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임검(壬儉)씨 시대(조선시대)
第十二章
환웅씨가 [75]壬儉씨를 낳았다. 때에 사해의 諸族이 천부의 이치를 강(講)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迷惑에 빠져, 세상이 고통스러웠다. 임검씨가
천하에 깊은 우려를 품고, 天雄의 道를 닦아, 계불의 의식을 행하여, 천부삼인을 이어받았다. 갈고, 심고, 누에치고, 칡 먹고, 그릇굽는 법을
가르치고, 交易하고, 결혼하고, 족보 만드는 제도를 공포하였다. 임검씨가 뿌리를 먹고, 이슬을 마시므로, 몸에는 털이 길게 나, 사해를 널리
돌아다니며, 제족을 차례로 방문하였다. 백년 사이 가지 않는 곳이 없었다. 천부를 照證하여 修信하고, 해혹복본(解惑復本) 할 것을 맹서하며,
符都 건설할 것을 약속하니, 이는 지역은 멀고 소식은 끊어져, 제족의 언어와 풍속이 점차 변하여 서로 다르게 되었기 때문에, 함께
협화(協和)하는 자리에서, 천부의 이치를 講하여 분명하게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것은 후일 會講의 실마리가 되니, 인사가 번거롭고 바빠,
강하지않으면 잊어버리기 때문이었다.
桓雄氏生壬儉氏하니 時에 四海諸族이 不講天符之理하고 自沒於迷惑之中하야 人世因苦라. 壬儉氏懷憂於天下하고 修天雄之道하며 行계불之儀하야 繼受天符三印이라.
敎耕稼蠶葛陶 之法하고 布交易稼 錄之制러라. 壬儉氏ㅣ啖根吸露하고 身生毛 하야 遍踏四海하야 歷訪諸族하니 百年之間에 無所不往이라. 照證天符修信하고
盟解惑復本之誓하며 定符都建設之約하니 此는 地遠信絶하야 諸族之言語風俗이 漸變相異故로 俗講天符地理於會同協和之 而使明之也라. 是爲後日會講之緖하니
人事煩忙하야 不講則忘失故也라.
[75] 인간들 중의 왕이란 말이며 한인 한웅 때 까지는 마고성에서 나온 천손족 중에서 왕이 나왔으나 이때 처음으로 인간들 중 왕이 나왔으니
이때야 비로서 천손족과 지손족의 완전한 결합이 이뤄졌다. 기록에서 보면 [단군 한배검께서는 조선 전체를 3 한(三韓, 三王)이 나눠 다스리고,
한배검 자신은 辰王인 辰韓으로써 馬韓과 변한(卞韓)을 거느리고 있었다. 이때 곰겨레(熊族)의 자손인 熊伯多란 사람을 馬韓으로 삼고 蚩尤의 후손
가운데 지혜와 슬기와 용기와 힘이 뛰어난 치두남(蚩頭男)을 卞韓으로 삼았다]라 하여 이들이 완전하게 융화가 되었음을 말한다.
第十三章
壬儉씨가 돌아와 符都를 건설할 땅을 택하였다. 즉 동북의 磁方이었다. 이는 2 와 6 이 交感하는 핵심지역이요, 4 와 8 이 相生하는 결과의
땅이었다. 밝은 산과 맑은 물이 만리에 뻗어 있고, 바다와 육지가 서로 통하여 십방으로 갈리어 나가니, 즉 9 와 1 의
끝과 시작이 다하지 않는 터전이었다. 삼근영초(三根靈草)와 오엽서실(五葉瑞實)과, 칠색보옥(七色寶玉)이 金剛의 심장부에 뿌리를 내려, 전 지역에
두루 가득하니, 이는 1 과 3 과 5 와 7 의 자삭(磁朔)의 精이 모여, 바야흐로 물체를 만드는 복된 땅이었다. 곧 태백산 밝은 땅의 정상에
天符壇을 짓고 사방에 보단을 설치 하였다. 堡壇의 사이에는 각각 세 겹의 도량길로 통하게 하였다. 도랑길의 사이는 천 리였으며, 도랑길의 좌우에
각각 관문을 설치하여 지키게 하였다. 이는 麻故本城에서 그 법을 취한 것이었다. 부도의 하부를 나눠 마을을 만들었다. 三海의 주위에 둥그렇게
못에 잠기었다. 사진(四津)과 사포(四浦)가 천 리 간격으로 연결되어, 동서로 줄을 지어 둘러쌌다. 津과 浦사이에 다시 6 부를 설치 하였다.
6 부에는 諸族이 살았다. 부도가 이미 이루어지니, 웅려(雄麗)하고 광명하여 사해를 총화하기에 충분하였으며, 제족의 生脈이었다.
