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황이 된 백제의 왕자들 - 김용운 > 종합 역사자료실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종합 역사자료실

[일본사] 천황이 된 백제의 왕자들 - 김용운

송화강 2022-06-30 (목) 00:47 3년전 8901  

천황이 된 백제의 왕자들-정부 혁명 쿠테타로 얽힌 일본 천황가 / 저자 김용운 / 출판사 한얼사

  

https://www.youtube.com/watch?v=zLAtbwRRKsM

 

『백제의 왕자들』은 수학적 사고를 통해 한일 고대사의 수수께끼를 풀어내고 있다. 다양한 자료와 고증을 통해 <기기(紀記)>에 담긴 신화가 가야와 백제의 왕가와 연관됨을 밝히고 있다.

 

40년 간의 한일 연구를 집대성한 김용운 교수의 ‘원형사관’ 왜 천황은 ‘신’이 되어야 했는가?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천황 헤이세이(平成)는 자신에게는 무령왕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선언, 많은 일본인에게는 큰 충격을 주었다. 이것은 1,200여 년 전 간무 천황(桓武天皇)의 어머니가 백제 의자왕의 핏줄임을 명백히 밝힌 것이다. 그러나 사실인즉 그 이전부터 오진, 게이타이를 포함해서 천황가는 이미 백제 왕가와 동족이었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전의 일본 역사교과서는 “천손인 천황은 BC 660년 2월 10일 규슈 타카치호(高千穗宮)산에 강림하여 지금까지 면면히 혈통을 이어왔다.” 는 내용을 담았으며 그날을 건국기념일로 삼았다. 천손강림의 내용이 담긴 “타카치호 산꼭대기에서 내려오는 천손에게 모두 엎드려 맞이했다.”라는 노래는 천황이 외부(한반도)에서 온 세력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인데도 한국에서 온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왔다며 ‘일본은 신의 나라’, ‘특수한 나라’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수한 역사를 연출해 온 만세일계의 실체를 밝히다

한일 간에는 역사문제가 자주 거론되는 데 판이한 원형에 기반을 둔 양국의 정사부터가 서로 다른 역사관으로 편찬되었으므로 좀처럼 제대로 역사인식을 도출해내지 못하는 것이다.
한일 간의 근본문제는 서로의 원형을 이해하는 데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원형을 외면한 채 아무리 역사인식을 외쳐도 자국의 것조차 제대로 인식할 수 없다. 역사적 ‘수수께끼’란 상식으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특이한 ‘비차(非次)의 원형’이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일본역사의 최대 비밀은 천황가에 있는데 그 핵심은 만세일계(萬世一系)의 믿음에 뿌리를 두고 있다. 사실인즉슨 가야계 천황과 교체된 백제계(오진과 게이타이) 두 천황에 의한 혁명과 쿠데타 등으로 점철되어 있으며 이들 진왕(辰王)가 출신의 왕통(王統)아래 겐지·헤이시 가문의 드라마가 일본역사를 연출해 왔다.

수학적 사고로 풀어낸 한일 고대사의 수수께끼

저자는 한국을 대표하는 수학자이자 한일문화 비교의 대가로 수학적 사고에서 출발한 언어학 <천황은 백제어로 말한다>를 이미 출간한 바 있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밝힌 ‘일본어 백제설’은 한국은 물론 일본의 독자들에게 적잖은 화제를 모았고 1,300년 동안 풀리지 않았던 한일어의 수수께끼를 풀어냈다. 그 뒤를 이어 이번에 출간한 <천황이 된 백제의 왕자들>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수학적 사고를 통해 한일 고대사의 수수께끼를 풀어내고 있다. 다양한 자료와 고증을 통해 <기기(紀記)>에 담긴 신화가 가야와 백제의 왕가와 연관됨을 밝히고 있다.

