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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온돌의 과학적 이치와 좌식생활의 경제성

송화강 2019-06-12 (수) 23:56 6년전 6086  
  온돌-1.hwp 38.6K 79 6년전

  온돌의 과학적 이치와 좌식생활의 경제성


임 재 해


1. 문지방을 넘어야 들어가는 온돌방


대통령 선거 운동이 끝난지 얼마되지 않았다. 선거 운동 기간에 내놓은 후보들의 여러 공약들 가운데 청와대를 자유롭게 개방하겠다는 것도 있었다. 또는 대통령이 되면 국민들과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는 기회를 많이 가지겠다는 주장도 나왔다. 바꾸어 말하면 청와대의 ‘문턱’을 낮추겠다는 말이다. 문턱은 ‘문지방’의 다른 말이다. 우리는 문을 드나들 때마다 문지방을 타넘어 다닌다. 따라서 문턱이 높으면 노약자들은 출입하기 불편하다. 예사사람들도 문턱이 낮아야 드나들기 편리하다. 그러므로 청와대 문턱을 낮춘다는 것은, 누구든지 출입을 통제하지 않고 자유롭게 청와대 출입을 허용하여 국민들을 만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뜻이자, 권위주의를 청산하고 국민들과 더불어 생활하겠다는 뜻이다.


청와대의 문턱을 낮추겠다는 말이 나온 까닭은 그 동안 청와대가 지나치게 국민들 생활과 동떨어진 채 멀리 존재했을 뿐 아니라, 대통령이 권위주의에 매몰되어 있었던 탓도 있지만, 표현 그 자체로 보면 방의 출입문에 문지방과 같은 문턱이 두드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문턱이 없었다면 이런 따위의 비유가 생겨날 턱이 없다. 물론 다른 나라 속담에는 아랫사람들과 대화의 문을 넓히겠다는 뜻으로 이런 비유를 쓰지 않는다. 다른 나라 집에서는 방을 드나드는 문에 ‘문지방’이라고 하는 문턱이 별도로 없는 까닭이다. 그러면 왜 우리나라 집에만 유독 문턱이 ‘문지방’으로 높이 존재할까. 출입을 불편하게 하는 장애물 노릇을 하면서 말이다. 우리나라가 권위주의 사회인 까닭일까. 아니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폐쇄적이고 대화를 싫어하는 까닭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이웃간에 울도 담도 없이 개방적으로 지내는 민족도 흔하지 않다. 이웃사람들을 ‘이웃사촌’이라 하여 가까운 혈연 이상으로 친하게 지내므로,  이웃간에 사생활의 비밀이라고 하는 것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또 출입문을 드나들 때에도 문을 두드리며 들어가도 좋은가를 물어보는 따위의 ‘노크’식 주먹다짐 같은 것은 아예 없다. 문 안팎에서 인기척으로 서로 의사소통을 하며 자연스럽게 방안을 드나들도록 되어 있다. 문을 두들긴 뒤에 주인이 들어오라는 신호가 있을 때까지 문 밖에서 멈추어 서서 기다리는 법이 없는 것만 봐도, ‘문지방’이라고 하는 높은 문턱이 사람의 출입을 통제하거나 대화를 막기 위한 장치가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그것은 다만 안과 밖, 방과 마당의 영역을 엄격히 구분하기 위한 경계 표지일 뿐 사람의 자유로운 출입을 저지하기 위한 장애물의 설치는 아니다.


