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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학] 동북아 신화의 뿌리

송화강 2019-05-12 (일) 22:30 6년전 12714  

동북아 신화의 뿌리


이 자료는 [왜 우리 신화인가 : 동북아 신화의 뿌리, <천궁대전>과 우리 신화 (김재용,이종주 공저 | 동아시아 |

2004년 11월)] 라는 책의 일부입니다.




동북아 신화의 뿌리 찾기

 

 

동북아시아그 신화적 뿌리

 

백두산 저쪽 만주족몽골족도 백의민족 )



만주족은 여진시대부터 백색을 숭상하였다 한다여진족은 의복을 대개 흰색으로 만들어 입었다.

송나라 때의 기록인『삼조북맹회편三朝北盟會編(3)에는 “의복은 흰색을 좋아하고 짧게 입었는데

왼쪽으로 여미었다.” “금나라의 색은 백색인데 완안부完顔部에서도 백색을 숭상하였다”고 기록하였다.

만주족은 백색을 숭상하였으며한족이 숭상하는 붉은색은 꺼려하였다.


흰색을 숭상하는 이유는 세 가지로 설명된다.


첫 번째는 기능주의적 설명으로눈이 많은 환경에서 수렵으로 생계를 꾸려간 사람들이 일종의 보호색

으로서 흰옷을 입고 사냥한 관습에서 유래하였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종교관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흰색숭배는 만주족뿐 아니라 몽골족도 마찬가지다.

몽골족도 백색 숭배를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는 민족이다.

만주족이나 몽골족 모두 산악지대에 살면서 산을 생명의 기원으로 간주하고 산신을 숭배하는 관념이

아주 강한데이들이 신비롭게 여기는 산은 대개 높고 멀리 보이는 흰 설산雪山이었다.

그 설산은 여름에는 눈을 녹여 생명의 물을 내려주고 대지의 풍요를 가져오는 경외의 대상이었던 것

이다.

인도 북부 히말라야의 민족들도 설산을 숭배하는데이들이 설산의 흰 생명력을 남성의 정액과 동일시

하였다는 설명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만주몽골지역에서 그런 의식을 보여주는 증거는 찾기가 쉽지 않다.


세 번째는 만주족의 빛즉 밝음 숭배가 흰색 숭배로 이어졌다고 설명할 수 있다.

만주족은 별에게 제사하는 성제星祭를 조상제사보다 오히려 중시하였다.

이들은 해별의 빛으로 한해의 강우량과 운세를 점칠 정도로 빛을 중시하였고 그에 대하여 예민한

감각을 가져왔다.

또한 우주 간의 별들도 생명과 영혼과 지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별들은 빛나는 백색 날개를 가지고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날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어두운 밤에는 해와 달을 쫓아가면서 백색의 빛을 인간에 주고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샤먼들은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의 빛을 하늘의 눈이라 찬미하고그 백색을 하늘의 원색이고 해와 달의

원색이며별빛과 불빛의 원색이라고 간주하였다그래서 젊음의 색깔을 백색인 데 비하여 장년은 황색

이고노년은 쇄락과 흉함을 뜻하는 붉은색이라고 보았다.

백색은 하늘의 색이고 생명의 색이며 상서로운 색이었던 것이다.


창세여신 중 하나인 별자리 여신 와러두허허는 사람의 몸에 새 날개를 지녔는데 몸에는 백색 날개옷을

입었다고 묘사된다그래서 샤먼들은 이 신이나 별자리신에 제사드릴 때 반드시 흰색 치마를 입어야

했다만주족에게 백색은 인간의 삶에 필요한 빛을 주는 해와 달과 별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여하튼 몽골족과 만주족이 흰색을 숭상하며 흰옷을 즐겨 입었다는 사실은 동방의 ‘백의민족白衣民族’이

우리뿐만이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몽골과 만주 지역으로부터 거대한 백의민족의 물결이 한반도에까지 산맥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우리의 사촌쯤 되는 것인가우리와 그들은 어떻게 다른가?

 

 

백두산만주족 시조 출생의 성지 )

 

만주족의 선조는 장백산에서 발상發祥했다산은 높이가 200리고 둘레가 천여 리며나무는 높고 숲이

무성하여 영기를 품고 있다.

산 위에는 달문이라는 못이 있는데 둘레 80리로 근원이 깊고 광활히 흐른다.

압록鴨綠혼동混同애호愛滹 세 강이 여기에서 흘러나온다.


압록강은 산의 남쪽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요동 남쪽 바다로 들어가고혼동강은 산의 북쪽으로 흘러

북해로 들어가고애호강은 산의 동쪽으로 흘러 동해로 들어간다.

이 세 강은 기이한 것을 품고 길러서 구슬과 보배를 산출한다.

장백산은 바람이 거세고 기후가 찬데기이한 나무와 신령스런 약초가 거기에 적응하여 오래 생명을

연장한다여름마다 산으로 돌아오는 짐승들은 모두 거기에 깃들여 쉬게 마련이다.


장백산 동쪽에 있는 포고리布庫里 산 아래에 포이호리布尒湖里라는 연못이 있었다.

옛날 천녀天女 셋이 있었는데 첫째가 은고륜恩古倫둘째가 정고륜正古倫셋째가 불고륜佛古倫이었다.

이들이 포이호리 못에서 목욕을 하는데 신까치神鳥가 붉은 과일朱果 하나를 물고 와서 불고륜의 옷에

두었다막내는 그것을 아낀 나머지 땅에 그대로 두지 못하여 입에 물고 옷을 입다가 돌연 붉은 과일이

뱃속으로 들어갔다그런데 임신이 되었다두 언니에게 “나는 배가 무거워져서 날아오를 수 없는데

어떡해?” 하고 말하니두 언니가 “우리들은 선계仙界의 몸이니 걱정하지 마라.

하늘이 너를 임신하게 하신 것이니 몸을 풀고 돌아와도 된다” 고 말하고 떠나갔다.

불고륜이 한 사내아이를 나으니나면서부터 말을 하였고 기이하게 생겼다.


아이가 성장하자 어머니는 붉은 과일을 삼키고 임신하게 된 사실을 알려주며 명령하였다.

“성씨는 애신각라愛新覺羅이름은 포고리옹순布庫里雍順으로 하여라하늘이 난국을 안정시키려

너를 낳았으니 가서 세상을 다스려라물을 따라 내려가면 그 땅에 이를 것이다.

어머니는 작은 배를 주고는 허공으로 사라졌다.


아들은 작은 배를 타고 강을 따라 내려가다가 나루에 이르러 물가에 올랐다그러고는 버들가지와

쑥을 잘라 방석을 만들어 그 위에 단정히 앉아 있었다.

한편 그 지방에선 세 성씨들이 서로 족장이 되려고 매일 무기를 들고 원수처럼 죽이는 싸움이 그치질

않았다어느 날 물을 길으러 나루에 왔던 사람이 포고리옹순을 보고 이상히 여겨 무리들에게 말했다.

“싸우지 마시오물긷는 나루에서 한 남자아이를 보았는데 그 모습이 보통사람이 아니었소.

하늘이 틀림없이 이런 사람을 헛되이 보낸 것 같지는 않으오.” 모두가 가보고 기이하다고 생각하여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나는 천녀 불고륜의 소생으로성은 애신각라이고 이름은 포고리옹순이오하늘이 당신들의 싸움을

안정시키라고 나를 내시었소”하였다무리들이 놀라며 “하늘이 성인을 내어주셨으니 걷게 할 수 없다”

고 하며 손을 맞잡고 태워 집으로 모셨다.

세 성씨들이 의논하기를 “싸움을 그만두고 이 사람을 임금國主으로 모시고 백리百里 처녀와 결혼시

키자”고 하였다마침내 의견이 모아져서 백리를 부인으로 삼게하고 우두머리貝勒로 모시어 그 싸움은

안정되었다이때부터 포고리옹순은 장백산 동쪽 아막혜俄漠惠 벌판의 아타리俄朶里 성에 살면서

국호를 만주滿洲라 하니이것이 만주가 개국의 터를 연 시초다.

 

‘청태조무황제 淸太祖武皇帝’의 실록 자료다만주족이 몽골문자를 빌려와 자기 문자를 만들고 본격

적인 역사로 기록한 『만문노당滿文』에 1635년 이러한 기록이 처음 기재된 후 이 자료는 여러

종류의 역사책에 사실로써 기록되어 있다.


최학근 교수가 일찍이 번역하여 소개한 『만주실록』에서도 이러한 자료를 확인해볼 수 있다.

만족 민간 고사선』등의 민간설화 자료에 실린 많은 이런 종류의 설화들은 만주족이 이를 진실된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만주족 시조신화와 유화 )

 

중국 청나라는 우리가 오랑캐라고 하던 만주족이 세운 나라다.

조선시대의 우리 조상들은 그들은 같은 사람의 반열에 두지 않았다그런데 사람 같지 않은 사람,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의 건국신화는 우리가 바로 그들과 한줄기임을 말해주고 있다.

앞의 청태조 건국신화 만주족이 장백산즉 우리의 성산 백두산을 자기 민족의 모태로 간주하고 있음

을 말한다그리고 그 백두산 천지에서 흘러내리는 세 줄기 강이 자기들의 생명을 형성해주고 있다고

이야기 한다.

만주족이 ‘백산흑수白山黑水’를 민족상징이라 부르며 백두산과 흑룡강을 민족의 모태로 삼는 것은

백두산과 압록강두만강을 내세우는 우리의 의식과 동일한 것이다.

만주족과 우리는 백두산을 마주보고 양쪽에 서 있는 두 형제인 셈이다.


같은 모태를 가운데 두고 마주앉아서 ‘나는 너와 다르다’고 다툰 것이다.

이것이 고구려가 망한 이후의 만주족과 우리의 자화상이다.

그런데 이 청태조 건국신화는 다시금 두 민족이 한 뱃속에서 배태된 형제라는 사실을 확인해주고 있다.


고구려의 건국신화주몽과 유화 부인의 이야기를 상기하면서 이 청나라의 건국신화를 읽어보자.

이승휴의 『제왕운기』와 이규보의 『동명왕편』의 이야기를 종합하면주몽을 낳은 유화는 압록강 가

응심연에서 두 자매와 목욕을 하다가 해모수의 꾐에 빠져 임신하였다.

은고륜정고륜불고륜이라는 이름과 유화 세 자매의 이름은 외면상 다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시조 포고리옹순을 낳은 불고륜이 만주족에게서 창조신이자 시조모신은 푸투마마佛多媽媽

동일인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불고륜은 바로 유화와 다른 모습이다.

만주족이 섬기는 푸투마마를 한문으로 번역하면 곧 ‘柳媽媽’기 때문이다.

주몽과 포고리옹순은 모두 유화 부인의 소생인 것이다.


부계는 어떠한가주몽의 부친은 천신의 아들 해모수라고 구체적으로 명시된 데 비하여유화 부인

불고륜은 신까치가 물어다 준 붉은 과일을 먹고 임신한다물론 신까치가 물어다 준 붉은 과일이

남성을 상징함은 분명하다까치 또한 남성을 상징하긴 하지만그보다 까치는 신의 사자로서 신과

인간을 잇는 존재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불고륜을 임신시킨 ‘붉은 과일’이 해모수처럼 천상의 신계

에서 내려온 것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두 민족 시조의 부계는 천상적 존재이고모계는 응심연이나 포이호리 연못의 유화 부인

이라는 물의 상징임을 알 수 있다.


‘버들마마’ 불고륜의 소생인 애신각라 포고리옹순은부여왕국에서 더부살이하면서 활 솜씨를 자랑

하던 주몽처럼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들어 물을 따라 내려온다.

그리고 세 성씨들의 싸움을 안정시키고 만주를 세워 왕이 된다.

주몽이 남쪽으로 내려와 송양왕과의 지혜 싸움을 거쳐 왕국을 세운 것과 같은 행로다.

무질서를 질서로혼란을 안정으로 전환시키면서 왕국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모두 어미품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가서 왕의 자리에 오른다는 사실이다.

포고리옹순의 어머니는 ‘물을 따라 내려가라’고 가르쳤는데 <백조선녀>라는 제목의 또 다른 설화에

보이는 어미는자작나무 껍질로 배를 만들어 어린아이를 그 배에 태워서 천지의 물에 흘러 내려가

도록 한다.

어미는 눈물을 흘리며 “사랑하는 아들아하늘이 보호할 것이다평안히 크거라” 하고 말한다.

그리하여 작은 배는 폭포를 따라 내려간다만주족이 백두산 천지를 생명의 시원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어미는 자라지도 않은 아들을 배에 태워 떠나보내야 했을까?

 

잠시 눈을 『성경』의 땅에서 태어난 모세에게로 돌려보자모세는 “히브리 인의 사내아이는 강물에

넣어라”는 이집트 파라오의 명령에 따라 강물에 버려진다모세의 부모는 역청과 송진을 바른 왕골

상자에 모세를 넣어 나일 강에 떠내려 보내고모세는 이집트 공주의 손에 구출되어 왕궁의 교육을

받고 지도자의 자질을 함양하게 된다.

나일 강에 버려지는 것은 아이에게는 치명적인 박해다그러나 모세는 바로 이 물에 던져짐으로써

이집트 왕녀에게 거두어져서 왕궁으로 들어가 지도자의 길을 걷고 성공한 사람임을 생각해야 한다.

모세에게 있어 나일 강에 버려진 것은 민족지도자가 되기 위한 필연의 과정이었던 셈이다.

모세를 건진 공주는 모세라는 이름을 부여하면서 ‘물에서 건지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동사 ‘마사하’

에서 따왔다고 말한다역설적으로 모세는 ‘물에서 건져짐’으로써 자기 민족을 이집트의 박해 속에서

‘건져내는 구원자’가 되는 것이다따라서 모세에게 물은 시련의 의미뿐 아니라 새로운 생명과 힘을

획득하는 재생의 의미였던 것이다.


모세처럼 어린 시절 물가에 버려지는 의례를 통하여 새로운 능력을 획득하고 지도자로 올라서는

사례는 세계 도처에 분포되어 있다.

히브리 전통보다 훨씬 오래된 이야기인데바빌로니아 제국을 통치한 사곤1Sargon Ⅰ는 비천한

어미에게서 아비도 모르고 태어나 골풀로 만든 바구니에 담겨 유프라테스 강에 버려진다.

그리고 아카라는 정원사의 아들로 자라면서 이슈타르 여신의 사랑을 받는다.

로마의 건설자 로물루스Romulus와 레무스Remus는 전쟁의 신 마르스를 아버지로실바 왕조의 공주

레아실비아를 어머니로 하여 태어나지만왕인 작은외할아버지 아물리우스의 명령에 의해 티베르

강에 버려졌다가 암늑대가 구하여 젖을 먹이고 딱따구리가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강과 평원을 낀 민족뿐 아니라 산간의 민족들도 같은 설화를 가지고 있다.


히말라야 산맥의 중심부에 위치한 길기트 마을의 ‘트라크한 왕’ 전설이 그 예다공놀이에서 이긴

대가로 처남 일곱을 중이고 돌아온 왕을 왕비가 독살하고 스스로 통치한다.

