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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 노중평의 우리 별 이야기 (6) - 천시원, 자미원

송화강 2019-05-12 (일) 21:50 6년전 6259  
'천시원도'에 반영된 배달역사 1565년


노중평의 우리 별 이야기<21> 하늘에서 내려온 배달족 태백산에 내려와
배달나라 국도가 '靑邱'…발해만에 있던 섬으로 신시를 열던 곳

 
 

한인천제가 세운 한국의 역사 3300년이 중원의 역사무대에서 퇴장하면서 다음에 등장한 역사가 한웅천왕이 세워

1600년을 존속한 배달나라의 역사이다.

배달나라 건국에 대한 기록이 <삼성기전> 상편에 실려 있다. 

“한웅씨가 계속하여 일어나 천신의 뜻을 받들어 백산白山과 흑수黑水 사이에 내려왔다.

자정여정子井女井을 천평天坪에 마련하고 그곳을 靑邱로 정했다.” 
 
“천신의 뜻을 받들어....내려왔다.”는 말은 배달나라를 세운 배달족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말이다.

이 말을 오늘날의 말로 해석하면 외계인이 지구에 와서 정착했다는 말로 볼 수 있다.

백산은 태백산으로 볼 수 있고, 흑수는 흑룡강으로 볼 수 있다.

태백은 태백금성太白金星이 조응하는 산이라는 뜻이고, 흑수는 현무玄武의 기가 내려오는 강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하늘에서 UFO가 내려와 착륙한 곳은 만주의 흑룡강 쪽이 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태백금성이 태양을 호위하는 별이므로 태백금성이 지나가는 길이 동쪽에서 서쪽이 될 것이므로 UFO가 착륙한

방위가 동북간방東北艮方이 된다고 볼 수 있다.

홍산紅山과 적봉赤峰에서 상고시대 유물이 대량으로 발굴되는 점으로 보아서, UFO를 타고 온 배달나라 사람들이

남긴 유물로 볼 수 있다.

자정여정子井女井은 북쪽에 우물을 하나 파고, 남쪽에 우물을 하나 파서 남북의 방위를 정했다는 뜻이다.

이곳을 천평天坪이라 하였다.

천평은 하늘에서 UFO가 내려와 착륙한 곳으로 해석이 되는 말이다.

이곳이 한웅천왕이 세운 배달나라의 국도가 됐다. 

배달나라 국도의 이름을 다시 청구靑邱라 했다.

청구는 <천상열차분야지도> 남방주작칠수南方朱雀七宿 진수軫宿 분야에 속해 있다.

청구는 원래 발해만에 있었던 섬인데, 신시를 열던 곳이다.

배달나라의 배달은 한인천제가 풍주 배곡에 세운 한국의 땅 배곡을 의미한다. 배곡에 세운 나라라는 뜻이다.

배달나라의 하늘 천시원天市垣은 한국의 하늘 태미원의 왼쪽에 자리 잡았다.

한웅천왕시대에 천시원이 조응하는 곳에서 신시神市를 열었는데, 신시는 상고시대에 호혜경제가 이루어지는 시장

이라는 뜻이다.

이 신시의 원형을 하늘에 두고 이를 천시라 했다.

그래서 천시원으로 불리는 우주가 하나 생기게 된 것이다.

◇天市垣: 한웅천왕의 자리인 ‘제좌’를 중심에 두고,좌우에 울타리를 둘렀다.

이 울타리가 천시원이다.

천시원을 지키는 별들은 이상하게도 한웅천왕 당시의 별들이 아니고 거의 1만년 이후에 중원에 생겨난 나라 이름들로 

채워져 있다.

이는 화이가 중원에서 동이를 몰아내고 중원을 찾이하면서,동이의 천시원을 화이의 천시원으로 만들기 위하여

후대에 역사에 나타난 나라 이름으로 바꿔치기 했기 때문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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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나라의 시장과 종교의 역사가 반영된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천시원. 하늘의 시장인 천시와 관련이 있는 별자리, 배달나라의 종교인 태백진교와 관련이 있는 별자리들로 이루어져 있다.



