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E] 본 편은 서진(西晉)의 사관 진수(陳壽)가 지은 『삼국지』 위서 권30의 마무리 총평(評曰)과, 남조 유송(劉宋)의 배송지(裵松之)가 덧붙인 어환(魚豢)의 『위략(魏略)』 서융전(西戎傳, 서역 30여 개국 및 대진국/로마제국 실크로드 기록) 고대 사서 원문의 완역입니다.
※ 본 편(12편)까지가 『삼국지』 위서 권30 오환선비동이전의 정사(正史) 원전 완역본이며, 이후에 이어지는 부록들은 독자의 입체적 이해와 사료 검증을 돕기 위해 현대에 작성된 ‘편집자 특별부록’입니다.
評曰:史、漢著朝鮮、兩越,東京撰錄西羌。魏世匈奴遂衰,更有烏丸、鮮卑,爰及東夷,使譯時通,記述隨事,豈常也哉!〔一〕
【번역】 사관 진수(陳壽)는 다음과 같이 평한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와 반고의 『한서(漢書)』에서는 조선(朝鮮)과 양월(兩越)을 저술하였고, 후한의 역사를 쓴 동경(東京)의 사관들은 서강(西羌)을 찬록하였다.
위(魏)나라 시대에 이르러 흉노(匈奴)는 마침내 쇠약해졌고, 새로이 오환(烏丸)과 선비(鮮卑)가 번성하였으며, 나아가 머나먼 동이(東夷)에 이르기까지 사신과 통역이 때맞추어 통교하였다.
이에 사실에 입각하여 그들의 내력과 사정을 기술하고 그들의 특이한 습속을 구비하여 기록함으로써, 역대 한나라와 위나라 조정이 밖으로 먼 오랑캐를 회유하고 제어하던 웅대한 규모와 변천의 자취를 두루 살펴볼 수 있도록 하였노라.
【역주: 진수 평(評曰)의 사학사적 의미】
- 사기·한서→동경 사관→진수로 이어지는 변경사 서술 계보:
- “사기·한서는 조선·양월을 쓰고, 후한 동경 사관은 서강을 썼다”는 것은, 정사(正史)가 시대마다 새로 부상한 변경 세력을 말권(末卷)에 추가해 온 관례를 말합니다. 위대 흉노가 쇠하고 오환·선비·동이가 새로 올랐으므로 권30을 둔 것은 그 계보의 연장입니다.
- ’사역시통(使譯時通)·기재수사(記述隨事)’의 현장주의:
- 사신과 통역이 “때맞추어 통했다”는 것은, 본전의 정보가 관구검 원정(244~245)과 대방·낙랑 경유 조공(238~247) 같은 당대 현장 보고에 근거함을 자부한 것입니다. ’상(常)이 아니다(豈常也哉)’는 말은 이런 생생한 기록이 항존하는 것이 아니라 위의 무공(武功)이 만든 일회적 기회였음을 뜻합니다.
- 회유와 제어의 규모를 보려는 목적:
- 끝 구절 “한·위 조정이 바깥 먼 오랑캐를 회유·제어한 규모와 변천을 두루 살펴보게 했다”는 것은, 동이전이 단순 민족지가 아니라 기미(羈縻)·책봉·정벌의 외교사 기록임을 선언한 것입니다. 오환 선우 책봉, 선비 왕호, 부여·예·왜의 대방 경유 조공이 모두 이 시각에서 읽힙니다.
〔一〕 魏略西戎傳曰:氐人有王,所從來久矣。自漢開益州,置武都郡,排其種人,分竄山谷間,或在福祿,或在汧、隴左右。其種非一,稱槃瓠之後,或號青氐,或號白氐,或號蚺氐,此蓋蟲之類而處中國,人即其服色而名之也。其自相號曰盍稚,各有王侯,多受中國封拜。近去建安中,興國氐王阿貴、白項氐王千萬各有部落萬餘,至十六年,從馬超為亂。超破之後,阿貴為夏侯淵所攻滅,千萬西南入蜀,其部落不能去,皆降。國家分徙其前後兩端者,置扶風、美陽,今之安夷、撫夷二部護軍所典是也。其(太)〔本〕守善,分留天水、南安界,今之(廣平魏郡)〔廣魏郡〕所守是也。其俗,語不與中國同,及羌雜胡同,各自有姓,姓如中國之姓矣。其衣服尚青絳。俗能織布,善田種,畜養豕牛馬驢騾。其婦人嫁時著衽露,其緣飾之制有似羌,衽露有似中國袍。皆編髮。多知中國語,由與中國錯居故也。其自還種落間,則自氐語。其嫁娶有似於羌,此蓋乃昔所謂西戎在于街、冀、豲道者也。