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의 수수께끼] <2> 도깨비의 정체
경주 불국사가 있는 토함산 뒤편, 동해바다 쪽으로 자리잡고 있는 장항사터를 손연칠 화백(동국대 교수)의 안내로 찾아가 본 적이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폐사지에 있는 동.서탑을 둘러보다가참으로 우연히 도깨비 한쌍을 발견하였다. 조선시대까지 전승했던 자물쇠모양을 한 도깨비였다. 조선 후기 자물쇠 중에도 비슷한 것들이 다수 전해지니, 천여년을 사이에 두고 도깨비의 벽사수호신으로서의 성격이 변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아닐까.
도깨비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자연을 극복하는 끝없는 싸움 속에서사람들은 비, 바람, 구름, 번개, 천둥 따위를 관장하는 신을 창조하였고, 자연재해로부터 액운을 막아주는 수호신을 필요로 하였다.
고구려 벽화에 도깨비에 가까운 문양이 선보인 이래로 고대사회는 가히우리식 도깨비의 기초가 닦인 시기로 보인다. 인간의 과학에 대한 예지가낮았던 시절에 형성된 도깨비에 대한 관념들은 조선시대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성호 이익 같은 이는 "자연의 영기가 모여서 도깨비를 만들었다"는 설을 내놓기도 했다.
사람들은 도깨비 와당, 이른바 귀면와(귀면와)에서 어떤 조형적 기준치를 찾는다. 백제의 귀면벽돌, 고구려 와당 따위를 비교하면 삼국시대에활동하던 도깨비들의 일맥상통점이 엿보인다. 와당을 보면 도깨비 기원이악귀를 쫓는 벽사의례의 관념적 소산이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벽사수호의문배그림처럼 문짝에 그려넣은 사찰 도깨비들도 바로 벽사를 상징한다.
창덕궁 금천교의 도깨비처럼 조선시대 궁궐문화라고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도깨비도 후대로 오면서 변화를 겪는다. 귀족문화를 치장하던도깨비들도 어느 시기엔가 근엄성 못지 않게 민중적 성격을 강하게 획득한 것 같다. 역사적 상상력이 허락된다면, 대략 조선 후기에 민중의 의식이 솟구치던 시절, 장승 따위가 나름의 정형성을 획득하고 이른바 민의선진적인 예술이 르네상스라 할 만큼 저변을 획득해 나가던 시절에 도깨비도 새롭게 태어난 것은 아닐까.
우리가 오늘날 도깨비담에서 만나게 되는 천일야화같은 이야기들도 연원은 멀리 고대사회로 이어짐은 분명하나, 지금 같은 기름진 토양을 확보한 것은 역시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가 아닌가 한다. `우리나라 도깨비의시대 구분', 이 매우 어려운 주제는 우리 학계가 풀어야 할 과제다.
이제 후대의 생생한 마을현장으로 떠나가 본다.
조기떼 우는 소리에 밤잠을 못이루었다는 칠산바다 위도에 가면 띠뱃놀이가 전해진다. 풍어제를 파한 칠산어민들이 짚배를 만들어 제물을 싣고도깨비 여럿을 선원으로 태워 보낸다. 망망대해로 나간 이들 도깨비 선원들은 어부들의 뱃일도 도와주고 조기떼도 몰아다준다.
서해안에는 주로 선착장 주변에 살면서 어민들을 도와주는 도깨비참봉, 또는 물참봉이라 불리는 도깨비들이 있는데 형체가 알려진 바는 없다. 제주도에는 집안을 지켜주거나 물고기를 몰아다주는 도깨비영감이 전해진다. 이들 도깨비는 수호신 기능을 잃지 않으면서도 서민적이고 자유분방하다. 장난을 좋아하고, 미녀를 탐하고, 수수팥떡을 좋아하고, 시기와 질투도 있고, 멍청하기도 하다.
생동하는 도깨비의 모습을 더 찾아보기 위해서는 옛이야기 동네로 가야하리라.
도깨비 이야기의 첫 문헌정착이기도 한 <삼국유사> 진평왕조를 보면, 비형이라는 도깨비 두목이 하룻밤 사이에 신원사 도량에 큰 다리를 놓아귀교(귀교)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경북 청송군 부남면 화장동에 `도깨비다리'라는 신비한 돌다리가 있는 것을 보면 지금껏 이어지는 도깨비 전승력의 힘을 알 수 있다.
중국설화집 <유양잡조(유양잡조)>에 도깨비방망이류 설화가 신라의 것으로 소개되어 있는 걸 보면 도깨비방망이 이야기는 최소한 신라시대로소급된다.
도깨비에게는 이름도 많다. 도채비, 돗가비, 독갑이, 도각귀, 귀것, 망량, 영감, 물참봉, 김서방 등으로 말이다. 도깨비는 출발 자체가 수호신이었기에 여느 사악한 잡신과는 성격이 다르다. 허깨비가 몹쓸 환상이라면 도깨비는 쓸 만한 환상이다. `낮도깨비'란 속담이 있듯 정상적인 도깨비라면 밤에 나타나야 한다는 규정성도 지닌다. 그래서 한낮에는 숨어 있다가 해가 지면 어슬렁 걸어나와 길손을 유인한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손때 묻은 빗자루나 부지깽이 등이 도깨비로 변할확률이 높다고 보았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나라판 변신이야기, 어떤 인간 중심주의적 사고가 돋보이는 것 같다.
신이야기, 어떤 인간 중심주의적 사고가 돋보이는 것 같다.
도깨비들이 벌이는 `도깨비잔치'에는 무언가 흥겨운 한판 신명의 흐드러짐이 엿보인다. `도깨비불에 홀린다'는 뜻에는 어두운 시골밤길의 으슥한 산모퉁이나 들판에 떠도는 불빛이 연상된다.
도깨비에 얽힌 이야기는 너무 유명하여 각기 하나의 고전이 되어 있다.
마실을 다녀오다가 도깨비와 밤새워 씨름을 했는데 동틀녘에 보니 애꿎은몽당비를 껴안고 있었다는 이야기, 도깨비한테 돈을 빌려주었더니 매일돈을 갚으러 와서 벼락부자가 되었다든지, 혹부리와 도깨비 방망이를 바꾼 이야기 등 도깨비의 어리석음을 나타내는 이야기는 무수하다.
이들 이야기에 등장하는 도깨비는 결코 잔인하거나 폭력적이지 않다.
그런 면에서 요즈음 일본 도깨비가 설치는 것이 못마땅하기만하다. 본디우리 도깨비는 뿔이 두개다. 반면에 일본 도깨비는 하나다. 그런데 원 세상에, 도깨비동네에까지 왜색이라니!
우리들 20세기 마지막 사람들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도깨비를 도깨비 역사에 추가시켰다. 21세기에는 도깨비들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궁금하기만 하다.
주강현 민속학자.경희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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