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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 이어령의 책 ‘축소지향의 일본인’이 나오게 된 비화

송화강 2020-04-22 (수) 20:18 5년전 15350  

이어령의 책 ‘축소지향의 일본인’이 나오게 된 비화

“어린아이의 눈으로 본 일본의 알몸이었지”

글 | 김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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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인문학관에 보관된 ‘축소지향의 일본인’ 육필 원고 / 이어령저작권보존위원회
이어령, 하면 이 책을 빼고 논할 수 없다. 일본 문화 비평서인 ‘축소지향의 일본인’. 일본어로 먼저 써서 한국어로 번역 출간한 이 책은 여러모로 기념비적이다. 외국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한국인의 첫 저작물이라는 점이 그렇고, 외국인이 쓴 일본문화론(論) 고전인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 롤랑 바르트의 ‘기호의 제국’과 비견된다는 점도 그렇다.
   
   1982년 출간돼 35년이 지났지만 이 책의 인기는 여전하다. 두고두고 읽을수록 ‘깊은 맛’이 난다는 서평이 줄을 잇는다. 일본을 대표하는 사상가이자 문명비평가인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은 ‘한국의 知를 읽다’(노마 히데키 엮음·위즈덤하우스)라는 책에서 한국의 지(知)를 만나게 해 준 단 한 권의 책으로 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꼽았다. 그런가 하면 도쿄대 하가도루(芳賀徹) 교수는 이 책을 ‘국화와 칼’보다 우위에 뒀다. “베네딕트의 일본론은 일본의 문화와 문학, 일본인의 마음을 모르고 쓴 데 비해 이 교수는 서양인이 미치지 못하는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썼다”는 것이 하가도루 교수의 평이다.  
   
   일본 사회에 ‘이어령 신드롬’을 몰고 온 책 ‘축소지향의 일본인’. 그가 지난번 인터뷰 말미에 “다음 회 창조 이력서는 ‘축소지향의 일본인’이여” 할 때부터 기대와 설렘이 시작됐다. 이 한 권의 역작 탄생 뒤에 얼마나 많은 뒷얘기가 숨어 있을까. 어떻게 일본 유학 한 번 간 적 없는 토종 한국인이 일본인의 허를 찌르는 일본 문화 비평서를 남기게 됐을까. 우문인 줄 알면서도 다짜고짜 물었다. “일본인의 콧대를 꺾은 ‘축소지향’의 키워드는 어떻게 잡아내셨습니까?” 하고. 
      
   창조는 우연의 순간에 찾아오는 것
   
   이어령은 단답형 질문을 좋아하지 않는다. 단답형의 질문에는 대개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미소를 보인 후 무뚝뚝한 표정으로 답을 하지 않기 일쑤다. 사지선다형, OX형 질문이라면 질색인 그다. “사지선다형 시험에 길들여진 젊은이들은 맞선 볼 때에도 네 사람의 상대를 앉혀놔야 한다”는 그의 농담은 꽤 유명하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이번엔 달랐다. 단답형 답이 돌아왔다. “우연이지.”
   
   세렌디피티(serendipity). ‘준비된 자에게 따르는 우연한 행운’이라는 세렌디피티는 이런 경우에 딱 들어맞는다. 천고의 진리, 세상을 바꾼 발명품 중에는 우연의 소산이 많다. 보리수 밑에서 한순간 진리를 깨달은 석가모니, 큰 바위 밑을 지나다 퍼뜩 생각이 떠올라 글을 쓴 니체도 그렇지 않은가. ‘축소지향의 일본인’ 탄생의 우연은 프랑스 출장길에서 시작된다. 1973년, 이어령은 프랑스로 향하던 중 일본에 2~3일 머문 적이 있었다. 계획에 없던 일이다. 지인을 만나러 간 그는 일본인들의 사사로운 술자리에 동석하게 된다. 화제는 이사야 벤다산이 쓴 ‘일본인과 유대인’. 그도 일본 문화에 대해 한마디 거들었다. 생면부지의 일본인들 사이에서 어색한 분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농담식 대화였다.  
   
