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지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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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부 : 잃어버린 부도의 법

우리민족의 영토가 너무나 거대했다. 그 영토를 어떻게 관리를 했을까? (고)조선시대 인구 조사를 한 것을 보면 1 억 8 천만의 인구가 있다 했다. 이것으로 봤을 때 당시의 영토는 지금의 유라시아 대륙의 상당부분을 차지를 했을 것이다. 당시 환국은 3301 년, 배달국은 1565 년, 조선은 2096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그것은 잉카제국의 국가 형태를 보면 답을 알 수가 있다. 잉카제국도 우리와 같은 우리와 같은 공산주의 체제였다. 그들은 강력한 종교의 힘으로 국민을 묶어 일을 하지 않음은 죄악이였기에 특별한 통제 수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유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환인, 환웅, 단군을 한얼님이란 말로 자주 불렀다. 이것은 큰 얼을 가진 님이란 뜻이니 이들이 우리민족의 정신적인 구심점이 되었다는 말이다. 부도의 법으로 모두가 하나가 되었기에, 천손족의 문화로써 정신적으로 모두가 한 울타리안에 있었기에 국가가 유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마고성의 시대는 본성만을 가지고 있었던 시대이다. 그때는 우리 모두가 신성을 가지고 있었던 시기였다. 그러나 오미의 화로 욕망이 생기고 관념이 생겨 본성에 막이 생겨 신성을 잃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마고성에서 나오게 되었고 12 명의 天人에 의해 민족은 여럿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황궁씨(黃穹氏)에 의해 그 법이 잘 지켜져 주변의 다른 나라의 정신 지도국으로 그 자리 매김을 할 수 있었다. 다시 오행의 화가 있고 이에 의해 지나족은 혼란한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결국 이들은 안정된 조선으로 흘러 들어 오게 되고 이들에 의해 이민족의 저급한 문화에 의해 문화 침투를 당하게 되어 우리가 오히려 오행의 화를 입게 된다.

이 오행의 화에 의해 지배욕이 생기게 되고, 투쟁심이 생겨 민족을 이루고 있는 정신적 고리가 끊어지며 통제력을 상실하게 되어 결국 부도의 법을 잃어 버리고 국가가 분열하게 된다. 고열가단군 때에는 더 이상 통제를 하기 어려운 법이 통하지 않는 시대까지 가서 결국 법을 안고 폐관을 하게 된다.

제 5 장 : 오행(五行)의 화(禍)

第十七章

이 때에 도요(陶堯)가 天山 남쪽에서 일어났다. 일차로 출성(出城)한 사람들의 후예였다. 일찍이 제시(祭市)의 모임에 왕래하고, 서쪽 보(堡)의 간(干)에게서 도(道)를 배웠다. 그러나 원래 수(數)에 부지런하지 못하였다. 스스로 9 수 5 중(九數五中)의 이치를 잘 알지 못하고, 중 5(中五) 이외의 8 은, 1 이 즉 8 이라고 생각하고, 내(內)로써 외(外)를 제어하는 이치라 하여, 오행(五行)의 법을 만들어 제왕의 도를 주창하므로, 소부(巢夫)와 허유(許由) 등이 심히 꾸짖고, 그것을 거절하였다. 요가 곧 관문 밖으로 나가, 무리를 모아 묘예(苗裔)를 쫓아냈다. 묘예는 황궁씨의 후예였으며, 그 땅은 유인(有因)씨의 고향이었다. 후대에 임검(壬儉)씨가 여러 사람을 이끌고 부도를 나갔기 때문에, 비어 있는 그 기회를 이용하여 그를 습격하니, 묘예가 마침내 동·서·북의 삼방(三方)으로 흩어졌다. 요가 곧 9 주(九州)의 땅을 그어 나라를 만들고, 스스로 5 중에 사는 제왕이라 칭하여, 당도(唐都)를 세워, 부도와 대립하였다. 때에 거북이 등에 지고 나왔다는 부문(負文)과, 명협(蓂莢)이 피고 지는 것을 보고, 신의 계시라 하여, 그것으로 인하여, 역(曆)을 만들고, 천부(天符)의 이치를 폐하여 부도(符都)의 역을 버리니, 이는 인세 두번째의 큰 변이었다.