임신중이던 왕비는 아들을 낳아 나무상자에 넣고는 강물에 던지니 칠라스 지역 호다르 마을의 한

여자가 기르게 되었다병에 걸린 왕비가 후계자를 찾는데수탉들이 “발다스에 왕이 있다”고 울어

찾아보고는 친아들인 것을 알고 왕으로 삼았다.


이렇듯 강물은 버려지는 곳이지만 주인공 인물에게는 새로운 지도자로서의 길을 시작하는 출발지가

되고 있다.


어린 포고리옹순을 자작나무 배에 태워 천지 폭포에 떠내려 보낸 어미는 그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을 하게 하는 것이다.

자작나무는 만주족 신화에서 죽은 사람을 그 껍질로 싸면 살아나게 한다는 재생의 나무다.

이 자작나무 배를 타고 시작하는 여행은 그대로 민족지도자의 길을 가는 새 삶의 행로였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부여왕국에서 박해를 당하자 아들 주몽을 남쪽으로 떠나보내는 유화의 행동은 그대로

포고리옹순의 어미와 닮아 있다.

자라와 물고기가 다리를 놓아주어 강을 건너 남쪽으로 내려왔다는 주몽의 ‘강 건너기’는 단순히 추격

병을 물리치는 의미가 아니다강 저쪽의 낡은 시대아직 깨어나지 못한 어린 시절을 뒤로 하고 자신

이 열어갈 새로운 시대를 향해 달려가는저쪽과 이쪽의 경계를 넘었다는 의미다주몽은 강을 건너

면서 강물의 재생의식을 통과했다그래서 주몽이 넘은 강은 그대로 고구려 건국의 시발점이 되는 것

이다.

 

박혁거세가 상자에 담겨 바다를 건너온 것도 그가 물의 재생의식을 통과했다는 증거다.

신화에서 비롯된 이러한 강물 혹은 물의 재생의식은 그 뒤 다른 서사문학의 전통에서도 확인된다.

서사무가의 주인공 바리공주는 일곱째 딸로 태어나 버려지고 강가의 노부부에 의해 양육되면서

아버지의 구원자로서 무조신巫祖神으로의 길을 걸어가게 된다.

심청은 인당수에 몸을 던짐으로써 왕녀가 되고 아비의 눈을 뜨게 한다인당수는 가난한 심청에게

죽음의 장소기도 하지만가난과 아비의 어둠을 벗어나 왕비라는 귀한 신분과 밝은 세계로 나가는

길목이기도 하다이름 자체가 물에 빠져서 새롭게 된다는 의미인 ‘심청沈’은 인당수에 몸을 던짐

으로써 예정된 재생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 것이다.


간신이나 적대자의 모함에 빠져 귀양을 가거나 도망을 치는 고전소설의 많은 충신과 여주인공들의

고난의 정정은 대개 강물을 앞에 두고 위기에 처하는 것인데이 강물은 그들에게 의외의 구원자를

만나 새로운 능력을 기르고 새 삶을 개척하는 계기가 된다.

「조웅전」이 그렇고 「옥린몽」이 그렇다이러한 모습은 근대소설에까지 이어진다.

이인직의 소설 「혈의 누」의 여주인공 옥련은 대동강에서 투신자살을 기도하지만이 투신으로 인

하여 구원자를 만나고 외국유학까지 가서 신여성이 된다.

주몽과 포고리옹순이 부모로부터 격리되어 이별의 고난을 겪고 강물을 통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행로를 거치는 것은이렇게 시조 영웅으로서의 세계적 보편성을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신화적 전통은 신소설에까지 모습을 드리우고 있다.


만주족 시조신화와 고주몽 신화에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고구려의 유화는 하백의 딸인데만주족

의 불고륜은 천녀로서 하늘에서 강림한 것으로 되어 있다.

역사적 실재성이나 왕국에서의 갈등 양상 등도 고구려 신화가 더 구체적이다그러나 불고륜이 천녀

라고 기술되었다 하더라도 물로 상징되는 그녀의 여성성은 하등 변질되지 않는다.

불고륜이 언니들과 함께 연못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까치가 떨어뜨린 붉은 과일을 먹고 잉태한다는

것은 그녀가 물의 속성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충분히 증명하고 있다.

불고륜 역시 유화처럼 하백의 딸인 셈이다물의 딸이지만 유화도 만주족의 신화에서 천상적 존재로

나타나기도 한다유화는 원래 버드나무 혹은 여성 성기라는 의미를 가진 창조여신 아부카허허,

즉 천녀가 고구려라는 지상왕국의 시조로 변신하면서 획득한 이름이기 때문이다.


만주족의 시조신화와 고구려 건국신화는 이렇게 유화 신격柳花神格을 어머니로 하고 하늘의 신격을

아버지로 하여활을 잘 쏘거나 지혜로운 자로 탄생하여 강을 타고 내려와 왕국을 건설한다는 공통의

서사 진행을 보이고 있다.

백두산과 그 주변의 강물을 삶의 모태이야기의 배경으로 삼고 있다는 점도 공통적이다.


만주족 즉청조의 시조로 등장하는 포고리옹순만 유화 신격의 아들로그녀의 지시에 의해 왕국을

건설하는 것만은 아니다실제로 청조의 건국자인 청태조 누르하치에 대한 전설에서도 유화 신격은

누르하치의 생명의 구원자로왕국의 건설자로 등장한다.

<아골타의 전설><어린 누르하치의 탈출기><어린 왕의 무예학습등의 이야기에서 유화 신격은 쫓기

는 어린 누르하치의 생명을 구해주는 구원자로 등장하고천지를 바꿔놓겠다는 의지를 가진 누르하치

에게 무예와 재주를 가르쳐주는 신비한 스승으로 등장한다고구려 건국신화의 주인공 유화 부인이

17세기 만주 땅에 다시 살아나 누르하치라는 청조의 건국자와 결합되고 있었던 것이다.

 

 

은나라 시조신화와 만주신화 )



이처럼 고구려의 건국신화는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의 시조신화와 건국신화에서 다시 살아나 신화적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다그러나 만주지역의 이 신화적 사고는 요동 벌판을 건너질러 중원 땅으로

확산되었다그것도 우리의 시간 개념으로는 쉽게 짐작할 수 없는 신화적 역사의 나라중국의 은왕조

에서 확인된다.

 

 

은나라 설의 어미 이름은 간적簡狄이다간적은 융헥의 딸로서 곡제嚳帝의 둘째비가 되었다.

세 자매가 목욕을 하다가 현조玄鳥가 알을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 간적이 주워 먹고 임신하여 설을

낳았다.

설은 성장하여 우임금의 치수治水를 도와 공을 세웠는데 순황제가 설에게 명을 내렸다.

“백성이란 친할 수가 없다법식도 없고 가르침도 없으니 네가 사도가 되어 다섯 가르침을 널리

베풀라.” 이렇게 말하고 상나라에 봉하고 자씨를 하사하였다.

 

은나라 시조 설이 상 임금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전하는 시조신화다.

어미 간적은 융의 딸로서 여성성이 강한 존재다그녀가 물에서 목욕을 하다가 현조즉 검은 새가

떨어뜨린 알을 먹고 설을 잉태한 것은불고륜이 연못에서 목욕하다 신까치가 떨어뜨린 붉은 과일을

먹고 포고리옹순을 낳았다는 만주족 시조신화의 구조와 그대로 일치한다.

검은 새와 신까치는 하늘의 사자로서 주인공들이 하늘의 뜻에 의하여 탄생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징표다그런데 후일 이 검은 새들은 남녀를 결합시키고 애정을 전하는 새로 이미지가 바뀐다.

칠월 칠석날 다리를 놓아 견우와 직녀를 만나게 해주는 존재도 까막까치다.

두 시조모가 임신할 때 주워 먹은 잉태의 씨앗이 만주족의 경우 붉은 과일이고은나라의 경우 알로서

표면상 차이가 있는 듯하지만둘은 사실 같은 의미다.


앞서 언급한 대로 까치가 떨어뜨린 붉은 과일이 남성을 상징한다면 현조가 떨어뜨린 알은 그대로

생명의 씨앗이다모두 성적 상징물인 것이다.

뒤에서 이야기 하겠지만 고구려 벽화의 태양 속에 자리 잡은 세 다리를 한 검은새삼족오三足烏

남성의 상징으로서 늘 달 혹은 여성과 짝이 되는 대응물이다만주족 시조신화와 은나라 시조신화는

동일 구조의 반복인 것이다.


고구려 시조신화의 구조가 그대로 만주족의 시조신화에 남아 있고그 만주족의 신화 구조가 중원의

옛 왕조 은나라의 시조신화와 동일한 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역사의 시간 순서대로또 진화론적 신화 해석에 따라서 중국의 은나라 시조신화가 고구려 신화로

유입되고 그것이 고구려의 옛 땅 만주에 남아서 청태조의 시조신화로 전이되었다는언뜻 명쾌해

보이는 논리에 우리는 동조할 수 없다.

물론 중국은 늘 중앙에 있어야 한다는 중화주의와문화가 주변부로 물결파동을 일으킨다는 논리가

합치되면 그러한 진화론적 해석이 완전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만주족이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중국학자들의 시각으로나 가능한 논리다.


은왕조를 세운 민족이 동이족이라는 사실을 대입하면 이 신화의 진행 방향은 전혀 달라진다.

중국학계도 인정하듯이 읍루숙신말갈 등을 조상으로 하는 만주지역의 민족들은 원래 중원의 은나라

상족과 같은 뿌리였다모두 동이족이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그 당시 동이족의 분포는 중국 동부의 강소산동하북요령 등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이 분화된 것은 전국시대 후기로서과 한이 통일국가를 이루어 한족의 개념을 형성

한 후 중원 이북에 동이족이 따로 형성되었다고 보는 것이 중국학계의 견해다.

동이족이라는 거대민족의 관점에서 보면만주족의 청나라 훨씬 이전 은나라시기에 동이족은 이미

중원을 차지하고 있었고은이라는 왕조를 통하여 만주지역 시조신화의 구조를 중원에 뿌리내려 놓았

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오늘 우리가 접하는 고구려 시조신화야말로 동이족의 본거지에서 전개된 제1의 변형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청태조의 시조신화는 고구려 신화와 시간을 달리하는 또 다른 변형인 것

이고은나라의 신화는 공간과 시간을 달리하는 또 다른 형태인 것이다.

 

 

 

고구려 벽화의 ‘해와 달’ 상징

 

해 속의 세발까마귀 )

 

나는 아직 고구려 벽화의 실물을 대해본 적이 없다지난 1996년 여름 길림성 장춘長春을 거쳐 집안

集安으로 들어가려다 수십년 만의 장마로 실이 끊겨서복사해간 그림 자료만 만지작거린 기억이

아직 새롭다.

집안에 가도 벽화의 실물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집안행에 집착했던 것은 몇 년 동안

실물을 보고 싶었던 해 속에 그려진 세발까마귀와 달 속에 그려진 두꺼비의 모습 때문이었다.


그것을 실마리로 해서 벽화의 신화 세계로 들어갈 계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혹은 그러한 욕심의

싹이라도 틔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던 것이다.

이러한 나의 아쉬움과 기대는 오래 전부터 ‘왜 우리에게는 중국이나 서양처럼 해와 달인간과 신에

관한 풍부한 색깔의 신화가 남아 있지 않는가없었을 리는 없을 것이니 어떤 형태로든 재구성해

보아야한다는 치기를 품어왔기 때문이리라.


조선일보사에서 발행한 『집안 고구려 고분벽화集安 高句麗 古墳壁畵』의 도록을 보면‘오희분 4

호묘’의 천장 층급 받침돌의 밑에는 모서리를 마주보는 두 면에 해와 달의 두 신이 눈을 마주 대하고

있다.


용의 꼬리를 한 여신은 붉은 날개에서 나온 하얀 두 손을 머리 위로 마주하여 흰 달을 이고 있다.

용꼬리와 회색 날개를 한 남신은 살색 두 손으로 태양을 머리에 이고 있다.

해와 달을 물동이처럼 머리에 인 자세인데과시하는 듯한 몸짓으로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 있다.

검게 탄 듯한 얼굴과 날카로운 눈매에 야물게 다문 태양신의 입과는 대조적으로 달빛같은 하얀 피부

를 한 달여신의 붉은 입술과 검은 눈동자는 그대로 우리를 미혹시킬 만하다.

힘찬 남신과 부드러운 여신이 대비적으로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준다마주보는 두 신의 모습은 춤추며

서로 다가서는 듯하고꼬리를 뒤로 젖히고 날아 달려드는 듯하다.

1년에 한번 만나는 견우직녀의 만남이 저러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런데 이 엄숙하고 신비로운 두 남녀신이 두 손으로 받쳐들고 있는 해와 달 속에는 각각 세 발 달린

까마귀와 두꺼비가 들어 있다저 까마귀가 연못에서 목욕하던 은나라의 간적에게 알을 떨어뜨린

검은 새현조玄鳥일까백두산 아래 연못에서 목욕하던 불고륜에게 붉은 과일을 던져주어 포고리

옹순을 잉태하게 한 까치는 신작神鵲이 아닐까?


이 오회분 4호묘에는 받쳐든 남신의 모습 없이 둥근 태양 속에 뚜렷하게 까만 새 그림이 별도로 그려

져 있다태양은 회색빛이 돌 정도로 검붉다둥근 해 중앙에는 머리를 곧추세운 새의 머리와 꼬리가

반원을 이루며 뻗어나간다여기에 목 밑에서 타원을 이룬 두 날개가 합쳐져서 두 날개와 꼬리가 세

갈래를 이룬다두 날개와 몸통이 교차하는 곳에서는 다리가 세 개 뻗어나왔다.


중국에서 새의 문양은 아주 오래 전부터 활용되었다서안西安의 반파앙소 문화半坡仰韶文化 유적지

에서 발견된 채색 도자기 조각에 새 문양이 보이는 것을 시작으로 절강성하남성협서성 등지의

고대 유적지에서 새 문양 도자기 조각이 출토된 바 있고새의 머리모양 조각품이 발굴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하여 중국 근대 인문학의 대가인 곽말약郭沫若은 앞에서 언급한 은나라 설의 탄생 기록,

즉 “검은 새는 이전에는 제비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봉황이다 …… 제비건 봉황이건 나는 그것이

생식기 상징이라고 생각한다새는 현재까지 남성 생식기의 별명이고 알은 고환의 별명이다.”라고

하였다.

 

조국화趙國華라는 중국학자는 남자 성기를 『수호전』에서는 ‘새’라고 부르고하남지방에서는 ‘오리’

라고 하며 심지어 영국에서도 ‘공작cock’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예로 들었다.

사천성뿐 아니라 실제 중국어 사전을 보면 참새를 뜻하는 ‘작’ 자를 ‘남자 성기’로 풀이하고 있다.

이런 논리라면 우리의 비속어 ‘좆’ 혹은 ‘좆대가리’ 라는 말도 ‘조’에서 연유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조국화 교수는 또 『시경詩經』첫머리의 “끼룩끼룩 해오라기 물가에 노닐도다.

