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한민족 기원지/ 바이칼호 주민들
우리와 DNA 비슷…현지인들 “고려 사람들 벼농사 지었다”
우리 민족 기원설은 크게 북방기원설과 남방기원설 그리고 남북방혼융기원설로 나뉜다. 이 중 다수설은 북방기원설. 이 학설은 다시 스키토-시베리아기원설과 오르도스기원설로 나눌 수 있다. 몽골학계도 마찬가지다. 스키토-시베리아기원설은 천산북로의 스텝-타이가로드를 위주로 이루어진 민족의 이동을 전제로 한 것이고, 오르도스설은 그 지역을 넘어서 몽골고원과 고비사막의 연장선상에 있는 황하상류의 만곡부를 중심지로 추정한 것이다.
▲ 중국 만주 벌판의 하늘에서 왼쪽을 보면 거대한 산맥이 병풍처럼 서있다. 남북 길이 1200km,동서쪽이 400km로 한반도 크기만한 대흥안령산맥, 이 산맥은 크기에 비해 높은 봉우리는 없는 편으로 고원의 초원이란 할 수 있다. 기마민족의 후예인 몽골인들에게 있어 말은 생활 그 자체였다.
몽골고원과 시베리아의 물은 대부분 북류해 북극해로 흘러들고 일부는 남류 또는 북동류하면서 태평양으로 흘러든다. 하류로 갈수록 습도가 높아져서 혹한기만 피한다면 생산이 용이하고 생존가능성이 높아진다. 한여름 알타이산의 기온이 영상 30~40도에 이르고 일조시간이 18시간이나 된다. 몽골고원 북쪽으로 눈을 돌리는 한민족의 바이칼호 기원설은 이러한 점을 기반으로 삼는다.
최근의 항공사진은 바이칼호 언저리의 논농사 가능성을 시사해주고 있다. 부이르호 언저리의 주민들은 “고올리(고려) 사람들이 벼농사를 지었다”고 말하고 있다. 수로의 흔적은 아직도 뚜렷하다. 바다처럼 드넓은 고올리 농장터도 있다. 그런가 하면 알타이산맥과 항가이산맥지대에서 벼농사를 지었다는 기록도 있다.
바이칼 호수가 있는 러시아는 ‘모피의 나라’이다. 그리고 그 모피의 주된 공급지는 시베리아다. 그리고 조선, 부여, 고구려, 거란, 발해, 여진과 몽골은 시베리아에 역사적 태반을 두고 있다. 따라서 민족의 뿌리를 밝히려면 ‘모피(fur)의 길’ 추적이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몽골의 수미야바아타르 교수는 부이르호 남쪽에 있는 고올리칸 훈촐로의 상이 동명성왕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고올리족과 고리(槁離; 고려) 그리고 바이칼호 올콘섬을 시조지로 하는 코리족은 호수 동쪽인 눈강상류-할힝골(훌룬부이르) 언저리를 근거지로 삼았던 것 같다. 몽골에선 오래전부터 이들이 같은 계통이라는 견해가 있어왔다. 이에 관한 분석이 이뤄진 것은 1990년대 중반의 일이다. SBS-TV의 ‘몽골리안 루트를 가다’ 제작팀은 데옥시리보핵산(DNA) 검사로 이를 실증했으며 최근 서울대 의대의 이홍규 교수는 이를 좀 더 발전시켜 총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재검증해내고 있다.
DNA방식은 구미의 언어·인류학자들이 추정하고 있던 퉁구스족의 기원지 알타이~바이칼 사이의 사얀산맥 소욘(鮮)족에 관한 연구에도 적용됐다. 그 결과가 2001년 졔례ㅇ코와 마뺘르추크가 쓴 ‘아메리카 원주민의 기원지에 관한 연구’라는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아메리카원주민의 기원지가 사얀산 일대임을 실증하고 있다.
러시아쪽의 연구도 있다. 모스크바대학의 러시아과학원 일반유전학연구소장 자하로프 교수는 데옥시리보핵산 검사 결과 아메리카 원주민과 밀접하게 직관돼 있는 것으로 밝혀진 우리 민족 또한 이 지역에 기원을 두고 있으리라는 가정하에 한국인과 소욘족의 혈연적 관계규명을 위한 검사에 착수했다.
▲ 몽골 알타이 산맥에 있는, 우리의 서낭당과 너무 흡사한 '어워'
‘소욘’은 산이름에서, ‘퉁구스’는 그 산에서 흘러나오는 강이름에서 비롯된 명칭이다. 바이칼호 지대라는 개활지에 진출하려면 상당한 힘이 축적돼야 한다. 이 지역은 해발 4000여미터가 넘는 많은 고산지대로 형성되어 있어 외부의 침입을 받지 않을 수 있었고, 풍족하여 드넓은 땅을 보유해 자급자족할 수 있었다. 학자들은 이 지역에서 힘을 비축하고 인구 수를 늘린 뒤, 바이칼 지역으로 진출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메리카 원주민 기원지도 바이칼 유역
필자는 메이원핑(米文平)이 1980년 초에 발견한 선비족의 석각축문 소재지 ‘가셴둥’이 있는 대흥안령 북부의 Sayan(대선비)산이 ‘이르쿠츠크 북쪽에서 퉁구스하 남쪽 사이에 있다’는 정겸(丁謙)의 기록을 따라 2001년 8월에 현지를 답사, 이를 실증한 바 있다. 그리고 1999년 8월에 대흥안령 북부 오룬춘 기(旗)를 답사하면서 선(鮮)이 순록의 겨울주식인 이끼, 즉 선(蘚)이 나는 산임을 ‘시경(詩經)에 관한 모시주소(毛詩注疏)’ 권23을 통해 입증했다. 또 조선(朝鮮)의 ‘조’자는 ‘아침’을 뜻하는 글자가 아니고 ‘찾음’을 뜻하는 글자임은 흥안령 선비족 기원지와 길림성 조선족 자치구를 현지 조사해 확인했다. 또 ‘중국어사전’을 참고해 ‘조선’이 이끼(蘚)가 나는 새 땅을 찾아다니는 ‘순록 유목민’을 의미하는 시베리아 원주민의 토속어란 사실도 밝혀보았다. 이른바 ‘조선 순록유목민설’이 되는 셈이다.