   “길 위에 우주인이 떨어뜨리고 간 물건이 있다고 합시다. 지구에는 없는 물건이지요. 그걸 주운 사람이 프랑스 사람이라면 눈으로 샅샅이 뜯어보고, 독일 사람이라면 귀에 대고 흔들어볼 겁니다. 프랑스의 시각문화 대(對) 독일의 청각문화이지요. ‘뛰고 나서 생각한다’는 스페인 사람은 어떻게 할까요. 우선 발로 깨버리고 그 속을 보겠지요. 의회민주주의의 창시자 영국은 정반대예요. 그게 뭔지 집으로 가져가 가족들의 투표로 결정합니다. 군자(君子)의 나라 중국인은 우선 점잖게 사방을 둘러본 다음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괴춤에 감춰갔다가 집에 가서 생각하지요. 골동품처럼 모셔두고 그것이 뭔지 알 때까지 기다리는 겁니다. 자, 문제는 일본 사람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호기심으로 좌중이 조용해진다. “그 물건을 그대로 10분의 1로 축소해서 만들어봅니다. 그리고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나루호토(아, 그렇구나!)’ 하며 무릎을 칩니다.” 당시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손바닥 계산기로 유명해진 일본 문화를 비꼰 농담이었다. 이사야 벤다산까지 싸잡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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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령 교수가 일본 도쿄의 다다미방에서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쓴 책상. 책상 위 플라스틱 연필꽂이도 당시 사용하던 것으로, 일본의 ‘100엔 숍’에서 산 것이다. 이 책상은 현재 영인문학관에 전시돼 있다. photo 이어령저작권보존위원회

   12세까지 배운 일본말로 ‘일본문화론’ 특강
   
   좌중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세계 각국 문화의 핵심을 꿰뚫은 이 농담은 농담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자리에는 일본 출판사 학생사(學生社)의 사장도 있었다. 학생사 사장은 이어령에게 귀엣말로 이야기했다. “선생님, 그 이야기를 책으로 써주시지 않겠습니까? ‘일본인과 유대인’보다 훨씬 더 재미와 의미가 있을 것 같군요.” 이어령은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꿈에도 없던 계획이었지. 그것도 초등학교 때 배운 일본어로 책을 쓰게 되다니 말이여. 그때는 그냥 한 귀로 흘려듣고 말았어.”
   
   일이 더 커진 것은 프랑스에서 돌아오던 중 다시 일본에 들렀을 때다. 마중 나온 학생사 사장은 이번엔 강연을 요청했다. 자신이 속한 로터리클럽 회원들 앞에서 특강을 해줄 수 없느냐는 것이었다. 도쿄대 법문학부 출신의 학생사 사장은 각계 저명인사들과의 인맥이 넓었다. 얼떨결에 ‘일본문화론’ 특강을 맡게 된 이어령은 일본 도쿄 팰리스호텔에 마련된 강연장에 섰다. 한국에서 온 무명 교수의 강연장에 많은 청중이 모였다. 이어령은 특유의 재치와 입담으로 말을 시작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 앞에서 하는 이 일본말은 초등학교 6학년까지 식민지 교실에서 배운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의 한계를 벗어나 사고하기 힘듭니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의 40대 교수가 아니라, 12세 초등학교 학생으로 여러분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어떻게 일본말을 배웠는지, 한국말을 사용하면 어떤 벌을 받았는지 이야기를 이어갔다. 한마디 한마디의 일본말 속에 멍들어 있는 한국의 어린이로 자란 이야기를 말이다. 장내가 숙연해졌다. 그러나 이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일본문화론 강연이 이어지자 분위기는 확 바뀌었다. 루스 베네딕트 등의 일본문화론을 비판하면서 곁들이는 이어령 특유의 예리한 분석에 좌중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객석 여기저기에서 웃음과 탄성이 터졌다. 가끔 생각나지 않는 일본말이 있으면 청중에게 물었다. “왜 이런 거 있잖아요, 그걸 일본말로?…” 하면 청중들이 퀴즈 풀듯 여기저기에서 “이거요?” “저거요?” 답했다. 답이 맞으면 청중들은 신나서 손뼉을 쳤다. 일본 지식인들 사이에서 이어령식 강연의 신화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이 강연은 회보에 실렸고, 이는 당시 주한 일본대사인 스노베 료조의 눈에 띄게 된다. 스노베 대사는 이어령 교수를 당시 이화여대 총장인 김옥길 총장과 함께 관저로 초청, 그 자리에서 이어령 교수에게 책 출간을 제의했다. 일본 외무성의 ‘국제문화교류기금’에서 초청할 테니 꼭 책으로 써달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이어령은 도쿄대 비교문화 객원연구원으로 1981년부터 1년 반 동안 그곳에 머무르면서 본격적으로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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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1년 일본 지방 강연에 가서 산책하며 찍은 사진이다. photo 이어령저작권보존위원회

