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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라즈니쉬의 경험

송화강 2019-05-12 (일) 22:50 6년전 2583  

라즈니쉬의 경험 

 

1953년 3월 21일이 되기 바로 7일전, 나는 스스로에 대한 노력을 그만 두었다. 

(중략) 

 

그날 나는 탐구를멈췄다. 

(중략) 

 

그날 욕망이 멎었다. 

(중략) 

 

7일동안 나는 매우 희망없고 무력한 상태속에서 살았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었다. 

내가 희망없음이라고 말할때 그것은 그대가 절망이라고 말할때 의미하는 것과 같은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중략) 

그 희망없음은 절대적이고 전체적이었다. 희망이 사라졌고 그와 함께 그 짝인 절망 또한 사라졌다. 

희망없이 존재하는것, 그것은 전적으로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것은 부정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말로는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지만 그것은 부정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긍정적인 상태였다. 

그것은 단순히 부재가 아니었다. 

현존이 느껴졌다. 내 안에서 무언가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나를 덮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무력했다고 말할때 그것은 사전상의 단어를 의미하는것이 아니다. 

나는 단순히 내게 자아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말하는 무력함의 의미이다. 

나는 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따라서 나 자신에 의지할 수 없었다. 나 자신의 땅위에 서있을수 없었다. 발밑에 땅이 없었다. 

나는 심연속에 있었다. 나는 심연속에 있었다. 바닥없는 심연....... 그러나 두려움은 없었다. 

(중략) 

 

그 7일간은 엄청난 변형의 완전한 변형의 날들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전적으로 새로운 에너지의 현존, 새로운 빛, 새로운 기쁨이 너무도 강렬해져서 거의 견딜수 없을 

지경이었다. 마치 내가 폭발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마치 내가 환희로 미쳐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젊은 세대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황홀경속에서 맛이 가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 했다. 그것은 아주 가늠하기 힘든 세계였다. 

그것은 알수도 없고 어떤 범주에 넣을 수도 없고 말로 설명하기도 어려운 것이었다. 

모든 경전은 죽어있었고 이러한 체험을 표현하기에는 모든 말들이 너무나 시들하고 빈약했다. 

그 경험은 그토록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그것은 거세게 밀려오는 지복의 물결과 같았다. 하루종일 이상하고 어리둥절했다. 또 그것은 모든것이 산산이 

부서지는 체험이었다. 과거가 사라지고 있었다. 마치 그 모든 과거들이 한번도 내게 속한적이 없던 것처럼...... 

마치 그 과거들에 관해 어디선가 읽었던 것처럼, 그것에 대해 꿈을 꾸었던 것처럼, 마치 누군가로부터 딴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던 것처럼....... 


나는 과거로부터 풀려나고 있었다. 나는 나의 일대기로부터 뿌리째 뽑혀지고 있었다. 나는 나의 자서전으로부터 

삭제되고 있었다. 나눈 붓다가 아나타(annatta)라고 부르는 비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경계가 사라지고 구분이 사라지고 있었다. 


마음이 사라지고 있었다. 마음은 수백만 마일이나 떨어져 나가서 마음을 붙잡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마음은 멀리 더 멀리 달아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붙잡아 두려는 욕망도 없었다. 나는 단순히 그 모든것에 대해 무관심했다. 그대로 좋았다. 

나는 계속 과거에 머물고자 하는 욕구가 없었다. 저녁무렵이 되자 견디기가 몹시 힘들어졌다. 

그것은 괴롭고 고통스러웠다. 그것은 아기가 태어나려 할때 여인이 겪는 극심한 산고, 진통과 같았다. 


그무렵 나는 밤 열두시나 한시쯤에 잠자리에 들곤했다. 그러나 그날 나는 깨어있을수가 없었다. 