저자는 당시의 시대정신이 반영된 편찬자의 마음부터 이해하기 위해 원형을 파악, 민족사적 사건의 심리적 배경을 풀어 지금까지의 역사가 주로 문헌과 고고학적인 자료로만 관찰하고 쓰여 진 것과 달리 실제로 역사를 이끌어 온 원형을 통해 역사의 마디 마디에 개입된 특수성을 발견해 냈다. 특히 이 책의 주제인 특수한 천황가와 백제왕가의 관계를 문헌·고고학적 자료 이외에 민족 원형을 고려(考慮)한 ‘원형사관’으로 접근해 이해시키고 있다.

| 내용 구성 |

1. 진왕(辰王)가, 백제왕가와 천황가의 관계
2. 일본 세 왕조와 한반도 왕가의 관계
3. 伯濟와 百濟(두 개의 백제왕가)의 존재
4. 신라를 정벌했다는 진구(神功)의 실체
5. 규슈세력, 큰 나라와 백제연합의 실체(百濟가 구다라가 된 까닭)
6. 두 개의 야마토(邪馬台과 大和)의 관계
7. 오진 천황, 곤지와 게이타이 천황, 무령왕의 실체와 관계
8. 백제왕과 천황이 된 곤지의 다섯 왕자의 실체
9. 간무 천황의 탈백제 노선의 실체
10. 일본의 특수성과 천황제 관계

 

 

저자소개

 

저자 김용운(단국대학교 석좌교수)
한국을 대표하는 수학자이자 한일 문화 비교의 대가.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와세다 대학, 미국 어번 대학원을 거쳐 캐나다 앨버타 대학원에서 각각 이학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고,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 조교수, 일본 고베 대학과 도쿄대학, 일본 국제문화연구센터 등에서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국내에서는 수학사학회 회장, 한양대학교 대학원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 수학문화연구소장이다. 저서로는 「한국인과 일본인」시리즈, 「한일간의 얽힌 실타래」, 「일본어는 한국어다 1,2」, 「천황은 백제어로 말한다」 외에 다수의 수학 관련 저서가 있다.

 

 

목차

 

1 실감할 수 있는 역사
1-1 역사를 생각한다
1-2 이상한 나라 일본
1-3 실감 나는 역사

2 고대의 반도와 열도
2-1 고대의 한반도
2-2 기마민족 중심의 역사
2-3 신화의 이동
2-4 신화로 보는 역사이전

3 역사는 멈추지 않는다
3-1 단군민족의 발자취
3-2 열도의 여러 왕국
3-3 약소국의 중국 외교

4 고대 한일사의 중심 백제
4-1 백제와 일본
4-2 백제 신라의 숙명적 대립
4-3 광개토대왕비에서 나타나는 두 백제
4-4 백제 출신의 왜왕

5 천황가의 수수께끼
5-1 천황의 비밀
5-2 천황은 만세일계가 아니다
5-3 진구 황후의 실체

6 백제 왕자들의 운명
6-1 백제계 천황가의 시조 오진
6-2 게이타이 천황
6-3 곤지의 다섯 왕자
6-4 反신라국 노선이 만든 나라

7 특수한 나라의 이상한 천황
7-1 [기기]의 탄생
7-2 천황신앙
7-3 일본 특수론

맺음말
참고문헌

 

 

 

[월요인터뷰] 수학자 김용운 "한·일 집단無의식이 양국 갈등의 원인…구조적 틀에서 풀어야" [한국경제] 2014.08.18

韓·日 관계 연구하는 원로 수학자 김용운 한양대 명예교수


한·중·일 둘러싼 역학구조는 1000년 전과 동일
백제 유민의 恨이 일본 지도층의 피해의식으로 고착
80대 후반에도 건강한 이유는 끊임없는 호기심때문

인터뷰가 끝날 무렵 노학자의 시선이 허공을 향했다. 눈가에 번지기 시작한 눈물. 목소리도 물기에 젖어 점점 안으로 말려들었다. 지난주부터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수학자대회가 감정의 빗장을 푼 계기였다. “광복 무렵 우리나라에 수학자는 남북한을 합쳐 고작 다섯 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랬던 한국이 세계수학자대회를 개최하다니….” 김용운 한양대 명예교수(87·사진). 일본과 수학이라는 두 가지 화두의 접점에 서 있는 국내 유일의 학자다. 1927년생. 팔순이 넘은 고령이지만 한 번 불이 붙은 논리는 막힘이 없었다. 역사 얘기에 외교 문제가 섞여들더니 어느새 복잡계와 프랙털이라는 수학 용어들이 뛰어다녔다. 미리 준비해 간 질문지는 끼어들 틈을 찾지 못했다. 받아적던 수첩을 덮으며 마지막으로 건강 비결을 묻는 상투적인 질문을 던졌다. 김 교수는 ‘호기심’이라고 답했다. 그 순간 그는 청년이었다.

