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일본 출판사 삼성사가 발간한 ‘각국별 세계사의 정리’에 따르면 조선사는 기자조선·위씨조선·한(漢)이 지배한 역사라 시작한다.
뒤이어 고구려, 삼국시대, 신라, 조선, 일본의 지배 순으로 말하고 있다. 환국과 신시배달국, 고조선, 예맥, 부여, 발해, 고려도, 가야 등은 제외됐다.
역사왜곡이자 날조다. 더욱이 이들 국가들 모두 한반도 땅에서 시작했다 기술했다. 조선총독부 직속 조선사편수회의 역사날조광인(狂人) 이마니시 류(今西 龍)는 “한국사는 신라(新羅)때부터 시작이라”는 당치도 않은 말을 한 바 있다.
참으로 못 말리는 야만족속들이다. 얼마나 그들이 철면피한 함구무언의 황당한 역사왜곡인 셈이다. 우리는 세계석학들이 말하듯 우리역사는 1만년 전부터 대륙에 실재했고 한(漢)족을 정벌·정복·지배했던 민족이다.
한민족(韓民族)이 선진민족으로 활약한 곳은 한반도가 아닌 중국대륙이다. 대륙을 터전삼아 상고시대 환국과 배달국시대부터 중국을 지배해왔다.
생전 고대사를 쓰며 중국·일본을 드나들며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는 최태영 선생은 중국 북경(北京) 답사 시, 일부 중국인들이 단군을 선조로 모셔 최근까지 제사지내는 가정이 많다는 것을 확인한 바 있다. 이는 중국이 옛 우리의 고토임을 말해 준다. 또한 고조선의 중심이 요동(遼東)이었음을 말해준다.
일제는 자신들에 유리하게 조작된 황통사(皇統史)와 식민사관(植民史觀)을 우리 민족에 교육했다. 덕분에 우리 조상들의 뿌리가 뽑혀나갔다. 오늘날 우리 국민들이 나라·민족에 대한 자신감을 잃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는 고조선의 역사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국민들이 넘쳐난다. 안타까운 것은 선조들의 역사를 두고 벌어지는 비극은 지금도 반복된다는 점이다.
환국과 배달국에 대한 것은 거론조차 되지 못하며 단군에 대해도 명쾌한 설명이 불가한 상황이다. 조선사편수회는 단군의 신화적인 면만 강조해 곰·호랑이 전설이 마치 고조선을 대표하는 역사로 각인되는 듯 하다.
하지만 고조선은 신화가 아니다. 기원전 2333년 중국 땅 요동(遼東)에서 개국하고 47대 2096년간 통치해온 임금들이 우리조상이라는 것은 수천 년 동안 한국인의 자자손손에게 전해져 내려온 상식이다.
100년 전만해도 한국인들이 ‘천자문(千字文)’ 다음에 배우는 ‘동몽선습(童蒙先習)’은 당시 중국에 대한 사대(事大)때문에 비록 중국사를 앞세우고 허구의 기자(箕子)와 위만(衛滿)을 말하고는 있다고 해도 요동에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단군들이 다스렸음을 잊지 않고 가르쳤다.
그런데 중국인들은 우리역사를 자기들 뜻대로 재구성(再構成)해 버렸다. 그래서 조선에 대한 역사기록은 찾기 힘들다. 그렇지만, 역사책과 달리 지리(地理) 책만큼은 변조(變造) 할 새가 없었다. 그래서 고대중국 지리서(地理書)인 ‘산해경(山海經)’에는 고조선을 지우지 못했다.
산해경(山海經)에는 “(고)조선인들이 아사달에 조선(朝鮮)이라하고 배달(倍達)임금을 단군(檀君)이라 했다”며 “조선 음(音)이 ‘조선(潮仙)’과 같다”는 설명이 나온다. 여기서 조선(潮仙)이란 단순히 그 음(音)을 차용(借用) 한 것이다.
이 조선은 우리민족이 주축(主軸)으로 이뤄진 대제국이었다. 따라서 우리 자손들도 조상들이 광활한 요동 땅을 통치했던 역사를 자랑스럽게 여겼고 역경(逆境)이 있을 때 마다 조상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굳게 뭉칠 수 있었기에 일제 침략에 맞서 독립운동도 세차게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일제의 침략과 그들이 왜곡한역사교육은 가치관을 변질시켜 오늘 우리나라국민은 국가공동체와 민족의 연대의식은 옛 만큼 못하고 위계질서도 실종돼 위기를 맞고 있다.
