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궐에서 기억하는 단군
단군은 신이 되신게 아니라...기자(키즈) 무리에게 목이 잘려 돌아가셨다. 우리 사서의 단군관련 역사기록은 근대의 위작이라 시비를 받는 왜정시대에 본격적으로 출현하기 시작한 환단 고기등을 제외하곤 그저 전설을 기록한것 뿐이다.
단군을 국조로 섬기면서도..정작, 단군의 뚜렷한 행적 하나 전수받지 못한 우리민족이 과연 단군의 적장자민족 일까란 의심을 자초하기 충분한 대목이다.
그런데 분명 ...몽골초원에서 발견됀 돌궐 제2제국기의 비문엔...우리가 모르던 단군의 기록이 뚜렷하게 돌로 새겨져 있단다.
단군(당골,탱그리) 올칸께선... 키즈의 무리들을 피해 아사달로 피신하셨다가...잡혀 목이 잘려 돌아가셨다 명기됐다.
그럼, 우리 사서의 아사달에 돌아오셔서 신이 되셨단 기록은...이 참담한 기록을 미화한 은유적 표현이란게 확연 하다. 중원왕조격인 은나라 기자의 무리들에게 단군(탱그리) 올칸(국왕?) 이 고향 은신처인 아사달에서 처참하게 살해당하신 거다.
그럼, 고려나 조선사는 이를 왜 구체적으로 적지 않고 은유적으로 신이돼셔서 승천하셨다고 미화했어야 한걸까...? 고려나 조선은 공식적으로 단군(탱그리)보단 기자(키즈)를 더 섬겼음이 역사서들에 나온다.
문젠...키즈(기자)는 중국인인데... 돌궐인들의 역사엔 내내 중국을 거란(키타이)로 적었다. 돌궐인들 시각에선... 우리가 현재 인식하는 현 중원 남방의 중국이 아닌... 중원 서북방의 중앙아 카라키타이 계통이 바로 고대의 중국이란 얘기다.
기자(箕子)...기주(箕州) 지역의 제후...? 어쩜, 기주(箕州)란...키타이(키즈,거란)의 전통적 본거지라서 그리 정해진 것이라 봄이 더 객관적이지 않을까 싶다. 그 나라 조대명을 요(遼)라 표기함은...거기에 료수(遼水)가 있어서일 수도 있지만... 한자와 무관하게...그들의 민족명이나 상징 토템이...료(로=龍)일 수 있기때문이라 보인다. 이를 한자 문명명권에선...폄하하여...북방오랑케 "虜"등으로 표기한것 뿐이겠으니... 훈누(흉노) 또한 노(魯,奴)등의 한자 무관하게 룡(로,료)을 상징토템으로한 문화권이라 봄이 맞고... 결국 서방의 중국이란 문명은...크게 보면 흉노나 카타이의 남방정권이란 말로도 해석해 본다.
거란(카라키탄)이 기주(箕州)이고...거기가 돌궐이 보는 중국이라면... 원 중국은 최소 신장위그루 지역을 경계로 더 동쪽이 될 수가 없으며...남방계도 아니다. 천산유역의 종족들이 거란이자 북중국 인종들인데...그 지역 출신 기자를 돌궐비문은 "키즈"라 적었음으로... 어찌보면 키르키즈,메르키즈...등 북방유종들의 자손,후손,애들이란 "키즈"... 그들의 유종인 숙신(섹슨)말의 "키즈"는...나라 이름이 아닌...본시는 민족,후손이란 그들의 언어로 해석해 본다.
종합해 유추해 보건데... 기자(箕子)는 크게보면 거란(키탄)계 중국인이며... 이들의 서방식 명칭은 "키즈"로..이게 변하여..민족... 후손(애들)이란 말이 탄생하지 싶다.
키르키즈" "메르키즈"등의 민족은 본시 백인이라...? 중국북부지역의 고대 중국왕조들의 무덤이란 지역의 유골들에선 상당수 백인혼혈으로 추정되는 유골들이 발견 되는 이유인듯 싶다.
기자조선(키즈)의 유골인듯 싶다. 원래부터 중국이고 조선이고...당나라고 고구려고...정확한 황인종이라기 보단... 백인과 어느정도는 혼혈됀 황인종이 맞고... 그게 현재의 북방몽골로이드란 중원 북부인들과 몽골인종 한반도인종들의 선 조상들이라 사료됀다.