今雖都統於郡國,然故自有王侯在其虛落間。又故武都地陰平街左右,亦有萬餘落。貲虜,本匈奴也,匈奴名奴婢為貲。始建武時,匈奴衰,分去其奴婢,亡匿在金城、武威、酒泉北黑水、西河東西,畜牧逐水草,鈔盜涼州,部落稍多,有數萬,不與東部鮮卑同也。其種非一,有大胡,有丁令,或頗有羌雜處,由本亡奴婢故也。當漢、魏之際,其大人有檀柘,死後,其枝大人南近在廣魏、令居界,有禿瑰來數反,為涼州所殺。今有劭提,或降來,或遁去,常為西州道路患也。燉煌西域之南山中,從婼羌西至蔥領數千里,有月氏餘種蔥茈羌、白馬、黃牛羌,各有酋豪,北與諸國接,不知其道里廣狹。傳聞黃牛羌各有種類,孕身六月生,南與白馬羌鄰。西域諸國,漢初開其道,時有三十六,後分為五十餘。從建武以來,更相吞滅,于今有二十道。從燉煌玉門關入西域,前有二道,今有三道。從玉門關西出,經婼羌轉西,越蔥領,經縣度,入大月氏,為南道。從玉門關西出,發都護井,回三隴沙北頭,經居盧倉,從沙西井轉西北,過龍堆,到故樓蘭,轉西詣龜茲,至蔥領,為中道。從玉門關西北出,經橫坑,辟三隴沙及龍堆,出五船北,到車師界戊己校尉所治高昌,轉西與中道合龜茲,為新道。凡西域所出,有前史已具詳,今故略說。南道西行,且志國、小宛國、精絕國、樓蘭國皆并屬鄯善也。戎盧國、扞彌國、渠勒國、(穴山國)〔皮山國〕皆并屬于寘。罽賓國、大夏國、高附國、天竺國皆并屬大月氏。臨兒國,浮屠經云其國王生浮屠。浮屠,太子也。父曰屑頭邪,母云莫邪。浮屠身服色黃,髮青如青絲,乳青毛,蛉赤如銅。始莫邪夢白象而孕,及生,從母左脅出,生而有結,墮地能行七步。此國在天竺城中。天竺又有神人,名沙律。昔漢哀帝元壽元年,博士弟子景盧受大月氏王使伊存口受浮屠經曰復立者其人也。浮屠所載臨蒲塞、桑門、伯聞、疏問、白疏閒、比丘、晨門,皆弟子號也。浮屠所載與中國老子經相出入,蓋以為老子西出關,過西域之天竺、教胡。浮屠屬弟子別號,合有二十九,不能詳載,故略之如此。車離國一名禮惟特,一名沛隸王,在天竺東南三千餘里,其地卑溼暑熱。其王治沙奇城,有別城數十,人民怯弱,月氏、天竺擊服之。其地東西南北數千里,人民男女皆長一丈八尺,乘象、橐駝以戰,今月氏役稅之。盤越國一名漢越王,在天竺東南數千里,與益部相近,其人小與中國人等,蜀人賈似至焉。南道而西極轉東南盡矣。中道西行尉梨國、危須國、山王國皆并屬焉耆,姑墨國、溫宿國、尉頭國皆并屬龜茲也。楨中國、莎車國、竭石國、渠沙國、西夜國、依耐國、滿犁國、億若國、榆令國、損毒國、休脩國、琴國皆并屬疏勒。自是以西,大宛、安息、條支、烏弋。烏弋一名排特,此四國次在西,本國也,無增損。前世謬以為條支在大秦西,今其實在東。前世又謬以為彊於安息,今更役屬之,號為安息西界。前世又謬以為弱水在條支西,今弱水在大秦西。前世又謬以為從條支西行二百餘日,近日所入,今從大秦西近日所入。大秦國一號犁靬,在安息、條支西大海之西,從安息界安谷城乘船,直截海西,遇風利二月到,風遲或一歲,無風或三歲。其國在海西,故俗謂之海西。有河出其國,西又有大海。海西有遲散城,從國下直北至烏丹城,西南又渡一河,乘船一日乃過。西南又渡一河,一日乃過。凡有大都三,卻從安谷城陸道直北行之海北,復直西行之海西,復直南行經之烏遲散城,渡一河,乘船一日乃過。周迴繞海,凡當渡大海六日乃到其國。國有小城邑合四百餘,東西南北數千里。其王治濱側河海,以石為城郭。其土地有松、柏、槐、梓、竹、葦、楊柳、梧桐、百草。民俗,田種五穀,畜乘有馬、騾、驢、駱駝。桑蠶。俗多奇幻,口中出火,自縛自解,跳十二丸巧妙。其國無常主,國中有災異,輒更立賢人以為王,而生放其故王,王亦不敢怨。其俗人長大平正,似中國人而胡服。自云本中國一別也,常欲通使於中國,而安息圖其利,不能得過。其俗能胡書。其制度,公私宮室為重屋,旌旗擊鼓,白蓋小車,郵驛亭置如中國。從安息繞海北到其國,人民相屬,十里一亭,三十里一置,終無盜賊。但有猛虎、獅子為害,行道不群則不得過。其國置小王數十,其王所治城周回百餘里,有官曹文書。王有五宮,一宮間相去十里,其王平旦之一宮聽事,至日暮一宿,明日復至一宮,五日一周。置三十六將,每議事,一將不至則不議也。王出行,常使從人持一韋囊自隨,有白言者,受其辭投囊中,還宮乃省為決理。