   다다미방에서 쓴 ‘축소지향의 일본인’
   
   이어령이 ‘우연’이라고 말한 그 순간부터 꼬박 8년 뒤에 ‘축소지향의 일본인’이 완성됐다. 일 년 동안 전화벨 소리도, 초인종 소리도 들리지 않는 객지의 다다미방에서 읽고 쓰고, 쓰고 읽느라 무릎이 오그라들어 화장실 가기도 힘들었던 나날들이다. 이렇게 해서 출간된 ‘축소지향의 일본인’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5개월간 16쇄를 찍었고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판으로 번역 출간됐다. 일본어 문고판, 일영(日英) 대역판으로도 출간됐다. 강연회 요청과 원고 청탁, 인터뷰가 쇄도했다. 한국에서는 이 책이 출간되기 직전 매일신문 신년특집호에 전면 게재됐다.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아름다우면서도 가혹하다. 서정적 문체가 돋보이는 아름다운 책인 동시에, 호전적(好戰的) 일본인을 향해 날 선 비판을 한 책이기도 하다. 예리한 시각으로 정치, 역사, 문화, 사회, 종교 각 분야에 ‘축소지향’의 메스를 들이대고 일본 특유의 섬세한 문명을 조목조목 읽어내면서도, 일본인이 지향해야 할 가치를 문명사적 시각으로 제시한다. 책의 일부를 보자.
   
   “일본은 확대지향적이었을 때 언제나 패배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킨 것이나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것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그들은 ‘확대지향성’을 가슴속에 방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본은 그들의 축소지향성이 확대지향으로 변할 때 주변 국가에도 위험을 주었다. 그들의 뛰어난 문화는 모두 ‘축소지향’에서 비롯된다. ‘확대지향’이 될 때 그들의 섬세한 성품은 변질되고 만다. 참다운 대국이 되고 싶으면 더 작아지지 않으면 안 된다. 오니(도깨비)가 되지 말고 잇슨보시(난쟁이)가 되어야 일본은 더욱 빛날 것이다.”
   
   ‘외국인이 쓴 일본론 명저’(중공신서·中公新書)에 이 책이 소개돼 있는데, 도쿄대 하가도루 교수는 서평에 이렇게 썼다. “수재(秀才) 교수의 박식과 재기와 위트, 화려한 변설(辯說) 가운데 펼쳐지는 번득임…. 때로는 쓰리게 다가오는 아픔, 그러면서 ‘아, 그래 맞아’의 지적 쾌감이 한번 잡으면 놓을 수 없는 책.” 이 책의 저자 소개에는 “한국대사관이 3년 동안 할 일을 (이어령) 혼자서 해치웠다”고 돼 있다.
   
   이 책의 가치와 인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일본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은 2013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학자 이어령이 쓴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최근 다시 읽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은) 일본이 ‘재팬 애즈 넘버원’으로 통하던 시절에 쓰인 책이다. 현재의 일본인들에게 매우 시사적이다. 일본은 피크를 지났기 때문에 지금은 어떻게 바람직하게 축소하느냐를 염두에 둬야 할 시기인데 다시 성장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어령의 책은 ‘일본은 축소할 때가 좋은 모습이다’라는 메시지이다.”
   
   우연은 우연을 낳는다. 이번엔 오사카에서 벌어진 우연이다. 일본의 주류회사 ‘산토리’ 주최로 열린 대형 국제 세미나에서 이어령은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 대니얼 벨의 대타(代打)로 서게 됐다. 대니얼 벨이 누구인가. ‘이데올로기의 종언’ ‘탈산업사회의 도래’ 등의 저서로 유명한 세계적 학자 아닌가. 건강 문제로 불참하게 된 대니얼 벨 자리에 선 이어령. 그는 주눅 들지 않고 일본의 지식인과 외교관, 언론인들이 즐비한 자리에 자신만의 ‘일본문화론’ 강연을 펼쳤다. 이 광경은 닛케이신문에 대서특필됐다. ‘하루아침에 저명해진 이어령’이라는 제목으로. 그 유명세에 대해 이어령은 “국내에서도 누리지 못한 놀라운 충격파였지”라며 이렇게 말했다.  
   