요조숙녀는 군자가 구하는 좋은 짝이로세 關關雎鳩 在河之洲 窈窕淑女 君子好逑”라는 시구를 그린

동한東漢시대의 화상석畵像石의 「관저구어도關雎求魚圖」를 설명하면서물가에서 해오라기가

물고기를 구하는 장면은바로 남자들이 아름다운 여인을 구하려고 노리는 해오라기 새는 남자를 의미

한다는 것이다.


새가 남자의 성기를 상징하게 된 것은신축성이 있다는 것새가 알을 낳는데 남근도 고환이라 알이

있다는 것새가 알을 낳고 그 알에서 생명이 나오는데 인간도 남자의 알이 여자의 뱃속에 들어가

부화해서 나오는 것 등의 연관성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중국학계에는 문자학상으로 알을 뜻하는 난卵이 남자의 두 개의 알즉 고환의 모습을 상형한 것이

라는 논리도 보인다.

 

 

세 다리 검은 새남성과 태양의 상징 )

 

남성 혹은 남근을 새 그림으로 표현한 것은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남자들은 세 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다는 의식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더하여 중국학계에서는 남근이라는 것이 음경과 두 개의 고환이니세 개의 선으로 그려질 수밖

에 없다는 설명도 하고 있다.

그대 그리스와 인도의 문양에서도 세 개의 선으로 남성을 표현하는 사례가 보고되었다.

또한 하남성의 묘저구에서 출토된 도기 파편에는 가운데 다리고 굵은 세 다리의 새 문양이 분명하고,

한나라 때의 화상석에는 고구려 벽화와 매우 닮은 삼족조가 새겨져 있다고 보고되었다.

이상의 여러 증거로 조국화는삼족조는 원래 중국 서방 부족의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1차적으로 동방에서 일어난 은나라 상족商族이 서방부족을 정복하면서 자기들의 부계가 현조라는,

즉 ‘하늘의 검은 새를 시켜 상을 낳게 하였다天命玄鳥 而生商’는 신화를 자기들의 신성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보급시켰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서방 부족이 창조한 ‘삼족조’ 태양신화를 받아들이고거기에 ‘해가 동쪽에서 뜬다日出

東方’는 것과 ‘상족이 동방에서 온’ 것이라는 두 가지 사실을 결합하여 태양 숭배를 강화했다는 것이다.

 

중국학자들의 논리대로라면고구려 벽화의 삼족조는 동이족인 상족이 중국 서방 부족의 삼족조 상징

을 수용한 결과를 받아들인 것이거나나중에 중원에 남아 있던 한나라 등의 상징체계를 받아들인 것

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중국학자의 논리는 궁색해 보인다신화나 상징체계가 고대사회에서 정치적 목적으로 선전

유인물처럼 유포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또한 신화나 상징체계는 전파나 유포 행위가 없어도 서로 다른 지역에서 얼마든지 함께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은나라의 상족이 당시 우월한 세력과 문화를 가져서 <현조 생상신화를 중원에 보급시킬 정도였다면,

현조가 남성상징이라는 생각을 표현한 ‘삼족조’ 그림도 동이족에게 있었다고 전제하는 것이 순리리라.


내가 보기에 중국보다는 만주와 한국에 새를 숭배하는 설화와 민속이 훨씬 광대하게 분포되어 있다.

한반도와 만주몽골에 널려 있는 솟대를 생각하면 된다나뭇가지 끝에 매달려 하늘을 향해 나는

자세를 가진 그 새들은 바로 살아 있는 삼족조다삼족조의 세 다리가 남성 성기라는 논리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솟대 끝에 앉아 있는 새의 두 다리와 솟대가 합쳐져서 세 개의 다리를 가진 새 그림이 되었

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그만큼 솟대는 만주족과 우리에게 중요한 제의적 상징물이었다.


만주족은 솟대 혹은 솟대에 앉은 새를 하늘이나 천신으로 간주하였다.

그들은 ‘아부카언두리阿布佧恩都里’라는 천신을 제사 지낼 때 집의 동남쪽에 장대를 세우고 대접

모양의 청동접시를 올려놓고 솟대에 희생을 바치는데돼지를 잡아 고기와 내장폐 등을 거기에 올려

놓았다.

그런데 ‘까마귀가 와서 먹으면 천신이 흠향(신이 제물을 받는 것)했다.’고 간주하였다.

이들이 신간神刊이라 부르는 솟대는 천신의 세계와 인간세계를 통하는 연결다리다.

그리고 이름이 암시하듯 천신의 세계다천신 까마귀가 내려와 흠향하는 장소인 것이다.


길림성의 건주建州여진족의 후예인 관씨네 집안에서는 9척으로해서海西 여진의 후예인 석씨네

는 7척 높이로 세우는데각각 하늘이 9층이나 7층으로 이루어졌다는 그들의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솟대는 그대로 천계의 상징인 것이다.

이들은 이 솟대 위에 강림하는 천신 까마귀를 위하여 돼지고기뿐 아니라 오곡을 마련해놓기도 한다.

솟대나무 위에 내리는 까마귀를 천신이나 조상신으로 간주한 것은만주족이 1년에 한 번 지내는 버드

나무신柳神 제사의식 때 무당이 나무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 멀리 바라보면서 ‘매’가 나무 위에 강림

한 모습을 재현하는 것에도 나타난다.


까마귀와 까치를 동일시하는 만주지역에서 이렇게 까마귀를 천신으로 간주한 증거는 그들의 시조신화

와 건국신화에 계속 전승되고 있다청태조의 시조 애신각라 포고리옹순은 불고륜이 천신의 대행자인

까치가 내려준 붉은 과일을 먹고 잉태되었다.

『만주실록』을 보면포고리옹순의 몇 대 후의 후손들이 포악하여 사람들에게 해를 당하고 번찰이란

아이가 살아남아 사람들에게 쫓기고 있었는데 까마귀가 시체인 것처럼 가장해 주어서 생명을 구했다

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후 까마귀는 어린 누르하치가 명나라 군사의 추격병에 쫓길 때도 같은 방법으로 구출해주었다.

까마귀는 만주족에게 ‘까마귀를 조상으로 여긴다’는 의식하에 보호신령으로 살아남아 있었던 것이다.


앞에서 본 것처럼청나라 황족 애신각라 씨족의 족원신화族源神話 “천녀 불고륜이 까치의 과일을 먹고

조상을 낳았다天女佛庫倫吞果生淸祖”는 이야기구조는해모수가 하늘에서 내려와 웅심 연못에서 목욕

하던 유화를 임신시켜 주몽을 낳은 고구려 신화의 변형이었다.

그리고 까마귀는 여진 만주족 건국의 영웅들에게 다시 생명의 구원자로 등장하였다.

까마귀와 까치가 이렇게 생명의 기원으로구원자로 인식되던 것을 고려하면주몽이 부여왕국에서

남쪽으로 떠날 때 신모神母 유화의 심부름으로 5곡 종자를 가져다주던 신조神鳥는 기록에 따라 비둘

기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이들도 까막까치로 보아야 한다.

만주지역 어느 민족의 신화와 설화에서도 사람에게 생명과 풍요를 가져다주면서 길조로 등장하는

것은 까치와 까마귀밖에 없다.

이들은 같은 존재로 인식되며 모두 숭배의 대상이다.

특별한 경우 신의 사자로 매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까막까치가 등장할 때와는 문맥이 다르다.


까막까치는 시조신화뿐 아니라 만주족의 창세신화와 무속신화에서도 늘 생명의 안내자였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만주족 홍수신화<구름 아가씨 白雲格格>에서는 까치 무리가 천신의 셋째딸 구름

아가씨에게 푸른 나뭇가지靑枝를 내려달라고 하여 지상의 생명을 구하고 번식하도록 한다.

만주족의 창세신화 <천궁대전>에는 신까치가 창조여신 아부카허허의 시녀로서여신이 악마와 싸울

때 여신에게 힘을 주는 동해의 돌을 물어오다가 신의 나무新木위에서 쉬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만주족이 해마다 집에서 제사 지내는 ‘솟대 위의 까마귀’ 형상을 이 신화는 언어로 보여주고 있는 것

이다.

 

이렇게 고구려 벽화의 태양속에 앉아있던 ‘세 다리 검은 까마귀’는 신모 유화의 심부름으로 주몽에게

곡식 종자를 가져다 주려고 날아왔고청태조의 조상을 임신시키기 위하여 붉은 과일을 입에 물고

나타났으며그 애신각라 씨의 영웅들이 위기에 빠졌을 때 구원하기 위하여 날아왔다.

벽화 속에 새는 고구려를 거쳐 청나라로 날아서 지금도 만주족 마당의 솟대 위에서 날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까마귀와 까치가 분리되었지만어느 은행의 유리벽에서 날고 있는 길조 까치의

원형도 바로 벽화 속의 세발까마귀인 것이다.

 

 

달 속의 두꺼비와 여성의 생산성 원리 )

 

일월신日月神의 모습은 집안의 ‘오회분 5호묘’ 에도 그려져 있다열네명의 남녀가 줄을 지어 노래

하며 춤추는 장면으로 유명한 무용총 벽화에는 악기를 연주하는 선인의 머리 위에 아주 크고 둥근

달이 떠 있다.


그리고 그 달 안에는 두꺼비가 사지를 벌리고 있다발마다 간직한 세 갈래 갈퀴가 명확하고꼬리

부분의 성기로 보이는 윤곽도 선명하다무엇보다 온 몸에 퍼져있는 점들이 두꺼비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각저총의 현실玄室 천장 벽화에도 태양과 달 속에 삼족조와 두꺼비가 그려져 있다.

일월을 둘러싼 신비한 하늘은 구름인 듯도 하고 당초 문양인 듯도 한 고리가 강강술래를 부르듯 순환

하고 있어 그대로 신비한 천계의 모습이다.

이 신비한 하늘에 삼족조와 두꺼비는 아주 크고 뚜렷하게 자신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두꺼비는 다른 벽화와 달리 살찐 두 뒷다리를 오므리고 있는데 금방이라도 앞으로 멀리 튀어나갈 듯

하다.


중국 신화에서는 아홉 개 태양을 쏘아 떨어뜨린 예췽의 부인 항아嫦娥가 황제 준의 벌을 피해서

불사약을 훔쳐가지고 달로 도망하여 섬여蟾蜍즉 두꺼비가 되었다고 한다.

두꺼비의 한자 표현인 섬여는 두 글자 모두 두꺼비와 달을 의미한다.

그만큼 두꺼비와 달은 동일한 존재로 인식된 것이다두꺼비와 달이 동일체로 생각된 것은그 중간에

매개적 존재인 여성이 있기 때문이다.

여성과 달여성과 두꺼비가 일체화되면서 ‘달=여성=두꺼비’의 공식이 성립된 것이다.

‘여성=달’의 논리는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을 테니‘여성=두꺼비’의 논리를 살펴보자.


고대의 신화나 도기 그림에서 두꺼비와 개구리는 동일한 존재로 인식되었다.

중국학계에서는 두꺼비와 개구리가 임신한 여성의 배와 팽배 축소하는 달과 같은 존재로 수용되면서,

사람들이 달 속에 두꺼비가 산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판단한다.

두꺼비와 달 그리고 여성이 같은 존재로 인식되면서 후일 두꺼비가 여성 성기를 의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중국학자 문일다聞一多는 두꺼비의 한자 표현 섬여에서 ‘여’가 같은 발음인 ‘토’로 변하여 섬토蟾兎

가 되고결국 두꺼비를 칭하던 이름이 두꺼비와 토끼라는 두 동물을 뜻하게 되었다고 설명하는데,

여하튼 그도 달과 두꺼비와 여성이 동일체로 인식되었음을 강조한다.


개구리를 여성과 연결시키는 논리는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풍요의 생산성 원리 때문일 것이다.

여성은 생명을 탄생시키는 풍요의 존재다.

중국 신석기시대 토기류에서는 여성 성기의 상징으로 개구리 문양을 그려서 풍요 주술적 의미를 표시

하였다중국 한의학계에서는 지금도 여성 성기를 개구리 입이라고 부른다여성과 개구리가 공통적

으로 내포하고 있는 풍요의 생산 원리를 기반으로 이러한 관습이 생겨난 것이다.

봄날 논가의 물을 들여다 본 사람은 개구리의 풍요적 성격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마리의 개구리가 얼마나 많은 알을 낳는가논바닥에 까만 씨알을 뿌려놓은 것처럼 오물오물하는

올챙이는 그대로 개구리가 보여주는 다산의 풍요다.

 

개구리는 다산을 실현할 뿐 아니라 농사의 풍요를 가져오는 존재로 인식되었다농사에 필수적인 비

를 가져오는 사신으로비의 화신으로 인정되었기 때문이다중국 남방에서는 새봄에 개구리를 잡아

장사 지내며 「개구리타령」을 노래하면개구리신이 많은 비와 풍년을 가져다 주루 것이라고 믿었다.

개구리의 울음소리를 천둥벽력소리와 같은 것으로 생각하여 개구리를 ‘천둥과 비의 사자’ 로 받아들

인 남방민족도 있다이들은 그 개구리 울음소리와 천둥소리를 재현하기 위하여 징 같은 쇠북에 개구

리 문양을 새기고그 징을 쳐서 개구리를 울리고 비를 기원하였다.

쇠북을 치면서 개구리 울음소리와 천둥소리를 만들어 비가 내리기를 빌었던 것이다.


만주족에게도 개구리는 생명과 풍요를 가져다주는 존재였다.

만주족 샤먼의 옷에는 개구리 문양이 많이 그려져 있다개구리는 설화에서도 비를 주는 천신의 아들로

나타난다. <개구리 아들>이라는 만주족과 석백족의 설화가 그 예다나이 많은 부인이 빨래를 하다가

개구리가 치마 밑으로 달려들더니 임신을 했는데 개구리가 태어났다.

이웃집 처녀와 결혼을 하겠다고 졸라서 어렵게 혼사가 성사되었는데 개구리 허물을 벗고 늠름한 청년

이 되어 자식을 낳고 살다가 천상의 신선이라며 하늘로 올라갔다.

개구리는 늙은 부부에게 기쁨을 준 천신의 자식인 것이다.


뱀에게 잡아먹히려는 개구리를 구해주었더니악한에게 빼앗긴 색시를 찾게 해주고 강 건너 남쪽나라

에 가서 살게 해주었다는 <송아리와 작은 개구리이야기에서는 개구리가 새로운 삶과 결혼을 성립

시켜주는 존재다.

고구려 신화에서 유화가 금빛 개구리즉 부여 금와왕의 도움을 받아 주몽을 낳아 기르고주몽이 남쪽

으로 강을 건너 나라를 세웠다는 이야기의 형태와 매우 흡사하다이렇듯 개구리는 생명을 낳고 풍요

를 가져오며새로운 남쪽나라의 삶을 열어준 존재로 등장하는 것이다.


두꺼비가 등장하여 건국을 돕는 일화는 청태조 누르하치의 전설에서도 보인다.