이끼는 응달에 많이 나고 습기가 많을수록 잘 자라므로 조선겨레들은 서시베리아쪽에서 산지를 따라 태평양이 있는 동쪽으로 ‘이끼의 길’을 찾아 이주해 왔으리라는 추론도 있다. 아울러 몽골의 맥(貊) 고올리 기원설을 선보이며 맥이 ‘Ussurian Racoon Dog’이라는 학명을 갖는 너구리임을 훌룬부이르대학 생물학과의 황학문 교수와 함께 대흥안령 현지 조사를 통해 입증했다. 또 최남선 선생의 ‘불함문화론’에 나오는 불함(不咸)은 ‘밝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붉음’을 뜻하는 것임을 시베리아-몽골-만주 현지 연구를 통해 정리했다.
▲ 몽골 알타이 산맥에 있는 현무암으로 된 석상,제주도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현지 원주민들에게는 타이가의 자작나무와 물가의 버드나무가 신앙의 대상이다. 버드나무 중에도 붉은 가지를 가진 버드나무가 특히 그렇다. 현지 나나이족 언어로 버드나무를 푸르칸(purkan)이라 한다. 이는 그대로 burqan(不咸: 하느님)으로 적을 수 있다.
만주에는 ‘보드마마’굿이라는 무당굿 메뉴가 있는데 이는 ‘버들어머니’굿과 같은 것으로 ‘버들꽃’을 의미하는 주몽의 어머니 하백녀 유화(柳花)에 대한 모태회귀신앙과 접맥된다는 논문이 1993년에 조선족 동포 최희수 교수에 의해 발표된 바 있다.
‘길림성야생경제식물지’(1961년)에 보면 조선버드나무(朝鮮柳)의 별칭이 붉은 버드나무(紅柳)다. 물가에서 자라는 버드나무는 분포밀도로 보아 전 몽골리안루트-스텝로드에 걸쳐 퍼졌을 가능성이 있다.
‘박혁거세’란 이름도 ‘붉을 혁(赫)’자를 사용해 ‘혁거세’라 한 것이나 ‘弗矩內’라 이두식으로 음독한 것으로 보아 ‘밝음’이기보다는 ‘붉음’을 상징색으로 하는 제사장 종족을 지칭하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올 유월 우리의 잠든 영혼을 강타한 ‘붉은 악마’ 신드롬을, 적어도 이 정도의 역사적 안목은 가지고 천착해 봐야 할 것 같다.
저명한 학자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총,균,쇠’라는 불후의 명저에서 “아프리카나 아메리카 대륙이 남북 축으로 돼 있는 데 대해 유라시아 대륙은 동서 축으로 퍼져 등온대(等溫帶)를 이루기 때문에 사람과 기술의 이전이 용이했다”며 “따라서 유라시아 대륙인이 다른 대륙을 지배하는 주체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필자는 이에 다시 몽골리안 루트로 접맥되는 유목민의 기동성이 가세하는 중심축을 이루는 곳이 유라시아 대륙임을 강조한다. 더구나 야생식물의 작물화와 야생동물의 가축화가 맨먼저 가장 다양하고 풍부하게 이루어진 곳이 서아시아다.
●“유라시아인, 이동 쉬워 다른 대륙 지배”
유라시아의 거대한 섬이라 할 중국은 히말라야산맥-천산산맥 등과 타크라마칸사막 등으로 그 서부와 북부가 가로막혀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에서 고립되었던 데에 대해, 칭기즈칸의 안방처럼 스텝과 타이가로 탁 트인 천산북로-스텝로드는 사람과 기술의 이동이 자유로워 그 언저리들에 또 다른 선진 문화권을 이룰 수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런 배경 위에서 조악한 유목적 생산환경에 도전·응전하며 적응해 오는 역사를 펼치다 보니 그 부산물로 뛰어난 군사력이 생겨나서 북방민족이 중원의 안보를 담보하는 역할을 해내며 농업생산 환경을 보장하는 정치적 경영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베이징은 바로 이런 스텝로드와 중원농경지대의 농산물 집산지. 한반도와 만주세력이 되새김질해 키워낸 수렵-유목 민족들의 중원 경영역량이 발산돼 나오는 길이 만나는 곳이다. 실로 북방민족의 중원 정복왕조 창업 및 수성 능력은 흑룡강 북쪽으로 만주보다 훨씬 더 드넓은 대만주로 이어지는 거대하고 비옥한 지역을 기반 삼아 스텝로드로부터 주입되는 수준 높은 인력과 물력을 포용해 생겨난 것이라 하겠다.
여기서 건조지대란 고원지대라 바람을 많이 맞아 습기가 적어진 스텝-준 사막지대를 주로 일컫는데 그런 생태환경에서 빚어진 인간들의 한 부류가 북방민족이고 그들이 한민족의 주류를 이루었다. 그들은 북유럽에서 티베트고원으로 이어지는 지대에도 진출하고, 북극해를 건너 툰드라-타이가-스텝으로 이루어진 북서부 아메리카에도 진출해 간 것이었다.