   “한번은 지하철을 탔더니 ‘후지’라는 주간신문 표지 전면에 내 사진이 실린 거여. 지하철에서 많이 읽히는 신문이라 여기저기서 내 사진이 선거포스터처럼 깔려 있었지. 쑥스럽더라고. 몽타주로 수배된 인물처럼 숨을 곳이 없었지. 결국 지하철에서 내리고 말았어. 허허.”
   
   그가 일본 사회에 한 역할은 ‘지성의 한류’라 할 만하다. ‘축소지향의 일본인’ 출간 이후 이어령에게는 러브콜이 쏟아졌다. 2000년 나라현의 평성천도 1300년 기념 행사 당시, 나라현 고문까지 맡았고 나라현 지사는 그에게 나라현립대학교 ‘총장’(일본에서는 ‘학장’으로 부른다)직을 제안했다. 일본에 건너가 신문물을 전파한 백제의 왕인 박사처럼 폐부를 찌르는 문명 읽기를 통해 일본 사회에 큰 메시지를 던진 것에 대한 은공의 표시다. 하지만 이어령은 이 제안을 줄곧 사양했고, 결국 명예총장에 임명됐다.
   
   그래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어떻게 토종 한국인이 수천 년 이어진 일본문명론의 정곡을 찌르는 책을 쓰게 됐을까. 정치와 경제, 역사와 문화의 방대한 문명사를 어떻게 ‘축소지향’의 키워드로 풀어낼 발상을 하게 됐을까. 그 생각의 창조 과정이 궁금했다. 따져 물었더니 그는 또 “허허” 하는 너털웃음을 먼저 보였다. “그건 말이야” 하면서 이렇게 풀어냈다.  
   
   “어린 시절 모국어보다 일본어를 먼저 배우고 익혀야 했던 뼈아픈 역사의 상흔에서 빚어진 것이지. 하지만 이 설명으로는 부족해요. 더 중요한 건 시선이지. 내가 일본 문화의 알몸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무런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일본 문화를 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가령 우리집 벽에는 붓과 책이 그려진 민속화가 걸려있는데, 일본 친구의 집 다다미방 벽에는 일본도(日本刀)가 있었지. 어쩌다 부엌에 있어야 할 식칼이 방 안에 있으면 어머니는 불상지물(不祥之物)이라며 얼른 치워버렸거든. 이 생활풍습에서 보면 참으로 놀라운 차이였지. 하긴 서양 사람들은 아예 칼을 손에 들고 식사를 하지만.”
   
   어린아이의 눈으로 본 편견 없는 일본 문화는 그의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였고, 이는 예리한 관찰력, 방대한 독서량, 독창적 사고력과 어우러지면서 시너지를 낳았다. 일본 문화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시각을 갖게 됐고, 한국 문화가 일본 문화나 중국 문화와 어떻게 다른지 식별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갖게 됐다. 이것은 후일 문화론으로 발전하고, 21세기 문명론으로 이어지고,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탄생의 뿌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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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각국의 언어로 출간된 ‘축소지향의 일본인’. 한국어는 물론 영어·프랑스어·중국어판으로도 번역 출간됐다.

   책 한 권을 쓴다는 건…
   
   이어령 교수는 인터뷰 며칠 후 짧은 이메일 편지를 보내왔다. 가급적 ‘축소지향의 일본인’ 후기에 실린 글로 끝맺음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요청이었다. 그는 “글을 쓴다는 것이, 책 한 권을 만든다는 것은 이런 것”이라며 “내 진실한 마음이 묻어 있는, 짧지만 애절하기도 한 글이니 꼭 이 부분을 넣어주면 고맙겠어요”라고 적었다. ‘축소지향의 일본인’의 집필 과정은 무릎이 오그라들 정도로 고됐지만, 그의 후기는 덤덤하다. 그래서 더 가슴 아리게 다가오는 글이다.
   