壬儉氏ㅣ歸而擇符都建設之하니 卽東北之磁方也라. 此는 二六交感懷核之域이오 四八相生潔果之地라. 明山麗水ㅣ連선萬里하고 海陸通涉이 派達十方하니
卽九一終始不 之其也라. 三根靈草와 五葉瑞實과 七色寶玉이 托根於金剛之臟하야 遍滿於全域하니 此一三五七磁朔之精이 會方成物而順吉者也라.
乃築天符壇於太白明地之頭하고 設保壇於四方이라. 保壇之間에 各通三 道溝하니 其間이 千里也오 道溝左右에 各設守關하니 此取法於麻故之本城이라.
劃都坊於下部之休하고 圖涵澤於三海之周하니 四律四浦ㅣ連隔千里하야 環列於東西라. 律浦之間에 又設六部하니 此爲諸族之率居也라. 符都 成하니 雄麗光明하여
足爲四海之總和요 諸族之生脈
第十四章
이에 황궁씨 후예 6 만이 이주하여 지키고, 곧 나무를 베어 뗏목 8 만을 만들어서, 信符를 새겨, 天池 물에 흘려 보내, 사해의 제족을
초청하였다. 제족이 그 신부가 새겨진 뗏목을 얻어서 보고, 차례로 모여들어, 박달나무숲에 신시를 크게 열고, 수계정심하여, 天象을 살핀 후,
마고의 系譜를 닦아 그 족속(族屬)을 밝히고, 천부의 음에 준해 그 語文을 정리 하였다. 또 北辰과 七耀의 위치를 정하여 반석의 위에서 속죄의
희생물을 구워 전(奠)을 올리고, 모여서 노래하며 天雄의 樂을 연주하였다. 제족이 방장산(方丈山) 방호의 굴 (方壺之堀)에서 칠보의 옥을
채굴하여 천부를 새기고 그것을 方丈海印이라 하여 七難을 없애고 돌아갔다. 이로부터 매 10 년마다 반듯이 신시를 여니, 이에 語文이 같아지고,
천하가 하나로 되어, 인세가 太和하였다. 인하여 바닷가에 성황(城隍)을 지어 천부에게 전을 올리고, 제족으로 하여금 머물러, 집을 지어 살게
하니, 그 뒤 천년 사이에 성황이 전역에 널리 퍼졌다.
第十五章
또 예와 陽이 교차하는 중심지에 朝市를 설치하고, 팔택(八澤)에 海市를 열어, 매년 10 월에 朝祭를 행하니, 사해의 제족이 모두 지방 토산물을
바쳤다. 산악 제족은 사슴과 양을 바치고, 해양 제족은 물고기와 조개를 바쳐 송축하기를 [[76]고기와 양을 희생으로 / 조제에 공진하니, /
오미의 피를 신선하게 하여, 창생의 재앙을 그치게 하네]하였다. 이를 가리켜 朝鮮祭라 하였다. 이 때에 산악과 해양의 제족이 물고기와 肉고기를
많이 먹으니, 교역하는 물건이 거개 저린 어물과 조와 가죽류이기에 곧 희생제(犧牲祭)를 행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반성 하고, 공에 보답하게
하였다. [77]피에 손가락을 꽂아 생명을 성찰하고, 땅에 피를 부어 기른 공을 보답하니, 이는 물체가 대신 오미의 잘못을 보상하여, 재앙을
멎게하기를 원하는 것이었다. 즉 육친고충의 고백이었다. 언제나 歲祭 때에는 物貨가 폭주 하므로 사 진과 사 포에 해시를 크게 열고, 몸을
깨끗이하여, 地理를 거울 삼아, 교역의 법을 시행하여, 그 값과 분량을 정하며, 物性의 근본을 분별하여 이용하는 법을 밝혔다. 또 부도 팔택의
모양을 본떠서 뭇을 파고, 曲水 사이에서 보새(報塞)를 지내고, 會燕하여 濟物하는 儀式을 행하였다. 제족이 봉래산 원교봉 (圓嶠峯)에서
오서(五瑞)의 열매를 얻으니, 잣나무 열매였다. 봉래 海松이라 하여, 은혜롭게 五幸을 얻고 돌아갔다. 이로부터 사해가 산업이 일어나 교역이
왕성하게 되므로, 천하가 유족하였다.
[76] 고기(魚)와 양(羊) 합하면 선(鮮)이란 글자가 된다. 우리나라를 말하는 朝鮮 글에서
보면 朝란 해(日)와 달(月)의 밝음이 합하여 완성이 되는 것을 형상화 시킨 글자라 할 수
있다. 그래서 朝란 광명, 하늘(天)을 뜻하고 鮮이란 위에서 보듯이 제사를 말하는 것으로
합하면 천제(天祭)를 뜻하여 조선만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자격이 있는 것을 뜻한다.
[77] 마야나 잉카등의 고대문명에서는 이가 변질되어 인신공양의 제사가 된 것으로 추정.