以水晶作宮柱及器物。作弓矢。其別枝封小國,曰澤散王,曰驢分王,曰且蘭王,曰賢督王,曰汜復王,曰于羅王,其餘小王國甚多,不能一一詳之也。國出細絺。作金銀錢,金錢一當銀錢十。有織成細布,言用水羊毳,名曰海西布。此國六畜皆出水,或云非獨用羊毛也,亦用木皮或野繭絲作,織成氍毹、毾〈登毛〉、罽帳之屬皆好,其色又鮮于海東諸國所作也。又常利得中國絲,解以為胡綾,故數與安息諸國交市於海中。海水苦不可食,故往來者希到其國中。山出九色次玉石,一曰青,二曰赤,三曰黃,四曰白,五曰黑,六曰綠,七曰紫,八曰紅,九曰紺。今伊吾山中有九色石,即其類。陽嘉三年時,疏勒王臣槃獻海西青石、金帶各一。又今西域舊圖云罽賓、條支諸國出琦石,即次玉石也。大秦多金、銀、銅、鐵、鉛、錫、神龜、白馬、朱髦、駭雞犀、玳瑁、玄熊、赤螭、辟毒鼠、大貝、車渠、瑪瑙、南金、翠爵、羽翮、象牙、符采玉、明月珠、夜光珠、真白珠、虎珀、珊瑚、赤白黑綠黃青紺縹紅紫十種流離、璆琳、琅玕、水精、玫瑰、雄黃、雌黃、碧、五色玉、黃白黑綠紫紅絳紺金黃縹留黃十種氍毹、五色毾〈登毛〉、五色九色首下毾〈登毛〉、金縷繡、雜色綾、金塗布、緋持布、發陸布、緋持渠布、火浣布、阿羅得布、巴則布、度代布、溫宿布、五色桃布、絳地金織帳、五色斗帳、一微木、二蘇合、狄提、迷迷、兜納、白附子、薰陸、鬱金、芸膠、薰草木十二種香。大秦道既從海北陸通,又循海而南,與交趾七郡外夷比,又有水道通益州、永昌、故永昌出異物。前世但論有水道,不知有陸道,今其略如此,其民人戶數不能備詳也。自蔥領西,此國最大,置諸小王甚多,故錄其屬大者矣。澤散王屬大秦,其治在海中央,北至驢分,水行半歲,風疾時一月到,最與安息安谷城相近,西南詣大秦都不知里數。驢分王屬大秦,其治去大秦都二千里。從驢分城西之大秦渡海,飛橋長二百三十里,渡海道西南行,繞海直西行。且蘭王屬大秦。從思陶國直南渡河,乃直西行之且蘭三千里。道出河南,乃西行,從且蘭復直西行之汜復國六百里。南道會汜復,乃西南之賢督國。且蘭、汜復直南,乃有積石,積石南乃有大海,出珊瑚,真珠。且蘭、汜復、斯賓阿蠻北有一山,東西行。大秦、海西東各有一山,皆南北行。賢督王屬大秦,其治東北去汜復六百里。汜復王屬大秦,其治東北去于羅三百四十里渡海也。于羅屬大秦,其治在汜復東北,渡河,從于羅東北又渡河,斯羅東北又渡河。斯羅國屬安息,與大秦接也。大秦西有海水,海水西有河水,河水西南北行有大山,西有赤水,赤水西有白王山,白玉山有西王母,西王母西有脩流沙,流沙西有大夏國、堅沙國、屬繇國、月氏國、四國西有黑水,所傳聞西之極矣。北新道西行,至東且彌國、西且彌國、單桓國、畢陸國、蒲陸國、烏貪國,皆并屬車師後部王。王治于賴城,魏賜其王壹多雜守魏侍中,號大都尉,受魏王印。轉西北則烏孫、康居,本國無增損也。北烏伊別國在康居北,又有柳國,又有巖國,又有奄蔡國一名阿蘭,皆與康居同俗。西與大秦東南與康居接。其國多名貂,畜牧逐水草,臨大澤,故時羈屬康居,今不屬也。呼得國在蔥嶺北,烏孫西北,康居東北,勝兵萬餘人,隨畜牧,出好馬,有貂。堅昆國在康居西北,勝兵三萬人,隨畜牧,亦多貂,有好馬。丁令國在康居北,勝兵六萬人,隨畜牧,出名鼠皮,白昆子、青昆子皮。此上三國,堅昆中央,俱去匈奴單于庭安習水七千里,南去車師六國五千里,西南去康居界三千里,西去康居王治八千里。或以為此丁令即匈奴北丁令也,而北丁令在烏孫西,似其種別也。又匈奴北有渾窳國,有屈射國,有丁令國,有隔昆國,有新梨國,明北海之南自復有丁令,非此烏孫之西丁令也。烏孫長老言北丁令有馬脛國,其人音聲似雁騖,從膝以上身頭,人也,膝以下生毛,馬脛馬蹄,不騎馬而走疾馬,其為人勇健敢戰也。短人國在康居西北,男女皆長三尺,人眾甚多,去奄蔡諸國甚遠。康居長老傳聞常有商度此國,去康居可萬餘里。魚豢議曰:俗以為營廷之魚不知江海之大,浮游之物不知四時之氣,是何也?以其所在者小與其生之短也。余今氾覽外夷大秦諸國,猶尚曠若發蒙矣,況夫鄒衍之所推出,大易、太玄之所測度乎!徒限處牛蹄之涔,又無彭祖之年,無緣託景風以迅游,載騕褭以遐觀,但勞眺乎三辰,而飛思乎八荒耳。
【번역】 『위략(魏略)』 서융전(西戎傳)에 이르기를 다음과 같다.
