서 쓰러지지 않도록 잡아주는 것을 중용中庸이라 한다. 

이렇게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용의 덕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중용中庸이 덕이 된다고 하였다.

中庸之爲德 其至矣乎 民鮮久矣 (중용지위덕 기지의호 민선구의) 
중용의 덕이 됨은 참으로 지극한 것이다. 조선의 백성이 지켜온 지 오래 이다. (<論語> 雍也)

위 문장을 지금까지 '중용의 덕이 됨은 참으로 지극한 것이다.

중용을 능히 행하는 이가 적은지 오래다'라고 해석해 왔다.

그러나 이 해석이 제대로 된 해석인가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民鮮이라는 두 글자 때문에 다시 검토해 보자는 것이다. 조선을 폄하하기를 좋아하는 공자가 조선을 폄하하자는

불순한 의도로 선鮮자를 조선의 의미로 쓰지 않고 적다는 의미로 바꾸어 썼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필자는 '조선의 백성이 지켜 온지 오래 되었다'로 다시 해석하였다.

이렇게 다시 해석하면 중용의 덕이 됨이 조선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된다. 

덕교의 핵심은 中庸之爲德
 
공자가 말한 중용지위덕中庸之爲德은 덕교의 핵심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중용이 덕이 된다는 것”이라는 말에 엄청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논어의 민선民鮮은 당연히 중용의 덕을 실천해 온 조선의 백성이나 조선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단군조선시대엔 중용의 덕을 실천하였다.

<한단고기>의 단군세기에 이를 증명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경자 93년(BC 2241) … 덕교는 점점 위세를 얻고 널리 퍼져나갔다.(德敎漸得偉廣) (<단군세기> 단군왕검조) 

<단군세기>에 단군왕검시대에 덕교가 있었음을 기록한 것이다.

단군왕검시대인 경사 93년(BC2241)에 덕교가 제주도까지 퍼져나갔다는 놀라운 기록이다. 

덕에 관한 기록이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역경>이다.

덕의 뜻을 풀어 원형이정이라고 하고, 원형이정은 <역경>의 건쾌乾卦와 곤쾌坤卦와 둔쾌屯卦의 머리에 올려놓았다. 

<역경>에 나오는 위정중位正中이 바로 중용이다.

여섯 효 중에서 가운데 두 효를 말한다.

초효와 2효는 삼태극의 화火인 적赤이고, 3효와 4효는 삼태극의 토土인 황黃이고, 5효와 6효는 삼태극의 수水인 흑黑이다.

6효 중에서 삼태극의 토인 황이 바로 위중정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황을 가운데의 색으로 보는 것이다. 

공자는 <논어> 옹야편에서 삼태극의 토인 황의 덕를 말하고 있다.

삼태극의 토인 황은 우주만물의 중심에 있어서 음과 양을 조화시킨다.

조화가 바로 덕이다.

단군왕검이 말한 사덕인 원형이정에서는 덕의 주제가 되는 것이 이利이다.

이는 조화의 결실이다.

우주가 운행을 하면서 일구어내는 결실이 바로 이利이다.

이는 바로 익益이 된다.

이를 더하게 되는 것이다.

이가 널리 퍼져 누구에게나 베풀 수 있는 것이 홍익弘益이다.

이렇게 홍익은 덕을 펼치는 것이다.

'조선이 중용을 행함으로써 중용의 덕을 천하에 알린다'는 생각이 단군왕검의 뜻이 아니었을까?

이 단군왕검의 뜻을 뭇 사람이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공자가 왜곡한 것은 아닌지?

덕교를 세상에 널리 펼친 것이 단군왕검의 공적
 
단군왕검의 공적을 들라면 목덕을 체계화하여 세상에 덕교라는 이름으로 널리 펼쳤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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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교에서 천덕天德(주, 태양이 나타내는 천덕天德은 사계절四季節,

달이 나타내는 천덕은 사국四國,

북두칠성이 나타내는 천덕은 천부天符이다)를 가르치는 것을 덕교

德敎라 하였다.