내 말이 맞다는게 아니라...원체 위서논란이 있는 환단고기등을 제외하곤 단군관련 역사자료가 없으니... 일종의 나만의 추정이라 하겠다.
단군(탕골,탱그리)를 아직도 기억하고 섬기는 돌궐의 서방 지파인 현재의 오스만투르크(오손돌궐?). 셀죽크 투르크... 그들 선대왕조의 비문에 명기됀... 우리에겐 없는 단군의 최후...해모수의 최후... 단군(탱그리)의 어진에 나타난 중앙아시아적인 당군(탱그리)의 얼굴과 빵떡모자... 어찌보면 단군(탱그리)의 적장자들은...한반도인들과 함께... 아직도 당골(탱그리)를 찾는 돌궐의 발상지인 외몽골인들이자...그들의 서방 지파인 터키인들일지 싶다.
또한 돌궐의 원 발상지를 무시하고... 그들이 서방으로 이주해 세운 근대의 돌궐지파인 터키등만을 기록한 구한말기의 기록들만으로.,. 돌궐은 본시 알타이 서부에서 발흥한 파미르 서역인들이란 해석도 무리가 많다 하겠다. 정작, 돌궐어로 됀 최고의 비문은 돌궐 제2제국 시기인 발해시기의 외몽골 아르항가이 퀠테킨(궐특근)비문인데 말이다.
투르크(돌궐 서방지파)인들 입으로도... 자기들의 선조들은 본시 동방 알타이에서 온 고구려(무쿠리)의 형제종족이라 늘상 주장하는데 말이다.
몽골 아르항가이의 돌궐 제2제국 한(가한)들의 비문과 돌궐역사서에 적힌... 단군(탱게르)올칸과 해모수 당골올칸...광개토대왕등의 고구려 대칸들의 행적들은...
원체 서역에 있었던 돌궐(투르크)족들의 선조들을...동방으로 이식하기 위해... 음모세력들이 조작에 세워놓은 역사왜곡 범죄물일까...?
왜? 고구려는 한반도 북부에 있던 왕조란게 역사왜곡자들의 본시 각본인데... 돌궐의 형제국이면...훨 서쪽으로 고구려를 옮겨 주는 모순인데...뭐하러 기껏 한반도 북부로 옮긴 고구려를 서쪽 으로 옮겨주는 써비스 왜곡을 자행했단 것일까...?
고로, 아르항개의 돌궐비문은 위작이 아니며...단군제국(한탱그리제국=환국)의 역사진실을 그대로 적은... 동북삼성의 광개토대왕 비문보다 더 중요한 한민족(당굴민족) 최고의 성물인 격이다.
(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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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튀르크 비문과 그 내용 그 중에서도 규모가 큰 것으로는 제3대 군주였던 빌개 카간의 비, 그의 동생인 퀼 테긴의 비, 그리고 건국공신이자 빌개 카간의 장인인 톤육쿡의 비가 있다.
이들 비문에 적힌 내용을 통해서 우리는 처음으로 한문자료라는 이방인의 프리즘을 통해서가 아니라 유목민 자신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육성, 초원의 바람처럼 거칠면서도 솔직하고 수식없는 진솔한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하늘과 같고 하늘에서 태어난 튀르크의 빌개 카간, 나 이제 보좌에 앉았노라. …너희는 내 말을 잘 듣고 단단히 귀를 기울여라!”로 시작되는 빌개 카간의 비문은 중국인이 달콤한 말과 나긋나긋한 비단으로 어떻게 돌궐인을 유혹해서 변경 가까운 곳으로 끌고 가서 절멸시켰는가, 그 후에 자신의 아버지 일테리시 카간이 어떻게 백성을 이끌고 나라를 재건하고 그들을 배불리 먹이고 따뜻하게 입혔으며, 군대를 이끌고 사방의 적 들을 모두 쳐부수고 안정과 번영을 구가하게 하였는가를 기록하고 있다. 돌궐(투르크)칸의 비문 예언.
우리나라 사람이 투르크(돌궐)민족과 가장 유사한 두개골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내용이 KBS <몽골리안 루트> 에서 보도된 바가 있습니다.
아래 돌궐칸의 비문 내용을 보면 단군왕검(당골올칸)의 후손들의 <미래 예언>에 대한 매우 흥미있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또한 <환단고기>의 단군임검께서 백성을 교화하실 때 말씀하신 내용과 거의 일치함을 알 수 있습 니다. 그리고 탱그리(단군)와 해모수 그리고 광개토대왕에 대한 구절도 있네요.