우리가 방에 들어가는 데에는 문지방만 넘는 것이 아니다. 가장 복잡한 경우를 보면 마당에서부터 여러 단계의 통과물을 거쳐야 한다. 우선 마당에서 ‘댓돌’ 위에 올라가서 다시 ‘축두막’ 또는 ‘죽담’, ‘처막’이라고 하는 집의 기단부에 올라서고, 거기서 신발을 벗어 둔 뒤에 다시 툇마루에 올라간다. 그리고 나서 마침내 문지방을 넘어 방 안으로 들어간다. 두 단계 올라가서 신발을 벗고 다시 두 단계를 거쳐 모두 네 단계를 거쳐야 방 안에 이르는 것이다. 툇마루가 없는 경우에는 마당에서 축두막에 올라가 신발을 벗어두고 댓돌을 밟고 문지방을 넘어 방 안에 들어간다. 툇마루가 없는 만큼 문지방이 상대적으로 더 높다. 이때도 최소한 세 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서구식 가옥이나 중국식 가옥에는 툇마루나 댓돌 등이 없으며 문지방도 없다. 자연히 신발을 벗을 필요도 없다. 신발을 신은 채로 곧바로 실내로 들어간다. 마당과 실내가 공간적으로 이어져 있어 문지방 같은 것으로 애써 경계를 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문지방은 실내에 신발을 신고 들어가는가 벗고 들어가는가 하는 문제와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이들 연관성은 상당히 복잡하게 얽혀 있다. 실내에서 신을 신고 벗는 것은 방 안에서 좌식생활을 하는가 입식생활을 하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으며, 입식 또는 좌식 생활 여부는 온돌방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집의 문턱이 높은 까닭은 온돌방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온돌방에서 좌식생활을 하므로 신을 벗고 들어가고 문지방도 높게 만들어 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신을 벗고 문지방을 넘어서 방에 들어가 궁둥이를 방바닥에 붙이고 생활하게 된 것은 우리 집의 방이 온돌방으로 이루어져 있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우리 집의 건축양식과 주생활을 이해하는 데 온돌방의 양식은 꽤 중요한 구실을 한다.




2. 좌식생활을 하는 온돌방의 청결과 위생성


온돌방은 바닥 밑에 불기운과 연기가 지나갈 수 있도록 고래를 만들고 그 위에 얇고 넓적한 돌로 된 구들장을 깔고서 흙을 발라 말린 뒤에 장판 또는 자리를 깔아 놓아서, 궁둥이를 방바닥에 붙이고 생활할 수 있는 방바닥 시설을 말한다. 온돌 양식은 아궁이에서 음식을 끓이기 위해 불을 때며는 불의 열기가 구들장 밑의 고래를 지나 굴뚝으로 빠져나가는 동안 구들장이 데워져서 방바닥을 따뜻하게 하는 난방법이자, 방바닥을 구성하는 일종의 건축 방법이기도 하다. 온돌방의 바닥은 늘 따뜻하기 때문에 몸을 직접 방바닥에 붙이고 생활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이를테면 온돌방에 신발을 신고 들어가서 의자생활을 하거나 침대생활을 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방바닥의 따뜻한 온기를 신발을 신은 채로 서서는 전해받을 수 없는 것처럼, 의자에 앉거나 침대 위에 누워서는 그 따끈따끈한 구들 아랫목의 따뜻함을 느낄 수 없다. 그러므로 추운 겨울에 따뜻하게 지내려면 가능한 한 구들목에 몸을 직접 대고 생활하는 것이 여러 모로 낫다. 의자와 침대처럼 몸을 방바닥과 격리시키는 입식 가구가 필요없는 까닭도 온돌 때문이다.


우리가 다른 나라 사람들과 달리 입식생활이 아닌 좌식생활을 하는 원인이 온돌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방바닥에 몸을 붙이는 좌식생활을 하려면 방바닥이 따뜻한 온돌이기만 해서는 안된다. 방바닥이 몸을 직접 대도 괜찮을 만큼 깨끗해야 한다. 온돌방의 바닥에 장판을 바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마 세계적으로 방바닥에 종이를 바르고 기름을 먹여 관리하며, 빗자루로 쓸고 물걸레로 깨끗이 닦아서 방바닥 청소를 하는 경우는 우리나라 밖에 없을 것이다. 다른 나라 집의 방은 흙바닥이나 시멘트바닥 그대로이거나 아니면 그 위에 카페트 또는 마루를 까는 것이 보통이다. 방바닥에 종이를 바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입식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방바닥이란 마당의 연장이다. 방 안에서도 신을 신은 채 야외처럼 생활한다. 따라서 몸을 붙일 때는 반드시 의자나 침대를 이용한다. 방바닥에 퍼질러 앉는 법이 없다. 그것은 곧 마당의 흙바닥에 앉는 것이나 같기 때문이다.


