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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사할린에서 무시할 수 없는 소수...한국계러시아 사할린.하바로프스크 (1)

송화강 2019-05-24 (금) 20:14 6년전 9143  

사할린에서 무시할 수 없는 소수...한국계러시아 사할린.하바로프스크 (1)

나홀로 세계여행가 김현주 교수가 지난달 러시아의 사할린을 여행했다. 그의 여행기를 3회에 나누어 전재한다.

 

 

 

 

글 | 김현주 광운대 교수

 

 
러시아 사할린 여행(2015. 2. 12 - 2015. 2. 16)
서울 출발 -(OZ보너스)- 러시아 사할린 유즈노사할린스크 -(버스)- 홈스크 왕복 - 코르사코프 왕복 - 사할린 -(Aeroflot)- 하바로프스크 -(Aeroflot)- 서울 도착
(※ 여정표는 맨 뒷 편에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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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차. 2015. 2. 12 (목) (서울 → 유즈노사할린스크)
- (비운의 바다 위를 날다) 인천-사할린 구간은 아시아나가 정기운항을 하지만 특수지역이고 할인요금이 없으므로 요금이 무척 비싸다. 이럴 때는 평소 아껴 두었던 보너스 마일리지를 사용하는 것이 최선이다. 이 여행을 위해서 나는 인천-사할린 방향은 편도 마일리지 1만 5천을, 사할린-인천 구간은 요금이 매우 저렴한 러시아 항공기를 이용하는 꼼수(?)를 부리니 만만치 않은 여정을 매우 저렴한 비용으로 다녀올 수 있었다.
- 인천 공항을 떠난 아시아나 항공기는 2시간 30분 후 사할린섬의 서쪽 해안을 지난다. 모네론(Moneron)섬 상공이다. 1983년 9월 1일 뉴욕발 서울행 비운의 대한항공 007 여객기가 소련 공군기의 미사일에 격추되어 269명 탑승객 전원이 사망한 해역이다. 당시 뉴욕에서 서울로 향하던 007기는 이미 캄차카 상공에서 소련 영공을 침범하여 소련 공군기의 추격을 받았으나 구름 덕분에 천운으로 추격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행운은, 더구나 천운은 두 번은 오지 않는 법...사할린 상공에 이르러 다시 소련 영공을 비행중이던 007기는 미사일을 맞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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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007기 격추 모네론섬 부근

- (미소 냉전 최대의 희생자들) 분명한 것은 지난 세기 살벌했던 미소 냉전의 틈바구니에서 희생된 약소국의 비운의 상징처럼 기록된 사건이다. 이날 오전 나는 바로 그 슬픔의 바다위를 날아 사할린주의 수도 유즈노사할린스크(Yuzhno Sakhalinsk) 공항에 도착했다. 아무리 좋게 엮으려고 노력해 봐도 우리와는 비운의 땅, 슬픔의 땅으로 밖에 연결이 되지 않는다. 무거운 마음을 억누를 수 없다. 여기 차가운 바다에 수장된 영령들을 달래는 마음 뿐이다. 그랬던 두 원수의 나라가 이제는 비자없이 서로 방문하는 사이가 되었으니 조석변개하는 국제질서의 냉엄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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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즈노사할린스크 상공

- (머나먼 변방) 러시아에서 가장 큰 섬... 면적 72,429평방킬로미터. 남한의 80% 면적인 사할린섬은 동서로 좁고 남북으로 길어서 동서는 25∼170km, 남북은 948km이다. 묘하게도 북위 50도가 남과 북의 거의 중앙을 가른다. 서쪽으로는 Tartar 해협건너 러시아 본토와, 남쪽으로는 라페루즈(La Perouse) 해협 (일본은 이 해협을 소야해협이라고 부름) 건너 일본 홋카이도와 마주하고 있다. 석유와 석탄, 천연가스.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천혜의 어장, 무한한 목재 자원이 아니었다면 세상의 관심을 끌지 못했을 것이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1만km가 넘고 항공기로 11시간이 걸리는 머나먼 변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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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행 Aeroflot 대형항공기 (유즈노사할린스크에서 11시간 걸린다)

