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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언어와 문화

스키타이 기마민족 고찰

송화강 2019-05-23 (목) 16:41 6년전 3612  

 

고대 동.서양사를 공부하다보면, 스키타이 기마민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접하게 된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신라. 백제, 고구려중 신라민족은 스키타이 기마민족의 후예거나 적어도 스키타이 기마민족의 문물을 가장 많이 반도에 유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Image:Sillacrown.jpg

 

                        신라 왕관=스키타이 디자인

 

 

에가미 나미오 동경대 교수의 명저 <기마민족 국가>를 보면, 일본민족은 스키타이 기마민족의 후예일 것이라는 이론을 고고학적, 민속풍습적, 언어적 측면에서 제기하고 있다. 스키타이 기마민족이란 대저 어떤 민족이었을까?

 

먼저 스키타이 기마민족과 고대 페르시아 이란계의 사카 족은 같은 민족으로 알려지고 있다.

 

나는 1971년 이란건국 2500주년 기념 정부특사 파견작업시 주무를 담당한 적이 있는데, 그 행사는 이란(페르시아제국)이 2500년 전 Persepolis(현 이란 수도 테헤란으로 부터 약 1천킬로 떨어진 곳)에서 창건되었음을 경축하는 행사에 한국정부 축하사절단을 파견하는 일이었다. 당시 김종필 국무총리를 단장으로 하는 대규모 경축 사절단을 이란 팔레비 왕 정부에 파견한 바 있었다. 김종필 국무총리가 한국 정치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찾은 역사적인 고도 페르세폴리스는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가 창건한 수도로 바로 그곳에 정착한 지배종족이 바로 스키타이 기마민족이었다. 스키타이족은 이래로 역사상 가장 민첩하고 용맹을 떨치는 기마민족으로 유라시아 대륙의 평원을 누비며 동진, 한반도-일본에까지 그 영향을 미친다.

 

사카(스키타이)족은 중앙 아시아 시루다리아 동쪽, 오늘의 우즈베키스탄 페르가나 로부터 카자흐스탄에 걸친 초원지대에 거주하였고, 끝이 뽀족한 모자를 쓴 사카족과 영초(靈草)를 재배하며 살던 사카족등 몇 부족으로 갈려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부는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조에, 중국 역사자료에는 색(塞)족이란 이름으로 등장한다.

 

서양문헌에 스키타이 기마민족에 대하여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고대 그리스의 헤로도토스에 의해서였다.   스키타이족은 기원전 8세기경부터 등장하는 데, 그 의미는 고대 이란어 Ishkuzi(즉, 활 잘쏘는 사람이란 의미)에서 파생하였다. 아래와 같은 단어는 모두 스키타이족(Scythian)과 같은 어원에서 파생한 단어임에 유의할 필요가 있겠다:

 

                        Skuda-Skuza-Sogdian-Saka-Scyths-Sacca-중국의 塞族-인도의 Sikh족

 

 Image:PazyrikHorseman.JPG

                   Pazyrik horsemen-Scythian

 

기원전 2세기경 스키타이족 일파가 남하하여 그리스 계 식민지였던 박트리아(Bactria)를 멸망시키고, 다시 남하하여 현재의 아프가니스탄에서 인도로 진출, 구자라트 같은 작은 국가를 건국한다. 이들 인도 사카족을 일명 인도 스키타이족이라 부른다. 이들 인도 사카족(스키타이족)은 파르티아(Parthia)에 칩입후, AD 1세기전후 쿠샤나 왕조에 의해 정복된다.  이들은 이후 일시 쿠자라트에서 세력을 집결하나, 서기 4-5세기 초경 멸망한다.

 

한참 이후의 일이나, 사카족이란 말은 타림(Tarim)분지의 서부에서 사용되고 있었고, 또한 박트리아(Bactria)멸망후에는 토하라(Tohara)지방에 거주하고 있던 부족들이 사카족의 후예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여기서 아케메네스 조(朝)라고 한것은 기원전 550년 -기원전 330년)이란(페르시아)의 페르세폴리스에서 창건된 왕조를 의미한다. 이들의 종교는 불을 숭상하는 조로아스타교(敎), 설형문자에서 발달한 고대 페르시아 문자를 발명해 사용했다. 당시 공용어는 고대 페르시아 어 및 아람어 였다.