 

누르하치가 명나라 군서와 노성老지방에서 대치하고 있을 때였다관군은 돈과 식량이 넉넉한데

이쪽은 궁핍하였다어느 날 큰비가 와서 관군의 창고가 물에 잠기더니 창고의 돈이 모두 두꺼비로

변하고 금덩이는 모두 뱀으로 변하였다담당관리가 놀랍고 징그러워서 누르하치 병영에나 가라고

소리쳤다누르하치가 병영에 있는데 두꺼비와 뱀이 무리를 지어 오는 것을 보고 병사들에게 문을

열어주어 비를 피하도록 하였다다음날 아침에 보니 모두 돈과 금으로 변해 있었다팔기병들은 기운

백배하여 명군을 물리쳤다(지금도 노성 지방에 가면 두꺼비와 뱀이 많은데 그때 남은 것이라도 한다.)

 

두꺼비도 청태조의 투쟁과 건국에 참여하고 있다고구려의 건국에 금빛 개구리금와가 참여한 것과

같은 발상인 것이다.


<개구리 아들이야기와 두꺼비 이야기 류는 한반도 전역에 걸쳐 보고되고 있다.

해마다 마을 처녀를 한 사람씩 희생시키는 지네를 두꺼비가 물리치고자기에게 밥을 준 처녀를 구했

다는 <지네 장터또는 <두꺼비와 지네>설화에서 두꺼비는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한다처녀란 마을

의 생명을 대대손손 이어갈 사람이니이 처녀를 구한다는 것은 곧 마을의 생명을 구한다는 뜻이다.

이런 줄거리는 고전소설「두껍전」에도 그대로 계승되어 있다신화시대의 상상력이 소설시대에까지

계승되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두꺼비와 여우사슴 등이 서로 누가 연장자인가 내기를 하다가 결국 하늘과 땅이 만들어 질 때 자기가

주재했거나 참여했다는 논리로 두꺼비가 제일 어른의 대접을 받는다는 <나이 시합설화나 풍자소설

「두껍전」에 보이는 두꺼비도신화시대에 두꺼비와 개구리가 가지고 있던 풍요와 생명의 원리를

그대로 이어받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노루의 ‘숭록대부 취임축하연’에서 두꺼비와 여우가 나이를 두고 벌이는 설전을

그린 「두껍전」인데여기에서 두꺼비는 천지음양의 조화와 개벽을 이야기 하며 귀신을 물리치는

방법과 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작품에 형상화된 그는 천지의 창조자이고 천문가이고 의사며 주술사다.

그는 바로 천지 창조의 비밀을 알고 인간의 길흉화복을 예언해주는 샤먼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

만주족의 샤먼이 자기 복장과 악기에 개구리 문양을 그려 자신이 개구리임을 표시한 것은그가 개구리

로서 천상적 존재라는 의미와 함께 풍요를 가져다줄 존재라는 의미가 담겼다고 볼 수 있는데한반도

신화와 설화 속의 개구리와 두꺼비도 그러한 속성을 함께 지니고 있는 것이다.


고구려 벽화의 ‘달 속에 그려진 두꺼비’는 바로 자식과 신하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주몽을 살려주어

고구려의 탄생을 도와준 부여의 임금 금와의 얼굴인 것이다.

또한 만주와 한반도에서 늙은 부부에게 생명 창조의 기쁨을 안겨준 <개구리 아들설화의 그 개구리고,

해마다 처녀의 희생을 요구하는 지네를 물리치고 처녀의 생명을 구하여 마을의 지속적 번성을 유지시킨

그 ‘은혜 갚은 두꺼비’며소설「두껍전」에 보이는 의사며 주술자로서 의무醫巫역할을 하는 두꺼비인

것이다.


만주와 한반도에서 여성과 동일체로 인식되는 개구리와 두꺼비가 보여준 풍요와 생명의 원리는 이 지역

에 <개구리 아들설화를 낳고‘떡두꺼비 같은 아들 낳았다’는 우리의 덕담을 만들어 내었다.

떡과 두꺼비가 의미하는 풍요를 아들이 실현해주기를 바라는 심정은 신화시대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동북아시아의 성모 유화

 

 

앞에서 본 대로 창조여신 아부카허허라는 이름은 여성 성기와 버드나무를 의미한다.

여성의 생명 생성과 풍요의 원리가 버드나무로 은유되고그것이 다시 신격화 ․ 인격화되면서 우주

대모로 탄생된 것이다.

고구려 신화의 유화 부인은 버드나무란 이름을 가진 창조신화 속의 이 우주 대모가 시조신으로 재탄

생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내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이 유화 여신은 고구려 건국신화에서뿐 아니라 고려 왕건과 조선 이성계의

건국서사담에도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백두산 저쪽에서는 대금大金을 세운 아골타그리고 청태

조 누르하치의 전설에도 그 얼굴을 보이고 있다.

창조여신 아부카허허의 모습이 고구려부터 조선에까지그리고 금나라와 청나라의 건국신화에까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앞에서 본 <천궁대전신화야말로 우리가 상실했던 만주와 한반도 창조신화의 원형일

뿐 아니라시조신화와 건국신화의 모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유화 부인의 모습을 다시 찾아보자.


하백의 딸로서 천제의 아들인 해모수와 신성한 결혼을 하여 주몽을 낳았다.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하기까지유화는 고구려 건국신화 전반부의 핵심인물이다.

또한 그녀는 주몽 탄생의 모태일 뿐 아니라 건국의 어머니라 할 수 있다『주서周書』등 중국의 고대

역사 기록과 중국 송나라 때 문신인 서긍徐兢이 쓴 『고려도경高麗圖經』은 유화가 고려시대까지 주몽

과 함께 가장 존귀한 여신‘동국 성모東國聖母’로 숭배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 시대까지 유화가 민족신으로서의 자리를 보존하고 있었다는 증거다.


우리는 유화가 고구려의 영토즉 만주 혹은 동북아시아의 문화권에서 절대적 신성 존재라는 전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하자유화가 고구려신화 속의 화석이 아니라 그 땅에 아직도 살아 숨쉬는 신모

라는 가정을 하고 그 실체를 확인하자는 것이다.

고구려 신화는 우리의 역사책 속에서 화석이 되어버렸지만 신화가 늘 현재화되면서 새로운 생명새로

운 의미를 창출하고 있다면 유화는 역사책에서 나와 살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먼저 만주족의 신화와 제의전설 속에 유화가 신격으로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을 살펴보자.

 

 

만주족의 성모유화 여신

 

여성 성기의 버드나무의 신격화 )

 

 

만주족의 창조신화 <천궁대전>은 세상의 최초 상태가 물거품즉 물이었다고 인식하고 있다.

하늘과 땅조차 갈리지 않은 상태인 물거품에서 여신 아부카허허가 나왔다고 했다.

‘물거품이 있는 곳 어디에나 아부카허허가 있게’ 되었다는 것은 그가 곧 물거품으로하늘과 땅 생성의

원인이라는 말이다물이 곧 아부카 여신이고여신이 곧 물이라는 인식이다.

생명의 존재로서 ‘어디에나 어디에서나 자라난’ 그녀는 지구를 꿰뚫고 나중에 하늘이 되고 …… 무거울

땐 물 밑까지 가라앉는다그녀는 우주 생명의 보편적이며 절대적인 존재인 것이다그녀는 또한 ‘공기

로 만물을 만들고빛으로 만물을 만들고몸으로 만물을 만들어내는’ 생명의 원조다가시적인 만물을

만들 뿐 아니라 아랫몸에서 땅의 여신 바나무허허를 만들고윗몸에서 빛의 여신 와러두허허를 만드는

등 우주 자연의 주재신을 만들어내는 원초적 창조자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아부카는 하늘을허허는 여성을 뜻하므로창조여신 아부카허허는 천신 혹은

천모라고 번역된다그런데 여인을 의미하는 허허는 동시에 여음즉 여자 성기를 의미하고버드나무

혹은 버들잎이라는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으므로 ‘버들천모’라 이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거품이며 생명의 원초적 존재인 창조여신이 여음女버드나무천모라는 세 가지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은우선 일체의 생명이 물과 여음에서 비롯된다는 인식의 소산이다물이 생명의 근원이고 여음이

생명의 모태라는 두 가지 생각이 결합된 것이다.

물과 여음이 생명의 원천으로 신격화되어 생명의 주재자인 천녀천모로 숭배된 것이다또한 버드나무

가 여성 성기를 의미하면서 천모가 버들천모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버드나무와 여음이 공통적으로

물의 속성과 생명의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버드나무는 물가에서 자라면서 잎과 가지가 무성하여 다산과 풍요의 상징이고 물의 상징이다.


창조여신은 겨드랑이 털로 ‘물의 용’과대지와 강을 만들어 ‘그 자손인 인류를 양육’하는 물의 주재자다.

그녀는 첫 생명의 시원일 뿐 아니라 인류의 모태로서물의 용을 관장하여 모든 강과 물줄기를 생성시키

는 주재자인 것이다.


천신으로 신격화된 여음과 버드나무는 창조여신 버들천모와는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악마 예루리와 여신이 전쟁할 때 여신을 돕는 까치는 신의 나무라는 버드나무에 올라 쉬면서 악마의

동정을 살핀다버드나무는 천수天樹로서악마와 창조여신과의 싸움으로 인해 만물이 다 상할 때에도

그만이 남아서 하늘을 지키고 있었다.

이렇게 버드나무는 창조여신과는 다른 존재인 것처럼 나타나기도 한다그렇지만 ‘인간의 말을 하고

인간의 성품을 가지고 인간을 양육하고 하늘의 일에 통달하여’ 천수라 불리는 버드나무의 속성은 바로

창조여신이 가지고 있는 성격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예에서 우리는 여음을 상징하는 버드나무가생명의 주재자인 버들천모로 신격화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천수로 반복되어 나타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버드나무로 은유된 여음이 이처럼 이중

삼중으로 인격화되어 나타나는 것은 여음의 생명력에 대한 경외감을 거듭 표현하여 생명활동의 영원성

을 강조한 것이라 하겠다.


여음의 생명력에 대한 경외감은 여음과 버드나무를 샤먼이나 그의 비범한 능력과 동일시 하는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샤먼은 우주와 세계의 법칙을 알고 있는 절대적 존재라는 인식과여음은 천지만물의 기원과 뿌리라는

인식이 통합되어 이러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때로는 악한 샤먼까지도 버드나무와 동일시되고 있다.

남성 천신 아부카언두리는 ‘흰물새더라 동해東海에 가서 푸른 버드나무 가지를 하나 물어오게 하여

그걸 어린 샤먼에게 먹이고자’하였다.

그런데 ‘푸르고 여린 버들잎’을 먹여야 할 어린 샤먼에게 ‘크고 누런’ 버들잎을 잘못 먹여서 세상에 악한

무당이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이렇듯 착한 샤먼뿐 아니라 악한 샤먼까지 버들잎에 연원을 두는 것은

버들이 모든 존재의 기원이라고 전제한 것으로서악조차도 거기에서 나왔다는 생각을 보여준다.


우리는 만주족 창조신화 <천궁대전>을 통하여 버드나무가 여음을 상징하며 생명의 창조자우주의

창시자로서 신격화되어 ‘버들천모’라는 이름으로 나타남을 보았다그리고 이 생명의 창조자인 여음,

즉 버드나무가 하나의 신화에서도 다양하게 신격화되고 인격화되어 나타남을 보았다.

 

‘버들’을 의인화한 시조모여신 )

 

여음은 버드나무로 은유되며 버들천모라는 이름으로 신격화되어 창조여신이 되었다.

그런데 이 여음은 다른 모습으로도 나타난다.

 

옛날 홍수가 범람하여 모든 생명이 다 떠내려갔는데 다만 우커선烏克伸이라는 돌기둥 하나와 푸투

마마라 불리는 버드나무만 남았다그런데 양쪽에서 불이 나와 물은 점점 줄었다뒤에 둘은 왠지

모르게 싸웠는데 버들천모 여신 아부카허허에게 발각되었다여신은 다시 싸우지 말고 부부가 되라고

했다돌기둥 우커선과 버드나무 푸투마마은 4남 4녀를 낳았고, 4남 4녀가 다시 결합하여 또 4남 4

그들이 또 서로 부부가 되어 자식을 낳았다그뒤 4녀는 남편과 각기 반목하여 남편을 죽이고

나서 자녀를 데리고 북쪽으로 가 현재의 흑룡강 하류 혁철족의 조상이 되었다.

세월이 흐른 후 돌기둥 우커선과 버드나무 푸투마마는 다시 4남 4녀를 낳았는데 이들이 다시 부부가

되었다. 4녀는 또 각기 남편과 반목하여 자식을 데리고 남쪽 흑룡강 상류로 가서 달올이족과 악온극

족의 조상이 되었다.

뒤에 결합하여 1남 1녀를 낳았는데 이들이 부부가 되어 자손을 번성하여 현재의 만주족이 되었다.

 

인류의 시조모 푸허마마彿赫媽媽는 백두산 버드나무가 변해서 되었고시조부 우선허마파烏申闊瑪發

천하의 천장을 받치는 기둥 역할을 하는 돌기둥이 변해서 되었다.

악마와의 승리의 전쟁 중 여시조 푸허마마는 주도적 지위를 가지고 네 쌍의 자녀들을 부부로 짝지어

주고그들에게 부부의 방법을 알려주어 인류가 끊임없이 지속되도록 하였다.

그리고 천상의 생생한 진흘과 버들을 모두 그들에게 주어 그들이 자기의 모양대로 계속 많은 생명을

생산토록 하였다.

 

첫 번째 신화에서 모든 생명이 떠내려간 뒤 남은 우커선이란 돌기둥과 푸투마마라는 버드나무는 분명

히 남녀의 성기가 의인화된 모습이다.

두 번째 신화에서도 천하를 받치는 돌기둥이 변해서 되었다는 시조부 우선허마파는 남성 생식기를

뜻한다또한 시조모 푸허마마는 앞 신화와 마찬가지로 백두산 버드나무가 변해서 된 존재로서 여자

성기를 의미하낟.

남성 생식기의 짝이 되어 자손을 낳는 푸투마마나 푸허마마라는 버드나무는 바로 여음의 은유인 것

이다이는 곧 물에 떠다니는 버들잎에서 생명이 시작되었다고 믿고 있는 만주족의 인식과도 일치

한다.


두 신화는 모두 남녀의 성행위를 신화적 언어로 풀어낸 것이며성기를 인격신으로 변신시킨 것이다.

생명 창조의 성행위가 창조신화와 시조신화의 형태를 가지게 된 것이다이러한 상상력 속에서 여음

은 버드나무로남성 성기는 돌기둥으로 은유되었던 것이다두 번째 신화는 여성 생식력을 강조하고

있는 점이 첫 번째 신화와 약간 다르다.

여음을 뜻하는 푸허마마가 ‘주도적으로 지위를 가지고 자녀들에게 부부의 방법을 알려주고 ……

진흙과 버들을 주어 생명을 생산토록’ 하였다면서 여음의 생명력을 보다 강조한다.


이 두 족원신화는 모두 남녀의 성적 결합을 서사화하였고여음은 버들로 은유되고 신격화되어 푸투

마마와 푸허마마라는 이름을 취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창조신화에서 최고 주재신이었던 창조여신

버들천모는시조신화에서는 같은 뜻의 다른 이름을 가지고 등장하고 있다.