「보천가」에 이들 나라가 기록되어 있으나,조선왕조 세종 때 이순지李純之가 편찬한 「천문류초」에서는 화이가

기록한 중원에 있었던 나라들의 이름을 모두 빼어버렸다.

화이의 붓장난이 심했다고 생각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東海·南海·中山·九河:왼쪽 울타리인 좌천시원에는 아래쪽에서부터 송·남해··동해··오월··중산·구하··

위의 11개의 별이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서 나라로 볼 수 없는 별들이 있으니,송과 연 사이에 있는 ‘남해’,연과 서 사이에 있는 ‘동해’,제와 조 사이에

있는 ‘중산’과 ‘구하’이다.

이들 바다 이름과 산 이름과 강 이름은 땅에서 천시원의 위치가 어디였다는 것을 말해 준다.  

◇河中·下間:천시원의 오른쪽 울타리는 맨 끝부분에 ‘하중’과 ‘하간’이 있다.

‘하중’과 ‘하간’은, ‘구하’를 일하 ․ 이하 ․ 삼하 ․ 사라 ․ 오하 ․ 육하 ․ 칠하 ․ 팔하 ․ 구하로 구분하여 보면,

‘하중’은 ‘오하’에 해당하고, ‘하간’은 ‘각各 하河의 중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오른쪽 울타리를 구성하고 있는 별 9개의 ‘별과 별 사이’로 읽어진다. 

천시원이 있는 자리가 곧 한웅천왕이 세운 배달나라가 있었던 자리이다.

남해는 남지나해를 뜻하고,동해는 한반도 앞바다인 지금의 동해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중산은 중국에 있는 태백산이 아닌가 한다.

이렇게 보면,태백산에서 발원하는 황하와 장강을 포함한 주변의 강들을 모두 포함하여 구하라 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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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산문화 유물. 제사에 쓰는 옥도끼. 제사를 지내는 도중에 잡귀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제상 주변에 세워두었을 의물용儀物用 도끼로 보인다. 옥은 임금을 상징하는 돌이다.



◇帝座:천시원 중심에 있는 ‘제좌’는,하늘에서 천시를 열었을 때,땅인 중원에서 신시를 열었을 때,한웅천왕이

천신에게 제사지냈던 자리로 보인다. 

◇侯·宦者: 제좌의 좌우는 신시기간 중 천왕을 보좌하는 제후와 환관의 자리이다.

하나의 별로 이루어진 제후의 자리는 ‘후’라 하고,4개의 별로 이루어진 환관의 자리는 ‘환자’라 한다.

이미 이 시대에 4인의 환관이 있었다.

◇宗星·宗人·宗正:환자 쪽으로 치우쳐서 앞쪽으로 좌우에 배달나라의 종교인 태백진교 즉 종성과 종친의 어른인

종정과 종친인 종인이 배석한다.

종인은 3개의 별로, 종정은 2개의 별로 이루어졌다.

이들이 맡은 일은 한웅천왕이 사해에 선포한 태백진교太白眞敎를 가르치는 일이었을 것이다.

‘종정’은 태백진교를 펼치는 교단의 최고 어른 2인으로 보이고, ‘종인’은 태백진교의 사제司祭 4인으로 보인다.

신시를 열기 전에 이들이 태백진교의식을 행했다고 볼 수 있다. 

◇市樓:종인과 종정 앞에 6개의 별로 이루어진 ‘시루’가 있다.

‘시루’에서 모두 6사람이 신시를 감찰한다.

‘시루’는 신시에서 각 종족이 행하는 호혜互惠거래가 제대로 이루어지는가를 살폈던 기관으로 볼 수 있다.

◇斛 ․ 斗:제좌의 오른쪽에 있는 환자앞쪽 좌우에 4개의 별로 이루어진 가마니 모양의 ‘곡’과 5개의 별로 이루어진

키 모양의 ‘두’가 있다.

‘곡’은 10말들이 1가마를 뜻하고,‘두’는 10되 들이 1말을 뜻한다.

신시에서 주요 거래품목이 곡식이었음을 나타낸다.

