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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에 처한 세계 100대 문화유적지

송화강 2019-09-28 (토) 21:19 5년전 1954  

위험에 처한 세계 100대 문화유적지

2007.08.29 14:24

이 아름다운 곳이 사라진다고 “오, No”
역사와 대화, 올 해외여행지로 ‘추천’
 
    
유장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영원히 빛을 잃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보석의 제왕 자리를 꿰찬 다이아몬드.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구의 다이아몬드’들은 보석처럼 영원하지 않다. 인류의 문화유산은 빗물과 바람에 의해 닳고, 산업화의 여파로 훼손되며, 정치적 분쟁으로 한순간 재로 변하고 만다.

 

‘2008 위험에 처한 세계 100대 문화유적지’. 미국 뉴욕에 기반을 두고 있는 세계기념물기금(World Monuments Fund·이하 WMF)이 격년으로 발표하는 이 목록은 곧 생명을 다할지도 모를 인류의 보석들을 열거한다.

 

모처럼 해외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몇 년 후에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을지 모를 위험 문화유적지를 먼저 찾아보는 것이 어떨까. 단순히 관광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보전을 위해 우리가 보탤 수 있는 작은 힘이라도 고민해보자. WMF 위험목록의 궁극적인 목적은 문화유산의 가치를 다시금 환기시켜 보전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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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히말라야와 티베트 고원 사이에 자리한 옛 히말라야 왕국 라다크의 전경 

 

■ [ASIA]

인도 라다크 레(L´eh Old Town·15~17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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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디셀러 ‘오래된 미래’(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지음)를 읽은 사람이라면 라다크라는 지명이 낯익을 것이다. 서부 히말라야와 티베트 고원의 경계에 자리잡은 옛 히말라야 왕국 라다크는 ‘작은 티베트’라고 불릴 정도로 티베트 문화의 색채가 짙은 곳이다. 주민 대부분은 티베트계 라마교도. 라다크는 오랜 기간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지역이었다가, 1949년 휴전으로 인도 잠무카슈미르주에 속하게 됐다.

 

라다크의 수도 레(L´eh)는 티베트의 독특하고도 평온한 문화를 경험하기 위한 배낭여행객들로 매년 붐비는 곳이다. 하지만 1960년대 인도 정부의 진출로 문화유적지들이 훼손되기 시작했으며, 현재는 지구온난화에 따른 강우량 증가로 훼손에 가속도가 붙은 상황이다. 2004년 조사에서 189개의 문화유적지 중 55%가 보수를 해야 하는 상황인 것으로 파악됐다.

 

- 인도 델리에서 레 공항까지 연결하는 항공편이 운행되고 있다. 인도 전역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스리나가르에서 택시를 빌리거나 버스를 타고 들어간다.


인도 스리나가르(Srinagar Heritage Zone·14~19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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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북서부 잠무카슈미르주의 중심 도시로, 중앙을 관통하는 젤룸강과 도처에 산재한 운하와 수로, 달(Dal) 호수 등 천혜의 절경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곳이다. 16세기 무굴제국의 왕들이 건설한 건축물과 정원뿐 아니라 이슬람 및 불교 사원, 영국 식민지 시절에 건설된 대학과 병원 등이 혼재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하지만 관광지로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전근대 도시로서의 특색이 사라지고 있다. 파키스탄과의 영토 분쟁이 여전하다는 점도 무시 못할 위험요소다.

 

- 델리에서 스리나가르까지 가는 항공편이 운행되고 있다.


중국 닝샤성 수미산 석굴(Xumishan Grottoes·4~10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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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북서부 닝샤성 남쪽 구위안 지역에 자리한 수미산 석굴(石窟)은 5개의 산봉우리에 130여 개가 산재한다. 4세기부터 약 600년 동안 건축된 것으로 보이며 각각의 석굴에는 불상, 벽화 등 수백 점의 불교문화재가 있어 고대중국의 주요 불교유적지로 평가된다.

 

이 지역에서 가장 큰 19m 높이의 미륵불상을 보호하던 탑이 무너져 비바람에 노출된 상태다. 그뿐 아니라 수미산 석굴의 문화재들은 모래에 의한 침식, 지진 그리고 인근의 도로 건설현장에서 전해오는 진동 등에 의해 훼손 위협을 받고 있다.

 

- 베이징, 상하이, 시안, 청두 등에서는 닝샤성의 성도 인촨까지 가는 항공편이 매일 운행된다. 인촨에서 수미산 석굴까지는 버스로 이동.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코타게데 역사지구(Kotagede Heritage District·16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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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자바섬 족자카르타주에 자리한 코타게데 역사지구는 16세기 이슬람 왕조인 마타람 왕국의 수도로 궁전, 사원, 광장 등을 갖춘 곳이었다. 오늘날에는 사원과 시장, 그리고 전통 양식으로 지은 가옥이 상당수 남아 있다.