오늘은 우리가 이런 민족이 아니고 세계를 개화시킨 선진민족으로 세계를 놀랍게 발전시킨 우수한민족임을 고대에 있었던 역사로 말하고, 또한 한사군(漢四郡)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타민족에 경탄 자아낸 위대한 역사 영구불변
우리한민족은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타민족을 경탄케 한 역사를 창조한 민족이다. 그런데 조선조에 이르러 천하가 중국을 중심으로 움직인다고 신봉한 사대세력에 눌려, 나라를 위한 위국(爲國)이나 호국(護國)을 내세운 행사를 금함으로서 단군의 존재도 국가규모의 힘도 잃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한국은 어떠한 나라였던가. 학자들에 따라 학설은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바이칼 호수에서 남하해 대륙에 선주(先住)했다 알려진다.
우리한민족은 원시시대에 우랄 알타이에서 경제적 사회적 생활조건을 찾아서 다시 동방 해 돋는 곳으로 이동했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것을 본 고대 중국인들은 양곡(暘谷)이라 칭했다고 한다. ‘양곡(暘谷)은 해 돋는 동방이라는 뜻이다.’ 이 당시에는 짐승과 날 새를 상대로 한 수렵(狩獵)과 유목 생활을 했다. 그리해 곰(熊)의 신화(神話)와 알(卵)의 신화(神話)를 가졌다.
우리선조들은 오랜 옛날부터 해 돋는 동방에서 아침에 떠오르는 ‘해’를 보고 즐겼다. 그리해 해(日)의 신화(神話)를 가지고 나라이름을 조선(朝鮮)이라고 칭하고 고려(高麗)라 칭했다. 조선(朝鮮)은 조일(朝日)이 선명(鮮明)하다는 뜻이고, 고려(高麗)는 천일(天日) 같이 높다는 뜻이다. 이러한 우리나라는 위대했다. 그것은 우리선조의 역사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우리선조들은 서기전 4500~3000년경 요하문명을 일으킨 것을 시작으로 서기전 4000년~2500년에 이르는 수메르문명(메소포다미야문명), 이집트문명, 인도=인더스문명, 중국 황하문명의 주역이 다름 아닌 우리민족이었다.
이같이 선진문명을 일으키고 선진문화를 타민족에게 전수(傳授)한 천민(天民)으로 자처하던 우리조선(祖先)은 우리조상이 살던 이 강토가 조선 초 초기에 중국을 섬기는 자원반식민지(自願半植民地)로 변하고, 조선말기 일본에 예속되는 강제 완식민지(完植民地)로 전락됐다.
이로 인해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인간을 사랑하던 군자국(君子國)이 사분오열(四分五裂)이 돼 분쟁에 영일(寧日)이 없는 소인배들의 충동(衝動)하는 소인국으로 타락한 것 같이 됐다.
이러한 소인배들이 충동하고 소인배에 의해 저질스럽게 날뛰는 망국적으로 전락된 오늘 그 원인이 식민지사관과 사대주의사상이 원인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민족이 아니다.
세계학자들은 우리민족이 요하문명을 일으키고 홍산문화(紅山文化)를 꽃피운 것을 의심치 않으며 도리어 경탄하고 있다. 필자역시 지난해 8월 이 문명발상지에서 ‘홍산문화’의 위대함을 직접답사하고 확인 할 수 있었다. 참으로 우리선조들의 꽃피운 문화에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우리한민족은 실로 타민족을 경탄케 한 역사를 창조한 민족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자화상은 남북이 분열되고 부자형제가 총을 겨누는 파국에 처해 자신의 민족을 비탄케 하는 민족으로 전락했다. 이는 역사를 잃은 데서이다. 때문에 조선시대에도 역사복원을 기도했다.
세종대왕 때는 단군(檀君)을 국조(國祖)로 모시려는 의지와 노력이 있었다. 그래서 단군사당에서 제사를 지냈다. 하지만 단군사당도 사대주의와 중국을 본국으로 아는 선비들의 주체성을 잃은 망동으로 단군사당은 성황당(城隍堂)이라는 당집으로 전락했다.
이렇게 되자 본래의 의미가 퇴락하고 동네단위의 민간신앙으로 맥이 이어지게 된 것이다. 이것도 일제 때는 미신이라는 이유로 타파대상이 됐다. 그러나 우리역사는 옛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고 민족제전에서는 오랜 역사와 역대임금으로부터 교훈을 세년가(世年歌)로도 전승됐다.
일제는 조선을 침탈하면서 일본보다 유구하고 우월한 역사를 가진 조선인들에게 고대광대하고 광활한 독립국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서든지 잊어버리도록 해야만 통치가 수월했다.
그래서 일본은 환국(桓國)의 환인(桓因)이 53대 3301년 다스리고, 환웅천황(桓雄(天皇)이 37대 1565년 다스린 배달국(倍達國)은 물론, 단군 고조선(古朝鮮)이 47대 2096년 다스린 단군도 실재가 아닌 신화라는 사상을 퍼트리느라 환국으로 기재된 ‘삼국유사’를 불태우거나 변조했다.