第十八章

이에 임검씨가 그것을 심히 걱정하여, 有因氏의 후손 유호씨(有戶氏)의 부자로 하여금 환부(鰥夫)와 권사(權士)등 100 여인을 인솔하고 가서 그를 깨우치도록 하였다. 요가 그들을 맞아, 명령에 복종을 하고, 공순하게 대접하여 하빈(河濱)에서 살게 하였다. 유호씨가 묵묵히 그 상황을 관찰하고, 스스로 사람들을 가르치며, 여러 번 그 거처를 옮겼다. 이보다 먼저 유호씨가 부도에 있을 때에 칡을 먹고 오미를 먹지 아니하였으므로, 키는 열 자요, 눈에서는 불빛이 번쩍였다. 임검씨보다 나이를 100 여살이나 더 먹었으며,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業을 이어, 임검씨를 도와, 도를 행하고, 사람들을 가르쳤다. 이에 이르러 使者가 되어, 완미(頑迷)한 세상을 구제하니, 그가 하는 일에 어려움이 많았다. 때에 요가 유호씨의 아들 유순(有舜)의 사람됨을 보고, 마음 가운데 딴 뜻이 있어, 일을 맡기고, 도와 주며, 두 딸로 유혹하니, 순이 곧 미혹하여졌다. 유순이 일찍이 부도의 법을 행하는 환부가 되어, 마침내 (능력이) 미치지 못하여, 두 딸을 밀취(密娶)하고, 어리석게도 요에 붙어 협조하였다.

第十九章

이 때 유호씨가 수시로 경계를 하였으나, 순은 예, 하고 대답만 하고는 고치지 않았다. 그는 끝내 요의 촉탁을 받아들여 현자를 찾아 죽이며, 묘족(苗族)을 정벌하였다. 유호씨가 마침내 참지 못하여 꾸짖고, 그를 토벌하니, 순은 하늘을 부르며 통곡하고, 요는 몸을 둘 땅이 없으므로, 순에게 양위하고, 자폐(自閉)하였다. 유호씨가 이르기를, 오미의 재앙이 끝나지 않았는데, 또 다시 五行의 화를 만들었으므로, 죄는 땅에 가득하고, 북두성은 하늘을 가리어, 數事가 많이 어그러져, 人世가 곤고(困苦)하여 졌다. 이는 불가불 바로잡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또 알지 못하고 범하는 자는 혹 용서하여 가르칠 수도 있으나, 알고 범하는 자는 비록 지친(至親)이라도 용서할 수가 없다 하고 곧 차자(次子) 有象에게 명하여 勸士를 이끌고 무리를 모아 죄를 알리고, 그를 치게 하니, 수년 동안 싸워서, 마침내 唐都를 혁파(革罷)하였다. 요는 유폐(幽閉) 중에서 죽고, 순은 창오(蒼梧)의 들에 도망하여, 도당(徒黨)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요의 무리 禹가 순에게 아버지를 죽인 원한이 있으므로 이에 이르러, 그를 추격하여 죽여버렸다. 순의 두 妻도 역시 강물에 투신하여 자결하였다. 우가 곧 正命으로 立功한다고 말하고, 상의 군사를 위로하고 돌아가므로 유호씨가 물러나서 우의 소행을 관찰하니, 이 때에 우가 도읍을 옮기고, 무리를 모아 방패와 창을 보수하고 유호씨에게 항거하여, 자칭 夏王이라 하였다.

第二十章

우가 마침내 부도를 배반하고 도산(塗山)에 壇을 설치하였다. 서남 제족을 정벌하여, 제후(諸候)라 하고, 도산에 모이게 하여, 조공을 받았다. 이는 符都際市의 제도를 본받은 것이었으나, 폭돌(暴突)한 것이었다. 이에 천하가 시끄러워, 부도로 도망하여 오는 자가 많았다. 우가 곧 수륙(水陸)의 길을 차단하여, 부도와 연락을 끊고, 내왕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감히 부도를 공격하지는 못하였다. 이 때에 유호씨가 서벙에 살면서, 묘예(苗裔)를 수습하여, 소부와 허유가 사는 곳과 통하고, 서남 제족과 연락하니, 그 세력이 심히 왕성하여, 스스로 邑을 이루었다. 유호가 곧 權士를 보내, 우에게 유시 (諭示)하기를, [요는 天數를 몰랐다. 땅을 쪼개서 천지를 제 멋대로 하였다. 기회를 틈타 독단(獨壇)을 만들고, 사사로이 개나 양을 기르기 위하여, 사람을 몰아낸 후, 자칭 제왕이