 

은세공 산업이 발달해 ‘족자 실버’라고 불리는 은세공업자들의 기예를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이 찾는 코타게데는 2005년 5월 일어난 지진으로 지금도 고통받고 있다. 마을 복원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정부 지원은 유적의 보전보다 새 건물을 짓는 데 집중된 상황이다.

 

- 자카르타에서 족자카르타까지 550km 떨어져 있으며, 비행기로 1시간 걸린다. 족자카르타에서 남동쪽으로 5km를 벗어나면 코타게데에 도착한다.


스리랑카 캔디(Kandy Sacred City·1470~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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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캔디의 달라다말리가와 사원 입구. 


높은 산들과 마하웰리강으로 둘러싸인 캔디는 수도 콜롬보에 이은 스리랑카 제2의 도시다. 캔디는 1470년 수도로 지정되면서 발전하기 시작해 많은 왕족과 귀족들의 거주지가 세워졌으며, 1815년 영국의 식민지가 될 때까지 스리랑카 수도로서 지위를 지켰다. 현재 캔디는 모두 486개의 역사적 건축물을 보유하고 있다.

 

캔디는 매년 8월 열리는 ‘페라헤라 축제’로 유명하다. 전 세계에서 수많은 관광객이 스리랑카의 국보 1호 ‘달라다말리가와’ 사원 근처에서 15일 동안 성대하게 열리는 축제를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축제 기간에는 각종 보석으로 장식한 코끼리들이 시가행진을 벌이고, 수백 명의 댄서들이 스리랑카 전통 춤을 선보인다.

 

캔디는 남쪽을 빼고는 모두 마하웰리강으로 둘러싸여 있다. 따라서 남쪽으로 가려는 교통이 모조리 캔디로 몰린다. 이로 인한 교통혼잡과 환경오염, 최근 진행되고 있는 도시화로 캔디의 역사 유적지들이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다.

 

- 한국과 스리랑카를 잇는 직항편은 없다. 보통은 싱가포르를 경유해 스리랑카 콜롬보로 들어간다. 콜롬보에서 캔디까지는 약 10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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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캔디의 야경. 


 

■ [EUROPE]

아일랜드 타라 언덕(Tara Hill·기원전 3000년~1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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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에서 50km 떨어진 타라 언덕은 아일랜드 문화의 근원지이자, 북유럽 고대문화의 근원지로 간주되는 역사적 장소다. 언덕 곳곳에 고대 봉토분(封土墳)이 산재하며, 6세기부터 600년 동안 아일랜드 왕들은 이곳 타라 언덕에서 대관식을 가졌다고 한다.

 

1641년 영국 개신교에 반대하는 아일랜드 가톨릭 교도의 저항도 이곳 타라 언덕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현재 아일랜드 정부가 추진 중인 고속도로 건설사업이 타라 언덕을 관통하면서 환경 훼손이 우려되고 있다. 타라 언덕에는 아직 발굴되지 않은 유물이 많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러한 잠재적 유적지까지 해칠 가능성이 있어 고속도로 건설사업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 더블린까지는 직항편이 없으며, 프랑크푸르트 파리 암스테르담 등 유럽도시를 경유한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후안미로미술관(Joan Miro Foundation·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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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후안미로미술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 황영조 선수가 마라톤 금메달을 딴 현장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몬주익 공원은 몬주익 성, 야외극장인 그렉, 스페인 유명 건축물들의 모형을 볼 수 있는 스페인 마을 등 볼거리가 풍부한 바르셀로나의 대표 관광지다. 초현실주의의 거장 후안 미로가 사재를 털어 세운 후안미로미술관도 몬주익 공원에 있다.

 

후안 미로의 친구인 스페인 건축가 호세 루이스 세르트가 1975년 완공한 이 미술관은 후기 근대건축운동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자연채광이 실내 전시공간까지 충분히 들어오도록 설계된 구조가 특색으로 꼽힌다. 1만여 점에 이르는 후안 미로의 작품이 전시돼 있을 뿐 아니라, 현대미술가들을 위한 전시공간으로도 쓰이고 있다. 하지만 최근 지붕에 빗물이 새고 유리창에 금이 가는 등 여러 문제가 생겨 가장 젊은 건축물로 위험목록에 오르게 됐다.

 

- 바르셀로나 지하철 파랄레 역에서 푸니쿨라(케이블카)를 타고 ‘푸니쿨라 파르크 데 몬주익’ 역에서 하차한다. 도보로 1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스카이라인(St. Peterburg Historic Skyline·1703~195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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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그리보예도바 운하. 


시인 알렉산드르 푸슈킨이 ‘유럽을 향해 열린 창’이라고 칭송한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65개의 강, 100개 이상의 섬, 400개가 넘는 다리 등으로 ‘북유럽의 베니스’라 불리는 아름다운 곳이다. 1703년 표트르 대제가 거대한 도시화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재능 있는 유럽 건축가들이 이 도시로 초대됐다. 그 덕에 18~19세기 유럽 건축가들의 실험장소가 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바로크 및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축물들을 보유하게 됐다. 1990년에는 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그러나 러시아 최대 국영가스회사 가스프롬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300m의 고층빌딩을 세우려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어, 역사적이고 고풍스러운 도시 미관이 훼손될 위험에 처했다. 게다가 이 고층 빌딩이 세워지면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지위도 잃게 될지 모른다.