내눈은 감겨있었다. 눈을뜨고 있는것이 어려웠다. 매우 절박한 무언가가 있었다.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말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아마도 나의 죽음이 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나는 준비되어있었다. 이7일간의 체험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나는 죽음을 맞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더이상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 날들은 엄청난 지복으로 차있었고 나는 그토록 충만해 있었기에 만약 죽음이 

왔다고 해도 기꺼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었다. 죽음과 같은 어떤것, 매우 강렬한 어떤것, 죽음도 아니고 새로운 탄생도 

아니며 십자가의 못박힘도 부활도 아닌 하지만 엄청나게 중요한 어떤것이 바로 가까운곳에 있었다. 


나는 눈을 뜨고 있기가 불가능했다. 나는 취해 있었다. 나는 여덟시쯤에 잠자리에 들었다. 그것은 잠과는 다른 것

이었다. 이제 나는 파탄잘리(Patanjali)가 잠과 사마디는 비슷하다고 말하는 의미를 이해한다. 

(중략) 

 

나는 잠자리에 들었다. 그것은 참으로 이상한 잠이었다. 몸은 자고 있었지만 나는 깨어 있었다. 그것은 정말 이상

했다. 그것은 마치 하나가 두방향으로 두차우너으로 따로따로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마치 두개의 극이 완전히 포개지는 듯, 마치 내가 양극 모두인듯 긍정과 부정이 만나고 잠과 각성이 만나고 죽음과 

삶이 만나고 있는듯 했다. 그것은 '창조자와 피조물의 만남'이라고 할만한 순간이었다. 


(중략) 

열두시 가까이 되어 갑자기 눈이 뜨였다. 내가 눈을 뜬것이 아니었다. 다른 무엇인가에 의해 잠이 깼다. 

나는 나를 둘러싼 방안의 거대한 현존을 느꼈다. 그방은 매우 작았다. 나는 거의 허리케인과 같은 거대한 빛과 

기쁨과 환희의 폭풍처럼 사방으로 나를 둘러싼 고동치는 생명, 거대한 진동을 느꼈다. 나는 그안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것은 너무나 엄청난 실재여서 다른 모든것은 비실재가 되었다. 방의 벽은 비실재가 되었다. 

집은 비실재가 되었다. 나의 몸은 비실재가 되었다. 이제 처음으로 실재가 드러나자 모든 것은 비실재가 되었다. 

그것이 바로 붓다와 샹카라(Shankara)가 세상을 마야(Maya) 즉 신기루라고 부른 이유이다. 

(중략) 

 

갑자기 그것은 거기 있었다. 다른 실재, 분리된 실재, 진짜 실재, 혹은 뭐라고 부르든 마찬가지이다. 

신, 진리, 담마(dhamma), 도 그대는 원하는 그대로 부를 수 있다. 그것은 이름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거기 

있었다. 너무나 투명하게, 그러나 또한 너무나 확실해서 손으로 만질수 있을 정도였다. 

그것은 그 방안에 있는 나를 거의 질식 시킬 지경이었다. 그것은 너무나 컸고 나는 아직 그것을 흡수할 수가 없었다. 


방에서 뛰쳐나가 하늘아래로 달려가고 싶은 절박한 충동이 내안에서 일어났다. 그것은 나를 질식시키고 있었다. 

그것은 너무나 강렬했다. 그것은 나를 죽일것 같았다! 내가 조금만 더 머물러 있었다면 그것은 나를 질식시켰을 

것이다. 그렇게 보였다. 나는 방을 뛰쳐나와 거리로 나갔다. 

하늘 아래서 별들과 나무들과 땅과 자연과 함께 있고 싶은 충동이 너무나 컸다. 

(중략) 

 

나는 가장 가까이 있는 공원을 향해 걸었다. 

(중략) 

 

처음으로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처음으로 나는 더이상 한 개인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물방울은 대양속으로 떨어

졌다. 이제 온 대양이 나의 것이었고 내가 대양이었다. 경계가 없었다. 마치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을것 같은 

무한한 힘이 솟아올랐다. 나는 거기 없었다. 오직 힘만이 거기 있었다. 