이하의 글은 이인화의 소설(초원의 향기)중 각 부의 서문에 인용된 "돌궐비문"의 번역본 중 일부랍니다. 7세기 돌궐 제 2 가한국(칸국)의 비문이며 탈랴트 테킨 교수란 분이 번역한 것이구요. "북방제국"에 대해서 우리나라 학계의 지대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1) 이방(異邦)이 동방을 짓밟으니 삶의 쇠락함은 가을날의 잎사귀와 같았다.
-돌궐의 투르크룬 문자로 쓰여진 "당골 올칸(단군왕검)"중에서-
2) 이 예언을 기억하라. 당골의 백성들이여.
-돌궐의 투르크룬 문자로 쓰여진 "해모수칸인 카인릭-해모수칸의 예언"중
<을두지 2서> 마지막 부분
성스러운 추모께서는 하늘나라에서 해모수님과 아란두님을 모시고 동방의 신령 107위와 함께 고구려의 역대 군주들을 초청하여 큰 잔치를 베푸셨다.
범했던 악덕과 결점과 어리석음 들이 나타나게 하셨다.
사브시루 칸(揷矢婁可汗:봉상왕)과 또 다른 몇몇 군주도 두손으로 머리를 싸쥐고 뒷걸음질 쳐 돌아갔다.
특히 타이가주루 칸(大解朱留可汗:대무신왕)과 탐덕 칸(談德可汗:광개토대왕)이 높은 존경과 흠모를 받았다. 그러나 신령들은 시종일관 한구석에서 얌전하게 침묵을 지킨 우르부르 칸(乙弗可汗:미천왕)의 이름을 불렀고 발언을 청했다.
떠돌아 다녔고 남의 집 머슴살이,소금장수,거지노릇을 하기도 했읍니다. 가난 했을때나 옥좌에 있을때나 항상 남에게 죄를 짓지 않고 살다가 삶을 마치기를 원했읍니다. 오늘 이곳에 들어 올때에 저의 일생이 청백 했음을 돌아보고 그것을 한없는 기쁨으로 생각하며 조상들과 신령들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일찍이 신들께서는 부패와 폭정, 대국의 전제(專制)를 타기하시고 백성들을 널리 행복으로 세울 율법을 세우셨읍 니다. 저는 지고한 신들의 향기가 아직도 저희의 손에 순결하게 쥐여져 있음을 확신 합니다. 신들께서는 저희에게 대지와 창공에 가득한 큰 생명의 목소리를 따라 자유롭게 살라고 하셨읍니다. 누구의 노예가 되어서도 안된다고 하셨읍니다. 이 가슴에 타는 생명의 불꽃이 무한으로 이어지는 더 큰 생명의 불꽃과 똑같다고 하셨읍니다. 저는 신들의 가르침에 감사의 공물을 바치고 싶읍니다."
-돌궐의 투르크룬 문자로 씌여진 외경(外經)"탱그리닌 지야펫(하늘나라의 잔치)중에서-
아란두님의 혼은 하늘로 올라가 만월의 어머니가 되셨다.
-돌궐의 투르크룬 문자로 번역된 이문진(李文眞)의"예니덴 봇자(新集)"중에서..-
해모수는 말을 타고 어떤 인간도 가보지 못한 길을 따라
해모수는 말하였다.
궐특근비(闕特勤碑)
이 비를 세운 사람이 1300년 전 북방초원에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던 유목민 돌궐(突厥)의 한 왕자로 `궐특근 (闕特勤)'이었다. 그의 이름은 투르크어로 `퀼 테긴'이었다. 그는 유목민의 관행에 따라 어린 동생이 후계자로 임명된 것에 반발하여 숙부가 사망한 뒤 쿠데타를 일으켜, 자기 형을 카간으로 삼았다. 이렇게 해서 즉위한 인물이 빌게 카간이었고 그는 바로 호쇼 차이담에 남아있는또 하나의 비문의 주인공이다. 되었다. 이는 톤육쿡이라는 노재상(老宰相)을 위해 세워진 것이다. 그는 제국건설의 장본인이자 동시에 빌게 카간의 장인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비문들은 중국을 거치면서 왜곡된 기록이 아닌, 유목민의 생생한 육성을 들려주었다. 그들이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이 무엇이고, 두려워했던 것이 무엇인가.