(주채혁 강원대 사학과 교수)
자료출처 : 주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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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세계 물의 해] 시베리아의 진주 바이칼호
지구 전체 민물의 5분의 1…담수량 가장 많아

◇바이칼호 동쪽 가반스크에서 어린이들이 낚시를 즐기고 있다. 바이칼호는 담고 있는 물의 양에서 세계 최대이며 가장 맑은 것으로 이름 높다. /조선일보 자료 사진
시베리아에 있는 ‘바이칼’호는 길이 636㎞·너비 3만 500㎢의 초승달 모양으로, 남한의 3분의 1 크기입니다. 너비로만 치면 세계 7번째이지만, 호수가 담고 있는 민물의 양은 세계 최고랍니다. 이 호수가 담고 있는 물의 양은 놀랍게도 지구 전체 강과 호수 민물의 5분의 1이나 됩니다. 그다지 크지 않은데도 이렇게 많은 물을 담을 수 있는 것은 바이칼호가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이기 때문이죠. 깊은 곳의 수심이 1700m 이상이나 됩니다. 호수 안에는 18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있어요.
바이칼호는 참으로 신비한 호수입니다. 나이가 무려 2500만 년이거든요. 일반적인 호수의 나이가 3만 년 정도 되는 데 비하면 무려 800배나 장수를 누리고 있는 호수인 셈이죠.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그 비결은 이렇습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호수 200m 이하의 깊은 물에서 항상 섭씨 4도 정도의 수온을 유지하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다른 호수들은 수온이 올라가고 플랑크톤이 대량으로 번식해 결국 늪지로 변하지만 바이칼호는 항상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또, 바이칼호가 늘 깨끗한 것은 이 곳에서 사는 ‘보코플라프’라는 1.5㎜ 크기의 새우같이 생긴 갑각류(게·가재·새우처럼 딱딱한 껍데기로 덮여 있는 동물)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보코플라프는 지저분한 것들을 잡아먹는 자연의 청소부 역할을 하거든요. 따라서 물고기의 먹이가 되는 작은 생물들이 크게 증가하는 것을 막아왔다는 것입니다. 이 호수 속과 주변에는 2600여 종의 식물과 동물이 삽니다. 이 중 3분의 2는 이 곳에서만 사는 진귀한 것들이고, 민물에 사는 유일한 물개인 바이칼물개는 수명이 40~50년이나 된다고 합니다. 재미있죠? 신기한 것이 또 있습니다. 바이칼호는 항상 소금기 없는 민물을 유지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무려 350여 개 하천에서 바이칼호로 물이 흘러 들어오지만 바이칼호의 염분은 항상 강물들보다 낮지요. 학자들은 “호수 바닥에 민물이 끊임없이 나오는 샘이 있는 것 같다.”고 짐작하고 있습니다. 신비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깨끗한 덕분에 바이칼호는 수심이 40m나 되는 깊은 곳까지 보인답니다. 바이칼호를 ‘시베리아의 진주’라고 일컫는 이유를 이제 아시겠죠?
/한국수자원공사 유역조사부 이준열
◆호수의 일생
호수는 맨 처음 아주 투명하고 깨끗한 물을 가지고 탄생한다. 그러다가 호수로 물을 나르는 강들에 의해 육지에 있는 많은 영양분이 오랜 세월에 걸쳐 호수로 공급된다. 이 영양분들에 의해 호수에는 다양한 동식물이 번성하게 되고, 이 동식물이 죽어서 쌓이는 것이 계속 반복되어 마침내 호수는 늪으로 변하게 된다. 이렇게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대략 3만 년 정도. 이것이 호수의 일생이다.
◆호수와 비행접시, 황금
남아메리카의 페루와 볼리비아 국경에 걸쳐 있는 ‘티티카카’호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호수로 이름 높다. 고도가 3810m로 한라산보다 두 배나 높은 곳에 있는 셈. 이 호수 또한 신비한 점에서는 바이칼호에 못지않다. 지난 1965년, 그리고 최근에도 비행접시가 이 호수 속에 자취를 감추었다고 해서 큰 소동이 일어났었고 그에 따라 페루 해군이 조사를 벌인 적도 있다. 호수의 밑바닥을 조사한 결과 놀라운 사실이 발견되기도 했다. 호수 바닥에 포장된 도로와 큰 건물의 흔적이 약 600m에 걸쳐 뻗어 있다는 것이었다.
◆세계 최대 호수
세계에서 면적이 가장 넓은 담수호(민물 호수)는 미국과 캐나다 국경에 걸쳐 있는 ‘슈피리어’호. 면적이 약 8만 2000㎢로 남한 면적보다 조금 작다.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 지역에는 세계적인 규모의 큰 호수 5개가 모여 있는데 이를 5대호(슈피리어호·미시간호·휴런호·이리호·온타리오호)라 한다. 5대호의 넓이를 합하면 남북한 면적의 2배가 넘는다. 이들 5대호는 빙하기의 대륙 빙하가 지표면을 깎아낸 지역에 물이 괴어 생긴 것이다. 5대호는 운하와 강으로 이어져 있다. 유명한 나이아가라 폭포는 이리호와 온타리오호로 통하는 나이아가라강의 캐나다와 미국 국경 사이에 있다.