그러니까 한웅천왕시대에 이미 곡물이 주요 거래수단이었음을 보여준다.

이 시대에 곡과 두라는 도량형기를 쓰고 있었다. 

◇列肆:두 앞의 ‘열사’는 용량을 계량할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는 곡식 무더기이다.

우리는 지금도 이러한 현상을 정부의 추곡수매 때 볼 수 있다.농협공판장 앞에 널려있는 곡식 더미를 볼 수 있는 것이다.  

◇車肆:열사 앞쪽의 ‘차사’는 곡식을 싣고 와서 부리고 난 빈 수레의 행렬이다.

2개의 별자리로 이루어져 있는데,이 곳에 곡식을 싣고 와서 부리고 난 빈 수레가 대기하는 공간이다. 

◇女牀:천시원의 뒤쪽에는 별 3개로 이루어진 ‘여상’별자리가 있다.직녀성의 복사판이다.

여상은 여자들이 물을 긷는 우물이다.

여女가 이離의 의미를 갖고 있으므로 이방離方에 해당하여 남쪽에 자리 잡은 우물로 볼 수 있다.

◇天紀:천天을 한웅천왕으로, 기紀를 연호로 본다면, 천기는 배달나라의 연호로 볼 수 있다.

별 하나를 100년으로 본다면,별이 모두 9개 이므로 9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屠肆 ‘도사’는 제사에 쓸 짐승을 잡는 곳이다.

정종과 종인이 태백진교의 제관으로서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쓸 제물을 마련하는 곳이 된다.

왼쪽 울타리에 속한 구하의 아래쪽에 2개의 별로 이루어져 있다. 

◇帛度:‘백도’는 제사 때 삼신에게 바칠 비단을 계량하여 준비하여 두는 곳이다.

도사별자리 오른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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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시원과 자미원 사이에 칠공 여상 관색 천기의 별자리가 있다.

   


◇貫索:천기별자리의 오른쪽에 있는 ‘관색’은 각 종족이 수레에 싣고 온 곡식을 모아두는 곳이다.

신시의 도량형인 곡과 두로 되어서 검사에 통과한 곡식이다.

9개의 별자리로 이루어져 있다.

9개의 별자리는 신시에 참여한 종족이 구한九桓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구한이 참여하여 곡물 거래를 한다는 뜻이다. 

◇七公:7개의 별로 이루어진 ‘칠공’은 화백회의에 참석하는 최고의 판정관이다.

이들이 관색에 임시로 보관할 곡식을 계량한다.






민족 정체성, '마고 로얄패밀리'서 찾아


노중평의 우리 별 이야기<22>단군이 세운 조선의 하늘 '자미원'
한인천제 후손이 천부삼인 못받아 정체성 상실, ‘단군민족주의’에 만취

 

우리 머리 위에 보이는 둥근 하늘이 자미원이다.

자미원은 24시간 북두칠성이 12진辰을 운행하여 궤적軌跡으로 나타내는 우주공간이다.

단군왕검이 세운 조선의 하늘이라는 뜻으로 자미원紫微垣이라 하였다. 

자미원의 자紫자는 파자破字하면 止+匕+糸가 되는데, 칠성님이 12진을 돌다가 멈춰 서서 칠성의 기운을 실처럼 풀어

내리는 곳이라는 뜻이 숨어 있다. 

칠성의 기운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방위를 동북간방東北艮方이라 한다.

오랜 옛날부터 동북간방은 밤에 신들이 활동하는 방위로 알려져 왔다.

그래서 귀신이 나타난다 하여 표귀방表鬼方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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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색으로 반원으로 그려진 부분은 자미원이고, 왼쪽의 청색 울타리는 천시원, 오른쪽의 청색 울타리는 태미원이다. 자미원은 단군왕검이 세운 조선의 하늘, 천시원은 한웅천왕이 세운 배달나라의 하늘, 태미원은 한인천제가 세운 한국의 하늘, 자미원 울타리 외곽에 붙어 있는 직녀織女3성은 마고가 세운 마고지나의 하늘이다.