되어, 혼자서 처리 하였다. 세상은 土石이나 초목처럼 말이 없고, 天理는 거꾸로 흘러, 허망에 빠져버렸다. 이것은 거짓으로 天權을 훔쳐, 사욕의 횡포를 자행한 것이다. 제왕이 만약 천권을 대행하는 것이라면, 능히 日月을 개폐(開閉)하여, 만물을 조작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제왕이란 수의 요체(數諦)요, 사람이 거짓으로 칭하는 것이 아니다. 거짓으로 칭하면, 다만 사기와 허망의 나쁜 장난이 될 뿐이다. 사람의 일이란 證理요, 세상의 일이란 그 증리한 사람의 일을 밝히는 것이니, 이외에 다시 무엇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부도의 법은 천수의 이치를 명확하게 증명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그 本務를 수행하게 하고, 그 本福을 받게 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말하는 자와 듣는 자가 비록 선후는 있으나, 높고 낮음이 없으며, 주는 자와 받는 자는 비록 친숙하고 생소한 것은 있으나, 끌어들이고 몰아내고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사해가 평등하며, 諸族이 自行하는 것이다. 오직 그 오미(五味)의 죄책을 보속(報贖)하는 것과, 大成之業을 회복하는 것은, 언제나 일인 희생의 주관아래 있는 것이요, 여러 사람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니, 이 일은 예로부터 人世之事에 섞이지 아니하였다. 황궁(黃窮)씨와 有因씨의 예가 바로 이것이다.

第二十一章

또 그 소위 五行이라는 것은, 天數의 이치에 이러한 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方位의 중앙 5 는 교차(交叉)의 뜻이요, 變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변하는 것은 1 로부터 9 까지 이므로, 5 는 언제나 중앙에만 있는 것이 아니며, 9 가 윤회하여, 律과 呂가 서로 조화를 이룬 후에 만물이 생겨나는 것이니, 이는 基數를 이르는 것이요, 그 5, 7 이 크게 번지는 고리(大衍之環)에 이르면, 그 자리가 5 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고, 4, 7 이 있는 것이다. 그 순역(順逆) 生滅의 윤멱(輪冪)은 4 요, 5 가 아니니, 즉 原數의 9 는 불변수이기 때문이다. 또 윤멱이 한 번 끝나는 구간은 2X4=8 사이의 7 이요, 5 가아니다. 또 그 배성지물(配性之物)은 金木水火土의 다섯 중 金과 土를 왜 따로 구별하는가. 그 약간의 차이 때문에 구별하고자 한다면, 氣風草石 따위는 어찌 같이 들지않는가. 그러므로, 다 들자면, 수가 없는 것이요, 엄별해서 들자면, 금,목,수,화 혹은 토,목,수,화의 넷이요, 다섯이 되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그 物性을 어떤 이유로 數性에 짝지우는가, 數性之物은 그 원수가 9 요, 5 가 아니다. 그러므로 5 행의 설은, 참으로 황당무괘한 말인 것이다. 이로써 인세를 證理하는 일을 誣惑하여, 곧 天禍를 만드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것인가.

