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의 수수께끼] <1> 성 신앙의 비밀
깊고 푸른 바다. 백두대간을 옆으로 끼고 동해바다가 누워 있다. 일찌기미수 허목(1595~1682)은 그의 동해송에서, "출렁댐이 넓고도 아득하니/바다가 움직이고 음산하네"라고 노래하였다. 그 동해바다를 향하여 향나무로 깎은 남자의 성기가 굴비꿰듯새끼줄로 엮여서 출렁이는 물결과 해풍 따라 일년 내내 꺼떡거리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강원도 삼척땅 원덕면 신남리에 있는 해랑당에는 남근을 모셔두어 뭇사람의 발걸음을 잡아끈다. 옛날 옛적에 바다로 일나갔던 처녀가 물에 빠져죽은 뒤에 그의 원귀를 달래려고 남근을 봉안했다.
충청도 제천땅 무도리에 가면 공알바위가 전해온다. 움푹 패인 자연석에여자 공알같이 생긴 난형 바위가 볼록 솟아서 마치 여자의 음부를 연상시키고 있다. 멀리서 돌 세개를 던져 들어가 앉으면 첫 아들을낳는다고 믿는다.
이는 두 마을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삼천리 방방곡곡에 남근과여근들이 펼쳐져 있다. 이름도 다양하다. 여근과 남근, 여근암과 남근암, 성기바위, 처녀바위, 미륵바위, 옥문바위 따위는 고상한 표현에 속한다.
자지바위, 보지바위, 공알바위, 씹섬바위, 암탑과 수탑, 좆바위, 자지방구, 소좆바위, 삐죽바위 등 원초적 성격이 담긴 이름도 수두룩하다.
이쯤되면 우리의 기본상식을 조금 의심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조선시대는 유교적 덕목이 사회도덕의 평가기준이 되는 사회였기에 어떤 `정숙'같은 단어만이 연상된다. 그러나 말이다. 기층민중들의 삶 속에서 `성과반란'의 욕구는 역사책의 상식을 앞서가고 있었다. 게다가 하나의 역설까지 성립되었다. 여아를 낮게 치는 남아선호풍습은 반대로 남근숭배를 더욱 촉진시켰고, 전국은 가히 `폭발적으로 포교되는 남근신앙시대'를 맞이하였다. 가부장적 남아선호사상이 역설적으로 남근숭배의 폭발적 증가를가져온 것이다.
시계바늘을 위로 올려본다. <삼국유사>를 보면, 백제군사 5백명이 여성의 성기를 상징하는 여근곡(지금의 경주 근처)에 진을 쳤다가 모두 죽는대목이 나온다. 치철로왕조 대목에는 배필을 구할 때 음경의 크기가 선택사유가 되었다고 서술된다. 안압지 출토품에 남근이 다수 포함되어 있고, 신라 토우상에서 생생한 성신앙 풍경을 읽어내기란 어렵지 않다.
다시 시기를 내려와 조선후기로 오면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이르기를, 서울지방 곳곳에 부근당이 있는데 이것이 와전되어 부군당이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부근이라 함은 네 벽마다 많은 나무로 만든 음경을만들어 걸으니 음탕하기 이를 데 없다고 하였다. `근'(근)을 `군'(군)으로 바꿀 정도로 성신앙의 흐름을 바꾸고자 했던 지배층의 완강한 의도가개입되었음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러나 민중들은 지배층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그야말로 성을 매개로 한반란의 축제를 곳곳에서 벌인다. 기근이 들거나 역질이 돌아 사람의 형편으로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을 때, 마지막 지점에가서 여성들이 나선다.
진도에 전해지던 도깨비굿이 그러한 것이다. 여성들이 월경서답을 장대에내걸고 양푼을 두드리며 한바탕 시위를 한다. 달거리피를 내보이는 이 성도착적 `시위'의 효과는 만점이라고 한다. 역질을 물고온 귀신도 여성의은밀하게 가려진 그것들이 백주 대낮에 내걸리는 데는 어찌해 볼 도리가없는 것이다.

진도 도깨비굿
디딜방아 액막이라는 것도 있다. 가뭄이 들면 여자들이 동원되어 이웃마을의 디딜방아를 훔쳐온다. 두 갈래로 벌어진 방아를 거꾸로 세워서 길거리에 묻고 깨끗한 과부 속곳이나 여염집 여인들의 월경서답을 걸쳐둔다.