자미원 외곽에 한인천제의 하늘인 태미원이 있고, 또한 한웅천왕이 세운 배달나라의 하늘인 천시원이 있다.

이들 두 하늘은 묘방卯方과 유방酉方에 나뉘어 바라보고 있다. 자미원과는 삼각구도를 이룬다.

자미원의 중심에는 북극오성이 있다. 이 북극오성을 서양천문에서 작은곰 별자리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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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의 안팎은 북극오성(작은곰별자리)과 자미원을 나타낸다. 북극오성은 동이족의 시조별자리로, 마고, 한웅, 한인, 단군왕검의 순서로 황후, 서자, 천제, 태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북극오성은 자미원(조선을 상징하는 별자리)의 중심에 떠있다.



작은곰별자리는 서양인들이 하늘에 기록한 희랍신화이지만 북극오성은 지구에서 최초로 역사를 시작한 동이족의 선조가

하늘에 기록한 인류 최초의 역사천문기록歷史天文記錄이다.

한인, 한웅, 단군왕검, 웅녀가 별이 되어 나란히 북극오성에 기록된 점으로 보아서 조선의 2세 단군인 부루단군 때 네 분

조상의 신명神明이 북극오성에 올렸을 것으로 본다. 

옛날부터 걸출한 조상의 시호나 명호를 별에 올리는 일을 종교에서 하였다.

단군왕검이 태자성에 올려졌으므로 단군조선의 국교였던 덕교종단德敎宗團에서 북극오성에 올렸을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에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우리나라 재야 사학자들이 통사적인 시각으로 시조역사始祖歷史를 보는 역사 상한선이 4가지로 갈라져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동이족의 시조역사가 마고를 기점으로 시작하는 마고파, 한인을 기점으로 시작하는 한인파, 한웅을 기점으로 시작하는

한웅파, 단군왕검을 기점으로 시작하는 단군왕검파의 넷으로 갈라져 있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재야사학자들이 역사를 보는 시각이 갈라지는 이유가 재야 역사학자들이 천문을 공부하지 않아 천문을

역사로 해석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나게 된 현상으로 본다.

천문을 역사라는 관점에서 공부하고, 이어서 한자를 우리문자라는 관점에서 공부하고 나면, 천문에 올린 우리 조상의

역사가 명확히 우리 역사로 시야에 들어오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가 지나와 일본의 역사를 이기려면 이 방법 이외에 다른 방법이 마땅치 않다고 보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천문을 공부하여 우리의 역사상한선을 14000~12000년 전으로 업대이트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왜 천문을 공부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한 가지 들어 보기로 한다.

천문에서 가장 중요한 별이 북극오성에 속한 서자성庶子星이다.

이 별자리가 동이족의 정체성의 근원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하게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상고시대역사서에서 庶子라는 문자가 한웅천왕이라는 문자 앞에 붙어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서자는 <천상열차분야지도>에도 나타난다.

그것도 북극오성에 우리 시조 로열패밀리의 중심인물로 나타나는 것이다. 

서자는 한웅이 천왕으로 등극하기 전의 관직 이름이다.

그를 한국의 서자부대인庶子部大人이라 하였다.

서자부대인은 지금의 행정안전부장관에 해당하는 관직이다. 

서자성의 좌우에는 황후성과 천제성이 있다.

북극오성에 별 이름을 정할 때 한국시대의 관직 명칭으로 별 이름을 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북극오성의 별자리와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시조의 명칭을 비교해 보면 서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단군신화>에서 웅녀로 불리는 여인이 북극오성에서 황후(지나족은 황후를 후궁으로 폄하

하였다)로 올려져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신화와 천문을 어떻게 역사로 해석할 것인가 하는 해석의 문제가 생겨난다. 

<천부경>의 수리체계가 어떻게 사유체계로 발전해 가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천부경>의 수리체계에서 신화의 사유체계나 천문의 사유체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수자가 일정한 의미를 가진 언어나

문자의 패턴으로 발전해 간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1은 시작이자 양이므로 한국의 천제로 등극한 한인으로, 2는 시작이자 음이므로 황후로 자리매김한 웅녀로, 또한 웅녀는

마고로, 3은 3번째로 배달나라를 세운 서자 한웅으로, 4는 네 번째로 조선을 세운 태자로 대체할 수 있다.