 

- 대한항공이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직항편을 주 2회 운행한다.


이탈리아 로마 팔라티노 언덕 파르네세 님파에움(Farnese Nymphaeum, Farnese Gardens, Palatine Hill·1565~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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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과 가까운 팔라티노 언덕은 16세기에 로마의 권력자와 부자들을 위한 고급주택가로 개발됐다. 이 언덕에 있는 조각상, 분수, 정원 등의 문화유적지 중 상당수가 르네상스 시대에 파괴되거나 발굴돼 다른 지역으로 옮겨졌지만, 여전히 많은 유적이 남아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분수대, 벽화, 조각상 등을 간직하고 있는 파르네세 님파에움(Farnese Nymphaeum)이다. 그러나 2005년 11월 폭우로 테라스 일부가 붕괴됐으며, 인접한 두 그루의 소나무 뿌리가 건물에 손상을 주고 있다. 벽화 또한 염분으로 흐릿해져가고 있다.

 

- 로마 지하철 ‘치르코 맛시모’역에서 하차.


터키 하산케이프(Hasankeyf·선사시대~14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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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동부의 하산케이프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원지 티그리스강 유역에 자리한 고대유적 마을이다. 하산케이프는 아나톨리아 고원과 메소포타미아 사이에서 오랫동안 문화적 경계선 구실을 해왔다. 14세기 몽골제국의 침략으로 쇠퇴의 길로 들어섰으며, 오토만 제국의 일부가 됐다. 현재는 터키에 속해 있다.

 

이런 복잡한 역사적 배경으로 하산케이프에는 고대 수메르와 로마, 오토만 제국의 고고학 유산이 가득하다. 아직 발굴되지 않은 유적도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터키 정부가 티그리스강 상류에 일리수 댐을 건설하기로 결정하면서 하산케이프는 2013년 완전히 수몰될 위기에 처했다. 현재 댐 건설에 반대하며 하산케이프를 살리려는 국제 구명운동이 개시된 상태다.

 

- 터키의 반시(市)에서 버스로 5시간 30분.

 
 

■ [AFRICA]

이집트 룩소르 나일강 서안(West Bank of the Nile·기원전 1540~기원전 1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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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강 서안의 이집트 고대 유적지. 

 
룩소르의 나일강 서안에는 인류 문명사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만한 고고학적 유적지가 산재한다. 면적이 9㎢에 이르는 왕의 골짜기, 람세스 2세의 부인 네페르타리 여왕이 잠든 왕비의 골짜기, 멤논의 거상, 왕묘 축조 노동자의 취락지구인 다이르 알마디나….

 

그러나 급속히 늘고 있는 관광인구와 그에 따른 환경오염, 개발 압력, 인근 지역 관개사업에 따른 지하수량의 증가 등으로 많은 유적지가 위험에 처해 있다. 특히 관개사업은 고대 건축물의 기반을 약화시켜 가장 큰 위협요소로 지목된다.

 

- 이집트 카이로에서 룩소르까지 비행기로 1시간, 버스로 10시간 걸린다.


모로코 페스 알아즈하르 사원(Al-Azhar Mosque·1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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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의 수도 라바트에서 동쪽으로 약 200km 떨어진 페스는 8세기경 이드리스 왕조의 수도였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을 만큼 이슬람 중세도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페스의 중심에 자리한 알아즈하르 사원은 알모하드 왕조의 간결한 건축양식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알모하드 왕조는 1130년부터 1269년까지 북아프리카와 스페인을 통치했다. 알아즈하르 사원에는 매년 참배객들이 예배를 위해 찾아오는데, 지난해 건물 몇 채가 무너지면서 10여 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금도 여전히 많은 참배객이 몰려오는 가운데 보수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 아랍에미리트항공으로 아랍에미리트를 지나 모로코 카사블랑카로 들어간다. 카사블랑카에서 페스까지는 20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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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룩소르에 있는 여왕 하셉슈트 신전

 

 ■ [OCEANIA]

오스트레일리아 버럽반도 댐피어 석화(Dampier Rock Art Complex·기원전 1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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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양과 마주 보고 있는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의 댐피어 군도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석화(石畵) 유적지가 있다. 기원전 1만년부터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이 새겨놓은 것으로 보이며, 그 수가 수십만에서 100만 개로 추정된다.

 

댐피어 군도의 일부인 버럽(Burrup)반도의 석화들은 오스트레일리아의 내셔널트러스트 단체에 의해 위험에 처한 문화유산지로 지정됐다. 많은 양의 천연가스가 매장된 버럽반도 앞바다에서 개발사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의 주도 퍼스까지는 동남아를 경유하는 항공편으로 갈 수 있다. 시드니에서 항공편으로 4시간, 애들레이드에서 버스로 11시간.