버드나무는 계속 여음의 생명력을 상징하면서 천신에서 조상신으로 변신하고 있는 것이다.

 

 

만주족은 왜 버드나무를 숭배하는가원래 선신 버들천모와 악신 예루리가 싸울 때 선신들이 많이

죽었다버들천모가 홀로 천상으로 날아 도망가는데 예루리가 잡고 놓아주지 않으며 손톱으로 그녀의

사타구니를 잡아당겨서 몸을 덮었던 버들잎 하나가 세상에 떨어졌다.

여기에서 처음으로 인류와 만물이 생겨났다.

 

신화는여음과 성행위에서 생명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이렇게 다양한 상상력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런 변화 가운데에서도 지속되는 논리는 여음이 인격화된 여신이 생명을 창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신의 사타구니에서 떨어진 버들잎은 바로 여신의 성기를 말한다.

그것이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한 것은 시아의 여성 성기의 출처를 하늘에 두면서 신비화한 것이다.

 

 

남성 천신과 버들시조모의 결혼 )

 

최고 주재신인 창조여신이 아부카언두리라는 남성 천신으로 대체되는 경우도 있다.

이 남성 천신은 여성처럼 생명을 직접 생산할 수 없으므로 생명 잉태의 여신이나 여성을 다시 등장

시켜야 한다남성신이 주재하는 세상에서 남성신의 짝으로 등장하는 여성신도 버들즉 여음으로

상징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아주 오랜 옛날 세상에 천지가 막 생겼을 때 아부카언두리가 허리를 싸고 있던 가는 버들잎을 몇 개

떼어내니 버들잎에서 곤충과 사람이 자라나서 대지에 가득 차게 되었다.

 

아주 오랜 옛날 세계에 막 하늘과 땅이 생겼을 때아부카언두리가 허리에 둘렀던 가는 버들잎을 몇 개

따내었다그 버들잎에서 날아다니는 곤충과 파충류와 사람이 자라났다대지에는 이로부터 사람이

많아지게 되었다지금까지 버들잎은 녹색의 작은 주머니를 만들고 있는데 주머니 속에 벌레가 생기는

것은 그때 천신이 남긴 것이다.

 

창조여신 아부카허허가 남성 천신 아부카언두리로 대체되고 있다. <천궁대전> 9모링에서는 ‘홍수가

지고 땅이 황폐해질 때 버들천모는 아부카언두리 큰 신으로 불렸다’고 최고의 신이 남성신으로 바뀌

었음을 설명하고 있다.

이로써 ‘여성 천신→버들잎→생물과 인류의 탄생’ 구조는 ‘남성 천신→버들잎→생물과 인류의 탄생’

구조로 전환된다‘버들잎→생물과 인류의 탄생’의 논리는 유지되고 있지만‘최고 여성 주재신→

여성조상신→인류의 탄생’ 이라는 구조에서 ‘최고 남성 주재신→여성조상신→인류의 탄생’ 구조로

전환된 것이다.


우주세계의 주재자로 남성신이 자리하면서 창조여신 신화와는 다른 생명 인식이 전개될 수밖에 없다.

창조여신 신화에서는 여성이 생명 생산의 1차적 역할을 담당하면서 남성의 역할을 구조적으로 두드러

지지 않는다.

그래서 ‘세상에 어떻게 남자와 여자가 있게 되었는가’ 라는 문제를 설명하는 <천궁대전> 3모링에서는

창조여신이 최초의 여인을 만들고다음으로 창조여신과 두 여신이 합작하여 자신들의 뼈로 남성을

만든다(여신→여인)(여신→남자)’의 논리를 보이는 것이다.


『성경』의 「창세기」와는 반대로여신과 여성의 몸을 가지고 남성을 만든다.

그러나 남성천신이 주재하는 신화에서는 남성의 갈비뼈로 여성을 만드는 「창세기」의 발상과 마찬

가지로 ‘남성의 허리에 둘렀던 버들잎을 따서’ 여성을 만든다.

‘버들가지 혹은 여성→인류 탄생’ 이라는 기본틀은 계속되지만 여성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크게 감소

하게 된다여성은 남성의 짝으로서 결혼의 형식으로 등장한다.


다음 신화는 이러한 예를 잘 보여준다.

 

 

아주 먼 옛날 우리 부찰富察씨 조상이 살던 호이한虎爾罕강이 갑자기 바다가 되었다.

거대한 바닷물이 모든 생명을 덮어버렸다천신 아부카언두리가 자기 몸에 묻은 진흙으로 만든 사람이

하나 남았는데그가 물 속에서 파도에 휩쓸려 급기야 빠져 죽으려는 순간 물 위에 떠내려오는 버들가지

 하나를 잡고 죽음을 면했다버들가지는 그를 반은 물 속에 잠긴 동굴로 싣고 들어갔는데그 버들가지

가 미녀로 변해서 부부가 되어 후세를 낳았다.

 

이 신화도 역시 남성과 여성의 성적 결합을 신화적 상상력으로 형상화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신화의 구조에서는 남성 천신이 직접 생명을 생산할 수 없기에 창조신화적 성격이 약화되고

홍수신화의 성격을 띠게 된다.

버들가지가 홍수 속에서 남성의 생명을 구원하고 미녀로 변해서 부부가 되어 후세를 낳는다는 구조는

성행위의 표현이면서홍수신화적 구조다이 홍수신화에서도 버들잎즉 여음은 인류의 시조신격 ․

조상신격이 되지만전체적인 구조는 여성 천신이 주재자로 등장하는 신화와 아주 다르다.


남성천신이 주재자로 나타나는 위의 신화는(남성천신→분신 남성 창조)(물 속의 버들가지→변신

미녀)→결혼→인류탄생’이라는 구조를 보인다.

이는 ‘(천제→아들 해모수)(하백→딸 유화)→결혼→건국 시조’의 과정을 보이는 고구려 건국신화의

기본 인식과 거의 완벽하게 일치한다물 속 버들가지가 생명을 구해주고 미녀로 변신하여 천신의

분신과 결혼하는 만주족 신화는물의 신 하백의 딸 유화가 천제의 아들 해모수와 결합하는 고구려

신화와 일치하는 것이다.

작고한 이병도 선생이 지적한 바 있듯이 논리를 확대하면(주재자 환인→아들 환웅)(동굴 속의 곰→

변신녀)→결혼→단군의 탄생과 건국’의 과정을 보여주는 <단군 신화>와도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남성 천신이 최고 주재자의 자리를 오르면서 여음 상징인 버들천모는 남성신의 짝으로 등장하는 구조를

보인다창조여신으로서의 성격을 잃어버리고 여성 시조모의 성격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여음 상징인 버들여신은 창조신격인 아부카허허 천모로조상신격인 푸투마마와 푸허마마로남성신과

결혼하는 짝으로서의 시조모로 거듭 변신하고 있다이제 민속신으로 섬겨지는 여신을 살펴보자.

 

 

자손 번성과 풍요의 버들시조모 )

 

신화에서 시조모신으로 나타난 버들시조모 푸투마마는 만주족의 본가을 집안 제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숭배의 대상이다산에 가서 가지가 풍부한 버들가지를 꺾어다가 그 동안 집안에 모셨던 작년의

‘버들시조모신’과 바꾸는 환쇄換鎖의식을 통해 시조모신은 이 집안에 다시 모셔진다.

가을걷이 음식을 먹기 전 9,10월에 새 곡식으로 버들시조모인 푸투마마를 모신다버들시조모신의

보호와 풍년에 감사하면서 새 곡식을 신령이 먼저 잡숫게 하는 것이다‘환쇄하지 않으면 햇곡식을

먹을 수 없다不換鎖能吃新谷子’고 할 정도로 만주족은 이 ‘시조모신’에게 한해의 감사를 표시하였다.


제사의 과정은 이렇다.

 

 

먼저 우리 나라에서 돌잔치 때 아이에게 잡게 하는 실타래처럼 두터운 자손실을 방 서쪽에 모셔진

조상 신주함에 자손주머니에서 꺼낸다실의 한 끝을 뜰안 동남쪽에 세운 버들가지에 연결한다.

이 버들가지는 새로 산에서 꺾어온 것이다.

주머니와 버들가지에 절하고 노래한다다시 아이의 배에 다른 줄을 묶은 다음 그 줄을 버들가지에 맨

자손실과 연결한다각 가정에서 얻어온 흑 ․ 백 ․ 남색의 실을 함께 연결하기도 한다.

이 줄을 집안의 사람 수에 따른다금년 이 집에 태어난 남자아이 숫자대로 작은 화살을 만들어 자손실

에 묶기도 한다.

씨네는 화살을 놓지만 양씨는 돼지나 양의 다리뼈를 놓기도 한다홍 ․ 녹색의 헝겊으로

탄생한 여아를 나타내기도 한다버들가지 위에는 7~9장의 백지를 놓는다모든 공물이 준비되면 샤먼

은 춤추고 기도한다.

이때 자손실에 묶은 흑 ․ 백 ․ 남색의 줄이 신력을 갖게 되는데이를 자손실에서 떼내어 아이들의 배꼽

위에 매어서 태평과 안녕을 빈다석씨네는 하루를 매는데, 3일을 매는 집도 있다자손실은 하루 후

풀어서 자손주머니에 넣어둔다.

제사후 새 버들가지는 방의 동남쪽에 모셔두고 평시에는 옮기지 않는다묵은 버들가지는 집 근처 강가

에서 태운다.


샤먼은 이 제사를 지내면서 “자손이 끈을 차고 평안하게 지내는 것은 주머니에서 생긴 것으로주머니

가 크면 자손이 번성합니다석씨 집안의 번성을 푸투마마에게 비옵나니큰 가지처럼 잎이 무성하고

무궁히 번영하기를나무의 무성함같이나무의 번영함같이”라는 제문을 노래한다.

 

이 제의는 버들시조모신의 생명력을 전수받기 위한 것이다강가에서 물을 흡수하며 제일 먼저 봄을

싹틔우는 버드나무의 생명력과 풍요를 현재화하는 의식이다새로운 버들가지와 새로 강림하신 시조

모신의 풍요와 생명을아이는 자손실을 통하여 흡수한다.


제사의식에 나타난 버들시조모신은자손을 번성케 하는 조상신으로가을추수를 가져다주는 풍요의

신으로 두 역할을 하고 있다수신水神 계통의 신으로서 물이 가진 생명력을 다양하게 실현하는 것이다.

고구려 신화의 주인공 유화가 ‘하백의 딸’로서 수신의 성격을 가지고 주몽의 어머니인 조상신으로,

또한 건국을 위해 남으로 떠나는 주몽에게 5곡의 종자를 전해준 농업신으로 두 성격을 가졌던 사실과

일치한다이 의식에서 모셔진 버들시조모신은 바로 고구려 신화의 다른 얼굴인 것이다.


환쇄의식을 통하여 만주족이 집집마다 방안에 섬겼던 이 버들시조모신은 청나라 궁정에서도 아주

엄격히 모셨던 신다건륭 황제 때 완성된 만주 민족신 제사규범집인 『만주 제신 제천 전례』를 보면

이 버들시조모신에 대한 제문이 원문 그대로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황녀가 아이일 때 버들가지에 제사 지냈다는 제문도 남아 있고황제의 자식들을 야단칠 때 버들가지를

이용했다는 기록도 있을 정도로 청의 궁정에서는 유화신을 공경하였다유화 신격은 푸투마마라는 이름

으로환쇄의식과 궁중의 제사의식뿐 아니라 설화에서도 시모신조상신의 자리를 확고히 하고있다.

민속문학의 모든 장르에 그이 모습이 존재할 만큼 푸투마마는 강력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버들여신의 지상 강림 )

 

창조신화의 버들천모신은 앞에서 본 것처럼 버들시조모신으로 섬겨지기도 하였지만천신의 모습

그대로 숭배되면서 지상에 강림하기도 하였다다음과 같은 ‘버들여신 제사柳’가 그 예다.

 

 

썰물이 되어 강이 마르고 전염병이 돌거나 혹은 버들잎에 길게 자라 녹색주머니가 생길 때 부족에서는

‘버들굿’을 거행한다왕녀가 예쁜 여자아이를 지명하는데, 9명이나 17명 많게는 33명이 되기도 한다.

선택된 여자아이들은 온몸을 벌거벗고 단지 버들가지와 잎으로 짠 띠를 허리에 두르고버들여신 혹은

해신海神과 수신水神을 대표한다부족 사람들이 이들 신녀를 둘러싸고 그들의 몸에 사슴피정결

한 강물을 뿌린다.

신녀들이 춤추고 노래하면 모두 소리쳐 호응하고 여샤먼은 요령을 흔들고 북을 두드린다.

신녀들은 마을의 거주지에서부터 들판산꼭대기를 지나 강가해변 등 마을 사람들이 늘 활동하던

사방으로 달려간다가는 동안 달리며 춤추고 노래하며 부르짖어 분위기가 매우 강렬하다지나는 곳

마다 사슴피와 강물로 버들여신에 제사하여 신령님이 부족들에게 풍어豊漁와 순조로운 풍우風雨

내려주시기를 기원한다.

 

만주족 영웅전설 「동해침원록」에 기록된명나라 때 동해 홀단하 부족의 버들굿 모습니다.

1930년대까지 이와 유사한 의식을 지냈는데이때 버들여신 역할을 한 여자들은 옷을 입었다고 한다.


강이 마르고 전염병이 돌 때 행해졌다고 하니 이 버들굿에서 모셔진 버들여신은 풍요와 벽사의 기능을

함께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신녀들이 벌거벗는 것은이 굿에서 맞이하는 여신이 ‘여성의 성’을 신격

화한 존재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준다.

또한 벌거벗은 몸에 버들잎을 허리에 두른 신녀들이 버들여신 혹은 바다의 신과 물의 신을 대표한다고

했다그러니 이 선녀들은 ‘물의 용’을 주재했던 창조여신 버들천모의 지상강림을 재현하는 분신이다.

그러므로 이 신녀들은 여음을 인격화한 신으로서수신과 천신의 복합적 성격을 가지게 된다.

부족 사람들은 풍요와 생명의 상징인 버들천모의 지상 강림을 신녀들의 몸으로 체현시키면서 그들에게

사슴피정결한 물을 뿌려 경배하고 강림을 치하한다그리고 이들 신녀들 즉 버들천모는 벌거벗고

마을과 강들을 달리며 풍요와 생명의 지상강림을 전이시키는 것이다.


버들여신은 수신으로서 ‘물고기굿魚祭’에서 숭배되는 경우도 있다.

 

물가의 새 버드나무 가지로 사람 크기만한 두세 개 물고기 형태 인형을 만든다이 인형은 지느러미만

흰 새의 깃털로 만들고모두 신선한 버들가지와 잎으로 만드는 데 도약형비등형잠수형두 물고기

희롱형교미형 등 생기발랄하고 활달한 모양을 취한다.