“하늘과 같고 하늘에서 생겨난 나 투르크의 빌게 카간, 이제 카간의 자리에 올랐노라. 너희들은 내 말을 단단히 듣거라!”
이렇게 시작되는 빌게 카간의 비문은 초원의 구릉 위를 쓸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당당하게 우리를 향해 소리치고 있다.
비문은 무엇보다도 고대 유목민들이 그들 자신과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세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가를 잘 보여준다. 적인 것이다.
흔히 우리가 동→서→남→북이라 하는 것과 달리 그들은 동→남→서→북이라는 순서를 따른다. 이것은 다름 아닌 태양이 동쪽에서 떠서 진행하는 방향을 나타낸다. 그들은 천막을 칠 때도 문을 언제나 동쪽으로 열어 놓았고, 아침에 해가 뜨면 밖으로 나와 해를 향해 세 차례 큰 절을 올렸다고 하는데, 이 역시 그들의 태양숭배를 입증하고 있다.
태양은 그들이 최고의 신으로 여겼던 `탱그리(Tangri)' 즉 `천신(天神)'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태양의 운행을 중심 으로 하는 그들의 방위관념은 해가 뜨는 곳(동)' `해가 한 가운데인 곳(남)' `해가 지는 곳(서)' `밤이 한 가운데인 곳(북)'이라는 표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비문은 돌궐제국의 창건자가 사망했을 때 조문사절을 보내온 각국의 명단을 열거하고 있는데, 이 명단의 순서 역시 동→남→서→북으로 되어 있다. 즉 동방의 고구려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중국과 티베트, 이어 서쪽으로는 동로마가 나오고, 마지막으로 북쪽으로 키르기즈와 거란 등이 언급되어있다. 그들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나라와 민족들을 정치적인 친소나 지리적인 원근에 따라 배열하지 않고, 태양의 운행에 기초한 독특한 세계관에 따라 정열시킨 것이다.
이 비문에는 고구려도 등장한다. 고대 돌궐인들이 남긴 여러 비문들을 조사해 보면 해가 뜨는 동방에 `뵈클리(B kli)' 라는 이름의 나라가 등장하고 있고, 이 나라는 모두 두 번 언급될 뿐이다. 한번은 앞서 말했듯이 조문사절을 보낸 나라의 하나로, 또 한번은 돌궐인들이 당나라를 도와 `뵈클리'에 대한 원정에 참가했다는 내용이다.
이것이 고구려를 나타낸다는 점에 대해서는 거의 이의가 없는 편이다.
`카간'이란 최고의 군주를 나타내는 투르크 말로서 한자로 옮기자면 `황제'에 비견되는 칭호이다. 황제가 `천명'을 받아 천하의 질서를 주관하는 존재이듯이 카간 역시 `탱그리의 명령'과 `탱그리의 축복'을 받아 ` 위로는 푸른 하늘, 아래로는 누런 땅' 사이에 있는 `사람의 아들들'을 다스리는 존재로 여겨졌다. 그러나 고대 유목민들은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듯이 지상에 두 명의 황제가 있을 수 없다'는 식의 중국인들의 정치 관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돌궐제국의 군주뿐만 아니라 중국, 고구려, 티베트, 키르기즈 등 주변의 나라를 지배하는 군주 들도 `카간'이라는 칭호로 불렀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국인들이 황제의 지배권을 받아들이지 않는 주변의 민족들을 `야만인'이라고 규정했던 일원적인 세계 관을 표방했던 것과 달리, 투르크인들은 다른 지역 문화 국가 민족들이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정치적 질서와 문화적 특징을 지니는 존재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다원주의적 세계관의 소유자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세계관은 비단 비문을 남긴 돌궐인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유목민들 모두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있도록 해주었고, 그들이 건설한 제국 안에서 여러 이질적인 문화가 서로 공존하며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몽골리아 초원에 남아있는 비석들은 그동안 중국인들의 기록을 통해서 우리에게 각인된 '유목민은 잔인하고 미개한 문명의 파괴자'라는 이미지를 벗겨내고, 오히려 그들이 자신과 동등한 정치적 실체를 인정하고 서로 다른 민족과 문화의 공존을 인정하고 장려하는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김호동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 협찬 삼성전자 아시아나항공>
http://cafe.daum.net/ko.art./atMJ/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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