입식생활의 전형을 보이는 서양사람들의 집에서는 불도 방 안에서 땐다. 난방용 아궁이가 방안에 있는 것이다. 벽난로가 그것이다. 벽난로용 장작이나 석탄과 같은 땔감도 방 안에 들여 놓아야 한다. 온돌방으로 이루어진 우리 집에서는 불을 지피는 아궁이가 한결같이 방 바깥에 있다. 땔감도 물론 바깥에 쌓아 두게 마련이다. 온돌방은 부엌 아궁이에 불을 지펴서 구들장을 데우고 구들장의 온기가 계속되는 한 방안 공기도 따뜻하게 유지되는데, 벽난로의 경우는 방안 공기를 직접 데우므로 벽난로 불이 꺼지면 방안 공기도 곧장 식게 되고 화재의 위험도 높을 뿐 아니라 방안이 청결하지 못하다. 그러다가 기름과 전기로 연료가 대체되자 벽난로의 양식이 보일러 양식으로 바뀌면서 벽면에 설치한 아궁이식 난로 대신에 라지에터를 그 자리에 설치하게 되었다. 벽의 측면에 설치한 라지에터는 곧 벽난로의 변형인 것이다. 그러므로 입식생활을 하며 측면 난방을 하는 서구식 주거생활에서는 온돌과 같은 밑면 난방법을 아예 모르고 산다.


서양사람들은 사면의 벽을 여러 가지로 장식하고 유리창도 빡빡 문질러 닦아 관리하면서도 방바닥은 상대적으로 불결하게 취급한다. 구드를 신은 채로 생활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개들이 방 안에서 자유롭게 드나들며 생활하도록 허용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러나 우리는 사정이 다르다. 벽은 비록 흙벽 그대로라도 방바닥은 깨끗이 쓸고 닦을 정도로 말끔하게 관리한다. 하루에도 몇번씩 쓸고 훔치며 닦는다. 왜냐하면 거기에 맨 살을 대고 앉고 엎드리고 누워야 하는 까닭이다. 방안은 곧 소파나 침대와 다름없다. 따라서 방 안에 신발을 신고 들어오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신발에 묻은 외부의 흙먼지나 장작과 같은 어지러운 땔감이 방 안으로 들어오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실내외의 분별 또는 방과 마당의 구분이 엄격할 수밖에 없다. 마당에서 댓돌 위에 올라 죽담에 신발을 벗고 툇마루에 올라서서 문지방을 타넘어 들어오도록 한 까닭을 알 만하다. 높은 문턱은 곧 방의 안팎을 구분하는 경계이자, 어느 정도 벽 구실을 하는 것이다. 자연히 방안이 깨끗하고 실내생활은 위생적일 수밖에 없다. 수많은 진드기가 살고 있는 카페트 바닥과 장판바닥의 청결성 차이도 엄청날 뿐 아니라, 신발을 신은 채 입식생활을 하는 서구식 사무실과, 신발을 벗은 채 좌식생활을 하는 한옥의 온돌방은 그 위생성에서도 큰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


마루에서 방으로 들어가는 문의 문지방은 상대적으로 낮다. 마루는 바닥의 양식만 다를 뿐 일종의 실내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마루에서도 신발을 벗고 좌식생활을 한다. 따라서 마루와 방 사이의 문턱은 방과 방 사이의 문턱처럼 그리 높지 않다. 애써 경계를 하여 안팎을 구분하지 않아도 청결에는 크게 문제가 없는 까닭에, 버선발로 다닐 수 있는 집안에서는 애써 문지방을 높게 만들지 않는다. 이런 사정을 고려해 보면 바깥 출입문에 한해서 문지방을 높게 만든 까닭이 상대적으로 더 분명해진다. 문지방은 순전히 안팎을 구분하고 바깥의 흙먼지를 차단하는 구실만 하는 것은 아니다. 마당에서 방안의 모습을 쉽게 들여다볼 수 없도록 하는 시각적 가리개 구실과 몸을 의지할 수 있는 버팀대 구실도 한다. 여름철에 문을 열어두고서 누워 자더라도, 마당에서는 누워 있는 모습을 볼 수 없을 만큼 문지방 높이를 가늠해서 만들어 두었을 뿐 아니라, 방 안에 앉아서 바깥을 내다볼 때 문지방에 겨드랑이를 의지하고 편안하게 내다볼 수 있도록 그 높이를 대중잡아 문지방을 설치했다고 한다.