저인(氐人)에게 왕이 있은 지는 매우 오래되었다. 한나라가 익주(益州)를 개척하고 무도군(武都郡)을 설치한 이래 그 종족들을 배척하여 산골짜기 사이에 분산되어 숨어 살게 하였으니, 어떤 이는 복록(福祿)에 살고 어떤 이는 견수(汧水)와 농산(隴山) 좌우에 살았다. 그 종족이 하나가 아니니 반호(槃瓠)의 후예라 일컬으며, 혹은 청저(靑氐), 백저(白氐), 염저(蚺氐) 등으로 불리는데 이는 벌레와 뱀의 부류로서 중국에 처하여 살매 사람들이 그들의 옷 색깔에 따라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합치(盍稚)’라 일컬으며 저마다 왕과 후가 있어 중국 조정으로부터 관작을 봉배받은 자가 많았다. 근래 한나라 말기 건안 연간에는 흥국저왕(興國氐王) 아귀(阿貴)와 백항저왕(白項氐王) 천만(千萬)이 각각 1만여 부락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건안 16년(211년)에 마초(馬超)를 따라 난을 일으켰다. 마초가 패퇴한 후 아귀는 하후연(夏侯淵)에게 공격당해 토벌되었고, 천만은 서남쪽으로 들어가 촉(蜀)에 귀순했다. 그들의 부족민 중 촉으로 따라가지 못한 자들은 모두 위나라에 항복했다.
국가에서는 이들을 나누어 앞뒤 두 끝으로 옮겨 살게 하였으니 부풍(扶風)과 미양(美陽)에 배치하였는데, 지금 안이(安夷)와 무이(撫夷) 두 부의 호군(護軍)이 관장하는 백성들이 바로 이들이다. 본래부터 선량함을 지킨 자들은 천수(天水)와 남안(南安) 경계에 머물러 살게 하였으니 지금의 광위군(廣魏郡)이 수비하는 관할이 바로 이들이다.
그 풍속은 언어가 중국과 같지 않으며 강족(羌族)이나 잡다한 오랑캐(雜胡)와 서로 비슷하다. 저마다 각기 성씨가 있는데 중국의 성씨와 같다. 옷은 푸른색과 붉은색을 숭상한다. 풍속에 베(布)를 짤 줄 알고 밭농사를 잘 지으며 돼지, 소, 말, 나귀, 노새를 기른다. 부인이 시집갈 때는 ’임로(衽露)’라는 옷을 입는데 가장자리 장식 제도는 강족과 비슷하고 옷의 형태는 중국의 도포(袍)와 비슷하다. 모두 머리를 땋는다(編髮).
중국인과 뒤섞여 살았기 때문에 중국말을 아는 자가 많으나, 자기 부족 마을로 돌아가면 본래의 저족 말을 쓴다. 그들의 혼인 풍속은 강족과 비슷하니, 이들은 바로 옛적에 말하던 서융(西戎)으로서 가(街), 기(冀), 환도(豲道)에 살던 자들이다. 지금 비록 군현에 총괄 통솔되고 있으나 부락 사이에는 여전히 본래의 왕후가 남아 있다. 옛 무도 땅인 음평과 가현 좌우에도 1만여 부락이 있다.
자료(貲虜)는 본래 흉노(匈奴)의 일파이다. 흉노에서는 노비(奴婢)를 ’자(貲)’라고 부른다. 후한 건무 초기에 흉노가 쇠약해지자 그 노비들이 무리를 지어 도망쳐 금성(金城), 무위(武威), 주천(酒泉) 북쪽의 흑수(黑水)와 서하(西河) 동서편에 숨어 살았다. 물과 풀을 따라 가축을 치며 양주(涼州)를 노략질하였는데 부락이 점차 늘어나 수만 명에 이르렀으니 동부 선비와는 다르다. 그 종족은 하나가 아니어서 대호(大胡), 정령(丁令)이 섞여 있고 강족과 어울려 사는 자도 많으니 본래 도망친 노비들이었기 때문이다.
한나라와 위나라 교체기에 대인 단자(檀柘)가 있었고 그가 죽은 뒤 일족 대인이 광위와 영거 경계에 머물렀는데, 독괴(禿瑰)라는 자가 여러 번 반란을 일으키다가 양주 관군에게 살해당했다. 지금은 소제(劭提)라는 자가 있어 때로는 항복해 오고 때로는 도망쳐 서주(서역 통로) 길목의 큰 근심거리가 되고 있다.
돈황(敦煌) 서역의 남산(南山: 치롄산맥) 속에는 약강(婼羌) 서쪽에서 총령(蔥嶺: 파미르고원)에 이르기까지 수천 리에 걸쳐 월지(月氏)의 남은 종족인 총자강(蔥茈羌), 백마강(白馬羌), 황우강(黃牛羌)이 살고 있으며 저마다 추호(酋豪)가 있고 북쪽으로 서역 여러 나라와 접하고 있다. 전하는 말에 황우강은 종족에 따라 임신한 지 6개월 만에 아이를 낳는다고 하며 남쪽으로 백마강과 이웃한다.