/공동 기획 : 한국수자원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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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한국, 부탄] 몽골리안 대이동설
알타이 산맥~바이칼 호 주변서 ‘몽골리안’발원
동·서·남으로 갈라져…南 티벳·부탄·미얀마로
부탄에서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북쪽으로 올라가면 티베트, 더 위로 뻗어가면 몽골 우루무치가 나온다. 여기서 위로 더 올라가면 알타이 산맥, 투바 공화국, 부르야트 공화국을 지나게 되고 거기서 북쪽으로 더 올라가면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가 나온다. 거꾸로 시베리아에서 알타이 산맥을 넘어 남쪽으로 곧장 내려오면 몽골을 거쳐 부탄과 만난다.
몽골리안 이동사를 연구하는 강원대 사학과의 주채혁 교수는 “지금 몽골 지역 북쪽인 알타이 산맥~바이칼 호수에 이르는 지역이 우리 민족의 원류격인 몽골리안의 발원지란 주장이 학계의 통설”이라며 “바이칼 호수 주변에서 발원한 우리 선조들이 현 몽골 쪽으로 내려온 뒤 동·서·남으로 갈라져 서진한 무리는 터키 쪽으로, 동진한 무리는 만주를 거쳐 일부는 한반도로 나머지는 시베리아를 거쳐 아메리카 대륙으로 그리고 또 한 갈래는 남쪽으로 내려와 티베트, 미얀마, 부탄 등에 정착하거나 지나쳐 동남아로 퍼졌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가설을 한낱 가설로 치부해 버리기엔 각 지점을 연결하는 ‘문화적 고리’가 심상치 않다. 먼저 서낭당이다. 우리 시골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서낭당’은 가설상의 이동루트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형태도 놀라우리 만큼 비슷하다. 커다란 고목나무(또는 기둥)에 울긋불긋한 천이 늘어져 있고 나무 밑에는 돌무더기가 있는 ‘한국식’ 모양새가 국경을 넘어 가로세로로 퍼져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돌 하나 던진 뒤 소원 빌고 지나가는 ‘모양새’도 같고 서낭당이 있는 위치도 같다. 마을 어귀나 주거지 주변 고갯마루에 가면 어김없이 버티고 있다. 들어오는 잡귀를 쫓아 마을을 수호하는 종교적 기능도 같고, 굽어지는 도로나 고갯마루를 넘으면 나타나 긴장감을 주는 것까지도 같다. 몽골리안의 이동루트를 따라 이어져 있는 서낭당이 가정의 안녕이나 자식들의 무병장수, 입신출세를 기원하는 장소이며 민간무속의 중심지란 사실까지도 무서우리만큼 똑같다.
소설가 이윤기씨는 몽골에서 서낭당을 본 느낌을 이렇게 적었다. “그것은 학습을 통한 낯익음이 아니었다. 몽골의 서낭당은 어린 시절 내가 금줄을 두르거나 조약돌을 주워 쌓던 서낭당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서낭당이 존재하는 지역을 선으로 이어보면 한 갈래는 바이칼~부탄의 세로선으로, 또 한 갈래는 바이칼~한반도를 잇는 가로선으로 연결된다. 주채혁 교수는 “울란우데에서 부탄에 걸쳐 사는 종족인 코리족의 이름에서 고려가 유래된 것으로 본다”며 “이 지역 사람들의 DNA를 측정해 본 결과 우리와 유사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주 교수는 또 “시베리아 일부에선 곰이 풀을 먹고 사람이 됐다는 신화가 전해져 오기도 한다”며 “이는 단군신화와의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몽골리안 루트의 두번째 키워드는 쌀이다. 바이칼~부탄의 세로 노선과 바이칼~한반도의 가로 노선에선 ‘쌀’이 주식이다. 투바 공화국도 부르야트 공화국도 티베트도 부탄도 모두 쌀을 먹는다. 고구려 연구회의 서길수 회장은 “태국 북부에서도 인절미를 먹는다”면서 “이것은 거대한 벼농사 문화권의 흐름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주채혁 교수는 “바이칼 호수를 찍은 항공사진에서 수로의 흔적이 발견됐다”며 “이것은 이 지역에서 벼농사가 이뤄졌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몽골리안 지역에서는 광주리·키·조리·절구 등 우리에게 익숙한 ‘쌀문화’의 산물들이 쉽게 발견된다.
또 하나의 ‘고리’는 신발이다. ‘몽골리안 이동루트’ 위에 있는 나라들은 공통적으로 버선코처럼 끝이 쏙 올라온 신발을 신는다. 주 교수는 “이것은 북방계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이라며 “우리가 한 핏줄임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말했다.
‘몽골반점’ 이야기는 굳이 할 필요도 없다. 말 안해도 안다. 몽골리안 루트 어느 곳을 가든 몽골반점을 찾아볼 수 있다. 윗사람을 공경하는 풍습도 그렇다. 어른이 술을 권할 때 아랫사람은 왼손을 오른손에 대고 공손히 잔을 받는 것은 몽골리안 고유의 ‘전통’이다. 소설가 이윤기씨는 몽골의 술자리를 이렇게 묘사했다. “몽골인 운전사가 술을 받았다. 오른손을 왼손으로 받치고 공손히 받았다. 그는 오른손 중지로 술을 찍어 하늘로 퉁기면서 나지막하게 “텡그리” 하고 속삭였다. ‘텡그리’는 ‘천신(天神)’이다. 따라서 그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몽골식 ‘고수레’였다.”