이리하여 하늘의 중심에 동이족 시조 로열패밀리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1은 한인천제로, 2는 황후웅녀, 마고로, 3은 서자한웅천왕으로, 4는 태자 단군왕검으로 확정할 수 있다. 

인간이 집단무의식으로 가지고 있는 수리체계數理體系에서 사유체계思惟體系가 나옴으로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단군신화>와 천문에서 찾아보기로 한다.

우리의 정체성이란 곧 우리의 사유체계가 만들어 낸 본 모습을 의미한다. 

우리의 정체성은 북극오성에서 황후성을 마고로, 서자성을 한웅으로, 천제 성을 한인으로, 태자성을 단군으로 해석하여

우리의 공동조상으로 보았을 때 생긴다.

이들 네 분의 조상에서 어느 한 분이 빠져도 동이족의 정체성은 역사의 단절로 허물어지게 되어 있다.

이러한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을 <단군신화>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동이족 정체성의 근원이 되는 네 분의 조상에 대하여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단군신화>에서 마고를 최고 조상으로 하는 시조 로얄패밀리 구성에 놓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정체성을 찾으려면 이 마고 로얄패밀리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단군신화>를 읽을 때는 신화를 역사로 바꾸어 읽는 방법으로 읽어야 상고시대 역사가 눈으로 들어온다. 

<단군신화>에서 마고는 마늘과 쑥을 먹고 3.7일 만에 여인으로 환생하는 곰으로 등장한다.

곰은 마고의 변음이다.

마고가 웅족熊族 출신이라는 뜻이다.

하늘에서 웅족은 소웅성小熊星(작은곰별자리)과 대웅성大熊星(큰곰별자리, 북두칠성)으로 나타난다.

소웅성은 북극오성이고, 대웅성은 북두칠성이다. 

정체성의 징표로 단군신화에서 제시하는 것이 천부삼인이다.

하늘에서 천부삼인은 해, 달, 북두칠성이다.

이들 별을 돌이나 거울에 새긴 것을 천부삼인이라 하였다. 

천부삼인은 우주의 섭리를 나타내는 신표이다.

마고는 황궁에게 천부삼인을 제시함으로써 정체성을 확고히 하였다.

홍익인간이란 이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황궁은 천부삼인을 유인에게 전했고, 유인은 한인에게 전했다. 한인은 한웅에게 전했다.

우주의 섭리를 깨닫는 것이 <홍익인간>할 수 있는 길임을 가르치기 위하여 그렇게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우리 학자가 <홍익인간>의 연구 논문에서는 이러한 근원적인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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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부삼인. 고열가 단군이 삼성당을 짓고 여무를 당주로 임명하여 삼성제례三聖祭禮를 지내기 시작하면서 명두明斗로 불러왔다. 명두란 해, 달, 북두칠성이라는 뜻이다.


 
천부인은 두 가지 각도에서 해명이 가능하다.

당대적 방증과 후대적 전승에 근거해서 <천부인>의 실체를 이해할 수 있다.

<천부인>의 당대적 증거물은 다뉴세문경, 세형동검, 팔주령 등을 유추해서 이해할 수 있다.

이 연장들이 청동기시대 대표적인 유물이므로 이러한 증거물로 <천부인>을 말할 수 있다.

위 세 가지 증거물은 실용적 연장이 아니라 명확히 의기라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환인은 환웅에게 의기로 <천부인>을 준 것이다.

후대적 민속 전승으로 유사한 방증을 꼽을 수 있으니 무당의 사제전승에서 핵심이 되는 삼명두인 명두, 신칼, 방울 등이

<천부인>의 의기적인 성격을 말해주고 있다. (비교신화적관점에서 본 홍익인간의 이념 김헌선) 

<단군신화>에서 한인이 한웅에게 천부삼인을 주는데, 한인들이 다스렸던 한국의 시대를 9000년에서 6000년 사이로

본다면, 이 시대에 사용할 수 있는 도구는 돌과 나무로 만든 것 이외에 다른 소재는 발명이 안 된 상황이었으므로

청동을 천부삼인의 재료로 쓸 수 없었을 것으로 본다. 