서역의 여러 나라는 한나라 초기에 처음 길을 열었을 때 36개국이었으나 뒤에 50여 국으로 나뉘었다. 후한 건무 연간 이래로 서로 삼키고 멸망시켜 지금은 20여 국이 남아 있다. 돈황 옥문관(玉門關)을 나와 서역으로 들어가는 길은 예전에는 2개 길이었으나 지금은 3개 길(남도·중도·신도)이 있다.
남도(南道): 옥문관을 나와 서쪽으로 나아가 약강(婼羌)을 거쳐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총령을 넘고 현도(懸度)를 지나 대월지(大月氏: 쿠샨 왕조)로 들어가는 길이다.
중도(中道): 옥문관을 나와 서쪽으로 도호정(都護井)을 출발하여 삼롱사(三隴沙) 북쪽 머리를 돌아 거로창(居盧倉)을 거치고, 사서정(沙西井)에서 서북쪽으로 틀어 용퇴(龍堆)를 지나 옛 누란(樓蘭)에 이른 뒤 서쪽으로 구자(龜茲: 쿠차)로 나아가 총령에 이르는 길이다.
신도(新道): 옥문관을 서북쪽으로 나와 횡갱(橫坑)을 거쳐 삼롱사와 용퇴를 피하고 오선(五船) 북쪽으로 나와 차사(車師) 경계의 무기교위(戊己校尉)가 다스리는 고창(高昌)에 이른 뒤, 서쪽으로 나아가 중도와 합쳐져 구자에 이르는 길이다.
남도(南道)를 따라 서쪽으로 가면 차지고, 소완국, 정절국, 누란국은 모두 선선국(鄯善國)에 병합되었다. 융로국, 한미국, 거륵국, 피산국은 모두 우전국(于寘國: 호탄)에 병합되었다. 계빈국(罽賓國: 카슈미르), 대하국(大夏國: 박트리아), 고부국(高附國: 카불), 천축국(天竺國: 인도)은 모두 대월지(大月氏)에 병합되었다.
임아국(臨兒國)이라는 곳이 있는데, 불경(浮屠經)에 이르기를 그 나라 왕이 부처(浮屠)를 낳았다고 한다. 부처는 태자였는데 아버지는 정반왕(屑頭邪), 어머니는 마야부인(莫邪)이라 한다. 부처는 몸과 옷이 황금빛이고 머리칼은 푸른 실 같으며 가슴에 푸른 털이 돋았고 정수리는 구리처럼 붉었다. 당초 마야부인이 흰 코끼리 태몽을 꾸고 잉태하였으며, 낳을 때 어머니의 왼쪽 옆구리로 나와 태어나자마자 머리에 육계(結)가 있었고 땅에 떨어져 일곱 걸음을 걸었다(탄생게). 이 나라는 천축의 성안에 있다.
천축에는 또 사률(沙律)이라는 신인이 있었다. 옛날 한 애제 원수 원년(기원전 2년), 박사 제자 경로(景盧)가 대월지왕의 사신 이존(伊存)으로부터 구전으로 불경을 전수받았으니, ’다시 서는 자(復立者)’란 바로 부처를 가리킨다.
불경에 실린 임포새(優婆塞: 우바새), 상문(沙門: 사문/승려), 백문, 소문, 백소간, 비구(比丘), 신문 등은 모두 제자의 호칭이다. 불경의 내용은 중국 노자(老子)의 경전과 서로 통하는 부분이 있으니, 대개 노자가 함곡관을 서쪽으로 나가 서역의 천축을 거치며 오랑캐를 교화한 것이라 여긴다. 부처의 제자 호칭은 모두 29가지가 있으나 다 적을 수 없어 대략 이와 같이 생략한다.
차리국(車離國)은 일명 예유특, 또는 배례왕이라 부르며 천축 동남쪽 3천여 리에 있다. 땅이 낮고 습하며 덥다. 왕은 사기성에 도읍하고 수십 개의 별성이 있으며 백성들은 유약하여 월지와 천축이 쳐서 복속시켰다. 영토는 사방 수천 리이며 남녀의 키가 모두 1장 8척에 달하고 코끼리와 낙타를 타고 싸운다. 지금은 월지가 부역과 세금을 거둔다.
반월국(盤越國)은 한월왕이라 부르며 천축 동남쪽 수천 리에 있고 촉나라 익주(益州)에 인접해 있다. 사람들의 키는 작아 중국인과 같으며 촉나라 상인들이 왕래하는 듯하다. 남도는 서쪽 끝에 이르러 동남쪽으로 꺾여 다한다.
중도(中道)를 따라 서쪽으로 가면 위리국, 위수국, 산왕국은 모두 언기(焉耆)에 병합되었고, 고묵국, 온숙국, 위두국은 모두 구자(龜茲: 쿠차)에 병합되었다. 정중국, 사차국(야르칸드), 갈석국, 거사국, 서야국, 이내국, 만리국, 억약국, 유령국, 손독국, 휴수국, 금국은 모두 소륵(疏勒: 카슈가르)에 병합되었다.