第十六章
시(市)에 온 사람들은 영주(瀛州) 대여산(岱與山) 계곡에서 삼영근(三靈根)을 얻으니, 곧 인삼이었다. 그것을 영주 해삼이라 하였으며, 능히
삼덕(三德)을 보전하고 돌아갔다. 대개 인삼이 그 數格을 갖추어, 자삭방(磁朔方)에서 난 것은 반드시 장생하니 40 歲를 1 기로 휴먼하고,
13 기를 1 삭(朔)으로 축정(蓄精)하고, 4 삭을 경과하여 씨(子)를 맺어 化하니, 이러한 것은 부도의 지역이 아니고는 얻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방삭초(方朔草)라 하니, 세상에서 불사약이라 하는 것이 이것이다. 그 혹 작은 뿌리라도 부도의 지역에서 생산되는 것은 모두
영효(靈?)가 있으므로, 시(市)에 온 사람들은 반드시 그것을 구하였다. 대저 삼근영초(三根靈草)의 인삼과, 오엽서실(五葉瑞實)의 잣과,
칠색보옥(七色寶玉)의 부인은 진실로 불암삼역(不咸三域)의 특산이요, 사해제족(四海諸族)의 천혜(天惠)였다.
제 7 부 : 임검(壬儉)씨 시대
임검씨란 그 시대적 배경이 요순임금의 시대 이므로 한배검 단군을 말하는 것 같다. 앞서 환국과 배달국에서의 임금은 천손족인 마고성의 후예였으나
한배검 단군께서는 웅족(熊族, 지손족)중 가장 세력이 강한 단국(檀國)의 후손으로 천손족에서 지손족으로 이어지는 첫 임금인 것이다. 그렇기에
나라의 이름도 하늘(天, 천손족)이 주신국가라 하여 ‘朝鮮’이라 하였다. 또한 한배검께서는 조선의 전체의 행정구역을 3 한(三韓, 三王)으로
나눠, 자신은 辰韓인 진임금(辰王)으로써 馬韓과 변한(卞韓)을 거느리고 있었다. 임검씨는 먼저 흩어져 있는 마고성의 여러 민족을 찾아 다니며
부도를 다시 건설 할 것을 약속하고 6 만의 백성을 먼저 삼신산으로 이주시켜 자리를 지키게 하고, 텟목 8 만을 만들어 이주를 하여 박달나무
숲에 신시를 여셨다. 이는 흩어진 마고성의 여러 민족을 모아 천부의 이치를 가르쳐 분명히 알게 하여 부도의 법이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였다. 임검씨는 마고성을 모방하여 신시를 꾸미고 사방에 흩어진 민족들을 초청하였다.
[78] 조선의 정식 명칭은 ‘쥬신’으로 조선(朝鮮)이란 쥬신의 이두식 표기이다.
[79] 마한(馬韓, 마임금)의 첫임금으로는 곰겨레(熊族)의 자손인 熊伯多를 임명하였다.
[80] 변한(卞韓)의 첫임금으로는 치우(蚩尤)의 후손 가운데 지혜와 슬기와 용기와 힘이
뛰어난 치두남(蚩頭男)을 으로 삼았다
[81] 지금의 백두산을 말한다. 백두산의 명칭으로는 개마대산(蓋馬大山), 개마산(蓋馬山), 구월산(九月山), 궁골산, 금미산(今彌山),
단단대령(單單大嶺), 도태산(徒太山), 도태백(徒太白), 도산(塗山=발산), 방골산, 백아강(白牙岡), 백역산(白亦山), 백운산(白雲山),
백주(白州), 부산(釜山), 불함산(不咸山), 신산(神山), 비백산(鼻白山), 삼신산(三神山), 삼성산(三聖山), 삼위산(三危山),
설산(雪山), 아사달산(阿斯達山), 두산(頭山), 대박산(大朴山), 단산(丹山=붉산=발산), 목단봉(牧丹峰=한밝재), 박달산(朴達山),
백계산(白階山), 백산(白山), 백악산(白岳山), 백악(白岳), 백달(白達), 증산(甑山), 천산(天山), 천백산(天白山), 천조산(天祖山),
천신산(天神山), 천성산(天聖山), 천등산(天登山), 태박산(太博山), 태백(太伯), 태백산(太伯山), 태황산(太皇山), 풍산(風山),
장백산(長白山), 조백산(祖白山), 조산(祖山), 함박산(咸朴山), 환산(桓山, 丸山)
[82] 우리나라는 12 지지중 인(寅, 陽木)에 해당하는 것으로 우리의 풍습에 神木이라 하여 마을마다 가장 큰 나무를 정해 신성시 하는 풍습이
있는데 이에 연유를 한 것 같다. 박달나무란 밝은 땅에서 나는 나무라는 뜻으로 당시 우리민족을 신성시하는 나무가 아니었나 추측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