- (무시할 수 없는 소수, 한국계 사할린인) 섬의 남북 방향으로 험준한 산맥 여러 갈래가 달리는 모습도 보인다. 사할린주 인구 58만명 중에서 한국계가 3만명(5.4%)이 넘으니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소수다. 게다가 러시아 백인들은 아무도 들어와 살려고 하지 않았던 척박한 땅이었으나 한국인들은 자의는 아니었을지라도 일찌감치 들어와 살기 시작했고 섬을 개발하는 데 기여한 바가 크다. 굳이 대접까지는 아닐지라도 사할린에서 한인들은 소수민족치고는 함부로 무시당할 대상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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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스크행 버스 운전기사 전씨

- (러시아와 일본의 각축)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러시아와 일본, 심지어 청나라까지도 끼어들어 번갈아가며 섬을 통치하거냐 소유하려고 갈등을 벌였던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진 땅이기도 하다. 섬의 원주민은 아이누(Ainu)였으나 일본의 패전 이후 대부분 홋카이도로 옮겨 갔다. 13세기에는 몽골제국이 섬에 관심을 두어 조공을 받아갔고 이후 명, 청 시대에도 영향권을 미치고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 지금도 사할린섬에 서있는 명나라의 영토석(영토비)가 이것을 입증한다. 일본의 사할린섬에 대한 관심은 1679년 섬을 일본 영토에 복속시키려는 시도로 거슬러 올라간다. 1689년 청나라와 러시아가 맺은 네르친스크 조약(Nerchinsk Treaty)에도 섬에 대한 명확한 조항이 없어서 청나라는 자신들의 영토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18세기 들어 네덜란드, 프랑스 등이 섬을 탐험하거나 답사, 섬 주위를 항해하기 시작하면서 유럽인들의 관심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동해에서 북태평양으로 빠져 나가는 매우 중요한 길목에 사할린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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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박물관 마당에 전시된 러시아-일본 북위 50도 경계석

- (사할린 남북 분할) 그에 따라 일본은 1807년 이후 여러 차례 쿠릴열도와 함께 사할린섬을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는 한편 러시아 또한 19세기 중반 사할린에 탄광, 학교, 형무소, 교회, 관청 등을 세우며 정착민들을 보내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일본과 러시아는 1855년 두 나라 모두 섬을 관할할 수 있다는 시모다(Shimoda) 조약을 체결하여 대체적으로 섬의 북쪽은 러시아가, 섬의 남쪽은 일본이 지배하기로 합의했다. 아편전쟁에서 청나라가 패배한 이후 맺어진 아이훈(AIgun) 조약(1858), 북경조약(1860)으로 사할린섬에 대한 러시아의 지배가 합법적으로(국제적으로) 인정되면서 러시아는 사할린을 유형지(penal colony)로 개발하는 데 박차를 가했다. 일본이 지배했던 남부 사할린도 상트페테르부르크조약(1875) 이후 러시아의 지배로 넘어가고 대신 일본은 쿠릴열도 남부 4개 도서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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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즈노사할린스크에 남아있는 거의 유일한 일본식 건물. 현재 사할린 박물관으로 쓰고 있다.

- (러시아의 사할린 재탈환) 그러나 러일전쟁 말기 일본은 사할린을 다시 점령했고(1905) 포츠머스 조약(1905)으로 일본은 북위 50도 이남 사할린에 대한 지배권을 다시 인정받게 되었다. 그러나 일본의 남부 사할린 지배는 오래가지 않았다. 1945년 2차대전 종전과 함께 얄타회담에 따라 소련은 사할린을 다시 접수했고 일본은 사할린에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일본 항복 몇일 전 소련군은 일본군의 완강한 저항을 뚫고 섬에 상륙하여 1945년 8월 25일 당시 남사할린의 수도 토요하라(豊原, 현재 Yuzhno Sakhalinsk)를 함락하니 사할린은 온전히 러시아(소련)의 영토로 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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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역 부근 시내 풍경