 

 

■ [NORTH AMERICA]

미국 뉴욕주 파빌리언(New York State Pavilion·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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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가장 넓은 지역이자 가장 많은 인종이 사는 퀸스의 또 하나의 볼거리로, 플러싱 메도 코로나 공원에 자리한다.

 

이 공원이 회장으로 쓰인 1964년 뉴욕 세계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건물로, 모더니즘 건축을 대표하는 필립 존슨이 설계했으며 앤디 워홀, 로버트 라우션버그 등 당대 뉴욕 미술을 대표하는 유명 화가가 대거 참여해 외관을 꾸몄다.

 

건설된 지 40년이 지난 지금 무척 낡은 상태로 방치돼 있다. 건물 일부는 붕괴 위험이 거론될 정도다.


- 뉴욕 맨해튼에서 롱아일랜드 고속도로를 타고 퀸스로 들어서자마자 고속도로를 빠져나온다. 주소는 11101 Corona Ave, Flushing, NY.


미국 플로리다 서던대학 캠퍼스(Florida Southern Historic Campus·1938~1950년대)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을 설계한 천재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지은 캠퍼스로,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 중 하나로 평가된다. 라이트는 “독특한 미국 대학을 만들겠다”며 서던대학 캠퍼스 프로젝트에 뛰어들었고, 석회석과 모래를 시멘트에 섞어 만드는 이른바 텍스타일 블록(Textile Block) 공법을 도입했다.

 

라이트의 건축 철학을 실현하기 위해 서던대학은 20년 이상 공사비용 마련에 심혈을 기울여야 했다. 그러나 현재 서던대학 캠퍼스는 건물에 스며든 빗물로 텍스타일 블록이 떨어져나가는 등 붕괴 위험을 맞고 있다.

 

- 플로리다의 관문은 마이애미국제공항이며, 그레이하운드로는 뉴욕에서 31시간, 로스앤젤레스에서 59시간 걸린다. 뉴욕과 마이애미를 연결하는 암트랙(철도)이 매일 운행된다.


미국 66번 도로(Historic Route 66·1926~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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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 주인공이 고향을 버리고 서부로 향하던 길인 ‘루트 66’의 실제 모델이자, 미국인들에게 ‘미국의 실크로드’라 불리는 국도.

 

1926년 처음 공사가 시작된 이 국도는 시카고에서 시작돼 로스앤젤레스에서 끝나는, 장장 2200마일에 이르는 긴 도로다. 대공황 때 미국인들은 이 길을 따라 서부로 희망을 찾아 떠났고,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철도와 함께 미국 대륙을 잇는 유일한 동맥으로서 기능했다. 그러나 많은 고속도로가 건설되고 항공이 발달하면서 현재는 지도나 도로표지판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잊힌’ 길이 됐다.

 

현재 미국 정부 차원에서 루트 66의 복원사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의회의 추가 승인을 얻지 못할 경우 2009년 9월 사업이 종료된다.

 

- 시카고와 세인트루이스를 잇는 고속도로 I-55가 루트 66과 나란히 달린다. 털사와 오클라호마시티 사이는 루트 66의 원형이 보존된 가장 긴 구간이다.


캐나다 유콘 허셜섬(Herschel Island·1890~192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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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유콘주(州) 북부 해안의 보퍼트해(海) 가장자리에 자리한 허셜섬은 1000년 전 이누이트족이 처음 거주했다. 섬의 최장거리가 14.5km밖에 안 될 정도로 작으며, 육지에서 2km 떨어져 있다. 보퍼트해는 북극고래의 안식처로, 고래기름을 노린 유럽인과 미국인들이 19세기부터 이 섬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이후 1920년까지 허셜섬에는 고래잡이와 관련된 독특한 건축물이 들어섰다. 최근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해안선이 침식되고 영구동토층이 녹아내리는 등 해수면이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다. 지난 100년 동안 해수면이 10~20cm 높아진 것으로 추정된다. 유빙도 점차 사라지고 있으며, 여름과 가을철 태풍 발생 횟수 또한 크게 증가했다.

 

- 밴쿠버에서 유콘주의 주도 화이트호스까지 가는 항공편이 매일 2회 운행된다. 소요시간은 2시간 30분.

 

■ [LATIN AMERICA]

페루 리마 구시가지(Lima Historic City Center·17~19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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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5년 스페인의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에 의해 ‘왕들의 도시’로 건설된 페루의 수도 리마는 스페인 식민지 시절의 유적들을 둘러볼 수 있는 곳이다.

 

리마는 19세기 들어 남미 각국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할 때까지 남미 스페인령 영토 전체의 주도로서 위상을 누렸다. 20세기 들어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리마는 식민지 시절의 유적을 간직한 구시가지와 새로 건설된 신시가지로 나뉜다.

