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연구소 유감
1) 일본 연구소 란?
전국의 국립대학을 비롯하여 일반 대학들도 학교 내에 일본 연구소를 부설로 두고 있는 곳이 많이 있다. 이들은 일본을 연구한다고 하면서 재직 시 일본에 교환교수로 갔다 온 사람들을 위주로 하여 구성이 되어있다.
그런데 이들 연구소 소장이나 원장들을 비롯하여 연구원 대부분이 일본을 자주 들락거리며 특강을 비롯하여 대학별 친선을 도모한다고 하면서 일본으로부터 자금지원을 받고 있는데 이것이 본인들도 모르는 사이에 친일, 매국노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정년퇴임 하여 별도로 할 일이 없을 때는 전에 교환교수로 갔던 대학에 연락을 하여 일본에서 자금을 지원받고(구걸하듯이 하면서) 연구소를 만들게 되면 무슨 큰 빚을 진 것처럼 마음에 부담을 가지게 되고 결국 이 부담이 바탕이 되어, 그 뒤 수시로 일본에서 초청을 받게 되는데 이때 비행기 왕복표에다 특강명목으로 주는 금액이 국내 대학에 비하여 큰 돈 이므로 마음이 동하게 되어있다.
그러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선진화 되어있는 일본을 동경하게 되고 일본 교수들과 우익세력들이 베푸는 식사나 술자리에 같이 어울리게 된다. 이렇게 하여 일본 사람들이 하는 말에 저절로 동의하게 되고 같은 입장이 되는 것처럼 느껴지게 되면서 독도가 마치 일본 땅인 것처럼 인식하게 되고 뿐만 아니라 일본 후원자(스폰서)들이 건내 주는 만주, 몽고의 자료들과 기타 일본 학자들의 입장에서만 보는 역사 자료들을 모으게 되고 이것을 열 번만 모으면 대단한 논문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본인은 한두번만 방문하여도 충분할 만큼 일본사람(교수 후원자)들이 수차례 건내준 자료(사료)들만 가지고 책을 쓰고 역사를 기록하게 되는데 이러한 것들이 바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친일, 식민사관에 젖어버리게 되며, 이것이 일본 사람들의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마치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 같은 신세가 되는 것이다. 친일, 식민사관 이라는 것이 무슨 거창한 계기가 있어서 라기 보다 본인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물들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중략 -일부내용 사실확인시까지 잠시 내립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서울대학을 비롯하여 전국에 산재해있는 국립대학 거의 모두가 일본 연구소가 있는데 실제로 일본 연구를 얼마나 깊이 있게 하는지 다시 한번 되돌아보아야 하며 돈 몇 푼에 우리 역사를 외곡하고 우리 민족과 땅(독도 등)을 팔고 있지는 않는지 스스로 살펴보는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2) 이제는 일제 식민사학의 잔재를 청산하자
우리민족의 훌륭했던 역사를 왜곡, 날조, 축소시킨 장본인들은 일제때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조선사편수회의 일이었지만 이들 일본학자들을 도와서 적극적 친일활동을 하며 우리역사 날조, 왜곡, 축소에 앞장섰던 사람들은 조선사편수회의 총무역할을 맡았던 이병도 박사였다.
그는 조선총독 “데라우찌”의 양자였고, 이완용과 같은 집안인 우봉 이씨였으며, 경성제국대학의 사환으로 시작하여 초대 경성제국대학이 학장이었던 “금서룡(이마니시류)”의 제자였다. “금서룡(이마니시류)”은 “단군은 신화다”라는 책을 쓸 정도로 단군에 관하여 부정 일변도였고, 우리민족역사 말살과 날조, 축소시키는데 가장 앞장 섰던 자이다.
이병도는 자식과 제자들에게 박사를 남발하였고, 제자로는 이기백 교수, 김철중 교수, 변태섭 박사 등 이었는데 이들은 전부 죽었으나, 이기백 교수의 제자인 이기동 교수(동국대학교)는 식민사관, 반도사관에 충실한 이병도파의 선두주자로서 현 학계에 제일 많이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들은 새로운 시각의 사료조사는 싫어하고 이병도의 식민사관만을 신봉하며 똑같은 뜻을 말만 바꾸어서 써 먹는 등 논문장난을 많이 하는 공부하지 않고 연구하지 않는 엉터리 학자 중의 하나이다. 이들이 나이 많은 것을 핑계로 식민사학자들인 저희들끼리 서로 똘똘뭉쳐 만들어 놓은 엉터리 국사책을 국민들에게 교육시켜서 우리 국민들 대부분의 정신을 혼란하게 하고, 썩게 만드는 장본인들이다.
