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名醫)설화

병을 잘 고치는 이인(異人)의 능력을 다룬 설화. 내용이 복잡해서 일정한 유형으로 정리하기는 어려우나 주인공이 뛰어난 도술을 지니고 있어 정체를 알 수 없는 병을 쉽게 고친다는 것을 공통점으로 삼고 있다. 초기의 설화에서 병 고치는 의원이 승려로 등장한 것은 불교 전래기의 승려가 그런 임무를 맡았던 데서 유래한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고구려에서 신라로 처음 들어간 승려 묵호자(墨胡子)와 아도(阿道)가 둘 다 궁중에서 공주의 병을 치료하였다고 한다. 역시 ≪삼국유사≫에 전하는 〈밀본최사 密本辰邪〉는 명승이 신이한 방법으로 병을 고친 이야기의 대표적인 예이다.
그런데 밀본은 밀교(密敎)의 승려답게 경을 읽거나 주문을 외우는 데 그치지 않고 지팡이를 던져서 환자에게 붙은 여우를 꺼꾸러뜨리고 신장(神將)이 병을 일으킨 귀신을 잡아 묶게 하기도 하였으니, 무당이 굿을 하는 것과 거의 같은 방법을 사용하였다.
후대의 설화에서는 명의의 성격에 흥미로운 변화가 나타났는데, 문헌설화의 경우 명의가 승려에서 도사로 바뀌고 특별히 도를 닦지 않아도 신통한 재주를 지닌 인물도 나타났다. 도사 전우치(田禹治)가 소리를 지르니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났다는 것은 술법을 익혔기 때문이다.
≪동야휘집≫의 명의설화 중에서 김응립(金應立)이 아주 무식하면서도 환자의 기색만 보고 신기한 치료법을 강구하였다는 것은 하층민의 숨은 능력을 암시하는 의미를 지니는 예이다.
≪이향견문록 里鄕見聞錄≫에다 모아놓은 명의 이야기는 더 많으며, 상당한 정도 사실에 근거를 두고 대단한 재주를 지닌 명의가 신분이 천한 데에 문제가 있다고 하였다. 구전되는 자료는 이보다 더 풍부하고 다채롭다.
인물의 의술 획득과 치료의 성격에 따라 명의로서의 단계가 나타나며, 그에 따라 이야기를 분류해 보면, 가난한 어떤 사람이 집을 떠나 다니다가 우연한 기회에 중병 환자의 병을 고치게 되어 많은 보상을 받는다는 우연의 명의, 일정한 기간 동안 수련한 뒤 의술을 획득하는 수련의 명의, 신이한 구슬을 얻거나 주술적인 의료기의 획득으로 초월적 의술을 가지는 명의, 명의인 형이 고치지 못하는 어머니의 병을 지극한 효성으로 고치는 효자 명의로 요약할 수 있다.
명의설화는 대부분의 인물전설처럼 하나의 일관된 줄거리를 형성하면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인물 일화가 삽화적으로 제시되는데, 해당 명의가 거주한 것으로 알려진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다.
제주도의 월계 진좌수, 서울 지방의 허준(許浚), 함경도의 이경하, 경상도의 유이태(劉爾泰), 진도의 추명의가 지방별 해당 명의로 알려져 있다. 현재 알려져 있는 외국의 설화 유형집에서는 우리 설화와 같은 본격 명의담에 해당하는 유형은 보이지 않는다.
마술적인 치료약을 얻어 병을 고치는 경우(The Types of the Folktale, 610∼613)나 추방된 여인이 복귀하는 수단으로 마술적인 치유력이 나타나고 있어(앞의 책, 712) 동일 유화로 간주하기 어렵다.
명의는 명풍수와 함께 삶의 고난을 타개하고 쉽사리 얻을 수 없는 행운을 가져다주는 이인이다. 겉으로 보아 대수롭지 않은 사람이 지니고 있을 신이한 능력에 대한 기대와 삶의 고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가 복합되어 명의설화가 널리 퍼졌으리라 생각된다.
≪참고문헌≫ 三國遺事, 靑丘野談, 海東野書, 破睡篇, 東野彙輯, 里鄕見聞錄, 李朝漢文短篇集-中-(李佑成·林熒澤, 一潮閣, 1978), 韓國口碑文學大系(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0∼1986), The Types of the Folktale(Thompson,S., Academia Scientiarum Fennica, 1973), 이야기에 나타난 異人의 면모(趙東一, 道와 人間科學, 三一堂, 1981), 名醫譚에 나타난 인간 및 세계 인식(강진옥, 梨鏡崔正如博士頌壽紀念民俗論文論叢, 啓明大學校出版部, 19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