● “퉁구스족이 바로 동이 족”
믿을 수 없을 만큼 우리와 똑같은 ‘또 다른 우리’. 이 철저한 유사성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 ‘연관성’을 뒷받침해 보려는 학설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주채혁 교수는 “우리에게 고향으로 여겨지는 ‘알타이’는 ‘금산(金山)’이라는 뜻”이라면서 “경주 김씨의 시조 김알지(金閼智)의 이름에 나타난 ‘알지’가 ‘알타’일 가능성이 높다. 한자인 ‘금’과 몽골 언어 ‘알타(金)’가 중복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한 바 있다.
유사성은 또 있다. 몽골에는 신성시되는 산이 하나 있다. ‘칭기즈칸이 묻혀 있다’는 이 산의 이름 ‘보르항’은 하느님 혹은 버드나무를 뜻한다고 한다. 우리 학계 일부에선 “최남선이 백두산의 옛이름이라고 보았던 ‘불함산(不咸山)’이 ‘보르항’과 같은 말”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또 다른 예도 있다. 알타이 문화권에서는 무당(巫覡)을 ‘박시’라고 부른다. 조선시대 실학자 이규경은 자신의 저서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남자 무당(男巫)을 뜻하는 의미로 ‘박사(博士)’라는 말을 쓴다”고 적고 있다.
창조역사학회의 김영우 사무국장은 “바이칼 호수와 알타이 산맥 근처에 살고 있던 퉁구스 족, 즉 동호(東胡) 족이 곧 동이(東夷)를 뜻하는 말”이라며 “퉁구스 족에서 돌궐 족과 훈족이 갈라져 나왔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 국장은 “알타이 산맥에서 서진한 돌궐 족이 투르크, 즉 오늘날의 터키를 세운 민족이고, 북유럽으로 건너가 지금의 헝가리·루마니아·스웨덴 지역에 정착한 훈족이 한때 유럽을 압박했던 흉노족”이라고 말했다. 그는 “동으로 이동한 퉁구스 족이 세운 나라가 바로 고구려·부여·발해”라며 “거대한 역사를 일으키며 인류사를 움켜쥐었던 사람들은 다름아닌 우리의 조상”이라고 강조했다.
(팀푸(부탄)= 이범진 주간조선 기자bomb@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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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르포] 몽골족의 고향, 바이칼호를 가다
원시의 숨결 간직한 '신의 바다'...몽골족의 발원지
거대한 타이가 수림에 둘러싸인 세계 최대의 담수호
거대한 타이가 수림의 끝없는 흑록색…. 몽골 수도 울란바타르에서 국경도시 수하바타르까지 열차로 이동한 10시간 동안은 황갈색 초원이 거리감을 둔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브리아티아공화국(러시아연방의 일원)의 국경도시 나우시키로 들어선 뒤 소형 버스로 수도 울란우데까지 가는 4시간 동안은 흑록색 타이가 수림이 여행객의 넋을 잃게 했다.
▲ 바이칼호에서 나무장대로 만든 낚시대로 낚시를 즐기고 있는 아이들. 건너편 수평선 바로 위로 형성된 검푸른 띠는 해발 1200m대의 프리모르스키 산맥이다.
이윽고 도착한 바이칼호는 호수가 아니라 바다. 건너편으로는 흠집 하나 없는 수평선이 그어져 있었다. 창공과 호수 사이에 하나의 좁은 띠가 희끄므레하게 형성된 것을 발견한 것은 얼마 후였다. 첫눈에 보이지 않던 산줄기가 너무 멀어 흐릿하니 하늘과 구별되지 않은 것이다.
지난 6월4일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로 4시간 거리인 울란바타르에 도착, 하루를 묵은 뒤 밤열차로 브리아티아공화국의 수도 울란우데로 북상했다. 울란우데의 날씨는 오히려 몽골보다 더 더웠다. 아스팔트 포장이 녹아 내릴 정도였다. 정유가 제대로 되지 않았는지, 아니면 엔진이 노후해서인지 지나가는 자동차의 매연에 숨이 턱턱 막혔다.
여성들의 옷차림은 거의 반라 상태여서-게다가 매우 세련됐다-남태평양의 어느 휴양지 섬에 온 기분이 들었다. 하긴 오전 5시부터 오후 9시까지 햇빛이 남아 있고 여름 낮길이가 18시간 정도 되니 지면이 달구어질대로 달구어질 만도 했다. 다만 습도가 낮아 그늘에 들어서면 견딜 만했다.
울란우데에서 바이칼호가 가장 가까운 셀렝게강 삼각주 근처의 가반스크로 갔다. 가깝다는 것이 무려 200km 거리. 우리가 묵은 할루스크 모텔은 단독건물의 숙박시설이 아니라 숙박과 식당 시설에다 야외 바비큐장과 체육시설이 있는, 우리의 자연 휴양림같은 곳이다.
셀렝게강은 몽골에서 발원해 울란우데를 거쳐 바이칼호로 흘러드는 길이 1480km의 긴 강인데, 바이칼로 흘러드는 지역에 너른 삼각주를 형성해 경작지를 제공하고 있다. 이 강물은 바이칼호로 흘러드는 전체 수량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바이칼 수역에서는 가장 큰 강이다.
● 얼음 풀리면 바다로 나간다
리조트에 도착하자마자 바이칼 호숫가로 달려갔다. 호숫가 바로 앞까지 타이가 수림이 내려와 있다. 그 숲을 뚫고 백사장으로 나서자 눈앞에 펼쳐진 것은 검푸른 물과 수평선뿐이다. 좌우로 눈을 돌리자 일부러 방풍림을 조성한 듯 고른 높이의 숲과 폭이 고른 백사장, 그리고 파도가 찰랑이는 호숫가가 가지런히 끝없이 달린다. 마치 우리가 타고온 철로의 평행선처럼….