   “탈고하는 날 나는 처음으로 겸허하게 무릎을 꿇었다. ‘감사합니다. 내가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나는 아무것도 원치 않습니다. 다만 소원이 있다면 보잘것없는 이 하얀 원고지 위에서 숨을 거두게 하소서.’ 그러나 집으로 장거리 전화를 걸었을 때 한 말은 단 한마디 ‘나 글 다 썼어…’였다. 감격도, 기대도, 열정도,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것은 다 사위어버린 숯덩어리와도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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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인> 북리뷰
 
  • 김진호 기자
  • 승인 2017.12.29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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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pixabay>

 

[한국강사신문 김진호 기자] "한국인의 행동 패턴은, 이완 문화에 그 뿌리를 박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잘 쓰이는 말은 '차렷'이 아니라 '풀다'라는 말이다. 말하자면 부동자세와는 정반대로 모든 긴장을 푸는 자세인 것이다. 한국에서는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 '슬슬 몸을 풀어볼까'라고 말한다. 한국에서는 뭔가를 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일본 사람처럼 '간바레(힘내라)', '기오쓰케테(정신 바짝 차려!)'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 푹 놓고' 하라고 한다."(본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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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문학사상사>

 

이 책 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지난 번 일본 답사여행에 갔을 때 읽었던 책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이라 일본인, 일본문화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다시 말해 일본 관련 책을 읽을 멋진 이유가 생겨서 중고서점에서 찾아보다가 우연히 발견한 이어령 선생님의 책이다. 이 책은 일본인과 일본문화의 축소지향성을 다양한 관점에서 풀어서 설명해주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일본식 발음을 그대로 표기하여 전반적으로 바로 이해가 안 가는 부분도 있었지만, 이런 콘셉트를 잡고 일본인과 일본문화에 대한 한 권의 책을 써낸 이어령 선생님의 내공에 완전 감탄했다. 게다가 책 표지에 있는 서평에서는 일본인 평론가나 교수들이 이 책을 높게 평가하고 있으니 왠지 자랑스럽기도 하다. 곧 일본으로 사색여행을 떠나는데, 관점의 폭을 좀 더 넓히고 여행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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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pixabay>

 

“한국인의 힘은 버들처럼 흔들거리는 유동성에서, 말하자면 '풀어'주는 데서 힘이 생기고, 일본인은 거꾸로 세이자처럼 바싹 '죄는' 데서 힘이 솟는다. 일본인은 흔히 '몸에 녹이 슨다'는 표현을 한다. 인간의 몸을 칼에 비유한 말이다. 칼은 쓰지 않을 때도 매일 닦아두지 않으면 녹이 슨다. 사람의 몸도 계속 긴장해 있지 않으면 일하지 않을 때라도 칼처럼 녹이 슨다고 생각한 것이다. 다도도 따지고 보면 녹을 닦는 방법이다. 한국인은 자신의 몸을 칼이 아니라 거문고와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거문고는 칼과는 반대로 쓰지 않을 때는 그 줄을 풀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 팽팽한 채로 놔두면 끊어져 버리고 만다.(중략) 일본의 역사를 보면 '축소지향' 때는 번영하지만, 그것이 성공해 너무 순조로워지면 그것을 버리고 히데요시처럼 거대주의로 나가게 된다. 그리고 확대지향으로 향하면 지금까지의 일본인과는 전연 다른 사람이 되어 그 섬세함은 파괴되고, 판단력을 궤도를 벗어나며, 미적 감수성은 잔인성으로 바뀌어버리고 만다. 확대지향에 익숙지 않아 부정적 가치만이 드러나게 된다.”(본문 중)

 

저자 이어령은 언론인, 교수, 문학 평론가, 소설가, 시인, 문화부 장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종횡무진 활약해 온 이 시대의 대표적 지성이다. 1956년 <한국 일보>에 ‘우상의 파괴’를 발표하여 주목받았으며, 전후 세대의 비평가로서 활약하였다. 그는 문학 비평의 관점에서 문학과 문화 전반에 관해 독특한 시각의 글을 많이 썼으며 대상의 특성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그로부터 보편적 논리를 이끌어 내는, 기지에 찬 감각을 보여 주고 있다. 저서로는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디지로그>, <축소 지향의 일본인>, <지성에서 영성으로>, <생명이 자본이다>, <이어령의 가위바위보 문명론>, <이어령의 보자기 인문학>, <지성의 오솔길>, <장군(將軍)의 수염> 등이 있다.

 

김진호 기자  kimjh@lecture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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