▷한·일 관계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그럴 때가 됐습니다. 한동안 일본인들에게는 죄의식이 많았습니다. 전쟁을 통해 주변국에 피해를 입혔다는 것이죠. 상대적으로 우리나라는 외교적인 측면에서 우월한 입장을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상 등을 거치면서 일본의 죄의식이 옅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인 사이에서는 ‘이제는 한국도 잘살게 되지 않았느냐’는 인식이 확산됐습니다. 표면적으로는 한국의 우월적 지위가 사라지고 대등한 상황이 된 것이죠. 독도와 위안부 등의 문제가 예전에 비해 더욱 폭발력을 갖게 된 것은 이런 상황 변화에 기인합니다.”

▷어떻게 양국 관계를 풀어나가야 할까요.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과 일본 양쪽이 모두 깊은 피해의식을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걸 서로 이해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지금 한국과 일본에 사는 대부분 사람들은 일제 시대를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관념적으로만 과거의 역사를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죠. 여기에 피해의식이라는 집단 무의식이 스며들면서 고약한 국면이 돼 버렸습니다. 상대방 국가에 대해 어떤 말을 해도 애국이 된다는 이상한 인식도 퍼져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익이 어디에 있는지 그 어느 때보다 잘 살펴서 슬기롭게 대처해야 할 시점입니다.”

▷일본이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는 건 무슨 뜻인가요.

“한·일 갈등의 기원이 저는 663년에 벌어진 백강 전투에 있다고 봅니다. 아시다시피 백강 전투는 백제·왜 연합군이 당·신라 연합군에 패배한 싸움입니다. 당시 일본은 백제의 분국, 즉 속국과 비슷했습니다. 일본어로 백제를 ‘구다라(くだら)’라고 하는데 이는 우리말 ‘큰 나라’에서 온 것입니다. 백제가 일본의 본국이었다는 뜻이죠. 당나라와 신라에 패퇴한 뒤 백제인들은 대거 일본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그 수가 3만2000여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당시로는 엄청난 규모죠. 이들은 나중에 일본 정치권의 지도층을 형성하는데 그들의 가슴에는 항상 신라 때문에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됐다는 피해의식이 깔려 있었습니다. 저는 이걸 ‘원형’이라 부릅니다. 이런 집단 무의식은 지금까지도 내려오고 있고, 이게 한·일 관계를 매번 꼬이게 만드는 근본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비슷하고 가까워서 더욱 미워하는, 일종의 ‘근친 증오’라고 볼 수 있죠.”

▷1300여년 전의 역사적 사실을 지금의 외교관계와 엮는 건 좀 무리 아닌가요.

“하하. 그런가요. 하지만 제 눈엔 명확히 보입니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역사적 증거들이 남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 야마구치현이라고 아시죠? 여기가 바로 백제인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했던 지역입니다. 근데 희한한 건 이곳이 바로 한국 침략의 사상적 토대가 된 정한론(征韓論)의 발상지라는 점입니다. 정한론의 원조인 요시다 쇼인을 비롯해 조선 초대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 조선 초대 총독이었던 데라우치 마사다케, 을미사변을 일으킨 미우라 고로 일본공사 등이 하나같이 야마구치현 출신입니다. 아, 깜빡했네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고향 역시 야마구치현입니다.”

▷얘기는 흥미롭지만 금방 와 닿지는 않습니다.

“제 얘기의 결론은 한·일 관계를 하나의 구조적인 틀로 재조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양국의 갈등 구조를 이루는 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좀 전에 말한 양국의 집단 무의식이 그 하나고,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사이에 끼어 있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수성이 또 다른 한 축입니다. 이런 기본 구조는 지금도 전혀 변함이 없습니다. 최근 들어 중국이 부상하면서 우리나라가 다시 외교적으로 샌드위치 신세가 된 것도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1000년 묵은 집단 무의식은 쉽게 청산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정학적 특수성은 아예 바꿀 수도 없는 요인입니다. 따라서 한·일 양국은 현 단계에서 풀기 어려운 문제는 미래로 넘기고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게 합리적입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이 떠오르네요.

“수학과 물리학에 ‘프랙털 이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부분의 구조가 전체의 구조와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는 개념입니다. ‘하나가 곧 전체이고, 전체가 곧 하나(一卽多 多卽一)’라고 하는 불교의 화엄경 사상과 상통하는 얘기죠. 집단 무의식으로 역사를 풀어 보려는 저의 노력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저는 그걸 ‘원형 사관’이라고 부릅니다.”