3. 휴대용 가구와 온돌방의 경제적 활용성


온돌방에서는 신발을 벗고 몸을 방바닥에 붙이고 사는 좌식생활을 하게 된다. 그것은 온돌방이 살이나 옷을 직접 바닥에 붙이고 앉아도 좋을 만큼 깨끗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바닥이 따뜻하다는 이유도 크다. 차가운 시멘트나 흙바닥에 궁둥이를 대고 생활하는 것은 건강에 좋지 않다. 아래를 따뜻하게 하지 않으면 냉기가 몸에 스며들어 건강을 해치는 까닭이다. 특히 여자들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따라서 겨울이 있는 나라에서는 한결같이 입식생활을 하게 마련이다. 다만 일본의 경우는 다다미라고 하는 아주 두툼한 매트를 바닥에 깔기 때문에 온돌방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좌식생활을 한다. 그렇다고 하여 한국과 같은 온전한 좌식생활은 아니다. 그들은 바닥에 앉을 때 반드시 방석을 깔고 앉거나 아니면 꿇어앉는다. 꿇어앉는 자세는 궁둥이를 바닥에다 완전히 밀착시켜 앉는 결가부좌식 ‘책상다리’와 달리 온전한 좌식생활이라 할 수 없다. 발뒤꿈치로 궁둥이를 고이고 앉는 자세는 사실상 무엇을 깔고 앉는 것이므로, 사실상 입식생활과 좌식생활의 중간 형태라 하겠다. 그러므로 완벽한 좌식생활은 온돌문화를 누리는 한옥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좌식생활을 하는 온돌방에는 깔고 앉기 위해 마련한 별도의 소파나 의자와 같은 입식 가구들이 불필요하다. 물론 침대도 별도로 필요하지 않다. 방바닥에 그냥 앉거나 누워도 그만이고, 필요한 경우 방석이나 자리를 깔고 앉거나, 또는 요를 펴고 누우면 다 편할따름이다. 따라서 좁은 공간도 아주 넓게 사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값비싼 대형 가구들이 불필요하다. 온돌방에서는 큼지막한 소파나 침대가 차지하는 자리를 온통 사람들이 차지할 수 있으며, 방안의 공간 전체를 여러 모로 가변성있게 이용할 수 있다. 방 안이 온통 가용 면적이므로 작은 집에 작은 방을 지녀도 크게 불편이 없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슈마허의 경제성에 적합한 주거문화가 바로 한옥의 온돌방이다.


요즘 지은 양옥집들은 한옥보다 거실의 크기가 두 곱이나 되고 방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넓어도, 장식장이나 장농을 들여 놓고 소파와 탁자, 책상과 의자 또는 침대를 들여놓게 되면 어지간히 넓은 집도 가구들로 그득 차게 된다. 거실은 소파와 장식장이 온통 차지하고, 안방은 침대와 장농이, 아이들방은 책걸상과 침대로 거지반 메워진다. 식당방 역시 식탁과 의자 등으로 복잡하다. 서양의 집들이 규모가 크고 거실과 방이 한결같이 넓은 까닭은 벽난로에 의한 측면 난방에 따른 입식생활과 붙박이식 입식가구 탓이다. 게다가 이들 입식가구들은 어느 것이나 값이 비싸서 가구를 고루 장만하는 데에는 상당한 경비가 지출되어야 할 뿐 아니라, 이사를 다닐 때에도 이들 입식 가구들은 번거롭고 거추장스러운 큰 짐 노릇을 한다.


온돌방에서 좌식생활을 하는 한옥에서는 이와같은 거대한 붙박이식 가구들이 불필요하다. 소파나 의자, 또는 침대와 같은 가구가 없어도 될 뿐 아니라, 가구가 필요한 경우에도 붙박이식 대형 가구가 아니라 휴대용 소형 가구를 사용한다. 소파나 의자 대신에 귀한 손님을 위해서 방석을 내놓으면 되고, 침대 대신에 요를 깔면 된다. 방석이나 요는 쉽게 접거나 챙겨서 시렁 위나 장농 속에 넣어서 보관할 수 있다. 결코 소파와 침대처럼 거실이나 침실의 면적을 별도로 차지하지 않는다. 커다란 붙박이식 식탁도 온돌방에서는 거추장스럽기 짝이 없다. 쉽게 들어 나를 수 있는 휴대용 소형 밥상이면 족하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을 수 있는 두레상의 경우는 사용하지 않을 때 다리를 접어서 방 한쪽 구석에 치워두었다가 밥상을 차릴 때만 꺼내서 사용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살림살이와 가구들이 붙박이로 방 안을 넓게 차지하는 경우가 없고 필요할 때만 끄집어내서 사용할 수 있도록 휴대용으로 개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경비도 값싸고 이사 때도 편리하다.


