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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사] 최후의 흉노①…유연, 한족 탈 쓰고 중원 차지하다

송화강 2020-04-22 (수) 14:45 5년전 11970  
최후의 흉노①…유연, 한족 탈 쓰고 중원 차지하다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04.03 14:00

오호십육국의 흉노 첫 정권…한족정권 계승 내걸고 서진 정벌, 갈족에 멸망

 

남흉노의 마지막 선우 호주천선우(呼廚泉單于)는 어부라선우(於扶羅單于)의 동생이었다어부라에게는 유표(劉豹)라는 아들이 있었다어부라선우는 가문의 선대에 한()나라 공주가 시집왔기 때문에 한나라 황실의 후손이라며 성씨를 한 황제 가문의 유()로 고쳤다흉노는 모계혈통의 성씨를 물려받는 관습이 있었다.

 

어부라선우는 위왕 조조(曹操)에게 패해 약화되었고호주천선우는 조조의 아들 조비(曹丕)에 투항해 남흉노는 서기 216년에 멸망했다.

 

유표의 아들 유연(劉淵)는 흉노인 답지 않게 어려서부터 한족문화를 배웠다유명한 유학자에게서 학문을 배웠고무예도 뛰어났다.

 

때는 후한이 멸망하고 위((()의 삼국시대를 지나 사마(司馬)씨의 진()나라가 수립되었다진나라는 황족들 사이에 팔왕의 난’(八王之亂)이 일어나 내란의 소용돌이에 휩쓸렸다성도왕(成都王)이었던 사마영(司馬穎)이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유연을 끌어들었다당시 유연은 진의 북부도위로 흉노 5부를 총괄하고 있었다유연은 사마영의 요청을 수락하고 흉노 용병(糺軍)을 이끌고 업성(鄴城)에 진입했다사마영은 진의 혜제를 겁박해 태자를 폐위하고 스스로 황태제에 올라 차기황제임을 선포했다.

 

유연이 진나라를 제압하자흉노의 귀족들은 그를 대선우로 추대했다그 소식을 들은 유연은 사마영을 속이고 업성에서 빠져나가 대선우에 올랐다유연은 304년에 좌국성(左國城산시성 이석현)에서 한왕(漢王)을 칭하며 독립 정권을 수립했다중국 역사에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의 첫 나라다.

 

유연은 나라 이름을 한()이라고 했다전한 시대에 흉노가 한나라와 형제의 맹약을 맺었기 때문에 유연은 한나라를 계승한다고 천명한 것이다그는 한나라의 제도로 관료제도를 편성하고전한의 시조 유방(劉邦), 후한의 유수(劉秀), 촉한 유비의 아들 유선(劉禪)을 삼조(三朝)로 받들었다유연은 중원의 한족들이 한나라를 그리워 한다(人心思漢)는 심리를 적극 활용했다흉노의 선우가 한족 정권의 정통성을 강조하자 진나라에 실망한 한족들이 유연의 휘하로 투항했다이 때 갈족(羯族출신의 석륵(石勒)이 유연의 휘하로 들어왔다.

 

한왕 유연(劉淵) /每日頭條 한왕 유연(劉淵) /每日頭條

 

유연은 기세를 몰아 화복 일대를 공격해 차지했다유연은 평양(平陽)과 하동(河東)을 점령한후 308년에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고 황제에 올랐다중국 역사에 소수민족으로 황제에 오른 사람은 유연이 처음이고흉노가 중원을 차지하기도 이 때가 처음이다.

 

유연은 310년 낙양(洛陽)을 공격하는 도중에 병사했다그 뒤를 이어 장남 유화(劉和)가 즉위했다.

 

유화는 동생 유총(劉聰)을 제거하려다 오히려 유총의 모반에 목숨을 잃고 유총이 황제에 즉위했다유총은 동생 유예(劉乂)를 황태제로 삼았다유총의 아들 유찬(劉粲)은 황위가 숙부에게 넘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지 않았다.

유총은 311년 6월 낙양을 공격해 약탈과 방화살인을 자행했다그것도 모자라 진 황제의 왕릉을 파헤치고 진 희제(晉 懷帝사마치(司馬熾)를 포로로 잡았다황제의 무덤을 파헤치는 것은 한족 문화에서는 용인되지 않는 행동이었다이러한 야만적 행동은 피지배족인 한족의 신뢰를 잃는 것이었다중국 역사에서 이 사건을 영가의 난’(永嘉之亂)이라고 한다영가는 진 회제의 연호다.

 

유총은 처음에는 진 회제를 회계공(會稽公)에 봉해 대를 잇고 선대의 제사를 지내도록 베풀었다때로는 진 회제를 불러 담소도 나누고 아끼던 첩을 주어 부인으로 삼도록 했다.

 

하지만 유총은 어느날 돌변했다. 313년 정초유총은 연회에 진 회제를 불러와 노예 옷을 입히고 대신들에게 술시중을 들게 했다진나라 관리였던 유민(庾珉)과 왕준(王雋)은 이런 굴욕적인 광경을 보고 감정에 북받쳐 울고 말았다유총은 화가 치밀어 그 자리에서 항복한 진나라 관리들을 모두 죽이고회제도 독살했다.