제사할 때는 선택된 헤엄 잘 치는 젊은 남녀가 그 물고기 인형 속으로 들어가 아가미를 움직이고 꼬리

를 흔들며 잠수했다 솟아올랐다 하여 고기떼와 물이 다투듯 한다우두머리 여자의 몸에는 버들가지로

만든 버들구슬 장식을 달고굿을 주관하는 여자 샤먼과 군중들은 모두 몸에 버들잎을 두르며마을의

남녀 어린아이들은 버들가지와 껍질로 만든 각종 물고기형 모자를 써야 하는데 잉어머리 모양고래

머리 모양날치 나는 모양 등이 있다강가의 어느 곳이나 물고기 인형물고기 춤물고기 노래 등의

제사가 이루어져 마치 바닷속 용궁에 이른 것 같고물고기가 세상에 나와 물고기의 세계버드나무의

세계가 된 것 같다.

이런 거창한 물고기굿이 3일 밤낮 계속되는데 사람들은 남녀노소 모두 강가나 해안에서 작은 목선을

타고 즐기며버들잎과 물고기를 먹고 사슴피를 마시고 강물을 마신다이렇게 해야 신성한 물고기신은

비로소 풍어를 마련해 준다.

 

 

만주족 서사시 「우부시번마마」에 나오는 ‘동해와집부東海窩集部’의 물고기굿 모습이다.

버드나무로 만든 물고기 인형을 다시 버들잎으로 포장하고헤엄 잘 치는 젊은 남녀가 이 물고기 인형

으로 들어감으로써 이들이 물고기즉 어신이 된다그리고 동시에 물고기 인형의 재료였던 버드나무

여신이 된다.

샤먼과 군중들이 모두 버들잎을 두르고 버드나무 껍질로 만든 물고기형 모자를 쓰고 물고기 춤을 추

면서 용궁에 간 것처럼 한다는 것은참석자들도 모두 버들여신과 물고기신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버들이 여음과 물을 상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물고기 또한 그 다산성으로 인하여 여음과 물을 뜻한다.

버들여신과 물고기여신은 모두 물과 여음을 상징하며 다산과 풍요를 의미하기 때문에버드나무로

물고기 인형을 만들어 신의 강림을 기원하는 이 행사는 그야말로 곱빼기 풍요를 가져올 수 있는 풍요

제의의 극치인 것이다.

이 물고기굿은 1차적으로 풍어제이지만앞에서 본 버들굿의 형태로 함께 보인다.

수신제가 결합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버들여신굿이나 물고기굿은 모두 버들천모의 지상 강림을 현재화하고 지상화하는 의식이다.

벌거벗은 채로 버들잎을 두르고 춤을 추는 처녀나버들가지로 만든 물고기 인형 속에 들어가 강물에서

물고기가 되는 처녀들은 모두 버들천모의 현신으로서 유화신의 모습을 갖는다.

압록강 웅심연에서 목욕하던 유화 자매의 모습이 바로 이러한 물 속에서 행해진 보들굿의 한 장면이

아니었을까버들굿과 물고기굿이 그 신화의 놀이를 모방하는 것은 아닐까.


이제 우리는 유화가 동명왕을 길러냈듯이 버들여신이 왕권의 생성에서 행한 역할을 살펴보자.

 

 

버들여신이 탄생시킨 황들 )

 

버들천모는 사류射柳즉 ‘버들 쏘기’라는 독특한 의식을 통해서도 변신을 하고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

낸다.

 

여자 대샤먼 우부시번은 ‘버들 쏘기’ 의식을 통해 동해 720개 부락의 여왕이 된다.

여샤먼은 신이 선정한 큰 산의 높고 오랜 버드나무에서 아홉 개의 싱싱한 버들가지를 채취한다.

이를 ‘구왕류九王柳’라 하는데 창조여신 버들천모 아부카허허를 상징한다.

여샤먼은 말을 달려 제단으로 가져와서 그 덩굴로 광야의 높은 나무에 버들가지를 묶는다.

그러면 모든 부족이 재배再拜후에 돌화살을 교대로 쏘아 높은 나무 위의 버들가지를 맞추는 사람이

바로 창조여신이 선택한 여왕으로 인정된다떨어뜨린 버들가지는 사람들이 다투어 가져다 물에 끓여

먹는데이는 버들잎 탕을 마시면 상서로운 일이 생긴다고 믿기 때문이다.

남자는 곧 호랑이처럼 용감해지고 강한 생식력을 갖게 되며여자는 새 여왕과 여러 여왕을 낳게 된

다고 여기는 것이다이러한 의식은 하늘의 뜻을 알려주므로 버들 쏘기로 부락의 흥망을 결정한다.

씨족 간의 싸움을 버들 쏘기로 결정하기도 하는데 ‘하늘의 정한 결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부시번마마」에 나타난 사류 풍속이다이 의식은 여진족의 『금사金史』뿐 아니라 거란족의

『요사遼』에도 무수히 기록되어 있는데종교의식과 군사 훈련이 결합된 독특한 의식이다.

‘신이 정한 높고 큰 산에서 베어온 싱싱한 버들가지’는 창조여신인 ‘버들천모신’을 상징한다.

그리고 이 버들가지를 맞추는 여인이 여왕이 되면서그녀는 창조여신이 점지했다는 의미와 함께 창조

여신의 지상 분신이 된다버들가지를 명중시키는 여인은 창조여신의 선택과 강림을 체현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사류 의식을 통해 쏘아 떨어뜨린 버들가지는 창조여신 버들천모신이 가진 풍요와 다산을

의미하기에버들잎 탕을 마시면 남자는 ‘용감함’과 ‘생식력’을 가지게 되고여자는 여왕을 낳은 것이다.

 

여기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버들가지를 맞춤으로써 버들천모신의 선택을 받았다고 간주된 여신이

바로 여왕으로 인정된다는 사실이다버들여신과 그의 지상 체현자가 여왕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버들잎 탕을 마시면 여왕을 낳는다는 생각도 같은 논리다.

버들천모신과의 접합그녀를 체현하는 것이 ‘하늘이 정한 결정’ 이라는 신성성을 얻고나아가 ‘왕권의

실현’ 으로까지 의미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버들 쏘기’ 로 여왕을 뽑는 의식 안에 의미 버드나무는

여왕과 왕권의 상징으로 인정된 것이다자연스럽게 버들 쏘기를 통하여 남성 왕이 탄생하기도 한다.

 

우부시번마마가 말을 달려 아홉 왕버들을 쏘아 떨어뜨리기도 하는데무리들은 이때 버들천모신이

선정한 영명왕英明왕이 강생한 것으로 믿고 환호한다영명왕은 천리 동해를 평화롭고 행복한 낙원

으로 바꿔놓는데모든 부락의 왕과 새로운 영명왕은 모두 ‘버들 쏘기’를 통해 뽑는다는 규칙을 남기

기도 하였다.

 

이 기록은 앞에서 본 ‘버들천모신→버들 쏘기→영명왕 탄생’ 구조로 바뀐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버들여신이 왕의 탄생과 결합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기록은 같은 의미를 지닌다.

특히 우리는 ‘천리 동해를 평화롭고 행복한 낙원으로 바꿔놓는’ 남성 왕의 힘이 ‘버들 쏘기’를 통하여

버들여신으로부터 부여받는 것으로 만주족이 인식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위의 신화에서처럼 버들여신과 결합되면서 남성 왕이 탄생하는 역사적 양상을 아골타와 누르하치에

게서 확인할 수 있다.

 

어느 날 압자하 남쪽에서 사람들이 활 시합하는 것을 본 아골타는 말을 달려 50보 밖에서 활을 쏘아

버들가지에 만든 흰 점을 끊는 사람이 이기는 것으로 하였다마을 청년들이 모두 실패하자 아골타는

번개처럼 말에 올라 바람처럼 달려 100보 밖에서 몸을 돌려 ‘쉿쉿’ 화살 세 대를 쏘아 버들가지

세 개를 모두 끊어버렸다.


저녁에 제천잔치가 벌어졌는데거기서 아골타는 사나운 호랑이가 사람을 해친다는 소리를 듣고 개

에게 술을 먹여 풀어놓았다며칠 만에 개를 잡아먹고 비틀거리는 호라이를 화살을 날려 잡았다.

잔치가 벌어졌는데 호피를 가져가라는 노인에게 아골타는 “나는 완안부完顔部의 아골타로서백성을

위해 해악을 없애는 것이 나의 본분이오내가 이렇게 돌아다니는 것은 여진 각 부락이 연합하여 호랑이

보다 해악한 요나라 군사遼에 대항할 준비를 하는 것이오” 하였다.

요나라 왕의 폭정에 시달리던 그들은 모두 “우리를 영도하여 함께 요에 대항합시다.

아골타우리 여진인의 용사여하늘이 보우하다 만사형통하시길” 하였다아골타는 가는 곳마다 버들

쏘기를 가르쳤는데이로부터 제천이 끝나면 버들 쏘기 경기를 하였다.

아골타는 금나라를 세운 후에도 성지를 내려 민간이든 조정이든 제천후에는 버들 쏘기를 하도록 하였다.

 

 

<아골타 전설>이라는 제목의 설화다버들 쏘기 의식은 『금사』같은 역사 기록에 왕이 직접 참여

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을 정도록 왕권의 수행과 깊은 관계에 있었다왕이 집행해야 할 종교적인

신성의식이었던 것이다.

이 전설에서 바람에 날리는 버들가지를 쏘는 것은 분명히 일종의 군사 훈련이다.

활 쏘는 실력은 여진족에게는 호랑이보다 해악한 요나라를 칠 무기이고아골타 개인에게는 여진족

지도자로서의 자질이자 징표다.

버들 쏘기는 여진족과 아골타에게 이민족에 대항할 민족의 정신적 일체성을 확보하는 절차인 것이다.

여기서 아골타가 버들 쏘기 행위를 거쳐서 사나운 호랑이를 물리치고 ‘여진의 용사’‘영조다’ 로 자리

매김하는 과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 개의 버들가지를 명중시킨 버들 쏘기 행위는 여진족 영도자 자리에 오르기 위한 통과의례가 되고

있다.

아골타의 버들 쏘기 행위는 ‘버들 쏘기’를 거쳐 여왕으로 점지받고 등극하는 신화적 의식과 동일하다.

‘버들천모신+버들쏘기→여왕 탄생’ 이라는 버들 쏘기 의식의 구조가 아골타라는 인물에게서 전이되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앞에서 본 ‘아홉 왕버들 쏘기+영명왕의 탄생’ 이라는 구조가 아골타를 만나

‘버들쏘기+여진 영도자 아골타’ 로 나타난 것이다.


이 <아골타 전설>은 버들쏘기 습속이 아골타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기원설화로 보면 안 된다.

이미 신화의 제의 양식으로 있었던 버들 쏘기 의식을 통하여 ‘영명왕 아골타’의 탄생을 제의적으로

재현하는 당대의 신화인 것이다.

이 ‘버들 쏘기+여진 영웅 아골타의 탄생’ 이라는 전설은‘버들천모신+버들 쏘기+왕의 탄생’ 이라

는 원형적 구조가 역사적 인물을 만난 구체화된 것이라고 이해해야 한다‘버들여신’은 ‘버들 쏘기’라는

의식을 통하여 아골타에게 강림하고 신탁하면서 그를 왕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신화적 제의의식이 한 역사적 인물에 의탁하여 ‘위대한 아골타’의 전설 구조로 그를 왕으로 만들어

냈다는 논리인 것이다이러한 양상은 청태조 누르하치에게서도 나타난다.

 

부모 없이 자란 어린 누르하치가 13, 4세때명나라 요양 총병 이성량李成粱의 집에서 발을 씻어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어느 날 이 총병이 자기는 발바닥 점 때문에 출세한 것이라고 자랑하자 어린 누르

하치가 자기 발에도 일곱 개의 점이 있다고 하였다.

이 총병은 부인에게 북경 흠천감에서 별자리를 보고 요동에 혼세용混世龍이 나타났으니 조사하라

했는데 우리 집에서 찾았으니북경에 가면 황제가 중상을 내릴 것이라며 어린 누르하치를 잡아 북경

으로 올라갈 준비를 시켰다.


그 이야기를 들은 작은부인 희화喜花가 어린 누르하치를 구할 결심을 하고 밤에 몰래 이야기를 해주어,

이 총병의 말 대청大靑에는 희화가 타고어린 누르하치는 이청二靑을 타고 백두산 방향으로 달렸다.

가다가 이청이 지쳐 쓰러지자희화가 대청에 둘이 타면 한 사람도 못 도망한다고 하며 잠시 쉬자고

하였다어린 누르하치가 잠이 들었는데눈을 떠보니 언제 따라왔는지 누렁이黃狗가 와 있었다.

희화를 찾으니 그녀는 굽은 배나무 가지에 목매어 죽어 있었다.

어린 누르하치는 “나를 위해 굽은 배나무에 죽으셨으니 와리마마 와梨媽媽라고 부르겠어요”라며 통곡

하였다계속 도망하다가 대청도 넘어져 죽었다그는 “나를 구하고 죽었으니 황제가 되는 날 국호를

대청이라 부르리라” 하였다.

(어린 누르하치가 숨어 잠든 건초더미에 명나라 군사가 불을 지르자 누렁이가 물을 적셔 구하고 죽은

이야기어린 누르하치가 강에 가로막히자 까마귀들이 달려들어 시체처럼 가장하여 명군을 따돌린

이야기가 계속됨.)


어린 누르하치는 왕위에 오른 후 그때의 약속대로 만주족에게 첫째서쪽에 와리마마의 신주를 모셔서

희화를 조상으로 제사 지내고둘째개를 죽이지 말고개가죽 모자를 쓰지 말고개고기를 먹지 말고,

셋째대문 왼쪽에 솟대를 세워 그 위에 은이나 주석 그릇을 두어 오곡을 넣어 까마귀에게 주도록 명을

내렸다.

 

부모 없이 자란 누르하치가 어릴 때 요동 총병의 이성량의 집에 의탁하다가 세상을 흔들 혼세용이라는

정체가 드러나 잡혀 죽을 위기에 처했으나 간신히 벗어나 왕위에 올랐다는 이야기다.

이 누르하치 전설은 신화적 영웅의 전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하늘이 내려준 그이 영웅성은그를 북경으로 잡아가려는 이성량의 작은부인이 오히려 그를 돕는 것,

의견義犬이 물을 적셔주어 불구덩이에서 살려낸 것막다른 강에서 까마귀가 시체처럼 꾸며서 살려준

것 등 세 가지 삽화로 강화된다이 셋의 도움으로 왕위에 올랐다는 것이다.


여기서 명나라 총병의 작은부인으로서 남편을 거역하고 누르하치를 구출하여 함께 탈출하는 희화 부인

의 성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누르하치는 왕위에 오른 후 굽은 배나무에 목매 죽은 그녀를 와리마

마라 부르고 그 신주를 집안에 모시며 조상처럼 제사 지내도록 하였다고 한다.

그녀는 누르하치와 만주족의 조상신이 되는 것이다그런데 그 여신은 바로 버들여신이다.