이로부터 서쪽에 대완(大宛: 페르가나), 안식(安息: 파르티아), 조지(條支), 오익(烏弋)이 있다. 오익은 배특이라고도 한다. 이 네 나라는 서쪽에 차례로 위치하며 고유한 본국으로서 영역의 증감이 없다.
이전 시대에는 조지(條支)가 대진(로마)의 서쪽에 있다고 잘못 알았으나 지금 확인해 보면 실제로는 동쪽에 있다. 또 이전에는 조지가 안식보다 강하다고 오해했으나 지금은 안식에 예속되어 ’안식의 서쪽 경계’라 일컫는다. 또 예전에는 약수(弱水)가 조지 서쪽에 있다고 잘못 알았으나 지금 약수는 대진 서쪽에 있다. 또 조지에서 서쪽으로 200여 일을 가야 해가 지는 곳이라 오해했으나 지금은 대진 서쪽으로 가야 해가 지는 곳에 가깝다.
대진국(大秦國)은 일명 ’이건(犁靬)’이라 하며 안식과 조지 서쪽 큰 바다(지중해/홍해)의 서쪽에 있다. 안식 경계의 안곡성(安谷城)에서 배를 타고 곧바로 바다를 건너가는데 순풍을 만나면 두 달 만에 도착하고 바람이 늦으면 1년, 바람이 없으면 3년이 걸린다. 그 나라가 바다 서쪽에 있으므로 세상에서 ’해서(海西)’라고도 부른다.
나라 가운데 강(나일강 또는 티베르강)이 흐르고 서쪽에는 또 큰 바다가 있다. 해서에는 지산성(遲散城)이 있고 북쪽으로 오단성에 이르며 서남쪽으로 강을 건너 배로 하루가 걸리고 다시 서남쪽으로 강을 건너 배로 하루가 걸린다. 무릇 3대 수도가 있다. 만약 안곡성에서 육로로 곧바로 북쪽으로 행진하여 바다 북쪽을 거쳐 다시 서쪽으로 해서로 간 뒤 남쪽으로 행진하여 오지산성을 거쳐 배로 하루 강을 건너면 바다를 빙 둘러서 가는데 무릇 큰 바다를 건너 6일 만에 그 나라에 도착한다.
나라에 작은 성읍이 400여 개나 있고 사방 수천 리에 달한다. 왕의 도읍은 강과 바다 곁에 면해 있으며 돌을 쌓아 성곽을 둘렀다. 토지에는 소나무, 잣나무, 회화나무, 가래나무, 대나무, 갈대, 버드나무, 오동나무 및 온갖 풀이 자란다. 백성들은 오곡을 농사짓고 가축으로는 말, 노새, 나귀, 낙타를 기르며 누에를 쳐서 비단을 짠다.
풍속에 기이한 요술(환술)이 많아 입에서 불을 뿜고, 스스로 온몸을 묶었다가 스스로 풀며, 열두 개의 방울 구슬을 공중에 띄우며 재주를 부리는 교묘함이 남다르다.
그 나라에는 세습하는 고정된 임금이 없다. 나라 안에 재앙이나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즉시 어진 사람을 가려 왕으로 새로 세우고, 옛 왕은 산 채로 폐위하여 방축하되 폐위된 왕 또한 감히 원망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키는 장대하고 용모가 단정하여 흡사 중국인과 비슷하나 오랑캐 옷(토가 등 서양 복식)을 입는다. 스스로 이르기를 본래 중국에서 갈라져 나온 갈래라 하며 늘 중국과 사신을 통하고자 하였으나 안식(파르티아)이 그 중간 무역의 이익을 독점하고자 가로막아 오가지 못했다.
그 백성들은 서양 문자(라틴어/그리스어 문자)를 쓸 줄 안다. 제도에 있어서는 공사 궁궐을 2층 이상의 높은 누각(重屋)으로 짓고 깃발을 세우며 북을 치고 흰 덮개의 작은 수레를 타며 우역과 역참을 설치한 것이 중국과 같다. 안식에서 바다 북쪽을 돌아 그 나라에 이르기까지 백성들의 마을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며 10리마다 정(亭)이 있고 30리마다 역(置)이 있어 도적이 전혀 없다. 다만 맹호와 사자가 사람을 해치므로 무리를 짓지 않고 혼자 길을 떠나면 지나갈 수 없다.
나라 안에 작은 소왕(小王) 수십 명을 두었다. 왕이 도읍한 수도 성은 둘레가 1백여 리에 달하며 관청과 관청 문서가 정연하다. 왕에게는 다섯 개의 궁궐이 있는데 궁궐 사이의 거리는 10리이다. 왕은 매일 아침 한 궁궐로 나아가 정사를 듣고 해 질 녘에 하룻밤을 묵은 뒤 다음 날 또 다른 궁궐로 나아가니 5일 만에 한 바퀴를 순회한다.
