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상 언어생활에서 ‘저희’란 말이 ‘우리’란 말을 거의 대체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제가 10년 전 기자수첩을 통해 저희란 말의 남용 문제를 지적했었는데 그때보다 상황이 무척 심각한 상태입니다.
우리는 남에게 자기 나라를 지칭할 때 ‘내 나라’라고 하지 않고 반드시 ‘우리나라’라고 합니다. 심지어 형제·자매가 없는 외동도 자기 엄마를 말할 때는 ‘우리 엄마’라는 호칭을 사용합니다. 오죽하면 한국에 온 외국인들이 한국인은 왜 자기 남편과 부인을 ‘우리 남편’‘우리 마누라’라고 부르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는 말까지 할 정도입니다.
이처럼 '우리'라는 말은 외국인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우리 민족의 정서를 대변해온 독특하고 정겨운 말입니다. 그런데 이 ‘우리’라는 말이 요즘은 ‘우리나라’란 말을 쓸 때 외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희귀 단어가 되었을 정도입니다.
단적인 예로 스포츠 중계를 하는 아나운서는 거의 예외 없이 우리나라 선수를 ‘저희 선수’ 혹은 ‘저희 팀’이라고 합니다. 동계올림픽 중계에서 아나운서가 하도 ‘저희 선수’라고 하기에 도대체 ‘저희’란 말이 몇번이나 나오는지 수첩에 적다가 포기한 적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We'라는 단어를 전부 ‘저희’라고 번역한 전쟁 다큐
저는 히스토리나 디스커버리,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 등에서 하는 다큐멘터리 채널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들 방송을 볼 때마다 거슬리는 것이 바로 ‘저희’라는 자막입니다. 한번은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에서 2차 세계대전 중 미드웨이 海戰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방영했습니다. 치열했던 해전을 회고하는 미군(美軍) 노병의 말 중에 ‘우리’를 뜻하는 ‘We’라는 단어를 전부 ‘저희’로 번역해 놓았습니다.
“저희 전우들은 용감했죠.”
“저희 부대는 꼭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본군은 저희 함대가 다가가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죠.”
이런 식으로 한 문장 건너 한 문장마다 ‘저희’라는 단어가 나오니 도무지 문장이 힘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전쟁 다큐멘터리 맛이 나지가 않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리고 적군하고 싸운 이야기를 하는데 말끝마다 ‘저희’라고 번역해 놓았으니 그 어감이 참으로 우습게 들렸습니’다. 이 방송에서는 또 미국 나사(NASA)의 화성 탐사 계획을 다룬 다큐멘터리 자막의 ‘We’라는 단어도 전부 ‘저희’라고 번역해 놓았습니다.
제가 기억을 더듬어 나름대로 고찰해 보면 ‘저희’라는 말이 우리 언어 생활 속에 이렇게 ‘막무가내’로 퍼진 것은 1990년대 들어와서 입니다. 당시 10대, 20대의 젊은 연예인들의 방송진출과 생방송 프로그램이 부쩍 늘었는데 이들은 말끝마다 ‘저희’를 남발했습니다.
TV나 라디오 진행 방송자나, 아나운서도 예외가 없었는데, 아마 이들은 전 국민을 상대로 하는 방송에서 혹시 모를 말실수를 대비해 ‘안전심리’에 의해 자기들 최대한 낮추려 하다보니 ‘우리’라는 말보다 ‘저희’를 갖다 붙여야 뭔가 마음이 놓이는 심리에서 저희를 남발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현상은 요즘 마트의 판매사원이나 텔레마케터들의 존칭 남발을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갈 것입니다(이들은 사물에도 존칭을 붙인다).
'저희 팀' '저희 회사'에 이어 '저희 정부' '저희 사회'까지
어쨌거나, 어느 순간 저희라는 말은 일상 속에 무차별적으로 파고들어 ‘저희 사장’ ‘저희 회사’ ‘저희 삼촌’은 기본이고, 이제는 ‘저희 사회’라는 말까지 보통으로 사용합니다. 이처럼 저희를 남발하는 것은 지금까지 사용해 온 우리의 언어 감각과도 맞지 않을뿐더러, 무엇보다 맞지도 않은 마구잡이 겸양어 사용으로 말의 품위를 심각하게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가 제일 먼저 배운 단어가 ‘나’ ‘너’ 다음에 바로 ‘우리’라는 단어였습니다. 요즘 같은 분위기라면 ‘나’ ‘너’ 다음에 아마 ‘저희’라는 단어를 배워야 할 판입니다.