이때에 천부삼인을 전수했다면 돌에 새겨 전수했다고 볼 수 있다.

천부인은 선대에 돌에 새겼든 후대에 청동에 새겼든 <해와 달과 칠성>을 새긴 물건으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영원한 상징이다.

이 상징이 빠진 주의주장은 설사 그것이 아무리 화려하고 의미심장하다고 해도 정체성이 빠진 공허한 주의 주장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조선이 일제에게 패망할 때, 사가들이 정체성이 빠져 있고 출처가 불분명한 <단군민족주의>를 들고 나왔다.

그들이 <단군민족주의>를 제창하면서 근거로 제시한 것이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에 실린 <단군신화>였다.

그러나 단군신화는 아무리 분석하여도 <단군민족주의>가 나올 수 없는 신화이다. 

<단군민족주의>는 조선 후기로 넘어오면서 널리 부활하여 한민족의 민족의식을 제고하는 과제를 주도하게 된다.

가령 한말에 들어 <단군의 자손>의식이 대중적으로 보급되게 된 것과, 단기-단군건국연호가 민족언론을 통하여 사용

되기 시작한 것, 단군교-대종교라는 단군을 국조로 숭앙하는 종교단체가 창립된 것, 단군 자손의 역사적 정체성을

학문적으로 연구하고자 하는 민족주의 사학-국학자들은 한말-일제기를 통하여 단군민족주의 의식을 체계화 하고

보급시킨 주역이었다. (홍익인간이념의 유래와 현대적 의의 정영훈)

이러한 글을 보면 우리 상고사에 대한 충분한 연구 없이 나라가 패망해 가는 데서 오는 절박한 시대적인 요청에 의하여

허겁지겁 단군을 국조로 모시고 <단군민족주의>를 여러 방면에서 거의 동시적으로 제창하게 되었다고 보게 된다. 

단군의 자손으로서 <단군민족>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라면, 한인천제의 자손으로서 <한인민족>과 한웅천왕의 자손

으로서 <한웅민족>도 나올 수 있다는 점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단군>에서 나온 <단기(檀紀)>를 쓸 수 있다면, 한인천제에서 나온 <한인기(桓因紀)>와 한웅천왕에서 나온

<한웅기(桓雄紀)>도 쓸 수 있다.

따라서 <한인민족>과 <한웅민족>을 빼버리고 <단군민족>만을 고집하는 <단군민족주의>는 대단히 폭이 좁은 1/3민족

주의라는 한계에 부디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여기에다 마고를 우리의 시조로 본다면 <단군민족주의>는 1/4민족주의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단군민족주의>가 갖는 또 다른 맹점은 한인천제에서 한웅천왕으로 이어지는 정체성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의 정체성은 <천부삼인>으로 표시되는데, 한인천제를 국조의 지위에서 끌어내리고 단군왕검을 국조의 지위에 올림

으로써 한인천제와 한웅천왕 두 조상을 잃어버리게 됨은 물론이고, 한인천제가 한웅천왕에게 전수한 <천부삼인>이 다시

단군왕검에게 전수 될 수 없게 하여 정체성을 상실하게 한 것이다.

또한 신화분석이 미흡하여 곰에서 분석되는 마고에 대하여 전혀 언급이 없다는 점도 지적해야 할 사항이다.

마고해석이 없는 단군신화해석은 머리가 없는 몸통 해석일 뿐이다.

지금 우리는 마고의 후손임에도 불구하고 천부삼인을 받지 못하여 정체성을 상실했고, 1/3민족주의밖에 아니 되는

<단군민족주의>에 취하여 만취상태에 있다.






'천상열차분야지도'와 삼원의 우주공간


노중평의 우리 별 이야기<24> 태미원·천시원·자미원에 기록된 한민족 역사 
세가지 관점에서 하늘 바라본 우리 선조-'一析三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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