(3) 역사교과서는 개정되어야 한다
세계 최초 최고의 선진문화 민족이었던 우리 선조들!
구리족, 구려족, 동이족이라고 불리워졌고 한민족이라고 하였던 우리 조상들. 홍익인간 이화세계가 생활 그 자체였으며, 자신을 낮추며 겸손하던 옛날의 아름다운 풍습은 사라지고, 잘난 체하며 남의 흠이나 잘 찾아내고, 거들먹거리며 친척이나 이웃이 잘 되는 것을 아파하는 나쁜 습관은 일제 강점기 35년을 거치며 생겨난 것입니다.
차원 높은 문화 전수국인 우리 민족을 다스리고 길들이기 위해 역사를 거짓으로 만들고, 일제에 협조 할 수밖에 없도록 교묘한 수단과 방법으로 서로를 밀고하고 잡아들이도록 하여 친구, 친척들끼리 서로 불신하도록 하였고, 살아남기 위해 직장을 가질 수밖에 없고, 그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 고위직 또는 군수, 면장을 하면서도 일제에서 우리 민족을 구해 낸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스스로 일제에 아부하며 우리 민족을 괴롭힌 소수의 친일파들 이들에 관련된 것은 분명히 짚고 넘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우리민족 자존에 관한 것으로써, 애국자와 매국노를 분명히 구분하자는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미래 국민의 마음속에 국가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싹트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1975년 박정희 전 대통령도 시도하였다가 결국 실패했었던 역사교과서 개정문제, 식민사관에 의해 만들어진 날조되고 왜곡된 우리민족의 상고역사를 시급히 복원하여야합니다. 일제는 일본학자들과 친일 조선학자들을 총동원하여 우리민족을 다스리기 위한 수단으로 엉터리 상고사(조선사편수회가 만듦)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을 배웠던 우리 국민들은 조상을 부끄럽게 여기고, 매사를 반대를 위한 비판만 일삼는 정치인, 교수, 사회지도자 등이 많이 생기게 되어 국가발전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방해만 되었습니다.
또한
친일 식민사학자들 중 이병도, 신석호 등의 동료들과 자손, 제자들 약80여명의 학자들이 쓴 엉터리 논문을, 역사교과서 만들 때마다 막대한 국가예산으로 논문 사용료를 지불하고 있습니다.국민들의 정신을 썩게 만들뿐만 아니라 자신감과 자긍심을 없애는 치명적인 독, 식민사관(실증사학) 역사교과서 개정문제는 무엇보다도 우선 사업으로 정해져야 할 것입니다.
(참고자료 : 이기동 李基東)
-> 출처 : 동아일보 인물정보
생년월일 1943/10/03
본관 고성 (固城)
사무실전화 02-2260-3177 팩스:02-2265-3143
(학력)
1955 - 1961 경기고등학교
1961 - 1965 서울대학교 사학과
(경력)
1968 - 1972 숭문고등학교 강사
1974 - 1976 국민대학교 강사
1984/10 - (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백과사전편찬위원회 자문위원
1987/12 - (현) 진단학회 평의원
1988/02 - (현) 한국사 시민강좌 편집위원
1991/01 - (현) 국사편찬위원회 신편한국사 편찬위원
1993/04 - 1995/03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코리어져널 편집자문위원
(현) 동국대학교 문과대학 인문학부 사학전공 교수
1997/10 - (현) 교육부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1997/12 - 1999/02 동국대학교 박물관 관장
1998/03 - 1999 한일역사연구촉진 공동위원회 위원
1999/04 - (현) 문화관광부 문화재위원회 제6분과(매장문화재) 위원
(교우)
교우 민현구 (閔賢九) [ 생일 : 1941/07/19 ] 고려대 문과대 한국사학과 교수
교우 한영국 (韓永國) [ 생일 : 1937/11/08 ] 인하대 문과대 사학과 교수
교우 이태진 (李泰鎭) [ 생일 : 1943/10/14 ] 서울대 인문대 국사학과 교수
교우 유영익 (柳永益) [ 생일 : 1936/04/09 ]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석좌교수
(상훈)
1981 월봉저작상
2000 3·1문화상 인문사회과학부문
(원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