▷일본이 우경화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동일본 대지진의 영향이 컸다고 봅니다. 어느 나라든 대재앙이 닥치면 국민의식이 하나로 뭉칩니다. 자존감을 지켜내기 위해서죠. 정치가들은 이런 시류에 편승하기 마련입니다. 응집된 국민의식의 분출구를 찾아 주려고 노력합니다. 손쉬운 방법은 공통의 적을 만드는 것이죠. 일본에 가장 적당한 대상은 한국입니다. 반한(反韓) 의식으로 일본을 뭉치게 하는 전술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나 일왕 사죄 요구 발언은 이런 추세에 기름을 부은 격입니다. 아베 총리를 비롯한 우익 세력들은 겉으로는 양국 관계를 걱정하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아마 웃고 있을 겁니다.”

▷수학자이면서 역사 관련 서적을 20권 이상 내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수학은 기본적으로 구조의 학문입니다. 노엄 촘스키의 언어학이나 레비 스트로스의 문화인류학도 착안점은 수학입니다. 수학자이기에 역사학자와는 다른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볼 수 있고, 그런 생각을 꾸준히 책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요즘은 ‘바람 물 불’이라는 제목의 역사서를 쓰는 중입니다. ‘신바람’의 나라인 한국은 ‘바람’으로, 깊은 호수처럼 도도하면서도 속내를 알 수 없는 중국은 ‘물’로, 벚꽃처럼 화려하게 피었다 순식간에 사그라지는 화산열도의 나라 일본은 ‘불’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 역시 추상화한 개념으로 구조를 짜는 수학적 사고의 연장선에 있는 작업입니다.”

▷지난주부터 서울에서 세계수학자대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세계수학자대회에 처음 가본 것은 1969년입니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대회였죠. 그때 함께 간 한국 수학자는 채 열 명이 안 됐어요. 그런데 어느덧 국력이 커져 우리나라에서 수학자대회가 열리다니…. 그때는 정말 이걸 상상도 못 했습니다. 어젯밤엔 너무 감격스러워서 잠을 한숨도 못 잤습니다. 한숨도….”

▷특별한 건강 비결이라도 있습니까.

“호기심이 강해서 그런가 봅니다. 요즘도 뭐 하나 궁금한 게 생기면 밤을 거의 새워 버리죠. 꿈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때는 벌떡 일어나 메모도 하고 그럽니다. 하하.”

■ 김용운 한양대 명예교수는

수학보다 한·일 연구로 유명…광주일고에서 교사 생활도

김용운 한양대 명예교수는 본업인 수학보다 한·일 문화와 역사 연구로 더 유명한 학자다. 일본 와세다대 공대 출신인 그는 한때 광주일고 수학교사를 하기도 했다. 임채정 전 국회의장, 김황식 전 국무총리 등이 당시 제자들이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미국으로 유학가면서 전공을 수학으로 바꿨다. 그는 한국에서 아직 세계적인 수학자가 나오지 않는 이유를 “미친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돈이나 권력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수학의 세계에 빠져드는 사람이 드물다는 얘기다. “중·고등학교 교사를 하던 시절 정말 뛰어난 녀석을 세 명 봤는데, 그중 둘은 의사가 되고 하나는 학원을 차리더군요.”

△일본 도쿄 출생(1927년) △와세다대 광산과 △캐나다 앨버타대 수학 박사 △한양대 수학과 교수(1969~1993년) △한양대 대학원 원장(1987~1990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2000~2003년)

 

https://blog.daum.net/jos9838/411

 
 
 

 

  수학자 김용운 교사가 저술한 <천황이 된 백제의 왕자들>이란 역사서가 있다.  김용운 교수는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의 대표적인 수학자로 활동하고 있으나 그의 연구 범위는 한국어와 일본어의 비교, 문화비교 등으로 폭이 넓은데 일본관계 한국사에 대해서도 매우 새롭고 타당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 2010년 책을 발간한 후 2013년에 방송에 출연하여 이뤄진 동영상에서 책 내용을 넘어선 새로운 주장들이 등장하고 있다.   