▲ 가반스크 지역 할루스크모텔에서 브리아티아 전통의상을 입고 바베큐 파티를 주도한 룩사노프 브리아티아 국회의장(61세).
우리 일행을 초청한 룩사노프 국회의장과 브리아트우넨신문사의 아르덴 주필은 호숫가에 도착하자마자 두 손을 모아 기도한 후 물을 떠서 이마에 찍어 바르며, 우리에게 해 보라고 권했다. 브리아트족은 전통적으로 범신론적인 샤머니즘을 믿어온 몽골의 한 종족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모든 선과 악을 베푸는 바이칼호를 신의 바다로, 성스러운 바다로 믿는다. 여행 도중 고갯마루나 중요한 지점에서 그들이 차창 밖으로 동전을 던지거나, 잔에 따른 보드카를 세 번 오른손 약지(네번째 손가락)에 찍어 튕겨 뿌리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우리도 물을 떠서 의식을 따라해 봤다. 그런데 물이 어지간히 찬 게 아니다. 어쩐지 옷을 벗고 뛰어들 만한 더위인데도 물속에 들어간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발을 담궈 보니 30초도 견디기 힘들었다. 꽁꽁 얼어붙어 있다가 녹은 지 불과 한 달여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라는 것을 몰랐다.
바이칼호 주변은 10월 초에 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11월이면 호수 북단의 습지서부터 얼기 시작한다. 겨울 평균온도는 섭씨 영하 20도이고, 수시로 영하 40도까지 떨어진다. 4월 중순이면 얼음이 녹기 시작, 5월이면 선박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지만, 북단에서는 6월까지도 유빙이 떠다닌다. 얼음이 풀리면 선박들은 '바다로 나간다'고 표현한다.
러시아에서 맛있는 물고기로 소문난 오물(Omul)은 바이칼호에서만 잡히는 특산 송어로, 이 호수에서 잡히는 어획량의 3분의2가 될 정도로 인기있다. 이밖에도 물고기로는 농어, 살기, 창꼬치 등이 잡힌다.
이윽고 바이칼호에 해가 가라앉는다. 오후 10시가 넘어서야 어둠이 내렸다. 리조트에서는 숲속 바베큐장에 파티를 준비해 놓고 일몰을 맞고 돌아오는 일행을 기다렸다. 양고기와 소고기가 나왔고, 바이칼호에서 잡은 오물도 누렇게 잘 익어 있었다. 미국인들이 그랜드 캐년을 꼭 가보고 싶어하는 곳으로 꼽는 것처럼, 러시아들이 한번 가보고 싶어하는 곳이 바이칼호다.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그들의 조상이 발원한 곳이 바이칼호라고 믿고 있어 평생 한번 순례하고 싶은 곳으로 꼽기도 한다.
●무위자연식 휴양문화
길이 635km, 평균 폭 48km(가장 넓은 곳은 80km), 넓이 3만1500㎢(남한 면적의 약 3분의1)에 달하는 거대한 호수를 1박으로 유람하고 만다면 바이칼이 웃을 일이다. 우리는 다시 사흘을 바이칼호에 투자하기로 했다. 떠나기 전날 쌀, 된장, 고추장, 간장, 컵라면을 구입했다. 쌀은 중국산이었지만, 한국산 된장, 고추장, 간장, 컵라면을 이곳 슈퍼마켓에서도 팔고 있었다.
▲ 국립동아시아공업대학 휴양소에서 반야(사우나)를 즐긴 후 바이칼호의 시원한 바람을 쐬고 있는 휴양객들.믄맛퓽?61세).
더운 낮 시간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새벽 6시에 출발했다. 울란우데 시가지를 벗어나 북상했다. 울란부르가시산맥 남단의 약 1000m짜리 고개를 넘어서는 데 한시간 이상 걸렸다. 포장과 비포장이 번갈아 이어지는 도로를 달려 이윽고 바이칼호가 보이는 그레미아친스크에 도달하는 데에는 3시간여 걸렸다.
첫날 목적지인 막시미카에 이를 때까지 도로는 호숫가를 따라 이어졌다. 국립동아시아공업대학 휴양소 관리장 발렌티나 이르기지노브나(56ㆍ여)씨는 카레이스키(고려인) 건축회사 사장을 친구로 두고 있다며 우리 일행을 반가이 맞아 주었다.
이곳에선 취사가 개인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아니 그럴 목적으로 이런 리조트를 찾는 러시아인은 없다. 한국인처럼 먹을 것 잔뜩 싸들고 가서 계곡이나 해수욕장에서 호들갑스럽게 음식 차려내기 바쁜 야외생활 패턴과는 전혀 다른, 말 그대로 조용하게 휴양을 즐기는 것이 이들의 휴양 개념이다. 그래서 숙식에 필요한 모든 편의시설을 휴양소가 제공한다.
휴양소 곳곳을 산책하며 돌아보지만 신나는 우리 식 놀거리는 없다. 호안 둔덕에 마련된 나무의자에 앉아 그저 무심히 바이칼호를 바라볼 뿐이다. 그러다가 언뜻 뒤돌아보면 하늘을 찌를 듯 솟은 낙엽송들이 우두커니 내려다보고 있다. 거대한 바이칼호가 무위자연을 강요한다.
이튿날 바르구진으로 진입했다. 바르구진은 우리의 군 단위에 해당하는 행정지명이자, 마을과 강과 산맥에도 적용되는 이름이다. 바르구진강이 바이칼호로 흘러드는 지점의 우스트바르구진 마을에서 나룻배로 강을 건넜다.