모든 가구와 살림살이들이 휴대용으로 만들어져 있어 방 한 칸을 가지고서도 여러 방처럼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어느 방이라도 손님을 맞이할 수 있고 또 식당방이나 침실 및 거실로 활용할 수 있다. 손님이 찾아와서 방석을 내놓으면 응접실이 되고 끼니때가 되어 밥상을 차려서 들여 놓으면 식당방이 되며, 저녁에 이부자리를 깔면 침실이 된다. 평소에는 거실로 활용할 수 있으며, 책상으로 쓰는 서안(書案)을 내놓고 공부를 하면 공부방이 된다. 따라서 좌식생활을 하는 온돌방에서는 단칸방 생활도 가능했던 것이다. 집이 크게 부족하고 독신생활이 늘어남에 따라 요즘에서야 문제된 서양식 ‘원룸 시스템’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 전통 생활에서는 일찍부터 있어왔던 것이다.


만일 서양사람들처럼 붙박이식 가구를 들여놓고 입식생활을 한다고 해보자. 소파를 들여놓은 응접실 겸 거실 따로, 침대를 들여놓은 침실 겸 안방 따로, 책상과 책장을 들여놓은 서재 겸 사랑 따로, 씽크대와 식탁을 들여놓은 부엌 겸 식당방이 따로 있어야 한다. 부모님을 모시고 성장한 자녀들이 있는 집의 경우에는 이 밖에도 부모님과 아이들을 위해서 침실과 옷장, 책상을 갖춘 방이 둘씩이나 별도로 더 있어야 한다. 특히 방마다 벽난로나 라지에터와 같은 측면 난방시설을 갖추게 되면 방 안은 더욱 좁고 복잡해진다. 그렇다고 해도 한옥에서 좌식생활을 하는 것보다 넓고 깨끗하게 주거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방이 많아도 침대가 없으면 잠자리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묵어갈 일가친척이 찾아올 때를 대비해서 침대가 갖추어진 빈 방이 별도로 늘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주인이 거실의 소파에 담요를 펴고 불편한 잠을 자고, 침실을 손님에게 내주어야 한다. 식탁의 이용도 마찬가지이다. 네 식구가 의자 네 개를 갖추고 식당을 이용하다가 뜻밖에 같이 밥을 먹어야 할 손님이 늘게 되면 당장 의자가 모자란다. 서구식 입식생활이 얼마나 소비적인가 하는 것을 통해서, 상대적으로 우리 온돌방이 얼마나 경제적인가 하는 것을 실감나게 인식할 수 있다.


그리고 붙박이로 자리잡고 있는 소파와 침대 밑은 매일 쓸고 닦아낼 수 없어서 늘 불결하다. 책상 밑과 식탁 밑도 여전하다. 더군다나 마당과 마찬가지로 신발을 신고 드나들게 되어 있으므로 소파에서도 구두를 신은 채 생활하고, 침실에 들어가서 침대에 올라가야 비로소 신발을 벗는다. 카페트는 늘 흙먼지를 듬북 머금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먼지털이와 진공청소기라고 하는 것이 청소용구로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집안의 먼지를 털어내거나 카페트 속의 먼지들을 쓸어내기 위해서는 먼지털이와 진공청소기를 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무리 강력한 진공청소기를 사용하더라도 카페트 속에서 기생하는 진드기들은 결코 제거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온돌방에는 빗자루와 물걸레면 족하다. 물걸레로 훔친 장판바닥은 맨 살을 대고 앉아도 좋을 만큼 깨끗하고 따뜻하다.