그러고 나서 일본이 일찍이 한국을 지배했다는 어처구니없는 허구의 거짓말을 사실처럼 날조했다. ‘신라, 백제가 일본의 속국이요 임나가 일본의 식민지였다고 왜곡해 가르치고 있다.
더구나 한국고대사 왜곡의 앞잡이 이마니시 류(今西 龍)는 “한국사는 신라(新羅)때부터 시작이라”는 당치도 않은 설을 ‘실증사학’이라고 호도했다. 이로서 우리역사는 형편없는 것으로 폄하했다. 지금도 반도식민사관자들은 일본이 왜곡한 역사를 그대로 가르치고 있다.
일본인이 한국사를 질시해 조작한 사실을 우리한국인 그것도 반도식민 학노(學奴)들은 그대로 받아 들여 오늘날도 이 논리로 우리역사를 흐트러트리고 우리 사회를 혼란의 도가니로 몰고 가고 있다. 이제는 달라져야 우리가 산다. 따라서 우리역사를 제대로 복원해야 할 이유다.
한사군(漢四郡) 대륙에 있었고, 예맥조선은 중국을 지배했다
지금 우리가 가르치고 있는 한국역사는 남이 만들어준 역사다.
일본 황통사(皇統史), 식민사관 그대로 4300년이 넘는 고조선역사도 일본은 전반부 2000여 년을 싹둑 잘라버리고 단군조상과 우리민족이 요동의 강역에서 살았음을 부정하는 역사이다. 반도식민사관(半島植民史觀)이다.
일본은 서기전 108년에 한무제(漢武帝)가 평양을 공격해 위씨조선(衛氏朝鮮) 멸망시켜 낙랑(樂浪), 진번(眞蕃), 현토(玄兎), 임둔(臨屯) 사군(四郡)을 설치했다고 역사를 왜곡 조작했다.
또한 낙랑(樂浪)은 313년 경, 고구려에 정복 될 때 까지 중국이 조선지배의 중심이 돼 주변 제국에 한문화(漢文化)를 이식(移植)했다고 했다. 낙랑군의 남반(南半)은 210년경부터 대방군(帶方郡)이 됐다고 날조 한다. 그런데 한(漢)나라는 이 사군도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다.
한사군(漢四郡)은 한반도가 아닌 중국대륙에 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중국과 일본은 당나라 때부터 입을 맞추어 우리역사를 별 볼일 없는 것으로 조작하며 왜곡하고 있다.
이런 한사군 한반도설은 서기668년 고구려가 나당(羅唐) 연합군의 공격으로 패망하자, 신라가 당나라에 추종하기 위해 국가를 개편 할 때, 당나라가 뜯어 고친 지리를 기초로 해 중국북경 가까이에 있는 한사군(漢四郡)을 모두 한반도(韓半島)내에 두었다고 잘못 기술 했다.
이는 기만이다. 분명한 것은 중국과 일본이 말하는 기자조선 위만조선은 고조선의 한지역의 조그마한 제후국에 불과했고 그 영역은 지금의 중국대륙이었다. 한사군(漢四郡)역시도 낙랑군(樂浪郡)과 함께 북경 가까운 곳에 있었다. 한사군은 한반도에 있은 적이 없고 대륙에 있었다.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민족은 지리적 위치와 환경 때문에 주위의 여러 나라와 끊임없는 격렬한 투쟁을 면치 못했으며 또한 그러한 중에도 자신을 성장발전 시켜 왔던 것을 잘 알 수 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한(漢)나라가 고조선을 패망하게 했다는 것도 허구(虛構)이고 기자조선(箕子朝鮮), 위만조선(衛滿朝鮮), 한사군(漢四郡)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것도 허구 조작이라는 사실이다.
이 당시 중국에는 예맥(銳麥=濊貊)조선이 기자조선과 위만조선, 한사군(漢四郡)보다 먼저 건설하고 있었다. 이 예맥(銳麥=濊貊)조선은 이들과 병립(竝立)하면서 도리어 한족(漢族)을 정벌, 정복하고 그들을 제압하고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 중국역사에 의해 판명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은 우리의 모든 역사기록을 없애버렸으나 당시 예맥(銳麥=濊貊)조선을 당할 국가는 중국 어디에도 없었다. 예맥은 동주(東周)시대부터 한무제(漢武帝)시대까지 한족(漢族)을 정벌하고 정복해 지배했다.
그렇다면 예맥(銳麥=濊貊)조선이 기자조선(箕子朝鮮) 위만조선(衛滿朝鮮) 한사군(漢四郡)을 지배(支配)하고 이들을 예맥(銳麥=濊貊)조선에 예속(隸屬)시키었다고 보고 있다.