천체가 운행하는 것을 천행天行(주, <周易>乾爲天卦彖曰: 天行健)이라

하는데, 이를 밝히는 것이 천문天文이다.

인류 최초로 천문에서 천부天符(주, <天符經>」 81자로 우주가 생성

하고 운행하는 이치를 밝혔다)의 이치를 밝힌 분이 한웅천왕이다. 

해와 달과 북두칠성이 천도天道(주, 천도는 행성이나 행성이 가는

길이다.

태양의 길은 황도黃道이고, 달의 길은 백도白道이고, 북두칠성이

가는 길은 12辰이다)를 따라 운행함을 천덕이라 한다.

이리하여 천부가 나타나고, 사계절이 나타나고, 사국이 나타난다.

천덕은 해가 사계절을 변화시키고, 달이 사국을 변화시키고, 북

두칠성이 12진을 변화시키는 이치이다. 

태양이 나타내는 천덕을 덕시德施(주, 「周易」乾爲天卦上九象曰德是)라고 한다. 태양이 절기를 만드는 것이 덕시이다.

태양이 절기를 만드는 것은 양덕시陽德施이고, 달이 사덕을 만드는 것은 음덕시陰德施이고, 북두칠성이 12진을 만드는

것을 12진덕시辰德施이다. 
 
즉 우주의 이치인 원형이정元亨利貞을 나타내는 것을 각각 양덕시, 음덕시, 십이진덕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천도의 운행이 반복해서 나타나면 이로 인하여 덕이 나타난다.

덕이 나타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이理가 눈에 보이도록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을 '덕'본다고 한다.

무슨 이유로 천덕이 나타나는 것일까? 이를 「周易」의 계사전繫辭傳에서 육효지동삼극지도六爻之動三極之道라 하였다.

육효가 움직이는 이치가 <천부경>에서 밝힌 일석삼극一析三極의 도道에서 나왔다고 한 것이다.
 
'고사'는 단군왕검이 조선을 선포할 때 처음 행한 제사법
 
매昧(주,<周易> 雷屯卦彖曰天造草昧)를 <명당위禮明堂位>에서 하화족은 동이의 음악이라 하였다.

<석문釋文>에서 매를 북두칠성(斗杓)의 뒤에 있는 별이라 하였다.

북두칠성이 동이의 별이므로 매 또한 동이의 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동이음악의 이름 매는 별에서 나온 것이다.

동이의 역사가 5000년이 넘으므로 서양의 'Music'은 동이의 음악 이름 매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우리 음악의 이름이 매이므로 우리 음악의 이름을 써야 할 것이다. 

우리 문자에 떡을 치는 떡메가 있는데, 이 메자와 매자는 어원이 같다.

상고시대의 우리 음악을 매라고 한 것은 매를 치는 음악이라는 뜻으로 썼던데서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메는 떡판에 놓은 떡을 치는 메이고, 매는 동이의 음악이다. “친다, 두드린다.”는 공통의 의미를 가진 메나 매가 두드리는

소리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어원이 같다고 본다.

동이는 장구 ․ 징 ․ 꽹과리 ․ 북 등을 두드리는 강렬한 음악을 연주한다. 

떡메의 떡은 덕德을 어원으로 가지고 있다.

덕을 나누기 위하여 떡을 만들었다. 제사에 떡을 올렸다가 제사가 끝나면 나누어 먹었다.

떡의 용도가 이러하였다.

오늘날도 제사상에 메로 쳐서 만든 인절미를 올리는 깊은 뜻이 여기에 있다.

따라서 덕매德昧라는 말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덕을 연주하는 음악을 덕매라고 말할 수 있다.

덕매는 조선의 음악이다. 

덕을 봄으로써 비로소 대인大人(주, <周易>乾爲天卦上九象曰大人造)이 된다.

대인은 발이 큰 사람을 말한다.

관자管子는 발이 큰 사람을 발인發人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동이東夷라는 뜻이다.