 

한편 진의 황족들은 낙양이 점령된 후 장안(長安)으로 천도해 사마업(司馬鄴)을 황제로 추대했으니진 민제(愍帝).

 

316유총은 족제(族弟)인 유요(劉曜)에게 군사를 주어 장안을 공격케 했다유요는 장안을 포위하고 진 민제 등을 사로잡았다유총은 포로로 잡힌 진나라 황제에게 군복을 입혀 사냥터의 안내견 역할을 강요했다진나라 백성들은 황제가 희롱당하는 것을 보고 울었다고 한다. 319년 유총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진 민제에게 술시중을 들게 한후 살해했다.

 

장안이 함락되고 민제가 체포된 후에 317년에 사마씨 유족과 진의 장수들은 장강(長江건너 건업(建業)에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고 사마예(司馬乂)를 황제로 추대했다역사에서는 이전의 진을 서진(西晉), 이후의 진을 동진(東晋)이라고 한다.

 

동진의 수도 건업 지도 /위키피디아 동진의 수도 건업 지도 /위키피디아

 

유총은 아버지 유연과 달리 흉노인 본색을 드러냈다그는 흉노의 수계혼 풍습을 부활시켰다수계혼(收繼婚)은 아버지나 형이 죽으면 후계자가 생모 이외의 부인들을 취하는 제도다.

 

유총은 아버지 유연의 황후였던 단태후(單太后)를 아내로 삼았다그러자 한족 문화에 젖어 있던 대신들의 불만이 높아졌다특히 단태후의 친아들인 황태제 유예는 몇 번이나 간언을 올렸다단태후는 아들의 분노를 알게 되면서 자책과 원망을 하다가 죽었다.

 

이 형제간의 갈등을 비집고 들어가 음모를 꾸민 인물이 근준(靳準)이란 대신이었다근준은 황태제 유예에게 황제의 칙령이라고 속여 군사들에게 무장을 갖추라고 하고유총의 아들 유찬에게는 유예가 반란을 꾸미고 있다고 속였다그리고는 황제 유총에게 유예가 반란을 꾸미고 있다고 보고했다유총이 유예의 진영에 첩자를 보내 조사를 시켰더니 근준의 보고가 사실임을 믿게 되었다유총은 아들 유찬에게 유예를 토벌하라고 명했다유예와 부하 15천이 죽임을 당했다.

 

유총 말기의 영역(317년) /의키피디아 유총 말기의 영역(317년) /의키피디아

 

이 대학살극이 끝나고 318년 유총이 죽고 유찬이 황제에 올랐다유찬은 즉위한 후 아버지의 후궁들을 모두 취하고 향락에 빠졌다근준은 두 딸을 유찬에게 시집보내 유찬의 측근으로 부상해 있었다어느날 근준은 유찬을 죽이고 스스로 황제에 올랐다.

 

쿠데타에 성공한 근준은 유씨의 씨를 말리라고 명령했다유연과 유총의 무덤이 파헤쳐지고유씨의 종묘가 불태워졌다근준은 강남으로 도주한 동진(東晋)을 정통 정부로 보고 유연이 세운 나라를 들어 바치려 했다.

 

그러자 살아 남은 유씨 일가와 갈족 장수 석륵이 연합해 한조 부흥을 명분으로 근준을 정벌하러 왔다유씨 일가의 대표는 유요(劉曜)였다유요는 318년 10월 황제에 올라 석륵에게 조공(趙公)의 작위를 내렸다유요는 흉노족석륵은 갈족으로 서로 종족이 달랐다형식적으로 유요는 황제석륵은 제후가 되었지만석륵은 별개의 독립 부대였다유요는 근준을 정벌하기 위해 위해 석륵과 손잡았을 뿐석륵의 갈족 군대를 통제하지 못했다.

석륵은 평양에 입성해 약탈을 벌이고 궁궐을 불태워 버렸다유요는 석륵을 벌하지 못하고 오히려 작위를 올려 조왕(趙王)에 봉했다.

 

319년 유요는 폐허가 된 평양성을 버리고 장안에서 정권을 수립한 후 나라 이름을 조()라고 바꿨다석륵의 조()와 구별하기 위해 유요의 조나라는 전조(前趙), 석륵의 조나라는 후조(後趙)라고 불렀다.

 

전조와 후조의 분열 /일본 블로그 전조와 후조의 분열 /일본 블로그

 

유연이 세운 한나라는 전조와 후조로 갈라졌다시간이 흐르면서 전조와 후조는 서로 전쟁을 벌였다. 328석륵은 장군 석호(石虎)에게 4만의 군사를 주어 유요를 공격했다이에 유요가 직접 출정해 석호의 군대와 맞섰다양측 군사는 일진일퇴를 거듭했으나 서서히 전조의 군대가 밀리고 유요는 포로로 잡혔다유요의 아들 유희(劉熙)가 도망쳐 저항했지만, 329년 석호의 군대에게 포로로 잡혔다.

 

이로써 유연이 304년에 한왕에 오른지 25년만에 한()-전조(前趙)로 이어지던 흉노족의 중원 제국은 멸망했다갈족의 후조도 351년에 멸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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