당시 예맥조선은 극히 강대해 위만의 상전(上典)인 한고조(漢高祖)를 지원하고 위만을 책동해 한고조(漢高祖)를 배반케 했을 정도였다. 예맥조선이 동주(東周)시대부터 한무제(漢武帝)시대까지 1000여 년 동안 중국을 정벌, 정복 지배한 사실이 중국사에 명기 돼 있다.(論語 卷十四, 憲問 第十四, 准南子卷十一, 史記三十四, 高麗圖經 早隸條 등)
또한 한무제(漢武帝)가 사군(四郡)을 설치한 후 26년 만에 예맥은 섬서성에 있는 진번(眞番)과 감숙성(甘肅省)에 있는 임둔(臨屯), 2군을 탈취하고 감숙성의 현토군(玄免郡)도 대부분 탈취 할 정도로 한(漢)나라도 안중에 없을 만큼 한사군 중 삼군(三郡)을 예맥(銳麥=濊貊)이 탈취했다.
이같이 (銳麥=濊貊)조선은 중국대륙에서 강대(强大)했고 한사군(漢四郡)은 지금의 중국대륙에 있는 것을 예맥조선(銳麥=濊貊朝鮮)이 정벌하고, 정복해 지배한 사실을 숨길 수 없다.
중국과 일본이 말도 아니 되는 허구의 역사를 조작해 한국사를 왜곡하나 우리가 중국을 지배하고 가야와 백제 고구려 신라가 일본을 지배한 사실과 문화를 전수(傳授)한 사실은 제아무리 왜곡 조작해도 숨길 수 없다.
이제는 우리정부도 역사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무릇 국가는 그 국민을 이끌어 나아갈 위대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국민의 정신이 부패해 혼란에 빠지는 것이다. 지금 우리사회의 정신상황을 보면 너무나 잘 알 수 있는 말이 아닌 상황이다.
지금 우리는 조국광복 72년을 맞는 오늘에도 ‘기자조선’, ‘위만조선’,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허구역사를 가르치는 반도식민사관의 역사를 계속 가르치고 있다. 개선되지 않는 한, 우리 국가민족의 장래는 기약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역사를 잃으면 다 잃는다.’는 충언을 귀담아 들을 때다.
지금도 우리나라의 반도식민사관자들은 자기나라역사를 멸시하고 일제시대 ‘조선사편수회’ 이마니시 류(今西 龍)가 ‘역사는 과학적으로 검증해야 한다’는 말을 던져준 자료만을 다루는 학문풍토는 달라지고 있지 않기에서다. 이런 풍토가 있는 한 우리역사를 바로 세울 수 없다.
위정자도 이런 상황을 바로보고 역사를 바로 세워야 국가민족의 장래가 있음을 직시할 때다. 정부도 사이비학자들을 배제하고 민족사관의 학자로 역사바로세우기에 진력해주기 바라진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신채호 저,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신용하, ’고조선국가형성의 사회사‘.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智勝, ’우리上古史‘-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二十一世紀出版社集團, ’山海經‘. 大連出版社, ‘行走 大黑山’.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역사를 제대로 알고 행하자.’.유우찬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인류학적으로 본 조선 사람과 북방주민들’. 홍윤기,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조희승 ‘일본에서 조선소국의 형성과 발전’. 심백강, 이덕일, 박정학외9인 공저 ‘미래로 가는 바른 고대사’.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徐漢太 編著, ’訓民正音.解書本‘.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南帝 ‘命理속의 哲學’. ‘태백과 압록’.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朴炳植 ‘日本語の悲劇’.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石井進外, ‘詳說日本史,‘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田畑喜作, ‘高天ケ原は實在した-原日本人の發見-’. 原田實 ‘幻想の超古代史’. 田邊昭三 ‘謎の女王卑彌呼-邪馬臺國とその時代’. 和歌森太郞) ‘大王から天皇へ’. ヨセフ アイデルバ_グ 中川一夫 譯, ‘大和=ヤマト)民族は ユダヤ人だった’ 近江昌司 外 5人著 ‘ヤマト王權の成立’. 大和上井久義, ‘日本古代の親族と祭祀’. Georges Duby : L'HISTOIRE CONTINUE, 松村剛 譯 ‘歷史は續く’. 劉泳,海燕,‘赤蜂博物館’. 黃斌, 劉厚生, ‘箕氏朝鮮史話’ ‘各國別 [世界史の整理] 三省堂發行’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 世界史史料集’,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石井進, 笠原一男, 兒玉幸多, 笹山晴生, ‘詳說日本史’. 西東社출出版部編, ‘日本の古墳, 古代遺跡’. 黃娬, 劉厚生, ‘箕氏朝鮮史話)’.외 다수의 서책(書冊)을 참조하고, 본문 인용도 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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