<산해경>에 대인은 호랑이 두 마리를 부리는 사람으로 기술되어 있다.

그가 사는 나라를 군자君子國이라고 하였다.

산신각山神閣에 군자를 그려 모시고 산신도라고 한다.

군자란 대인이요, 단군왕검의 자손이라는 뜻이다.

<주역>은 군자를 가르치기 위하여 만든 경인데, 군자가 단군왕검의 자손이므로 단군왕검의 가르침인 덕교의 경전이 된다. 

단군왕검은 배달나라의 왕검이다.

중여곤으로부터 국호 조선을 물려받고 우주의 대원칙을 간파하여 이를 천지비쾌天地否卦 상象에서 검덕儉德(단군왕검의 덕)이라고 하였다.

검덕을 실천하는 덕교가 탐랑耽浪(제주도)까지 멀리 퍼져나갔다.(주, <단군세기> 경자 93년(BC2241) 기록)

덕을 쌓는 일을 후덕厚德(주, <周易> 坤爲之卦 彖曰)이라 한다.

덕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을 육덕育德(주, <周易> 山水蒙卦 象曰)이라 한다.

덕을 가르치고 배움으로써 덕교를 실천할 수 있다.

이로써 유교儒敎의 근원이 덕교를 선포한 단군왕검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구덕舊德(주, <周易> 天水訟卦 六三爻 食舊德貞 厲終吉 惑從王事 无成 “묵은 떡을 나누어 먹고 뜻을 함께 하여 곧게

가면 여향이 나중에 길하다.

혹 왕검이 하는 일에 따른다고 해도 이루는 것이 없다.”)은 제사를 지내고 남은 묵은 떡일 것이다.

이 떡을 먹고 태도를 바르게 한다.

떡을 나누어 먹었다면 뜻을 함께 하는 동조자가 있을 것이다.

구덕舊德은 묵은 떡. 직역하면 낡은 덕이 되는데, 덕이면 덕이지 낡은 덕이란 있을 수 없다. 묵은 떡으로 본다.

정월 초하룻날 나누어 먹는 떡국을 덕국德國으로 볼 수 있는데, 덕국은 단군조선을 의미한다. 

묵은 떡을 나누어 먹으면 끝에 가서 여향이 길하다.

여향은 단군왕검의 중시조인 유망의 고향이다.

유망의 집안 식구들에게 길함이 있다고 한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고사告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고사에는 떡과 타래실과 북어를 올린다.

떡은 조선의 덕德을 상징한다. 시루는 나라를 상징한다. 따라서 시루떡은 나라의 덕을 상징하는 것이다.

북어는 곤鯀의 다른 이름인 곤鯤이다. 곤鯤에서 곤昆을 떼어내고 한일一자 밑에 실사糸를 붙인 계系자를 갖다 붙였다.

곤鯀이라는 말이다.

고사상에 북어와 타래실을 올리는 것은 곤鯀을 상징한다. 나라(시루甑)의 덕의 주인이 곤이라는 뜻이다.

이를 기리는 제사가 고사이다.

고사는 단군왕검이 조선을 선포할 때 처음 행한 제사법이었다고 생각된다.

요새 말로 개국開國 기념식과 같은 것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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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사에선 원래 검은 시루를 쓰는데, 검은 시루는 단군왕검이 다스리는 나라를, 떡은 나라의 덕을, 북어는 조선의 백성을, 북어를 감은 실은 개천제 때 나라의 제관으로서 고사를 창안한 중여곤衆艅鯀을 의미한다.


 
 
 
 
 
 
 
 
 
 
 
 
 
 
 
 
 


 
겸손은 인의예지仁義禮智의 근원이 되는 마음자세
 
천지가 인간을 버릴 때, 비로소 단군왕검이 나온다.

검덕儉德(주, <周易> 天地否卦 象曰 天地不交否 君子以儉德辟難 不可榮以祿 “천지가 교통하지 못하는 것이 반역자의

반역의 땅이다.