 

구시가지에는 남미에서 가장 오래된 산마르코스대학을 비롯해 대통령궁, 남미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 등 18~19세기 건축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리마의 구시가지는 산업화, 도시화의 영향으로 갈수록 파괴되고 있다.

 

- 인천공항을 출발해 토론토를 경유, 리마에 도착하는 에어캐나다 항공편이 월·목·토요일 운행되고 있다.

 

페루 마추픽추(Machu Picchu Historic Sanctuary·15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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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2280m에 세워진 공중도시로 잉카 유적에 속한다. 잉카제국이 몰락한 뒤 200년 넘게 정복자에 맞서는 잉카 후손들의 보금자리로 기능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수록돼 있으며 최근 발표된 신(新) 7대 불가사의에도 포함됐다.

 

마추픽추를 위협하는 것은 다름 아닌 관광객이다. 1992년만 해도 연간 9000명에 그쳤던 관광객이 2006년에는 하루 4000명으로 크게 늘었다. 이들에 의한 건축물의 훼손, 자연생태계 파괴 등이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최근에는 위협 요소 한 가지가 더 생겼다. 3월 개통한 80m짜리 다리가 그것. 빌카노타강을 가로지르는 이 다리는 마추픽추와 인근의 마리 테레사 마을을 연결해준다. 환경보호론자들은 이 다리의 개통에 반대했지만, 마을 주민들은 관광수익 증대를 기대하고 있다.

 

-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국내선 항공편으로 쿠스코까지 이동하며, 쿠스코에서 마추픽추까지는 기차로 4시간 소요된다.


멕시코 베라크루즈 후아카 역사마을(Huaca Historic Neighborhood·1870~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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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의 스포츠유틸리티 차량의 브랜드로 익숙한 베라쿠르즈는 카리브해에 자리한 멕시코의 항구도시로 멕시코시티에서는 약 200마일 떨어져 있다. 아름다운 자연풍광뿐 아니라 해양스포츠가 발달해 휴양도시로 이름이 높다.

 

이 베라쿠르즈에 자리한 후아카 역사마을은 식민지 시대 이민자들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1870년부터 이민 노동자들에게 주거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설립되기 시작했으며, 여러 가정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복도와 파티오(스페인식 안뜰)를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후아카 역사마을은 현재 소멸 위험에 놓여 있다. 건물이 무척 노화한 상태지만 집주인들이 낡은 집을 수리할 만큼 넉넉한 형편이 못 된다. 게다가 부동산 투기 열풍까지 불어 식민지 시대 가옥들이 설 자리가 더욱 좁아지고 있다.   (끝)

 

 

주간동아/강지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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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거세는 인도인이 키웠다?

2007.08.28 13:23

신화에 나타나는 우리말과 타밀어의 유사성, 힌두교문화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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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탄강신화가 깃든 경북 경주시 탑동 나정. <경향신문> 

 

지난 10월 말 경부고속철도가 지나가는 경주시 내남면 덕천리 구간에서 신라 초대왕 박혁거세(BC69~AD 4)를 키웠던 진한 6촌장의 사로육촌 중 고허촌의 유적이 대량 발굴되면서 이들의 정체 규명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고구려의 시조 주몽은 알에서 태어나 왕궁에서 키워지다가 자력으로 만주지역에 고구려를 세우고, 가야의 시조 김수로왕은 알에서 태어난 지 반나절 만에 성인이 돼 보름 지나 왕위에 오른다. 하지만 모든 박씨의 시조인 박혁거세는 알에서 태어나 사로육촌의 6촌장 손에 13년간 키워지고 나서 신라의 초대왕으로 추대된다.

 

진한 6촌장 인도 타밀 출신 추정

 

필자는 가야 초대 왕비 허왕후 및 신라 제4대 석탈해왕의 설화 속에 언어적 유사성 및 해양교류 등을 추적한 결과, 이들이 인도 남부의 타밀 출신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박혁거세의 설화에 나오는 주요 명칭들이 당시 타밀어와 일치하는 것을 발견했다. 더구나 윷놀이와 제기 등 우리의 전통 민속놀이도 타밀어 명칭과 놀이 형태가 완전히 똑같다. 박혁거세의 대부 격인 6촌장이 타밀 출신이라 자신들의 언어와 풍습을 우리에게 그대로 소개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인도 남부 및 스리랑카 북부 출신으로 토론토에 거주하는 20여 만 명의 타밀인들 가운데 타밀인협회 및 여성단체 관계자, 힌두교성직자, 교수, 교사 등 전문가들을 직접 만나 취재하고 타밀어 사전 및 역사서 등을 참조하여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어낸 것이다.