4. 온돌난방의 과학성과 땔감의 절약성


온돌은 방바닥의 구조물 양식이자 일종의 난방 방식이다. 온돌의 난방 방식은 서구식 벽난로에 대하여 세 가지 특성을 지니고 있다. 첫째는 벽난로가 측면 난방인데 비하여 온돌은 밑면 난방 방식을 취하고 있다. 뜨거운 공기는 위로 올라가고 차거운 공기는 밑으로 내려온다는 열의 대류 원리를 고려한다면, 측면 난방보다 밑면 난방이 훨씬 더 효율적으로 방안을 골고루 난방하는 데 기능적이라 할 수 있다. 냉방기의 찬 바람이 위에서 불어나오게 하고 온풍기의 따뜻한 바람은 밑에서 불어나오도록 서로 어긋지게 설계한 것도 기능에 맞게 대류 원리를 고려한 것이다. 따라서 온돌에 의한 밑면 난방은 대류의 이치로 볼 때 열효율성이 가장 높은 난방 방식이라 하겠다.


우리 전통의 건강법에 ‘발은 따뜻하게 하고 머리는 차게 하라’는 말이 있다. 온돌은 구조적으로 아랫목이 따뜻하고 윗목은 차며, 방바닥은 따뜻하고 방안 공기는 신선하다. 방바닥은 차되 방안 공기가 골고루 후덥지근한 양옥과는 사정이 다르다. 한옥은 창호지를 통해서 끊임없이 신선한 외기를 교환해 주기 때문에 방안 공기는 제법 차더라도 방바닥은 온돌로 인하여 따끈따끈하다. 따라서 앉아 있을 때에는 아랫도리가 따뜻하고 상대적으로 몸의 윗부분은 차다. 그리고 누워 잘 때에는 으레 발을 아랫목으로 하고 머리를 윗목에 두게 되므로, 발이 가장 따뜻하고 머리는 가장 차게 된다. 그러므로 항상 머리가 맑고 기혈(氣血)의 흐름이 순조로와 몸도 편안하다. 허리를 따뜻한 방바닥에 붙이고 자므로 온돌방은 허리 건강에도 아주 좋다.


둘째 벽난로는 방 안의 난로 아궁이에 장작을 지피는 직접 난방 방식인데, 온돌은 방 바깥의 부엌 아궁이에 땔감을 지피는 간접 난방 방식이다. 직접난방 방식은 공기를 직접 덮히는 관계로  불을 피우는 동안 방안 공기를 빨리 따뜻하게 하고 불이 꺼지면 빨리 식어버리게 한다. 그러나 온돌은 구들장을 데우는 간접난방 방식이므로 방안이 쉽게 따뜻해지지 않은 한편, 한번 더워지면 구들장이 오랫동안 온기를 유지하고 있어 쉽게 식지 않는 장점이 있다. 또 몸을 직접 온돌바닥에 댈 수 있어 방바닥의 따끈따끈한 온기를 한층 적극적으로 느낄 수 있다. 필요한 경우 방바닥에 이불이나 담요를 깔아서 구들목의 열을 오래도록 지속시킬 수 있다.


구들이 식는 것을 막기 위해 부엌 아궁이를 닫아두고 굴뚝을 막기도 하며, 방안 공기를  직접 데우는 방법의 하나로, 취사를 하고 남은 아궁이의 불을 화로에다 담아서 방안에 들여 놓기도 한다. 화로불이 있으면 방안 공기는 한결 훈훈하다. 더러는 취사용으로 사용할 수 없는 등겨나 톱밥 등을 아궁이에 넣어두어 밤새껏 피어오르면서 온돌의 구들목을 따뜻하게 하기도 한다. 이러한 방법들은 간접 난방의 장점은 더욱 살리고 한계는 보완하는 장치라 하겠다.