우스트바르구진은 바르구진 산림지역에서 베어낸 원목들이 모이는 항구다. 이 원목들은 뗏목처럼 엮이어 견인선에 의해 수백km 떨어진 이르쿠츠크나 바이칼스크로 끌려간다. 한 뗏목의 길이가 대개 무려 1km나 된다고 한다.
이제부터 바이칼호를 떠나 내륙의 타이가 수림지대로 들어선다. 왼쪽으로는 바르구진 산맥이, 오른쪽으로는 이카츠키 산맥이 펼쳐지고, 그 사이를 흐르는 바르구진강을 따라 우리는 북상했다. 높이 2000m대의 두 산맥은 수십km나 떨어져 나란히 달리고 있기 때문에 그 사이에는 구릉이 발달하거나 평원이 펼쳐지기도 해 우리의 계곡과는 전혀 다른 풍광이 펼쳐졌다.
마을다운 마을을 보지 못했는데, 느닷없이 거대한 마을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윽고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바르구진에 도착한 것이다. 이 계곡을 둘러싼 두 산맥은 더욱 멀리 나앉아 거대한 분지를 이루며 호수가 평화롭게 펼쳐졌다.
바르구진 지역은 이미 1640년대부터 러시아 모피상들이 최상품으로 치는 검은 담비의 모피를 구입하느라 진입하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다. 수렵의 피해가 얼마나 심했던지 차르 왕조는 수년동안 검은담비 수렵금지령을 발동하기에 이르렀다.
1913년 러시아 최초로 자연보호구로 지정된 바르구진 자연보호구는 러시아의 자연보호 체계의 시금석이 됐다. 러시아어로 자포베드닉이라 불리는 이 자연보호구는 우리의 자연공원과는 달리 오로지 생태계 보호 목적으로 지정한 것이다. 우리의 자연공원과 같은 보호와 이용을 겸한 구역도 물론 있다.
바이칼호 주변에는 이 바르구진 자연보호구 외에도 그 바로 남쪽에 트랜스바이칼 국립공원, 그리고 남안에 바이칼 자연보호구가 있고, 서안에는 북쪽에서부터 바이칼-레나 자연보호구, 프리바이칼 국립공원이 지정되어 있다. 여기에 1987년에는 바이칼 호안을 보호하기 위해 호수 주변 모두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더 이상의 개발을 억제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보호정책에도 불구하고 바이칼호수는 몇몇 지역에 오염이 가중되고 있다. 특히 트랜스시베리아 철로가 지나는 남안의 이르쿠츠크, 바이칼스크, 셀렝가강 삼각주(울란우데의 하수가 유입)와 동안의 바르구진강 어구, 그리고 바이칼-아무르 철로 (Baikal-Amur Mainline·BAM)가 지나는 북안의 세베로바이칼스크 호안이 그렇다.
●바이칼호의 딜레마
러시아가 이르쿠츠크를 개발한 것은 이 지역의 풍부한 수림에서 고급의 펄프를 얻기 위해서였다. 타이가 원목을 광물질을 거의 함유하지 않은 바이칼호 물로 쪄내면 고급의 섬유소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이 고급의 섬유소를 타이어에 섞어 생산하면 양질의 제트기용 타이어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계산에서였다.
그러나 지금은 합섬섬유소를 채용한 타이어를 항공기용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이르쿠츠크의 펄프공장은 단순히 제지용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경제가 피폐한 상황에서 이 공장마저 문을 닫게 할 수는 없는 것이 바이칼호의 딜레마다.
게다가 바이칼호를 끼고 있는 브리아티아 공화국이나 이르쿠츠크 자치단체가 경제 부흥을 주창하고 나서고 있기 때문에 과연 바이칼호를 어느 선까지 개발할 것인가를 놓고 절치부심하고 있는 것이다.
구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연방의 공화국들이 어느 정도 자치권을 회복하고 있는 지금 브리아티아 공화국은 쓰라린 과거를 딛고 경제 회복과 함께 옛 풍습과 전통을 회복시키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다. 1993년에 건립 50주년을 맞은 공화국이지만 실제로 지금을 비상할 수 있는 적기로 잡고 있다. 민선 대통령인 포타포브 대통령은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이동하기 위한 협력 파트너로 한국을 지목,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해 세 차례나 방한했고, 여러 각료들과 문화인사들도 한국을 줄줄이 방문했다. 이 공화국은 한국과 교역이 자유롭도록 모스크바 연방정부의 허가도 받아 놓았고, 투자금 회수 때까지 세금을 받지 않는다는 적극적인 투자유치 법안까지 의회에 상정해 놓고 있다.
동양적 전통문화를 지니고 있다가 러시아의 문명이 유입된 브리아티아는 스스로 동서양의 문화와 문명이 교차하는 관문이라고 믿고 있다. 양극체제 하에서는 시베리아의 오지 속에 묻혀 잊혀진 지역이었으나, 하늘과 땅이 열린 개방된 세상에 브리아티아는 동서양의 새로운 관문 역할을 담당하고 싶은 것이다.
러시아와 극동과 중앙아시아 사이에 위치한 브리아티아가 이러한 관문 역할을 담당하는 데 떠올린 화두가 바로 바이칼호다. 브리아티아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바이칼호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데 브리아티아어로 바이칼은 바로 '신의 바다' 브리아트다. 바이칼의 나라 브리아티아….
