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내용은 대전대학교 윤창렬 교수님의 강의를 녹취한
내용입니다.
둘째마당,
북부여 해모수
자, 이 고구려에 대해서 원문으로 들어가서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고구려국본기가 제일 깁니다. 오늘은 여러분들하고 같이 호흡을 하면서 설명을 한번 해볼까요? 책이 없는 분들은 그냥 제 얘기만 머릿속에 이미지로 그려주시기 바라고요. 책을 가지신 분들은 한번 해석을 하면서 보겠습니다.
고구려국본기 제 6이다. 제 6이다. 태백일사는 모두 8부분으로 되어있는데 6번째고 7번째가 대진국본기 8번째가 고려국본기가 되겠습니다.
1.
고구려 국통의 뿌리 - 북부여 해모수
고구려지선 출자해모수
高句麗之先이 出自解慕漱하시니
해모수지모향 역기지야
解慕漱之母鄕이 亦其地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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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선조가 말이에요. 자, 고구려의 시조는 고주몽인데 그 선조가 어디에서 나왔냐면 해모수로부터 나왔어요. 혈통적으로 해모수의 고손자가 됩니다. 현손자. 고주몽 성제는 해모수의 현손자가 됩니다.
해모수의 고향이 말이에요. 모향은 고향이에요. 해모수의 고향이 또한 그 땅이다. 자, 해모수의 고향이 어디예요? 고구려입니다. 그러니까 고구려의 지명이라는 것은 어디에서 나왔느냐면 해모수의 고향 이름이에요. 해모수의 고향이름이 고구려입니다. 출자해모수는 혈통적으로도 해모수에서 나왔고 국통적으로도 북부여에서 나왔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조대기 왈 해모수 종천이강
朝代記에 曰 〈解慕漱는 從天而降하사
상거우웅심산 기병어부여고도
嘗居于熊心山이라가 起兵於夫餘古都하고
위중소추 수입국칭왕 시위부여시조야
爲衆所推하여 遂立國稱王하시니 是謂夫餘始祖也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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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대기라는 것은 발해의 유민들이 고려에 많이 귀하를 했는데 그때 발해의 유민이 가져온 책입니다. 이 조대기라는 것은 세조 때 “전국의 책을 거두어 올려라.”할 때 수상서목 중에도 보입니다. 그러니까 조선시대에도 이 조대기라는 책이 존재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해모수는 하늘로부터 내려오셔 가지고 종천이강했다. 실제로 하늘에서 내려오신 건 아니고 이것은 천손이다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봐야 되겠죠.
상거우웅심산이라가. 일찍이 상자죠. 웅심산에 거했어요. 웅심산은 지금의 서란현입니다. 중국의 길림성을 보면 여기 장춘이 있어요. 여기에서 조금 이렇게 올라가면 여기가 서란현입니다. 중국의 지도를 확인하면 알 수가 있어요.
여기가 웅심산이에요. 웅심산에 거하시다가 기병어부여고도하고, 군사를 부여의 옛 도읍지에서 일으켰어요. 그러면 부여의 옛 도읍지라면 지금의 백악산 아사달 농안과 장춘 사이에 있는 백악산 아사달을 얘기합니다. 여기가 장춘이고 여기가 농안현이거든요. 그러니까 이 부분에서 군사를 일으켜서.
위중소추하여, 무리의 추대를 받아서 한문에서 위수는 뭐뭐하는 바가 되다. 피동을 만들죠. 무리의 추대되는 바가 되어가지고 수입국창왕하시니 드디어 나라를 세워서 왕을 일컬으시니 북부여를 건국하시고 왕을 칭하시니 시위부여시조야시니라. 이 분이 부여 시조라고 이르는 분이니라. 북부여의 시조 해모수입니다. B.C 239년에부터 B.C 195년까지 한 44년 동안을 제위에 계셨던 분입니다.
착오우관 패용광검 승오룡거
着烏羽冠하시고 佩龍光劍하시고 乘五龍車하시니
종자 백여인 조즉청사 모즉등천
從者 百餘人이오 朝則聽事하시고 暮則登天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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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오우관하시고, 오우관을 머리에 쓰셨어요. 오우관이라는 것은 중국의 그림에 보면 고구려의 사신들을 보면 말이에요. 모자를 쓰고 검은 색 깃털이 앞으로 쭉 나오게 양쪽에 하나씩 이렇게 된 그림을 보신 적이 있어요. 그것이 오우관이겠죠. 관을 쓰고 검은 색 깃털을 아주 멋지게 위로 쭉 앞으로 양쪽에 하나씩 뽑아낸 것, 오우관. 검은 새의 깃털을 꽂은 그런 관을 쓰시고.