세째, 벽난로는 취사와 난방이 구조적으로 분리되어 있으나, 온돌방의 부엌 아궁이는 취사와 난방을 구조적으로 함께 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벽난로식 주택 난방에는 취사용 외에 별도로 난방용 불을 지피기 위해 땔감을 덤으로 더 써야 한다. 그러나 온돌 구조에서는 부엌 아궁이에서 밥을 짓고 국을 끓이다가 보면 방도 저절로 데워진다. 따라서 온돌방에는 방을 데우기 위해 별도로 불을 지피는 일이 거의 없다. 아주 추운 겨울에 순전히 방을 데우기 위하여 취사용 외에 땔감을 더 때는 경우나  취사를 하지 않는 방에 불을 때는 경우 이를 ‘군불’이라고 한다. 끼니 외에 먹는 음식은 ‘군것질’이라고 하는 것처럼, ‘군불’은, 순전히 난방을 위해 불을 때는 일을 두고서 땔감을 쓸데없이 소비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일컫는 말이다. 그러므로 온돌방은 취사용 연료만으로도 난방까지 겸할 수 있어 땔감을 그만큼 절약할 수 있다.


온돌식 구조는 자연히 취사를 하는 부엌과 실내를 구분해 준다. 음식을 조리하는 부엌은 아궁이에 땔감을 때어서 취사를 해야 하므로, 마당처럼 신발을 신고 생활을 하게 된다. 부엌바닥에 궁둥이를 대고 앉는 법이 없다. 흙바닥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 부엌은 신발을 신고 생활해야 하는 까닭에 본디 입식이지만, 온돌의 구조상 방구들보다 불을 지피는 아궁이가 낮게 자리잡고 있으므로 아궁이에 불을 지펴가며 부식을 장만하려면 앉은 채로 해야 된다. 따라서 앉거나 엎드려서 취사활동을 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 이런 모습들을 두고 입식부엌으로 개량한다는 구실 아래 씽크대를 들여놓고 부엌도 방처럼 꾸며 놓게 되었다. 그 결과 주부들이 서서 조리를 할 수 있게 되는 등 많은 변화가 생겼다.


전통 부엌에서는 방 안으로 통하는 부엌문의 문지방도 상당히 높았다. 신발을 신어야 하는 부엌을 바깥 영역으로 여겨서 높은 문지방을 경계로 삼아 안방과 부엌을 격리했던 것이다. 요즘 아파트와 같은 양옥에서는 부엌을 실내처럼 꾸며 두어서 거실과 부엌의 구분이 없다. 아예 문 조차 달아두지 않은 경우가 흔하고, 문이 있어도 문지방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부엌이 서구식 주생활처럼 실내로 들어오면서, 부엌아궁이에 난방과 취사 겸용으로 쓰던 장작이나 연탄같은 험한 땔감을 사용할 수 없게 되고, 마침내 취사용 연료를 별도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들 연료는 한결같이 자급자족이 불가능하거나 수입해서 써야 하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부엌이 입식으로 개량되더라도 취사와 난방을 겸용하는 열 이용 구조의 전통을 되살리는 방법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온돌의 장점을 살리는 길이자 외화낭비를 줄이고 자원을 절약하는 길이다.


한옥이 서구식 양옥으로 바뀌어 감에 따라 난방 방식도 우여곡절을 겪었다. 초창기에 서구식 집이 들어설 때에는 공공시설물이나 기업체 사무실 뿐만 아니라, 아파트와 같은 살림집의 난방 방식도 중앙집중식 난방을 채택한 경우 라지에터와 같은 측면 난방을 주로 설치하게 되었다. 그러나 온돌난방의 과학성과 전통 생활 양식 때문에 라지에터와 같은 측면 난방의 한계가 드러나게 되자, 점차 본디 전통대로 온돌식 보일러 양식을 채택하여 온수배관을 모두 방바닥에 묻었다. 따라서 이제 살림집의 경우는 밑면 난방의 온돌식 보일러가 주를 이루게 되었고, 양옥에 걸맞게 소파와 침대, 식탁과 같은 입식 가구들을 들여놓긴 했어도, 여전히 좌식생활을 주로 하고 있다. 우리 민족이 다른 나라 사람들과 달리, 무릎을 꿇고 엎드려 절을 올리는 예절문화가 있고, 또 결가부좌하여 앉는데 편리한 한복문화와 휴대용 가구문화가 독창적으로 발달된 것도 모두 온돌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전통문화의 고유성을 되살리며, 경제적이고 위생적인 주거생활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기 위해서도 온돌의 과학적 이치를 새삼 주목할 필요가 있다. (92. 12. 15., 월간 ????한국논단????,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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