 

이 설화의 다른 이본에 의하면 이성량의 작은부인 이름은 자미紫薇인데구원자인 그가 죽자 어린

누르하치는 “당신이 내 생명을 구하고 죽었으니 내가 만일 천하를 얻게 되면후세 사람들에게 당신을

버들시조모신으로 섬기게 하겠소”라고 다짐한다그리고 천하를 얻은 왕은 버들시조모신의 은정을 못

잊어 마마묘媽媽廟를 지어주었다고 한다.


누르하치를 구한 이성량의 소실 이름이 희화이건 자미건 와리마마건 그녀는 장차 왕이 될 누르하치의

생명을 구한 행위로써 누르하치와 만주족으로부터 버들시조모 여신 푸터마마로 인지되고 있다.


길림지역에 널리 퍼져 있는 이런 유형의 설화에서 그녀는 왈리마마万歷媽媽푸토마마佛頭媽媽,

푸터마마왈리마마媽媽우스마마無事媽媽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데모두 버들시조모

여신이란 의미다.

이처럼 어린 누르하치의 생명을 구하여 장차 왕이 되도록 이끌어준 여인은 이 지역에서 버들시조모

여신으로 확고하게 인식되고 있은 것이다버들여신은 누르하치가 왕이 되기까지의 서사적 노정에서

필수적으로 결합될 수밖에 없는 핵심적 의미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버들천모가 지상 인격화된 버들시조모 여신의 생명 보우를 거쳐서 누르하치는 왕의 자리에 올랐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 설화에서 보다 분명해진다.

 

어린 누르하치의 형제들이 모여 장래의 꿈을 이야기하고 있었는데하얀 수염의 노인이 나타나 어린

누르하치에게 무슨 일을 하겠냐고 묻자 그는 천지를 바꿔놓겠다고 하였다노인은 어린 누르하치가

자랑하는 활창술 같은 재주로는 큰일을 할 수 없다며 참재주를 배우려면 푸터 할머리를 찾아가라

했다다음날 어린 누르하치는 푸터 할머니를 찾아 길을 떠났고, 99, 99, 99하늘을 돌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큰 강이 가로막았다.

고기잡이 어선을 발견하고 불렀지만 그들은 응답을 하지 않았다.

그때 어떤 배 한척이 다가왔다머리에 수건을 쓰고 눈이 맑은 예쁜 처자와 노인이 그 배에 타고 있었

는데노인의 병을 치료할 약을 구하러 가다가 배를 돌려 어린 누르하치를 태워준 것이었다.


이들과 헤어져 어린 누르하치는 작은 주막에 묵었는데주인이 마취약을 넣은 술을 먹여 돈을 빼앗고

그를 강물에 던져버렸다그때 마침 고기잡이 부녀가 병을 치료한 후 배를 타고 돌아오다가 떠내려오는

어린 누르하치를 구해주었다.


소녀의 성은 불씨고 이름은 삼양三孃이라 했는데그들의 집에 3, 4일 머물면서 몸이 좋아졌다.

이때 다시 병이 중해진 노인은 어린 누르하치에게 둘이 결혼하면 좋은 짝이 될 텐데 어떠냐고 물었다.

남매처럼 지내겠다는 어린 누르하치의 대답에 실망하는 노인을 위로하려고불삼양은 말로만이라도

일단 결혼을 약속하여 노인을 기쁘게 해드리자고 하였다.

불삼양의 태도에 감동한 어린 누르하치가 결혼을 승낙하자 노인은 두 사람의 손을 마주잡아주고 죽었다.


장례를 치른 후 어린 누르하치는 불삼양에게 “사부를 찾아가 무예를 익히고 다시 와서 데려가겠다”며

푸터 할머니를 찾아 떠나겠다고 하였다그러자 불삼양은 푸터 할머니는 바로 자기의 고모라고 하였다.

불삼양은 푸터 할머니가 구정철찰산九鼎鐵刹山의 팔보운광동八宝雲光洞에 사신다고 알려주고그 고모

가 주었던 손수건을 주면서 배를 태워 강을 건네주었다.


천신만고 끝네 푸터 할머니를 찾은 어린 누르하치가 불삼양에게서 받은 손수건을 드리자 푸터 할머

니는 그를 받아들였다장작 패기청소 등 잡일을 하던 어린 누르하치는 무예를 가르쳐달라고 재촉

하였다그러자 푸터 할머니는 ‘보는 눈’을 먼저 단련하라고 하며 손바닥의 낱알이 감자만 하게 보이면

다른걸 가르쳐주겠다고 하였다.

수련을 한 끝에 계란만 하게 보이게 되자 푸터 할머니는 무예를 가르쳐주기 시작했따.

십팔반十八般 무예를 배우고 나서 더 강한 무예를 요구하자 푸터 할머니는 느릅나무 대포와 돌대포

만드는 법을 차례로 가르쳐주었다어린 누르하치가 더 강한 것을 가르쳐달라고 성심으로 졸라대자,

푸터 할머니는 철포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고, 3부로 구성된 『천서天書』를 주었다(전설에 의하면,

왕이 산해관에 들어갈 때 성벽을 부슨 대포가 바로 푸터 할머니가 가르쳐준 대포다).

 

4년을 배워서 어린 누르하치는 천문과 지리에 통달하게 되었고십팔반 무예와 대포 만드는 법 등

일체를 배우게 되었다푸터 할머니는 그에게 하산하여 불삼양을 찾고 백성을 구하라 하였다.

어린 누르하치는 『천서』를 가지고 불삼양을 찾아 하산하였다.

 

하얀 수염을 한 노인의 말에 따르면푸터 할머니는 ‘천지를 바꿀 꿈을 가진 어린 누르하치’에게 ‘참

재주’를 가르쳐줄 신비한 존재다장차 왕이 되기 위한 능력과 자질을 갖춰줄 인물인 것이다.

그러기에 어린 누르하치는 그 참재주의 화신 푸터 할머니를 찾아 길을 떠나는 것이다.

그 행로에서 주막 주인이 준 마취약 탄 술을 마시고 주검이 되어 떠내려가는 어린 누르하치의 목숨을

구해준 불삼양은 푸터 할머니를 고모라 부르는 푸터 할머니의 분신이다.

어린 누르하치는 불삼양과 결혼을 하고 그녀의 도움으로 강을 건너 푸터 할머니를 찾는다.

그리고 왕이 될 모든 자질즉 무예와 대포를 만드는 기술과 천문 지리에 통달한다.

후일 산해관을 넘어뜨린 대포의 제조 기술도 그로부터 전수받은 것으로서푸터 할머니는 바로 ‘천하

를 바꿀 모든 힘과 지혜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이 설화는 어린 누르하치가 두 번 버들여신과 결합하는 구조를 갖는다.

불삼양은 그 이름이 의미하듯 푸터 할머니를 고모라 부르는 분신으로서강물에 던져진 어린 누르하치

를 건져내는 생명의 구원자다어린 누르하치가 불삼양과 결혼하는 것은 그녀의 생명적 속성과 결합

하는 것이다.

그리고 푸터 할머니를 찾고 지혜와 무예를 익혀 왕으로서의 모든 자질을 획득하게 된다.

불삼양과 푸터 할머니는 버들여신의 두 얼굴로서어린 누르하치의 ‘왕으로서의 자질’ 획득과 ‘왕위의

탐색’ 과정에 필연적 인물로 결합되고 있는 것이다버들시조모신과의 결합이 누르하치의 왕권 획득에

절대적이고 불가결한 요소로 각인되면서이러한 신화와 설화가 만주족에게 진실로 수용되었던 것

이다.

 

 

한반도에서의 유화와 그 변신

 

고구려 동명왕을 만든 유화 )

 

고구려 건국신화에서 유화는 하백의 딸로서 허락 없이 해모수와 혼인하여 주몽을 잉태하고건국을

위해 남으로 떠나는 주몽에게 곡식 종자를 전해주는 신모로 등장한다그러기에 그는 농업신으로

해석되기도 하였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문면에 유화를 버들여신으로서 여음의 상징으로 해석할 직접적인

징표는 드러나 있지 않다그러나 물거품에서 나와 ‘물의 용’을 주재하며 인류를 양육했다는 창조여신

버들천모신의 속성은 그대로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유화는 웅심연에서 노닐다가 부모의 허락 없이 결혼한 죄로 우발수로 귀양 와서 물 속 그불망을 찢는

기이한 물짐승이었다신화의 이러한 기록은벌거벗고 버들잎을 허리에 두른 처녀들이 물 속에서

노닐며 버들 천모의 강림을 재현하였던 ‘버들굿’ 의식에서의 버들처녀의 모습과 일치한다.

그리고 버드나무로 만든 물고기 인형을 쓰고 물속에서 자맥질을 하는 만주족 ‘물고기굿’에서의 여인도

바로 하백의 딸 유화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주몽이 탄생하여 건국하기까지의 과정도 만주족 신화와 일치한다(천제→아들 해모수)(하백→딸

유화)→시조 주몽의 탄생’ 과정을 보이는 고구려 건국신화는 ‘(남성 천신→분신 남성)(물 속의 버들

가지→변신 미녀)→결혼→인류 탄생’이라는 만주족 신화와 기본 골격이 일치한다.

물 속의 버들가지가 생명을 구해주고 그가 다시 미녀로 변신하여 남성 천신의 분신과 결혼하는 과정은,

그대로 물의 신 하백의 딸 유화가 천제의 아들 해모수와 결합하는 구조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천제 환인→아들 환웅)(동굴 속의 곰→변신녀)→결혼→조선 건국’의 과정을 가진 <단군 신화>

와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은 ‘고구려’ 조에서“「단군기檀君記」에는 단군이 서하西河 하백의 딸과

맺어서 아이를 낳아 부루라 했는데 …… (다른 기록에는) 해모수가 하백의 딸과 관계하여 주몽을 낳았

다고 했다” 고 하면서 역사기록에 혼돈이 있음을 지적하는 바 있다.

단군이 하백의 딸과 결혼하여 부루라는 아들을 낳았다는 「단군기」와해모수가 하백의 딸과 결혼

하여 주몽을 낳았다는 역사기록이 보이는 혼란을 일연은 “부루와 주몽은 이복형제일 것”이라는 추정

으로 수습하고 있다두 기록을 모두 사실적 기록으로 수용하면서 ‘이복 형제’라는 혈연 논리로 모순된

역사를 설명한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일연의 이 추론은신화를 실증적으로만 읽어낸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일연의 이 추론은신화를 실정적으로만 읽어낸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일연이 모순이라고 생각한 「단군기」의 ‘단군+하백의 딸→부루’ 의 구조와 ‘해모수+하백의 딸 유화

→주몽’의 구조는왕권은 ‘천신의 아들과 수신 딸의 결합’으로 잉태된다는 원형적 의식이 사실적 믿음

체계로 반복 구현된 것이지 개별적 역사의 기록이라고 볼 수는 없다.

남성 천신의 후예와풍요와 생명의 상징인 ‘물의 딸’이 결합하여 건국의 시조가 탄생하는 의식 구조

에서 보면부루와 주몽은 원형적으로 공동 자질을 가진 존재로서 족보상의 촌수로 따질 필요가 없는

관계다.

일연은 건국의 시조들이 버들시조모신에 의해 잉태되어야 하는 신화적 믿음 체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혈연관계를 재구성하여 부루와 주몽을 이복 형제로 풀이한 것이다하백의 딸 유화는 단군과 해모수뿐

아니라 왕권을 낳을 자격이 있는 인물이라면 누구라도 결합할 수 있는 존재였다그러기에 신화시대를

지나 역사시대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만주에서는 아골타와 누르하치를 유화 신격과 결합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편유화도 만주족 환쇄의식의 ‘버들시조모신’처럼 시조모신이면서 동시에 곡식의 생산과 관계된

여신이었다유화는 남으로 내려가는 주몽에게 5곡의 종자를 보내주는 신모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러 증거로 볼 때고구려 신화의 유화도 창조여신 ‘버들천모신’이나 ‘버들시조모신’이 역사적

사실로 재현된 이름인 것이다유화 역시 버들여신이 지상 인격화되어서 역사화된 존재였던 것이다.

실존 인물에 버들여신의 성격이 부가되었다고 보아도 결과적으로 유화의 성격은 변할 수가 없다.

 

신을 모시는 사당이 두 곳인데두 신 중 하나는 부여신이라 하여 나무를 조각해서 부인의 형상을 만들

었고또 하나는 등고신이라 하였는데 그가 바로 시조로서 부여신의 아들이라 하였다.

모두 관사를 두고 사람을 파견하여 지키는데 아마 하백의 딸과 주몽인 듯하다.

 

나라의 동쪽에 큰 굴이 있는데그것을 수혈隧穴이라 부른다. 10월에 온 나라에서 크게 모여 수신隧神

을 맞이하여 나라의 동쪽 위로 모시고 가 제사를 지내는데 나무로 된 수신을 신의 좌석에 모신다.

 

 

앞의 자료는 유화가 주몽과 함께 계속 신으로 숭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두 번째 자료의 긴 굴에서 맞이하는 동굴신隧神도 유화 여신으로 생각된다.

이병도 선생은동굴신은 웅녀신이고동쪽 물가에서 제사 지내는 신은 하백 여신이라고 추정하여 이

기록을 두 명의 여신을 섬기는 형태로 해석한 바 있으나내 생각으로는 동굴신과 물가에서 제사 지낸

신은 다른 존재가 아니고 모두 유화신이다.

두 번째 자료의 한문 기록을 ‘동쪽굴에서 동굴신을 맞이하여 동쪽 강가에 모시고 제사 지낸다’로 읽

으면하나의 신에 대한 숭배 기록이 된다이 하나의 신이 바로 여성과 물을 상징하는 유화 여신이다.


동굴신과 물의 신이라는 두 가지 성격을 모두 가진 여신이 유화 여신이다.

남성 천신 아부카언두리가 주재자로 나오는 만주족 창조신화에서 ‘물에 떠내려가는 남자를 구해준

버들가지는 남자를 물 속에 잠긴 동굴로 싣고 들어가서는 자신이 미녀로 변해서 부부가 된다.

성행위를 신화구조로 서사화한 이 신화에서 ‘물 속에 잠긴 굴’은 버들가지와 물과 함께 여음의 상징

이다『삼국유사』와 오늘날의 설화에서 암석과 석굴이 아들낳기와 관련되어 있음도 참고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동굴신은 생명을 창조하는 버들천모 유화 여신의 또 다른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10월에 지내는 이 동굴신 제사는앞에서 본 것처럼 여진족이 동해에서 행하던 ‘버들굿’ 과

‘물고기굿’ 의 또 다른 형태임이 분명하다. 10월의 제사는 버들여신이 주인공인 창조신화와 시조모

신화의 민속제의적 재현이다버들천모신화가 굿으로 표현된 사례가 동굴신의 제의였던 것이다.

 

 

버들잎 처녀와 결혼하여 왕이 된 왕건과 이성계 )

 

서긍은 『고려도경』이란 책에서 “동신성모지당東神聖母之堂이란 방이 정전에 붙어 있다” “나무를

깎아 여인의 형상을 만들었다” 고 기록하여 유화여신이 고려시대까지 ‘성모’로서 숭배되고 있음을

밝혀놓았다.