우리는 바르구진에서 발길을 돌렸다. 바이칼호 안의 깊이는 2000km에 달한다(호수면 해발 463m, 가장 깊은 곳 1637m). 우리가 본 바이칼호의 호숫가는 불과 200여km. 그것도 차로 접근이 가능한 곳만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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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호 독특한 생태계▼
흔히 ‘시베리아의 진주’로 불리는 바이칼호는 넓이는 세계 7번째지만, 담수량을 기준으로 볼 때는 세계 최대의 호수이다. 최대 수심 1642m인 이 호수에는 전세계 민물의 5분의 1이 담겨 있다.
초승달처럼 북동에서 남서로 길게 뻗은 바이칼호는 길이 640km, 평균 너비는 48km로, 면적이 남한의 3분의 1이나 된다. 호수의 최대 투명도는 42m. 여기까지 물밑이 내려다보일 정도로 맑아 그냥 마셔도 될 정도다. 주변의 숲과 초원에서 365개의 강이 바이칼호로 흘러들지만, 물이 빠져나가는 것은 오직 하나 북극해와 연결된 앙가라강 뿐이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김주용 박사는 “바이칼호는 3000만년 전부터 호수 북쪽의 땅은 융기하고 남쪽은 벌어지면서 단층 운동에 의해 형성됐다”고 말했다. 지금도 바이칼호 주변에서는 매년 3천번 이상 지진이 일어난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의 지질학자 구엔나디 우핌체프 박사는 “지금도 호수 주변은 1년에 1㎝씩 융기하고 호수는 매년 2㎝씩 넓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바이칼호에는 2500종의 동식물이 산다. 이 중 상당수가 바이칼호에만 사는 고유종이다. 세계 유일의 민물 바다표범을 비롯해 철갑상어, 오물, 하리우스 등 어종이 이곳의 명물이다. 이처럼 생물 다양성이 높은 것은 바이칼이 생성된 지 오래된 호수이고, 일반적인 호수와 수심 깊은 곳까지 산소가 공급되고 자체 정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특히 호수 주변에는 온천이 많다. 90년 미소 합동조사단은 잠수함을 타고 수심 420m에서 뜨거운 물이 솟는 구멍을 발견하기도 했다.맑은 물, 높은 생물 다양성, 많은 온천은 빙하기의 혹독한 추위와 싸워야 했던 초기 아시아인에게 좋은 안식처가 됐을 것이다.
▼바이칼호 주변 부리야트족▼
시베리아에는 여러 아시아 소수민족이 있다. 인구 40만의 부리야트족은 이 중 최대의 소수 민족으로, 바이칼호 주변에서 자치공화국을 이뤄 살고 있다. 특히 부리야트족이 간직한 샤머니즘의 원형은 우리 민속과 비슷한 점이 많아 관심거리이다.
원래 바이칼의 주인인 이들은 17세기에 시베리아를 정복한 러시아에 동화돼 부리야트족이란 이름을 갖게 됐다. 하지만 남쪽 국경 너머 몽골과 중국 북부의 몽골인과 뿌리가 같고 언어도 비슷하다. 유목민인 이들은 모두 자신을 징기스칸의 후예로 믿고 있다.
부리야트족은 우리의 선녀와 나무꾼과 똑같은 민족 설화를 갖고 있다. 한 노총각이 바이칼호에 내려온 선녀에 반해 옷을 숨겼다.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해 하는 선녀를 집으로 데려와 아들 열 하나를 낳았다. 하지만 방심하는 틈에 선녀는 숨겨놓은 옷을 입고 하늘로 올라간다는 얘기이다.
답사단은 이르쿠츠크시를 떠나 시베리아 최고의 성지인 바이칼호의 올혼섬으로 향했다. 끝없이 펼쳐지는 초원을 10시간 동안 달리면서 우리는 길가에서 오색 천조각을 두른 나무말뚝을 수없이 만났다. 배재대 이길주 교수(러시아학)는 “샤머니즘의 상징인 이 말뚝은 오리를 조각해 나무 꼭대기에 꽂아놓은 우리의 솟대나 서낭당 과 상징적 의미와 형상이 거의 똑같다”며 “이는 한국의 토속신앙과 샤머니즘이 시베리아에서 기원했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밝혔다.
이르쿠츠크에서 여행사를 하는 정정길씨는 “부리야트족도 우리처럼 천한 이름을 지어줘야 오래 산다고 믿어 ‘개’란 뜻의 ‘사바까’란 이름이 흔하다”고 귀띔한다. 아기를 낳으면 탯줄을 문지방 아래 묻는 전통도 우리와 비슷하다는 것.
마침내 석양이 바이칼을 온통 붉게 물들일 무렵 우리는 올혼섬의 작은 마을에 도착 했다. 이 마을에서 부리야트족의 샤먼 발렌틴을 만났다. 그는 검푸른 호숫가의 신목(神木) 아래서 바이칼의 신 불한(칸)을 부르는 굿판을 벌였다.
바이칼을 찾는 사람과 손을 맞잡고 부르는 샤먼의 북소리와 애잔한 노래 가락은 우리 정서와 금세 공명을 일으킨다. 함께 따라서 추는 춤은 강강술래 같다. 예전의 샤먼이 썼던 모자는 사슴뿔 모양으로, 신라의 왕관과 모습이 닮아 시베리아의 샤먼 전통이 한반도로 전해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3차례 바이칼을 답사한 정재승 봉우사상연구소장은 “스탈린 시대 때 많은 브리야트족 샤먼이 처형당했지만, 소련 붕괴 이후 바이칼호에는 다시 샤머니즘 바람이 불고 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2002년 8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