 

일본의 사적지에서 볼수있는 큰 사자 상, <고마 이누>는 실은 페르시아 사카(스키타이 족) 문화에서 유래한 것이었으나 . 일본에는 사자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이를 조선반도에서 건너온 큰 개로 여겨, 고려에서 온 개라는 뜻으로 <고마 이누>라는 말을 부쳤었다,

 

画像:Fuwamitsuharukomainu.jpg


박트리아(Bactria)는 파르티아(Parthia)의 바로 이웃으로 기원전 255년-기원후 139년기간 독립을 유지했던 그리스 인들이 건설한 도시국가였다. 북쪽에 있던 소그디아(,Sogdia)를 식민지로 지배하고 있었다.


한편 중국대륙 중앙에 존재하던 월씨(月氏)족(중국 발음: Yuezi)족은 흉노족에 의하여 제압되, 서쪽으로 도망간 부족은 대월씨(大月氏)족으로 불리워젔고, 중국에 남은 부족은 소월씨(小月氏)로 불리워젔다. 카스피아 해(Caspian See)부근에 존재하던 스키타이족 일족은 조로아스타 교와 미트라 교를 신봉하였고, 그리스 문화를 옹호하였다.이곳이 중국 문헌에서는 안식국(安息國)으로 불리워지고 있는 Parthia였다. 파르티아와 사카족은 서로 이웃한 라이벌 관계였다.

  

Scythia-Parthia_100_BC.png

 

2000년 나는 북위 50도 이상의 북극권 지대의 주정부및 공화국 대표들이 모인 회의에 한국정부 대표(옵서버)자격으로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핀랜드 북극권 산타크로스 마을로 널리 알려진 로바니에미(Rovaniemi)에서였다. 

 

당시 러시아 캄차카 반도 북쪽에 위치한 세계에서 가장 춥다는 사하(또는 사카로 발음)공화국에서 참석한 대통령, 외무장관등과 1주일 이상 계속된 회의기간중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처음 나는 그들을 본 순간 어디 몽골인들인가 생각했다. 

 

친밀해진 그 나라 외무장관에게 뿌리를 물어본바 자기들은 기마유목민족의 후예로 멀리 유라시아 남쪽에서 북으로 북으로 이동해 온 것이 결국 지구상에서 가장 추운지대인 캄찻카 반도의 사하공화국-야쿠티아(Yakutia)까지 오게되었다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막연히 이들이 소위 말하는 돌궐족의 후예구나 하고 생각했으나, 나중에 여려 문헌들을 보고, 스키타이 기마민족에 대하여 관심을 가진이후 재고해 보니 이들은 스키타이 민족의 후예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내가 농담으로 터키 정도에 가서 정착해야 할 기마민족이 어떻게 해서 시베리아 캄찻카 반도의 사하공화국까지 오게되었는가고 묻자, 사하공화국 대통령은 자기가 대통령으로 있는 시베리아 사하공화국에 2000명의 고려인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과 자신이 신동아 건설의 최순형 회장의 초청으로 서울의 63빌딩을 방문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말하면서 사하공화국은 러시아에서도 가장 금광이 많은 나라임으로 한국 기업의 진출을 대환영한다고도 말했었다.

 

그런 말을 듣고 보니, 민족의 이동, 더욱이 인류의 여러종족중 기마민족으로서 그 이동이 가장 빨랐던 스키타이 기마민족이야 말로,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섭렵하며, 적지 않은 문화의 족적을 남겼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 국사학계에서 DNA등을 활용하여 한국민족과 스키타이 기마민족과의 연관성을 더 자세히 연구해 보는 것도 의의 있지않을 까 싶다.

 

소강-Lyc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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