산신山神과 수신水神 신앙을 배경으로 한 고려왕실의 조상설화가 고루려 건국신화의 맥을 잇고 있는

사실을 고려하면유화신이 고려시대까지 섬겨진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지 특이한 일이라고는 할 수

없다.


고려 왕건의 선대인 작제건作帝建은 여우를 잡고 나서 서해 용왕의 딸 용녀와 결혼한다.

이는 해모수가 변신술로 신성을 보이고 하백의 딸 유화와 혼인하는 것과 동일한 모습이다.

작제건과 결합하는 서해 용녀는 하백의 딸 유화의 변형인 것이다.

다만 작제건 설화에서는 남성인 작제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될 뿐이다.

해모수가 유화와 결합하여 주몽을 낳았듯작제건은 용녀의 딸과 결합하여 태조의 아버지 융隆을 낳

는다용녀와 결합함으로써 작제건은 이름 그대로 왕을 생산할 충분한 준비를 갖추었던 셈이다.

고려 왕계가 이처럼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수모신水母神 뿌리를 강조하고 있음은왕씨의 자손들은

겨드랑이에 용의 비늘이 있다는 전설에서 분명해진다.

태조 왕건은왕륭이 용녀와 결합했듯다시 물과 생명의 상징인 유화 신격과 결합한다.

유화의 모습은 왕건의 왕비인 神惠王后 유柳씨에게 분명히 각인되어 있다.

 

태조비 신혜왕후 유씨는 정주貞州 사람이니 三重大匡의 딸이다 …… 태조가 궁예를 섬기는 장군으로

군대를 이끌고 정주를 지나다가 늙은 버드나무 아래에서 쉬는데그녀가 길 옆 시냇가에 서 있었다 ……

태조가 그 집에 가서 머물게 되었는데그 집에서 군대를 풍성히 먹였고 그녀로 하여금 왕건과 잠자리를

함께하도록 하였다.

그 후 서로 소식이 끊어졌는데그녀가 정결한 마음을 지켜 머리를 깎고 중이 되니 태조가 듣고 불러다

가 부인으로 삼았다궁예 말에 홍유洪儒배현경裴玄慶신숭겸申崇謙복지겸卜智謙 등이 왕건의 집

에 와서 …… 추대하는 뜻을 말하니 왕건은 낯을 붉히며 완강히 거절하였다.

이때 그녀가 휘장에서 나와 ……손수 갑옷을 가져다 남편에게 입혀주니장군들이 옹위하고 나가 마침

내 왕위에 올랐다.

 

 

왕건은 버드나무 아래에서 쉬다가 유씨 처녀를 만나 결합한다그리고 그녀를 잊고 지내다가 정식

부인으로 삼는다.

이 부인은 부하들의 추대 앞에서 망설이는 왕건에게 갑옷을 입혀주어서 마침내 왕의 자리에 나아가게

한다‘버드나무 아래’ ‘시냇가’ 에 서 있던 유씨 부인이 왕권의 생산자가 되는 것이다서사구조를

유심히 보면왕건이 그녀를 왕비에 오르게 한 것이 아니라그녀가 왕건을 왕의 자리에 나아가게

했다고 할 수 있다.

왕건에게 있어 이 유화 부인과의 결합은 왕위에 즉위하기 위한 필연의 통과의례였던 것이다.

왕건이 유화 인격의 힘에 의해 왕위에 올랐다는 것은 설화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유씨는 “사람들이 거울이라는 것을 모를 때 …… 거울 뒤에 왕건이 왕이 될 글자를 새겨서 …… 인심

을 전부 돌려놓아” 왕을 만드는 역할을 수행했다고 되어 있다.

역사의 기록과 설화에서 모두 유화의 여성 원리와 물의 원리가 ‘신성왕’을 탄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태조 왕건은 서해 용의 후손답게 자신이 유화 인격과 결합하는 통과의례를 거친다버들잎 부인

유화는 태조 왕건과 고려의 조상들이 ‘혈통다운 혈통을 지녔다’는 혈통의 증거자로서 왕권의 생성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경기도 강화군에 전해 내려오는 설화 <왕건 이야기>에도 왕건과 유화 처녀의

이야기가 있다.

여기에서는 오씨 처녀로 설정되어 있는데 그이 부친 오달영이 왕건에 대한 민심을 창출하여 왕이 되

는데 도움을 준 것으로 되어있다태조의 후손 혜종이 ‘큰 병에 물을 담아놓고 즐긴 용의 아들’ 이었

다는 기록과왕씨의 후손들은 ‘겨드랑이에 비늘이 달렸다’는 징표는 모두 고려 왕씨 일족이 하백의

딸 유화 신격의 후손임을 말해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버드나무 및 물과 결합되면서 왕통을 생성하는 사례를 우리는 고려 현종顯宗의 출생담에서 거듭 확인

할 수 있다.

 

헌정왕후 황보 씨도 대종의 딸인데경종이 죽자 대권에서 나와 왕륜사 남쪽에 집을 짓고 살고 있었다.

그녀가 어느 날 꿈에 혹령이 올라 소변을 보았더니 흘러서 온 나라에 넘쳐 은빛 바다가 되었다.

점을 치니 “아들을 낳으면 왕이 되어 나라를 가지겠다” 고 하였다왕후가 “내가 과부인데 어찌 자식

을 낳겠는가” 하였다 …… 성종 11년 7월에 왕후가 종실 욱의 집에서 자고 있는데그 집 종들이 장작

을 뜰에 쌓고 불을 놓으니 불꽃이 치열하여 백관들이 불을 껐다.

성종도 급히 위문을 가서 보니 그 집 종들이 사실을 고하였다그래서 욱을 귀양보냈다.

왕후가 부끄러워 울다가 집으로 돌아가는데문어귀에 이르렀을 때 태동하여 문 앞 버드나무 가지를

붙잡고 아이를 낳고서 죽었다.

성종이 유모를 택하여 아이를 양육하였는데 장성하여 왕위를 올랐으니 그가 현종이었다.

 

헌정왕후는 언니인 헌애왕후와 함께 경종의 비였다경종이 승하하자 사저에 있다가이복 숙부되는

욱과 관계하여 대량원군大良院君을 낳았다그가 불륜의 소생으로 헌애왕후의 박해 속에서 구사일행한

후 중이 되어 삼각산 신혈사에 머물다가 왕위에 오른 현종이다이 기록은 탄생조차 불가능했던 아이,

왕위 계승의 선상에 벗어나 있던 불륜의 소생이 왕위에 오른 꿈 같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 불가능한 일이 실현된 배경으로 그가 탄생할 때 두 가지 사건이 드러나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다 같은 오줌을 누었다’는 태몽과 ‘문 앞 버들가지를 잡고 낳았다’는 두 개의 징표다.

바다 같은 오줌을 누는 여인들이 왕자를 낳는다는 의식은신라시대 문희와 보희의 꿈 이야기뿐 아

니라 칭기즈 칸의 시조여인들에게도 보인다이는 물과 여성의 생식력을 연계시킨 상징적 표현이다.

왕위에 오를 수 없는 사람의 왕위 등극에 ‘물’과 ‘버들’로 은유된 여음의 생식력과 생명력이 작용하였

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 신화에서 주몽을 낳아 건국의 생산자 역할을 한 버들시조모 유화 신격은고려에 와서는 ‘서해

용녀’로 ‘버드나무 아래 유씨 부인’으로‘바다 같은 오줌을 눈’ 여인으로다양하게 그 모습을 변신하

면서 고려 왕실의 생명력을 확장해가고 있다유화는 왕권 생성원리를 실현하면서서긍이 『고려도경』

에 기록하였듯이 ‘동국성모’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고려를 부정하고 새 왕조를 건국한 이성계에게도 왕건에서처럼 버들잎 부인즉 유화 인격과의 인연은

계승된다전남 장성군의 <강원도에 사냥 나간 이성계>, 경기 남양주군의 <팔야리>, 경남 거창군의

<이성계 이야기등의 설화는 모두 이성계와 유화 부인(실명은 강씨 부인 등)과의 결합을 나타내주는

사례다다만 <이성계 이야기>에서는 왕건의 등을 밀어 유씨 부인이 혁명을 실행하게 하였던 것과

같은버들잎 처녀의 적극적인 행동이 드러나 있지 않을 뿐이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물가 버들잎 처녀와의 만남을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기 전의 중요한 사건

으로 여러 설화에서 거듭 표현하고 있는 사실을 중요하다그러한 믿음 체계가 대중들에게 보편적으로

각인되었다는 증거기 때문이다.


버들잎 처녀와의 인연이 왕건과 이성계의 왕권 획득의 초기 서사과정에 나타난다든 사실은버들시조

모신이 왕권의 생성과 필연 관계에 있는 신성적 존재로 믿어진 결과다.

그러기에 고구려 신화 속의 유화는 고려를 거쳐 조선 왕조의 건국 인물에게도 반복적으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왕이 될 만한 인물이 유화 부인과 인연을 맺었다는 이러한 유형의 이야기는 왕건이나 이성계라는 이름

없이 나타나기도 한다전남 화순군의 <대비리의 유래>라는 설화가 그 예로서‘유화 부인과 왕’ 과의

결합이 각별한 논리로 인정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조선시대에까지 왕이 될 사람은 유화 부인

과 인연을 맺으면서 그 생명력을 전수받는 통과의례를 거쳐야 했던 것이다.

 

 

버들잎 처녀가 구원한 조선의 이장곤 )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유화 부인이 그 신비의 통과의례를 마련한 사례가 바로 <이장곤 설화>.

<이장곤과 백정의 딸><이장곤 이야기><백정의 딸과 결혼한 이장곤><유기장수 사위가 된 이장곤 교리>

라는 제목의 민간설화로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청구야담靑丘野談』등 한문 설화집에도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이야기는 양반 계층에도 보편화된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내용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이장곤은 부인이 폭군 연산에게 욕을 당하자 조정을 버리고 도망쳤다.

처녀에게서 버들잎을 띄운 물을 얻어먹고그 유기장(백정딸과 결혼하였다무위도식을 구박하는

장인 대신 관아에 세금 내러 갔다가 세상이 바뀐 것을 알았다이장곤이 서울로 올라가자 새 임금은

그녀를 천첩으로 대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 설화는 앞의 왕건이성계의 이야기와 함께 ‘지혜로운 여인’ 이야기로 분류되고 있다.

지혜로운 여인의 신분상승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이 설화도 ‘왕건의 유씨 부인’ ‘이성계와 버들잎 처녀’

의 구조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그러나 유화인격과의 결합에도 불구하고 남자 주인공이

왕권 생산에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설화의 버들잎 처녀는 유화 신격의 신성한 생명력

을 제대로 보이지 못하는 것으로 간주 할 수 있다.

유화가 왕과 결합되지 않고교리 이장곤과 결합된다는 것은 ‘생명력’ 혹은 ‘왕권 생성’의 자질을 상실

하고 세속화되었다는 증거다유화가 건국신화에서 유지하고 있던 왕권 생성의 힘을 외면적으로 상실

한 것이다그리기에 이러한 ‘버들잎 처녀 이야기’는 국문학계에서도 지혜로운 여인의 신분 상승담

으로 인정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다시 우리가 이장곤 중심으로 이 설화를 해독하면유화의 신비적 ‘생산성’은 여기에서도 분명

드리워져 있다이장곤은 포악한 임금 연산군에게 예쁜 아내를 빼앗기고 생명의 위협을 받았던 사람

이다그 아내와 비교할 수 없이 미천한 혈통을 지닌 유기장집 처녀를 만나 의탁하는 것은 그가 몰락의

정점에 몰려 있었음을 뜻한다그러나 이장곤은 이 버들잎 처녀와의 결합을 통해 목숨을 보존하고,

연산군을 몰아내는 반정 공신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그의 재입신은 버들잎 처녀와의 만남과 결혼을 통하여 준비되고 완결되었다고 할 수 있다.

버들잎 처녀는 이장곤에게 생명 보존과 재생의 매개체였던 것이다.


왕건이나 이성계 혹은 주몽 신화에서와는 달리버들잎 처녀와 결합하는 주인공으로서 이장곤 자신이

직접 왕권을 갖게 되지는 않는다그러나 버들잎 처녀의 등장이 연산군을 몰아내고 중종이 등극하는

반정의 왕권 교체와 맞물려 있음을 고려하면유화의 ‘생명력’과 ‘왕권 생성 자질’이 여기에서도 작용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생명력과 왕권 생성의 상징으로 인식되던 유화 인격이 왕권 교체기의 대표적 인물로서 위기에 처한

이장곤에게 부가되어 다시 그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이렇게 본다면 유화는 왕권 생성이라는

절대적 신성성이 약화되기는 하지만 조선조까지 그 원형적 모습을 유지하면서 우리의 의식 속에 자리

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동국성모는 창조여신의 분신으로서국가의 시조모 역할을 하기도 하고곡식의 풍요를 가져오는

풍요의 여신 역할을 하기도 하며어린 자손들에게 버들가지처럼 무성한 생명력을 내려주기도 한다.

또 창조여신이 가진 천신으로서의 속성을 가지는가 하면여음이 인격화된 신으로서 성을 상징하기도

하고물의 속성을 가진 하백의 딸로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풍요와 생명의 잔치가 벌어져야 하는 곳에는 어떠한 모습으로라도 변신하여 우리의 역사 앞에 나섰던

것이다.


우리는 한반도의 역사에서 유화가 신격과 인격으로 다양하게 변신하며 살아있는 존재였다는 사실을

다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녀는 남하하는 주몽에게 5곡의 종자를 주는 신모로서 풍요의 생산신이 되기도 하였다.

특히 수신의 딸주몽의 어머니로 모습을 드러낸 버들여신은 그 강한 생명력과 왕권 생성력을 동일시

하는 사고에 따라 왕권을 만들어내는 자리에 오른다.

그래서 유화는 주몽을 낳은 ‘하백의 딸’로작제건과 결합하여 왕륭을 낳는 ‘서해 용녀’로태조 왕건과

결연하는 ‘버드나무 아래 유씨 부인’으로왕권 교체기의 인물 이장곤을 살려내는 ‘유기장집 처녀’로

그 모습을 변신하며우리의 역사와 의식 속에서 생명 생성력과 왕권 생성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또한 만주땅에서는 버들여신의 생명력과 왕권 생성력이 금나라의 아골타와 청나라의 누르하치에게

결합되면서이들로 하여금 왕국을 건설할 수 있게 하였다백두산 웅심연의 유화는 계속 동북아시아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애초에 여성 생식력 숭배의 대유물로 상정된 버드나무가 창조여신이 되고시조모 여신이 되고왕권을

탄생시키는 지상의 인물이 되면서유화는 동국성모동북아시아의 성모로서 우리 의식에 자리 잡게 된

것이다몽골족혁철족석백족 등 만주 전 지역 소수민족들의 모든 장르에 걸쳐 드러나는 버들여신

숭배 양상은 유화의 성모적 성격을 더욱 확실히 해주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섬기는 삼신할머니의 원형도 이 유화의 다른 얼굴일 것이다.



(정리 ;고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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