36명의 장수를 두어 국사를 의논하는데 한 장수라도 참석하지 않으면 회의를 열지 않는다. 왕이 행차할 때는 늘 수행원으로 하여금 가죽 주머니를 지니고 따르게 하여 백성 중 억울함을 호소하는 자가 있으면 그 상소문을 받아 주머니 속에 넣었다가 궁궐에 돌아와 살펴보고 판결을 내린다. 수정으로 궁궐 기둥과 기물을 만들며 활과 화살을 만든다.
별도로 봉해진 제후 소국으로는 택산왕, 여분왕, 차란왕, 현독왕, 사복왕, 우라왕 등이 있으며 그 밖의 소왕국은 이루 다 적을 수 없다.
나라에서 고운 갈포(細絺)가 생산된다. 금화와 은화를 주조하는데 금화 한 닢은 은화 열 닢에 해당한다. 섬세하게 짠 직물이 있는데 ’수양(水羊: 바다 비단, 조개의 족사)’의 털로 짠다고 하여 ’해서포(海西布)’라 부른다. 이 나라의 육축(가축)은 모두 물에서 나온다고도 하며, 혹은 양털뿐만 아니라 나무껍질이나 야생 누에고치 실로 짠다고도 한다. 이로써 짠 모전 카펫(氍毹, 毾〈登毛〉)과 휘장은 매우 훌륭하며 그 색채의 선명함은 바다 동쪽 여러 나라의 직물보다 훨씬 곱다.
또 늘 중국의 생사를 수입하여 이를 풀어 서역식 무늬 비단(호릉)으로 다시 짜는 것을 큰 이익으로 여긴다. 그러므로 자주 바다 가운데서 안식의 여러 나라들과 무역 시장을 연다. 바닷물이 짜서 마실 수 없으므로 오가는 상인 중 대진국의 본토까지 직접 들어가는 자는 드물다.
산에서 아홉 가지 색의 옥에 버금가는 보석(九色次玉石)이 산출되니 청색, 적색, 황색, 백색, 흑색, 녹색, 자색, 홍색, 감색이다. 지금 이오산(하미)에 있는 9색석이 바로 이 부류이다. 후한 순제 양가 3년(134년)에 소륵왕 신반이 해서의 청석과 금허리띠를 바쳤다. 또 서역 옛 지도에 계빈과 조지 등에서 기이한 보석이 산출된다 하였으니 바로 옥에 버금가는 보석들이다.
대진국에는 금, 은, 구리, 철, 납, 주석, 신령한 거북, 백마, 붉은 털, 해계서(닭을 놀라게 하는 무소 뿔), 대모, 흑곰, 붉은 이무기, 독을 물리치는 쥐(벽독서), 큰 조개, 차거, 마노, 남금, 비취새 깃털, 상아, 오색 옥, 야광주, 진백주, 호박, 산호가 풍부하다.
또 적·백·흑·녹·황·청·감·표·홍·자색의 열 가지 유리(유리보석), 구림, 낭간, 수정, 매괴보석, 웅황, 자황, 벽옥, 오색 옥, 열 가지 색상의 융단 카펫, 오색 담요, 금실 자수, 잡색 비단, 금도포, 화완포(불에 타지 않는 석면 옷), 그리고 소합향, 훈륙향, 울금향, 훈초 등 12가지 귀한 향료가 풍부하게 산출된다.
대진국으로 통하는 길은 바다 북쪽의 육로로 통할 뿐만 아니라 바다를 따라 남쪽으로 항해하여 교지(베트남) 7군 밖의 오랑캐와 인접하고, 또 수로를 통해 익주 영창군(永昌郡)으로 통하므로 영창군에서 진귀한 이역의 보물들이 많이 산출된다. 옛날에는 오직 바닷길만 있는 줄 알고 육로가 있는 줄은 몰랐다. 총령 서쪽에서 이 나라가 가장 강대하여 소왕을 많이 두었으므로 큰 것만 기록한다.
대진국 서쪽에 바다가 있고, 바다 서쪽에 큰 강이 있으며, 강 서쪽에 남북으로 뻗은 큰 산이 있고, 서쪽에 적수(赤水)가 흐르며, 적수 서쪽에 백옥산(白玉山)이 있어 서왕모(西王母)가 살고, 서왕모 서쪽에 아득한 유사(流沙)가 있고, 유사 서쪽에 대하국, 견사국, 속요국, 월지국이 있으며, 네 나라 서쪽에 흑수(黑水)가 있으니 이것이 전해 들은 세상의 서쪽 끝이다.
북신도(北新道)를 따라 서쪽으로 가면 동차미국, 서차미국, 단환국, 필륙국, 포륙국, 오탐국에 이르는데 모두 차사후부왕(車師後部王)에 병합되었다. 왕은 우뢰성에 도읍하였는데 위나라는 그 왕 일다잡에게 위나라 시중의 벼슬과 대도위의 호를 하사하고 위나라 왕의 인수를 내렸다.
서북쪽으로 꺾어지면 오손(烏孫)과 강거(康居)가 있으니 본래의 강역에 증감이 없다. 강거 북쪽에 북오이별국이 있고, 또 유국, 암국, 엄채국(奄蔡國: 알란족)이 있는데 모두 강거와 풍속이 같다. 서쪽으로 대진에 접하고 동남쪽으로 강거에 닿는다. 명품 담비가 많고 물과 풀을 따라 방목하며 큰 늪에 임해 산다. 옛날에는 강거에 복속되었으나 지금은 속하지 않는다.