 

 (1) 진국과 일본의 관계

  중국서적(어떤 서적일까?) 에 왜인은 진인으로부터 왔다, 라고 쓰여있다. ( 중국의 삼국지 위지에도 일본에는 진인들이 살고 있었다 라는 구절이  있다. 진국은 마한이전에 청동이 문물을 가지고 천안 직산에 도읍을 두고 존재했던 부족연맹체 집단이다. 그 진국이 일본으로 진출했다는 것이다.)


 (2) 가야계가 일본 제 1 왕조(야마토 정권)를 세우다.


   신라계는 주로 시마네현 근처 이즈모에 진출했으나 장소가 좁아서 산맥을 넘어 지금의 나라지방으로 들어가서 살았다.  큐수지방에는 넓은 평야를 바탕으로 가야계가 세력을 넓히고 있었다.


  이 때 비류백제계가 일본에 진출해 규슈에서 가야계를 쫓아내고 담로국, 쿠나국을 만들었다. 그러자 패잔한 가야계가 나라지방으로 이동해서 철기를 이용해 청동기를 사용하던 신라계를 정복하고 야마토정권을 수립했다. (야마타이는 야마토와 같은 말이며 중세이전에 일본에 야마타이라는 말은 없었다.)

 

   이  가야계인 진무덴노가 일본의 제 1왕조를 열었는데 일본 신화는 가야의 구지봉 신화와 똑같다. 그래서 일제 시대 일본총독부들이 김해김씨 족보를 몰수하고 보지 못하게 했다.


 (3) 백제계가 제 2왕조를 세우다.  (오진 덴노)  


   일본 역사는 신공왕후가 원래 일본에 살았는데 신라를 정벌하고 일본으로 돌아와 오진천황을 낳은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신공왕후는 원래 일본에 있지 않았고 백제 사람으로 가야에서 활동하다가 신라국경선까지 갔다가 광개토대왕에 밀려서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중국서적에 기록되어 있으며,  일본 사람들은 신공왕후가 백제계란 것을 속이기 위해 그와 같이 기술을 한 것이다.


  신공왕후가 일본으로 갈 때 한사코 임신을 늦추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은 백제에서 태어날 경우 일본토착세력의 지지를 얻기 힘들기 때문에 굳이 일본에 도착해서 왕자를 출산하도록 한 것이다.


  신공왕후와 함께 이동한 백제계는 쿠나국을 세운 세력과 연합해서 나라를 정복하고 제 2왕조를 열게 된다. 신공왕후는 남편이 덴노라고 하는데 실존인물이 아닌 가공인물이며, 오진덴노를 출산하여 오진덴노가 제 2왕조의 왕이 되는데, 오진이란 한자로 웅진과 같은 말이다.


  여기서 웅진은 충남 공주를 의미하는 것으로   웅진에는 수촌이란 지명이 있는데 수촌을 일본어로 읽으면 미쓰홀 즉 미추홀이 된다. 미추홀을 인천으로 추정하는데 미추홀이 인천에서 웅진으로 이동하였으며, 이 수촌지역에서 청동신발 등 왕후급의 유물이 발견되어. 이곳이 비류백제의 영토였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4) 백제계가 제 3왕조를 세우다. (계체 덴노)

 

   오진 왕조 말기에 일본에 왕이 없어지는 혼란기가 온다. 이 때 호족들이 서로 왕을 옹립하여 싸우고, 더러는 왕으로 옹립하여 오는데 자신을 해치려 오는 줄 알고 도망을 가는 일도 벌어진다.

   이에 개로왕은 그의 동생 곤지를 일본으로 파견하는데 임신한 자신의 후궁을 딸려서 일본에 파견하였다. (곤지는 다섯명의 아들을 데리고 갔다고 함) 곤지를 일본말로 적으면 게이타이 즉 계체가 된다.

  곤지가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후궁이 무령왕을 출산하였다. 곤지왕은 일본을 다스릴 임금을 만들기 위해 임신한 궁녀를 보낸 것이었는데, 나중에 백제본국의 상황이 어려워지자 백제로 돌아와 왕이 된다.

  무령왕이 왕이 되자 곤지는 무령왕의 이름이 적힌 거울(인물화상경)을 하사했는데 그 거울이 일본에서 17개나 발견이 되었다. 왕이 되기 이전의 곤지는 그런 방법으로 사람들을 모아서 천황이 되었다.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회원로그인

최신 댓글
  • 게시물이 없습니다.

접속자집계

오늘
249
어제
500
최대
4,666
전체
1,069,600


Copyright © 한퓨쳐.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