 

무엇보다도 당시 타밀어에서 ‘자력이 아니라 타인의 도움으로 왕위에 오른 운 좋은 왕’ 또는 ‘행운을 가져다 주는 왕’을 지칭하여 ‘박히야거세(Pakkiyakose)’ 또는 ‘박히야거사이(Pakkiyakosai)’라고 불렀는데 이를 우리말로 표현한 것이 바로 ‘박혁거세(朴赫居世)’이다. 6촌장들이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박처럼 둥근 알에서 태어났다”하여 성은 ‘박(朴)’, “세상을 밝게 한다”하여 이름은 ‘혁거세(赫居世)’라는 한자어 작명을 한 것이다. 인도가 원산지인 ‘박’은 당시 타밀어와 우리말이 아주 똑같으며 현재 타밀어로는 수라이카이(Suraikai)라고 불리고 있다.

 

또 박혁거세에게 붙인 ‘왕’의 명칭 거서간(居西干)도 당시 타밀어 ‘거사간(kosagan)’과 그 발음과 뜻이 완전히 일치한다. 아울러 6촌장들의 이름 또한 당시 타밀인들의 이름과 유사하다. 박혁거세 알을 처음으로 발견한 돌산 고허촌의 소벌도리는 타밀어로 ‘훌륭한 지도자(Good Leader)’를 뜻하는 소벌두라이(Sobolthurai)와 거의 같다. 알천 양산촌의 알평은 아리야판(Aryappan)과, 자산 진지촌의 지백호는 치빠이코(Chippaiko)와, 무산 대수촌의 구례마는 구레마(Kurema)와, 금산 가리촌의 지타는 치타(Cheetha)와, 명활산 고야촌의 호진은 호친(Hochin)과 각각 일치한다.

 

이들의 출신에 대해 학계에선 “이곳(서라벌)에 오래 전부터 조선의 유민들이 내려와 여섯 마을을 형성하고 있었다”고 쓰여 있는 여러 역사서의 내용과 유물 등을 분석하여 박혁거세 및 6촌장 모두를 북방유목민출신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박혁거세와 6촌 주민들이 북방 출신이라고 하더라도 역사서에 “하늘에서 내려온 신성한 존재”라고만 전해오는 6촌장 만큼은 허왕후나 석탈해와 마찬가지로 당시 막강한 해상력으로 아시아 전체를 누비고 다니던 인도의 타밀 출신으로 추정된다.

 

둘째, 박혁거세의 탄생지 근처에 있는 우물 ‘나정’은 타밀어로 “파헤친 도랑이나 이랑”을 뜻하는 ‘나중(nazung)’과 거의 일치한다. 타밀어의 나주쿠(nazukku)는 “땅을 파헤쳐 이랑이나 도랑을 만들다”(=make a shallow furrow)라는 뜻의 능동형 동사인데 그 수동형동사 ‘나중구(nazungku)’는 ‘이랑이나 도랑이 만들어지다’ (=be ploughed with shallow furrows)라는 뜻이다. 여기서 “파헤친 도랑이나 이랑”이라는 뜻의 명사 ‘나중(nazung)’이 바로 박혁거세의 우물 ‘나정’으로 변이된 것으로 보인다.

 

2005년 8월 문화재청은 깊은 도랑과 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인, 박혁거세의 탄강전설이 깃든 경주 시내 우물 나정을 발굴한 성과를 공개하는 현장 설명회를 가졌다. 발굴팀은 현장 조사에서 확인된 나정의 정중앙 8각형 건물지(한 변 8m, 지름 약 20m) 주변에서 이 8각형 건물지보다 앞서 축조되었음이 분명한 도랑, 즉 구거 같은 대형 구상 유적을 확인했다. 이로써 박혁거세가 신화상의 인물이 아니라 실제 역사상 존재했던 인물로 자리매김된 것이라고 문화재청측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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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공화국의 날’ 에 수도 뉴델리에서 낙타를 타고 퍼레이드를 벌이는 병사들. <경향신문> 

 

알영 부인 이름도 타밀이름과 유사

 

셋째, 박혁거세의 또 다른 이름인 ‘불구내’는 현재 타밀 나두주(州) 땅에 있던 당시 타밀인들의 촐라 왕국 바닷가 마을 ‘부르구나이(Purugunai)’와 거의 일치한다. 필자는 신라 4대 왕 석탈해의 고향이 동서양 무역으로 크게 흥했던 고대 국제도시 나가파티남(Nagapattinam)이라고 주장했는데 이 도시 남쪽으로 약 8㎞ 떨어진 곳에 부르구나이가 있다. 박혁거세의 후견인 6촌장들이 이곳을 출발, 동아시아를 향해 떠났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자신들의 고향 이름을 박혁거세의 별명으로 붙여 막강한 영향력의 흔적을 남긴 것으로 보인다. 부르구나이는 현재 벨란간니(Velankanni)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가톨릭 교회 ‘안네 벨란간니(Annai Velankanni)’가 들어서서 명소가 됐다.