第二十二章

또 그 역제(曆制)는, 천수(天數)의 근본을 살피지 못하고, 거북이나 명협의 微物에서 근본을 취하였으니, 요는 또 무슨 속셈인가. 천지의 만물이 다 수에서 나와, 각각 수를 상징하고 있는데, 하필 거북과 명협 뿐이겠는가. 그러므로 모든 物事에, 각각 그 역(曆)이 있으니, 역이라는 것은 歷史다. 그러므로, 요의 역제는, 즉 거북과 명협의 역이요, 인간의 역이 아니니, 그것이, 人世와 不合하는 것은 진실로 당연한 것이다. 이런 까닭에 三正을 번복하여, 구차스럽게 맞추고자 하였으나 얻지 못하여 마침내 하늘의 죄를 끌여들였다. 역(曆)이라는 것은, 人生證理의 기본이므로, 그 수는 몸소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역이 바르면, 天理와 人事가 證合하여 복이 되고, 역이 바르지 못하면, 천수에 어긋나 화가 되니, 이는 복은 理가 存立하는데 있고, 이는 正證에 존립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역이 바르고 바르지 못한 것은, 인세 禍福의 발단이니, 감히 삼가 하지 않을것인가. 五味의 禍가, 한 사람의 미혹에서 나와서, 만대의 산사람(生靈)에게 미치고 있는데, 지금 또 다시 역의 화가, 장차 天世의 진리에 미치고자 하니, 두렵기만 하구나.


[83] 화(火)는 열기, 빛, 팽창하는 힘, 상승하는 힘, 발산하거나 흩어지는 힘등을 말하는 것이고, 수(水)는 냉기, 어둠, 수축하는 힘, 하강하는 힘, 뭉치는 힘 등을 상징 할 것이고, 토(土)는 재료요 형상을 뜻하는 것일 것이다. 기(氣)란 생명력, 에너지 등을 상징한다고 본다. 예를 들면 중국의 신화에 여와가 흙으로 인간을 빗는 것이 나오는데 이는 흙과 물을 이용하여 형상을 이루고 열과 기로 생명을 만들어 넣은 것으로 해석이 된다.
고대 그리스 철학 중 만물을 이루는 4 대 원소로 공기, 물, 불, 흙을 들었는데 당시에는 공기에 대한 개념이 희박했던 것으로 볼 때 공기란 기(氣)를 말하는 것이라 생각이 된다. 그렇다고 보면 고대 그리스의 철학과 일치하는 것이 되어 고대 철학의 근간이 이것이 아니었나 하는 추측도 가능하리라 생각이 된다.
[84] 현재까지 발견된 고인돌은 세계에 15 만개가 있다고 한다. 그 중 10 만개가 우리나라 안에 있는데 그 속에서 발견되는 부장품을 보면 누구나 다 만들었고 계층별 차이가 거의 없어 우리 고대 사회가 평등사회였다는 것을 충분히 예측을 할 수 있다고 한다.
[85] 1 년을 13 달 나눠 사용을 하는데 그 달력의 정밀도가 매우 높아 천 년이 지나도 몇 초 틀리지 않아 현대의 달력보다 그 정확도가 훨씬 더 높다.
[86] 서양에는 권력자가 역(曆)을 정리를 하여 율리시스력이나 그래고리력이라 하며 만든 사람의 이름을 붙이는데 마야와 같이 천체의 움직임을 체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사욕이 들어가 많이 변조가 되었다. 예를 들어 그들이 12 진법을 사용을 하여 12 개의 달로 나눴으나 1 월(30), 2 월(31), 3 월(30), 4 월(31), 5 월(30), 6 월(31), 7 월(30), 8 월(30), 9 월(31), 10 월(30), 11 월(31), 12 월(30)로 나누면 365 일이 되나 율리시스가 자신의 생일(2 월 28 일)에 맞춰 2 월을 28 일로 만들고 1 월(31), 2 월(28), 3 월(31), 4 월(30), 5 월(31), 6 월(30), 7 월(31), 8 월(31), 9 월(30), 10 월(31), 11 월(30), 12 월(31)로 만들었다.

第二十三章

天道가 돌고 돌아, 終始가 있고, 종시가 또 돌아, 4 단씩 겹쳐 나가, 다시 종시가 있다. 1
종시의 사이를 소력(小曆)이라 하고, 종시의 종시를 중력(中曆)이라 하고, 네 번 겹친