- (다양한 국적의 사할린행 승객) 승객은 많지 않지만 사할린행 아시아나 항공기의 승객들은 다양한 국적을 대표한다. 한국인, 한국계 사할린인, 러시아인, 미국인, 유럽인 등의 모습을 분명히 확인한다. 복장으로 볼 때 미국인들은 석유 기술자, 탐사 혹은 시추 기술자, 유럽인들은 엑손모빌, 쉘 등 사할린 유전 개발에 참여한 다국적 에너지 회사의 직원들로 보인다. 항공기는 서울에서 직선거리로 가면 1,048마일... 타이베이보다는 100마일 멀고 홍콩보다는 200마일 가깝지만 시간은 북한 영공을 멀찌감치 우회해야 하기 때문에 세 시간 넘게 걸린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북한영공을 직선으로 통과하여 2시간 남짓 걸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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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즈노사할린스크 아파트

- (아시아나 항공기 하드랜딩 해프닝) 얼어붙은 내륙 호수를 지나니 곧 유즈노 사할린스크 상공이다. 거대한 설원, 아니 동토 한 가운데 도시가 자리잡고 있다. 러시아가 왜 그토록 남쪽땅을 가지고 싶어서 몸부림을 쳤는지 알고도 남는다. 유즈노사할린스크는 높고 낮은 산으로 둘러쌓여 아늑해 보인다. 그러나 러시아 어느 도시를 가도 있는 그 흔한 예쁜 러시아 정교회당 하나 없이 사회주의식 아파트와 회색 건물만이 빽빽하게 들어선 도시 모습은 을씨년스럽기 이를 데 없다. 벽지 노선이라서 경험이 부족한 기장을 투입했는지 아시아나 항공기는 활주로를 지나쳐 내리는 바람에 급격하게 제동을 거니 소지품들이 쏟아져 항공기 맨 앞좌석까지 미끄러져 가는 황당한 경험마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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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즈노사할린스크 국제공항 (UUS)

- (대중교통망이 잘 갖추어진 도시) 유즈노사할린스크(UUS) 공항은 작은 시골공항이지만 입국 절차는 매우 신속하고 효율적이다. 무뚝뚝한 입국 관리는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입국 허가 스탬프를 찍어 준다. 공항 터미널 바깥에서 기다리는 63번 시내버스에 오르니 시내를 요리조리 관통하여 중심부 역광장 부근에서 나를 내려 준다. 러시아 어느 도시에서도 그렇듯이 버스는 한국제 중고버스다. 도시는 대중교통이 비교적 잘 발달하여 대형버스부터 중형버스, 마슈루트카들이 새벽부터 밤중까지 도시 외곽과 주변 위성도시들을 쉬임없이 오간다. 한국제 중고버스들인데 이 지독한 추위에 잘도 견딘다. 날이 추워져서 승객들이 발을 동동 구를 즈음이면 어김없이 다음 버스가 도착하니 변방 치고는 대중교통이 아주 잘 갖추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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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즈노사할린스크 시내버스 내부 풍경. 노선도 다양하고 제법 자주 다닌다.


- (루블화 가치 폭락) 밤이 되니 도시가 예뻐진다. 시내 중심가로를 따라 장식한 일루미네이션이 제법 세련된 모습을 연출한다. 변방 중 변방, 추운 땅에 도시를 건설하고 정성스럽게 가꾸는 러시아인들은 추운 기후 적응에 관한 한 전문가들이다. 속이 출출하니 컵라면이라도 살 요량으로 키오스크에 들른다. 초코파이, 과자, 스낵, 컵라면 등 키오스크에는 절반이 한국 제품이다. 그러나 최근 루블화 가치 폭락으로 88루블하던 초코파이 한 박스 포장이 155루블이 되어 아무도 사는 사람이 없다고 키오스크 주인 아주머니는 울상이다. 루블화 폭락으로 도움을 입은 나같은 여행자는 공연히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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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품으로 가득찬 키오스크(마가진) 가게

- (북방의 짧은 해) 북방의 해가 일찍 저무니 길고 외로운 밤을 맞이해야 한다. 다행이 호텔 창문은 역앞 광장을 면해 있어서 오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재미가 있고 더 멀리 산언덕에는 제법 근사한 스키장이 있어서 눈을 즐겁게 한다. 3개의 리프트와 9개의 슬로프, 2.5km 길이의 최신형 곤돌라까지 갖추어 놓고 밤 10시까지 손님을 받고 있지만 호텔방에서 바라다 보는 슬로프는 언제나 텅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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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을 밝히기 시작한 역전 레닌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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