(중략)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중략) 

 

나는 문을 기어올라 도둑처럼 공원으로 들어가야 했다. 무언가가 나를 공원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내가 나 자신을 어찌할 수 없었다. 나는 단지 흘러가고 있었다. 

(중략) 

 

나는 내맡김속에 있었다. 나는 거기 없었다. 그것이 거기 있었다. 극서을 신이라고 부른다면 신이 거기 있었다. 

나는 그것을 그것이라고 부르고 싶다. 신이라는 말은 너무나 인간적인 말이고 너무 많은 사용으로 인해 너무나 

더럽혀졌으며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너무나 오염되었다. 

기독교인들 힌두교인들 이슬람교인들 성직자들과 정치가들 그들은 모두 그 단어의 아름다움을 타락시켜 버렸다. 

그러니 그것을 '그것'이라고 부르겠다. 

(중략) 

 

내가 공원에 들어간 순간 모든 것이 빛을 발했다. 공원 전체가 축복과 은총으로 가득했다. 

(중략)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무 한 그루가 굉장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마울슈리 나무였다. 그 나무가 나의 주의를 

끌어당겼다. 극서이 나를 자신에게로 끌어당겼다. 내가 그것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신 자신이 그것을 선택했다. 

나는 그 나무에게로 가서 그 아래에 앉았다. 내가 거기에 앉자 평온이 찾아왔다. 온 우주가 하나의 축복이 되었다. 


내가 얼마나 그런 상태에 있었는지는 말하기 어렵다. 내가 집으로 돌아왔을때는 새벽 네시 엿으므로 시간적으로 

적어도 세시간은 거기 있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은 무한이었다. 

그것은 시계에 나타나는 시간과는 상관이 없었다. 그것은 영원이었다. 

그 세시간은 전적인 영원, 끝없는 영원이 되었다. 시간은 없었다. 시간의 경과는 없었다. 그것은 처음으로 드러나는 

실재였다. 때묻지 않고 만질수 없는 가늠할 수 없는 실재였다. 


그리고 그날 일어난 그것은 계속 되어 왔다. 하나의 연속성으로서가 아니라 그것은 내면을 흐르는 지하수 처럼 

계속 되어 왔다. 변치 않는 것이 아니라 매순간 그것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매순간 일어나는 기적이다. 


그리고 그날밤 이래로 나는 결코 육체안에 있었던 적이 없다. 나는 육체의 주위를 떠돌고 있다. 나는 엄청나게 강해

졌고 동시에 매우 연약해졌다. 나는 매우 강해졌지만 그 힘은 무하마드 알리의 힘이 아니다. 그 힘은 바위의 힘이 

아니다. 그힘은 장미꽃의 힘이다. 강하지만 동시에 너무나 연약하고 너무나 민감하고 너무나 섬세하다. 


바위는 언제나 거기 있을 것이다. 그러나 꽃은 어느 순간에라도 사라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은 바위보다 

강하다. 꽃은 살아 있기 때문이다. 혹은 아침 햇살 속에빛나는 풀잎에 맺힌 이슬 방울의 힘......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소중하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미끄러져 떨어질지 모른다. 

그 우아함은 비교될수 없을 정도이지만 작은 산들바람만 불어와도 이슬 방울은 떨어져 영원히 사라진다.   


붓다들의 힘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다. 그들의 힘은 전적으로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다. 장미꽃이나 이슬방울처럼........ 

그들의 힘은 매우 부서지기 쉽고 연약하다. 그들의 힘은 죽음의 힘이 아닌 생명의 힘이다. 

그들의 힘은 죽이는 힘이 아니다. 그들의 힘은 창조하는 힘이다. 그들의 힘은 폭력과 공격성의 힘이 아니다. 

그들의 힘은 연민의 힘이다.

 

 

(희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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