종시를 대력(大曆)이라 한다. 소력의 1 回를 사(祀)라 하니, 사에는 13 기(期)가 있고, 1 기에는 28 일이 있으며, 다시 4 요(曜)로 나뉜다. 1 요에는 7 일이 있고, 요가 끝나는 것을 복(服)이라 한다. 그러므로, 1 사이에 52 요복이 있으니, 즉 364 일이다. 이는 1,4,7 성수(性數)요, 매 사의 시작에 대사(大祀)의 단(旦)이 있으니, 단과 1 은 같기 때문에 합하여 365 일이 되고, 3 사의 반(半)에 대삭(大朔)의 판(?)이 있으니, 판은 사의 2 분절이다. 이는 2,5,8 법수(法數)요, 달이 긴 것이 1 일과 같기 때문에, 제 4 의 사는 366 일이 된다. 10 사의 반(半)에 대회(大晦)에 구가 있으니, 구는 시(時)의 근원이다. 300 구가 1 묘(?)가 되니, 묘는 구가 눈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이 9633 묘를 지내서 각(刻), 분(分), 시(時)가 1 일이 되니, 이는 3,6,9 의 체수(體數)다. 이와 같이, 끝나고 또 시작하여, 차차 중력(中曆)과 대력(大曆)에 미쳐서, 이수(理數)가 곧 이루어지는 것이다. 대저 요의 이 세가지 잘못은, 허위(虛僞)의 욕망에서 나온 것이니, 어찌 가히 부도 실위(實爲)의 도에 비할 수가 있겠는가. 허위는, 안에서 이(理)가 불실하여, 마침내 멸망에 이르고, 실위는, 이(理)가, 나를 언제나 만족하게 하여, 스스로 함께 존립한다.


[87] 一始無始一에서 시작하여 一終無終一로 끝나는 것에서 보듯 시작과 끝은 하나로 서로가 맞물려 순환하는 원리를 표현하였다.
[88] 종시(終始)로 표현, 시작과 끝이 하나로 연결이 되어 하루 하루가 끝까지 가서 다시 [89] 1 년(年)을 말함
[90] 오늘날의 1 주일을 말하는 것으로 오늘날의 曜日이란 것은 여기서 유래를 한 것이다.
[91] 요(曜)가 끝나는 것을 복(服)이라 하니 요복(曜服)이라 함은 각 요일의 시작에서 끝까지 그러니까 7 일을 뜻하는 것이다.
[92] 오늘날의 윤년을 말한다

第二十四章

유호(有戶)씨가 이와 같이 단단히 타일러서, 諸法을 폐지하고, 부도로 돌아 올 것을 권하였으나, 우(禹)가 완강하게 듣지 아니하고, 반대로 위협이고 모욕이라 하여, 곧 무리를 이끌고, 유호씨를 공격하였다. 그러다 마침내 모산(茅山) 진지(陣地)에서 죽었다. 이에 하중(夏衆)들이 비분하여, 죽기를 원하는 자가 수만이었다. 이는 거의가 우와 함께 治水를 한 무리들이었다. 우의 아들 계(啓)가 이 대군을 이끌고, 유호씨의 邑으로 진격하여 오니, 유호씨의 군은 불과 수 천이었다. 그러나, 夏軍이 싸우면 반드시 패하여, 한번도 전적을 거양하지 못하였다. 계가 마침내 두려워서 퇴진하고, 다시 공격하지 못하자, 그 무리가 격양되었다. 이에 유호씨가 夏衆이 눈이 먼 것을 보고, 고치기가 어렵다고 생각하여, 장차 서남제족(西南諸族)을 가르치기 위하여, 그 무리를 이끌고 가니, 그 邑이 자연히 없어졌다.


[93] 단기고사에 보면 43 세 단군 때 융안(隆安)의 사냥꾼 우화충(于和沖)이 장군을 자칭하며 무리를 모아 서북 36 군을 함락 시키며 난을 일으키고, 46 세 단군 때에 한개(韓介)가 수유의 군대를 이끌고 궁궐을 침입하였고, 47 세 단군 때는 해모수가 웅심산(熊心山)을 내려와 군대를 일으키는등 삼한(조선)의 말기에는 크고 작은 반란이 곳곳에서 일어 나게 된다.
[94] 우화충(于和沖)의 반란을 진압하고 단군이 되어 나라의 이름을 대부여(大夫餘)로 고치고 삼한(三韓)을 삼조선(三朝鮮)으로 바꿔 불렀다. 삼조선이란 신조선(辰韓), 불조선(卞韓), 번조선(馬韓)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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