착오우관하시고 패용광검하시고, 용광검을 차셨다 이거예요.
아마 그 칼에 용을 그렸겠죠. 용을 그려 가지고 빛이 번쩍번쩍 나는 그런 용광검을 허리에 차고 승오룡거하시니, 오룡거를 타셨어요. 여기에 용이라면 말을 얘기한다고 봐야 되겠죠. 다섯 마리의 말이 끄는 그런 수레를 타고 다녔습니다.
승오룡거하시니 종자가 백여인이오. 따르는 무리들이 백여인이다. 이것이 북부여기에서는 오백 명으로 나왔었죠. 오백 명. 여기는 백여인으로 돼있는데 백여인요.
조즉청사하고, 아침이면 일을 들어요. 국정을 처리합니다. 그리고 모즉등천하시니 저녁이면 하늘로 올라갔다. 등천했다. 이것은 주무시는 곳은 산속에 따로 머무시는 곳이 있었고 정무를 보는 데는 평지에 따로 있었다는 거죠. 그래서 내려와서 평지에서 정무를 보고 저녁이 되면 산채라고 하면 좀 표현이 비속하지만 산에 머무는 거기에서 머무르셨습니다.
무소령이관경 자화
無所令而管境이 自化하고
산무도적 화곡만야 국무사이민역무사
山無盜賊하고 禾穀滿野하니 國無事而民亦無事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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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즉등천하시니 무소령이관경이 자화하고, 명령하는 바가 없지만 관경이 그 관리하는 국토가 스스로 교화가 되고 산무도적하고 산에는 도적이 없고 화곡만야하니 이 벼라든가 또는 오곡이라든가 이런 것이 들에 가득하니 국무사이민역무사라. 나라도 일이 없고 백성도 또한 특별한 일이 없고요.
단군 해모수지초강 재어임술 사월 초팔일
檀君 解慕漱之初降이 在於壬戌 四月 初八日하니
내진왕 정 팔년야
乃秦王 政 八年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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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 해모수지초강이, 단군 해모수가 처음으로 이 세상에 강림했다. 즉 단군 해모수가 나라를 건국하기 위해서 처음 출현한 때가 임술년 B.C 239년 사월 초팔일하니 내진왕 정 팔년야라. 진시황이 왕위에 오른지 8년이 되는 때다. 이런 뜻입니다. 진시황은 B.C 247년에 왕위에 오르거든요. 그래서 진왕 정 팔년이 B.C 239년이 되고요.
사월 초파일이라는 것은 우리가 좀 기억을 해야 되는데요. 사실 불교하고 사월 초파일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어요. 우리나라에서 석가모니가 태어난 날을 사월 초파일이라고 하는 것은 이것은 완전히 해모수가 초강한 4월 초파일의 그 성스러운 날짜를 빌려다가 쓰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 불교도 대회에서는 부처님 오신 날을 5월 15일 날인가 잡고 있어요. 국제회의에서 그렇게 결정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4월 초파일로 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이것은 해모수 단군께서 오신 날을 우리 역사 속에서 성스러운 날로 내려오니까 거기에다가 꿰맞춰가지고 부처님 오신 날로 지금 기리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자, 여기까지는 고구려 국통의 뿌리가 북부여의 해모수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얘기하고 있어요. 북한 사람들도 삼국사기에는 고구려의 건국이 B.C 37년으로 돼있으니까요. 고구려가 이렇게 늦지 않다 해서 자기들 멋대로 250년을 플러스해서 계산하고 있어요.
그런데 너무 그건 좀 올려 잡았죠. B.C 239년인데. 북한은 실제로 그렇게 교과서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250년인가를 37에다가 플러스해가지고 그러면 287이 되나요? 그때가 고구려가 건국됐다. 그런데 그건 근거가 없어요. 그냥. 좀 올려 잡는 것은 과하지만 무조건 250을 더한다는 것은 역사하는 사람들로서는 좀 지나친 거죠. 어쨌든 조금 올려 잡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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