단군왕검의 자손은 이를 보고 단군왕검이 선포한 덕교로 규범을 삼아 재앙을 맞는다. 복으로써 성하게 할 수 없다.”)

그것이다. 
 
천지가 교통하지 않으면 반역자가 나와서 반역의 땅이 된다.

천지가 교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음과 양의 교류가 막힌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음양이 교통하지 못하므로 온갖 자연재해가 발생한다.

이를 피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주는 것이 검덕이다.

검덕을 실천함으로써 재앙을 피하는 것이다. 명예를 얻는 것은 가당치 않다. 녹이나 받아먹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겸謙은 마음의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자세이다.

겸은 단군왕검에서 비롯한다. 단군왕검의 검이 지산겸의 겸으로 변음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겸이지만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는 겸이 통하지 않는다.

겸을 발전시켜 덕교로 만들어 전파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정벌한다. 

겸은 땅위에 솟은 산의 형세에서 나온다. 그 형상은 삼신산三神山 의 형상인 삼각산三角山의 형상을 취하고 있다.

인간은 이 산을 보고서 마음을 겸허謙虛하게 갖는다.

 왜냐하면 삼신산은 삼신이 계신 산이므로 이 산을 바라보는 인간이 마음을 겸허하게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삼신산은 마고시대에서 시작하여 지금까지 우리에게 전해 온다.

겸손은 인의예지仁義禮智의 근원이 되는 마음자세라고 할 것이다.

유학에서는 근원이 되는 마음을 본체심本體心이라고 하였다.

겸손에서 인의예지가 나온다고 볼 수 있다. 

인의예지가 마음 밖으로 나와 행동으로 나타나게 하는 마음을 유학에서는 발용심發用心이라고 하였다.

겸손은 본체심 안에 있고, 본체심에서 발용심이 생성되므로 겸손은 인의예지의 발용심이므로 인의예지의 근원이

된다고 한 것이다. 

겸자謙字나 검자儉字가 순수한 우리의 소리 값을 한자로 적은 문자였다고 생각해 보면, 겸자는 검자의 변형이라고

볼 수 있다. 

검은 단군왕검이다. 단군왕검의 본체심이 겸이고, 지산겸은 단군왕검의 본체심을 쾌로 나타낸 것이라고 보 수 있다.

겸이 형통하다고 한 것은 단군왕검의 본체심이 온 세상에 두루 통할 것이므로 형통하다고 하였다.

본문에서 군자는 단군왕검이다. 겸이 온 세상에 통용하니 결실이 있다고 한 것이다.






천문에서 발원된 인류 원형종교 '삼신교'


노중평의 우리 별 이야기<10> 태초의 종교는 삼신교·태백진교·덕교
삼신교에 천문학·신학·철학적인 해석을 가한 것이 ‘태백진교’이다

 
 

인류를 교화(敎化)하는 기독교·유교·도교·이슬람교보다 먼저 태어난 종교는 없었을까?

종교는 인간이 신적인 존재임을 자각하기 시작하면서 세상에 나왔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불과 20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종교보다 앞선 종교가 있었을 것으로 추리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부도지>와 <한단고기>에서는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오기 전 우리 조상들에게 삼신교三神敎·태백진교太白眞敎·덕교德敎

등 3가지 종교가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덕교에서 신교神敎로 불리는 무교巫敎가 나왔다.

덕교와 무교를 합쳐서 신교神敎라 했다.

또한 이 모두를 합쳐서 선교仙敎라 하기도 했다.

선교에서 이들 종교가 파생한 것이다.

삼신교에서 신교까지 이어온 역사가 무려 1만4000년이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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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고가계도. 견우는 마고가계에 궁희 소희 마고는 직녀3성에 속해 있다. 

마고가 1만4000년 전 쌍여궁시대에 세상에 나와서 마고지나麻姑之那를 세우고

삼신을 마고지나의 주신主神으로 모셨다.

이때의 삼신은 해· 달· 북두칠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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