제가 아무리 기억을 곱씨ㅂ어 생각해 봐도 어릴 때 어른들 앞에서 ‘저희’라는 말을 쓴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어른이나 선생님이 동네를 물어보면 “우리 동네는 어디에 있어요” 하고 대답을 했습니다. 동네 노인이 부모님의 이름이나 거처를 물어볼 때도 “우리 아버지는….” 혹은 “우리 엄마 장에 갔어요”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이처럼 어른들이 물을 때 ‘우리 동네’, ‘우리 아버지’, ‘우리 삼촌’, ‘우리 학교’라고 대답을 했지, ‘저희 동네’, ‘저희 아버지’, ‘저희 삼촌’, ‘저희 학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어린이날 노래 가사에서도 ‘5월은 프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이라고 했습니다. 심지어 오래전에 작곡된 MBC 로고송에서도 ‘우리 문화방송’이라고 하지 ‘저희 문화방송’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정치권도 예외가 아닙니다. 예전에 여성 국무총리가 국회본회의장에 나와서 북한의 핵실험관련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 “저희는 몰랐다”느니 “저희는 그런 계획이 없다”고 대답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국무총리는 정부를 가리켜 ‘저희’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비단 총리뿐 아닙니다. 장관이든 차관이든, 운동선수든, 학교 교수든, 회사원이든 가정 주부든 자기가 속한 조직이나 집단을 가리키는데도 거의 예외없이 ‘저희’란 말을 사용합니다. ‘저희 사회’라는 말까지 아무렇지 않게 사용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 앞에서도 ‘우리’라고 표현
우리말에서 자기를 낮출 때 ‘나’라는 말 대신 ‘저’란 말을 씁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우리’를 낮출 때도 ‘저희’를 써야 하지 않는 가”하고 오해를 하는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우리’라는 말은 낮춤말 높임말이 적용되지 않는 단어입니다. ‘우리’의 낮춤말이 ‘저희’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라는 말은 낮출 필요도 없고 더 높일 필요도 없는 말입니다.
굳이 우리 고전을 고찰할 것 없이 간단한 예를 들어 드리겠습니다.
현재 우리 성경은 1950년대 개역(改譯)된 것을 사용하지만, 사실상 구한말 우리 조상들이 번역한 것을 맞춤법 등을 고쳐서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 일상에서 100년도 훨씬 넘은 번역체 문장을 그대로 사용하는 서적은 성경밖에 없을 것입니다. 성경이 그만큼 번역이 잘 되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 성경에 ‘저희’란 단어만 보더라도 ‘저희’는 우리의 낮춤말이 아니라, 단지 ‘그들’ 이란 뜻으로만 쓰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성경의 주기도문을 보면 ‘우리’라는 단어가 여섯 번 나옵니다.
이처럼 당시 우리 조상들은 하나님 앞에서도 ‘저희’란 단어를 쓰지 않았던 것입니다. 신분질서가 엄격하던 당시에 임금보다 더 높은 유일신 앞에서 ‘저희’가 아니라 ‘우리’라는 말을 썼다는 것은 실제 언어 생활에서 '우리'라는 말에 높임말 낮춤말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저희는 낮춤말 아닌 상놈말, 반드시 추방해야
‘저희’는 ‘저’라는 말에서 파생되어 나온 말입니다. ‘저희’에서 ‘희’는 무리를 지칭하는 ‘~들’이라는 접미어와 같은 말로 쓰입니다. 구한말에 번역한 성경에서는 ‘저희’를 우리의 낮춤말이 아닌 ‘저들’ 혹은 ‘자기들’ 등의 의미로 쓰고 있다는 데서 이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남발하는 ‘저희’란 말은 ‘나’를 낮추는 말인 ‘저’와 무리를 뜻하는 ‘희’가 만나 어떤 무리를 낮추는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란 말이 왜 '우리'의 낮춤말로 인식이 되었는지 혹은, 이 말이 어떤 환경에서 쓰였는지는 좀 더 따져 봐야 합니다.
나름대로 고찰을 해보면, 신분 질서가 엄격하던 시절, 노비 같이 자기 무리를 특별히 낮추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저+들’ ‘지+들’ 이라는 말을 썼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때 ‘지들’ ‘저들’ 이란 말은 ‘이’자 혹은 ‘희’자 발음이 삽입되어야 말이 부드러워지고, 발음이 자연스러워 집니다. 따라서 ‘저들’ 이란 말 사이에 ‘이’ 혹은 ‘희’라는 발음이 삽입되어 ‘저이(희)들’이란 말로 변형이 되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즉 ‘저희들’ 에서 '들'자가 탈락한 형태가 '저희'라는 말로 남았다고 보는 겁니다(이는 '너희'도 마찬가지).
이 말의 용례를 굳이 따지자면 ‘저(이,희)들’ 혹은 ‘지들’ 이란 말은 원래 신분이 극히 낮은 사람이 양반이나, 신분이 높은 사람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지들(저희들, 우리들) 같은 소인들이 뭘 알겠습니까요”하고 할 때 주로 쓰이던 말입니다. 이러던 것이 1990년대 들어 일상생활에서 무슨 대단한 겸영어처럼 남발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대로 가면 '우리'란 말이 일상에서 사라질 것
정리하자면, ‘밥과 진지’, ‘집과 댁’, ‘보다와 뵙다’, ‘주다와 드리다’ 등은 명백한 높임말 낮춤말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만, ‘우리’와 ‘저희’는 이런 식의 높임말 낮춤말 관계가 아니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떠나 저희의 남발은 우리 언어감각과도 맞지 않고, 지나친 겸양으로 말의 품위와 품격을 심각하게 떨어뜨리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쓰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저는 이제 ‘저희’라는 말의 남발이 계도 차원으로는 해결 될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따라서 저는 이 말을 의도적으로 언어생활에서 추방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우리나라’라는 단 한가지 경우를 제외하고는 ‘우리’라는 말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