 

넷째, 고구려의 주몽이나 가야의 김수로왕과 마찬가지로 박혁거세도 알에서 태어나지만 혁거세의 알이 박에 견주어졌다는 점이 다르다. 박은 우리말과 당시 타밀어가 그 발음과 뜻에서 똑같다. 박은 현대 타밀어로는 수라이라이(Suraikai)라고 불린다. 박은 인도나 아프리카 등 열대지방에서만 자라는 식물이라 인도에서 건너온 6촌장들이 자신들의 일상생활 필수품 중 하나인 박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타밀인들은 일년내내 무더운 날씨를 견디려고 박을 파낸 표주박 등으로 만든 물통을 허리에 차고 다니며 목을 축이곤 했다. 이 물통은 타밀어로 단니 쿠담(Thaneer Kudam)이라고 불리며 호리병박으로 만든 작은 물통은 수라이 쿠담(Surai Kudam), 호박으로 만든 큰 물통은 푸사니 쿠담(Pusani Kudam)이라고 칭한다.

 

다섯째, 신라 이전의 나라 이름인 ‘서나벌’은 당시 산스크리트어 및 고대 타밀어로 황금을 뜻하는 ‘서나(Sona)’와, 벌판(field)을 의미하는 ‘벌’ 또는 ‘펄(Pol)’이 합쳐져 황금밭(Gold Field)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우리말에서 ‘벌’의 옛말이나 거센말은 ‘펄’인데 고대 타밀어와 마찬가지로 “매우 넓고 평평한 땅”을 의미한다. 아울러 ‘서라벌’도 ‘아름다운(nice)’을 뜻하는 ‘서라(Sora)’가 ‘벌(Pol)’과 합쳐져 ‘아름다운 들판’을 뜻해 새 나라의 이름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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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거세가 태어났다는 삼국사기 기록을 입증하는 기원전후의 우물지. 

 

민속놀이 명칭도 거의 비슷

 

여섯째, 박혁거세의 비 알영(閼英·BC 53 ~?)부인은 아리영이라고도 불리는 데 타밀 여성이름 아리얌(Ariyam)과 거의 일치한다. 아리얌은 아리야말라(Ariyamala)의 줄인 이름으로 기원전 타밀 왕국역사에 나오는 캇타바라얀(Kaththabarayan)왕의 부인 이름인 데 이를 신라 초대 왕비 이름으로 원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 계룡의 왼쪽 옆구리에서 태어난 알영부인이 얼굴은 무척 아름다웠지만 입술이 마치 닭의 부리와 같이 생겼다는 내용도 인도 힌두교 신화에서 지혜와 총명의 여신(Goddess of Learning and Wisdom) 사라스와티(Saraswati)가 백조(swan)의 부리를 갖고 태어났다는 설화내용과 거의 일치한다. 결국 알영부인은 용모와 인품이 뛰어나 백성들에게 박혁거세와 함께 이성(二聖)이라고 불릴 정도로 추앙받았다는 것은 힌두교를 믿는 인도 타밀인들이 사라스와티를 숭배하는 것을 연상시킨다.

 

힌두교와 관련된 것들이 우리 역사서에 등장하는 것은 전혀 낯설지가 않다. 신라의 대학자 최치원의 ‘석리정전’에서 “가야산신 정견모주는 곧 천신 이비가지에 감응한 바 되어 대가야왕 뇌질주일(惱窒朱日·이진아시왕의 별칭)과 금관국왕 뇌질청예(惱窒靑裔·김수로왕의 별칭) 두 사람을 낳았다”라고 되어 있는 데 이들 모두 힌두교와 관련 있다. 힌두교의 주요신 시바(Shiva), 부인 파르바티(Parvati), 두 아들 가네쉬(Ganesh)와 무루간(Murugan)을 각각 고대 타밀어로 ‘이비가지(Ibigaji)’ ‘정견(Chongyon)’ ‘뇌질주일(Noejil Juil)’ ‘뇌질청예(Nojil Chongye)’라고 불렀다. 이 구절은 조선 중종 25년(1530)에 펴낸 동국여지승람의 증보 개정판인 신증동국여지승람이 최치원의 ‘석리정전’에서 인용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일곱째, 박혁거세왕은 재임 17년(기원전 40년)에 알영부인을 대동, 6부를 순시하며 농사와 양잠을 권하고, 농토를 충분히 이용하도록 하였다(王巡撫六部, 妃<閼英>從焉. 勸督農桑, 以盡地利.)고 전하고 있다. 즉, 삼과 누에로부터 얻은 실로 길쌈해서 삼베옷과 비단옷 등을 해입었고 벼농사를 비롯한 곡식생산에 주력했다는 이야기다. 또 제3대 유리왕은 추석 때 길쌈놀이를 실시했다고 삼국사기는 전한다.