하늘이 보고 까무라치게 놀랄 일이라 비를 퍼붓고야 만단다.
일상생활에서는 억눌린 여성들이 정작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는주역이 되어 역전의 드라마를 연출하는 것이다. 문제는 믿거나 말거나 할이같은 풍습이 특수한 것이 아니라 상당히 보편적이라는 데 있다.
물론 이들 성풍속들은 매우 건강한 방식이었다. 지금껏 남아 있는 풍습으로는 암줄.숫줄 줄다리기를 꼽을 수 있다. 암줄과 숫줄을 꼬아서 비녀목을 지르고 줄을 당긴다. 암줄이 이겨야 풍년이 온다는 믿음 속에는 여성을 생산의 상징물로 간주하는 전통시대의 담론이 담겨 있다. 마을입구에 버젓이 남근이 서있고, 동네처녀들이 늘 그 앞을 나다녀도 부끄러워한다거나 음탕하게 생각하는 사람은없다. 오히려 공개된 사회적 성상징물을 묵인했다.
오늘은 어떤가. 사회적 성상징물은 자본제적 확대재생산과정에서 성의상품화로 낙착되었다. 성은 더욱 빠른 속도로 복잡다단한 고부가가치상품으로 전화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오늘날의 성풍속을 구경하고 그 늪에서허부적거리는 것만으로도 늘 바빠서 지난날의 성풍속을 추스릴 힘이 약하다.
남근과 여근들은 결코 별난 풍습이 아니었다. 그러함에도 우리에게는 우리 나름의 전통시대 성에 관한 담론이 구축되어 있지 못하다. 일생동안<풍속의 사회사>를 써내려 가면서 성의 정치경제학 같은 개속의 현장사진조차도 제대로 지니지 못하고 있다. 세계사적 규모에서의 성신앙과 우리와의 관계, 성과 사회정치적 배경 등 여근과 남근에 관한 담론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합의된 것이 아직 없기에 여전히 수수께끼란 꼬리를 뗄 수 없다. 푹스가 밀방앗간집 처녀를 그리고 있을 때, 우리의 청춘들은 보리밭에서 한폭의 춘화도를 그리고 있었으니, 그 얽힌 낙수들을 엮어서 사회적담론으로 재구축해 보는 것은 우리 시대의 몫이다.
주강현 민속학자 경희대 강사
/////////////
수수께끼적 문화현상에 주목해 우리 문화를 이루는 씨줄과 날줄을 드러내 보일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는 민속학자 주강현(40.경희대 강사)씨가 집필한다.
주씨는 "우리 민족 고유문화의 가려진 비밀들을 이땅의 역사적 맥락에비추어 들춰내는 방식을 통해 우리 것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혀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반적인 문화 소개서나 유적.유물 답사기와 구별되는 새로운 차원의`문화읽기'를 시도하겠다는 주씨는 미궁에 빠져있는 문제나 불가사의한일에 한정하지 않고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한 현상, 학계의 뜨거운 논쟁거리, 일반의 고정관념을 깨는 사건 등으로 시야를 넓혀 수수께끼를 풀어갈계획이라고 밝혔다.
시리즈의 소주제들은 숫자 3을 중시해온 이유와 운주사의 천불천탑 등비밀스런 내용을 비롯해 남근과 여근 숭배, 성황당과 서낭당의 차이, 미륵반가사유상과 백제의 미소, 한국 도깨비의 얼굴, 소도와 솟대의 상관관계 등으로 다양하게 접근한다. 각 주제는 현장답사를 토대로 현지 주민증언 채록, 관련 문헌의 기록 등 생생한 자료들이 동원될 예정이다.
현재 경희대에서 신화와 문학, 민중생활사, 고미술론 등을 강의하고 있는 주씨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선 국문학을 전공했다. 81년 극작가로 데뷔하기도 한 주씨는 85년 민족굿회 창설을 비롯해 88~90년 유홍준 교수(영남대)와 함께 역사문제연구소의 민중생활사연구반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민속학 연구 및 저술활동을 활발하게 펴고 있다.
주요 저서는 <민족과 굿> <노동과 굿>(87년.공저) <북한의 민속학-재래 농법과 농기구>(89년), <역사속의 민중과 민속>(91년), <북한의 민족생활풍습-북한생활풍습 50년사>(94년), <마을로 간 미륵>(95년) 등이 있다.
안영진 기자/한겨레신문
출처: https://kyh77.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