 

우리말의 비단, 삼, 길쌈, 벼, 풀 등은 고대 타밀어와 그 발음과 뜻이 완전히 일치한다. 경악할 정도로 너무나 똑같은 농경사회의 주요 명칭들이다. 뿐만 아니라 새해 첫날 우리가 즐기는 윷놀이, 제기놀이, 쥐불놀이, 팽이놀이 등 민속놀이도 당시 타밀어로 각각 ‘윷노리(Yuddh, Yuth Nori)’ ‘제기노리(Jegi Nori)’ ‘추불 노리(Chupul Nori)’ ‘ 팡이 노리(Pamgi Nori)’로 불리며 그 형태도 완전히 똑같다. ‘놀이’는 고대 타밀어로 ‘노리(Noori), 또는 노루(Nooru)’로 불렸으며 현재 타밀어로는 ‘빌햐야들(Vilaiyattu)’로 불린다. 타밀인들이 피부색만 다를 뿐이지 바로 이웃 사람으로 느껴진다.

 

고인돌 문화 인도에서도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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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에서 태어난 박혁거세의 설화가 실린 삼국유사. 


현대 타밀어에서도 우리말과 똑같은 말이 속속 포착되고 있다. “아빠(아빠), 암마(엄마), 안니(언니)” “난(나), 니(니)””니, 인거 바!(니, 이거 봐!)””니, 인거 와!(니, 이리 와!)””난, 우람(난, 우람하다)””난, 닝갈비다 우람(난, 니보다 우람하다)””난, 비루뿜(난, 빌다)””바나깜(반갑다)” 난, 서울꾸 완담(난, 서울로 왔다)””모땅(몽땅)””빨(이빨), 무크(코), 깐(눈깔), 코풀(배꼽), 궁디(궁덩이)”등 거의 똑같은 단어와 어구들이 적지 않다.

 

이는 박혁거세 부부의 대부격인 6촌장들이 인도 타밀의 것을 한반도에 소개한 것으로 분석된다. 물론 그 이전에 중국대륙을 통해 벼나 보리농사가 이미 도입됐다고 하더라도 농사 관련용어 및 민속놀이 등은 타밀출신들이 본격적으로 한반도에 전하는 바람에 아직까지도 우리말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다.

 

타밀인들이 한반도까지 도달했던 또 다른 증거는 박혁거세와 석탈해 등 신라 초기의 왕들의 난생설과 경주와 포항 등 신라지역에서 대거 발견되는 고인돌 등에서 일맥상통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고고학계의 원로인 한양대의 김병모 교수에 따르면 벼농사, 난생신화, 고인돌로 대표되는 거석문화 등의 지리적 분포가 인도-동남아시아-한반도 남동부 해안지역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인도 문화의 영향을 시사했다. 김교수는 또 “신라주민은 진한-신라 지역에는 선사시대부터 살면서 수많은 고인돌을 남겨 놓은 토착 농경인들, 기원전 3세기 중에 중국 진나라의 학정을 피해 이민온 사람들, 기원전 2세기에 이주해 온 고조선의 유민들, 그리고 고구려에게 멸망한 낙랑에서 내려온 사람 등으로 구성돼 있다”고 지적했는데 필자는 토착 농경인들을 이끌던 6촌장들이 타밀출신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이들이 경주에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는가?

 

인도 남부 해안지대의 타밀인들은 기원전 수세기부터 서쪽으론 로마제국까지, 동으로는 동남아시아와 중국까지 활발하게 진출하다가 대만 북쪽으로 흐르는 흑조 난류를 타고 북상, 급기야 한반도까지 도달한 것이다. 타밀인들은 사로 6촌 가운데 동해안과 접한 금산가리촌에 도착한 뒤 내륙으로 들어가 경주의 사로 6촌을 개척, 정착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타가 통치한 영일만 부근 금산가리촌은 현재 동해안과 접한 경주시 감포읍과 양남면, 양북면 등 3개 지역 모두를 포함했다.

 

또, 필자가 인도 타밀 출신으로 간주하는 신라 제4대왕 석탈해의 알이 담긴 궤짝도 동해를 표류하다가 동해안의 아진포에 당도하는데 이 곳이 지금의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아진포라고 석씨전국대종회가 밝히고 있어 이래 저래 금산가리촌은 당시 인도 타밀인들의 도래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번 경주 덕천리 유적 발굴작업에서 출토된 목관묘 11기와 청동기 항아리의 흔적이 남아 있는 무문토기, 그리고 매장된 사람의 지위가 높음을 알려주는 오리모양 토기 11개와 말과 호랑이 모양의 허리띠 고리 등이 당시 인도 타밀의 역사적 유물들과 비교, 추적해 정확하게 확인해야 할 것이다. 그럴 경우 6촌장들은 물론 박혁거세의 정체를 밝힐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신라 제3대 유리왕은 서기 32년 육촌을 육부로 개편하고 각 부에 성씨를 하사함으로써 6촌의 각 촌장들은 자동적으로 각 성의 시조가 된다. 소벌도리는 최(崔)씨의, 알평은 경주 이(李)씨의, 구례마는 손(孫)씨의, 지백호는 정(鄭)씨의, 지타는 배(裵)씨의, 호진은 설(薛)씨의 조상이 된다.

 

 

김정남〈타밀학회장·캐나다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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