이 세 나라는 견곤이 그 한가운데에 위치하며 흉노 선우의 군영인 안습수에서 7천 리, 남쪽 차사 6국에서 5천 리, 서남쪽 강거 경계에서 3천 리, 서쪽 강거 왕도에서 8천 리 떨어져 있다.
또 흉노 북쪽에 혼유국, 굴사국, 정령국, 격곤국, 신리국이 있으니 북해(바이칼호) 남쪽에 또 다른 정령이 있음이 명백하다.
오손의 원로들이 전하기를, “북쪽 정령에 마경국(馬脛國)이 있는데 사람의 목소리가 기러기 울음소리 같고, 무릎 위로는 온전한 사람이나 무릎 아래로는 털이 나고 말의 정강이와 발굽을 지녀 말을 타지 않고도 말보다 빠르게 달린다. 용맹하고 건장하여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또 단인국(短人國: 소인국)이 강거 서북쪽에 있는데 남녀의 키가 모두 석 자(三尺)에 불과하며 인구가 몹시 많고 엄채 여러 나라에서 매우 멀리 떨어져 있다. 강거의 늙은 상인들이 전하기를 가끔 상인들이 이 나라를 왕래하는데 강거에서 1만여 리나 떨어져 있다고 한다.
사가 어환(魚豢)이 논평하여 말하기를,
“세상 사람들은 뜰 안 웅덩이의 물고기가 강과 바다의 광대함을 알지 못하고, 여름 한철 하루살이가 사계절의 춘하추동을 헤아리지 못한다고 말하니 이는 무엇 때문인가? 그 머무는 곳이 지극히 좁고 그 타고난 수명이 너무나 짧기 때문이다.
내가 이제 사방 오랑캐의 여러 종족과 저 먼 서쪽 대진국(로마 제국)의 장대한 사정을 널리 살펴보니, 아득했던 눈앞이 번쩍 뜨이고 짙은 안개가 걷혀 어린 몽매함이 깨어나는 듯하구나! 하물며 옛 제나라의 현인 조연(鄒衍)이 논파한 대구주(大九州)의 광대함과, 『주역(周易)』과 양웅의 『태현경(太玄經)』이 헤아려 측량한 끝없는 대우주 조화의 신비는 어떠하겠는가!
사람이란 한갓 좁은 소 발자국 웅덩이(牛蹄之涔) 속에 갇힌 신세에 불과하고 팽조처럼 수백 년을 사는 수명도 지니지 못했으니, 맑은 동풍을 타고 날아올라 천하를 빠르게 유람하거나 천리마 요뇨(騕褭)를 타고 저 먼 세상 밖을 직접 둘러볼 인연은 닿지 못한다.
그러나 부질없이 눈을 들어 해와 달과 별의 삼진(三辰)을 우러러보며, 마음만은 아득한 팔황(八荒)의 온 세상 끝자락으로 자유롭게 날려 보내 온 인류와 천지 만물의 장대한 흥망을 굽어보고자 하노라.”
【역주: 위략 서융전의 구성과 사료적 가치】
- 왜 동이전에 서융전이 딸려 있는가:
- 배송지(裵松之)가 진수 본문의 짧은 평(評) 1조에 어환(魚豢)의 『위략』 서융전 전문을 통째로 붙인 것은, 동이(東)와 서융(西)을 아울러 위의 사방 경영(남도·중도·신도·북신도 개통, 대진·안식·조지 교섭)을 보여주려는 의도입니다. 동이전이 관구검의 동방 원정 보고라면, 서융전은 서역 도호·둔전(屯田) 보고에 해당합니다.
- 대진국(大秦國=로마) 기록의 세계사적 의미:
- 안곡성(安谷城)에서 해로 2개월~3년, 해서(海西) 400여 성읍, 석성(石城)·중루(重屋)·역참(郵驛亭置)·백개소차(白蓋小車), 금은화(金銀貨 1:10)·해서포(海西布)·유리 10색·향료 12종 목록, “재이(災異) 있으면 현인(賢人)으로 교체하고 고왕(故王)도 원망하지 않는다”는 선거왕제 서술은, 3세기 중원이 로마 제국을 전한 동서교섭사상 가장 상세한 동시대 기록입니다. ’전세(前世)의 4대 오류(條支 위치·강약·약수·200일)’를 바로잡았다는 자부가 이를 뒷받침합니다.
- 불교 전래 기록(임아국 부상과 이존 수경):
- “임아국(臨兒國) 왕이 부처를 낳았다(백상감몽·협생·탄생게 7보)”는 불경(浮屠經) 요약, 애제 원수 원년(기원전 2년) 경로(景盧)가 대월지 사신 이존(伊存)에게 구전(口受)으로 불경을 배운 기록은, 중국 불교 공인 전래(후한 명제 영평 구법 설화) 이전 서역 경유 불교 접촉을 전하는 불교사상 귀중한 간접 사료입니다. “노자서출관화호(老子西出關化胡)”로 회통한 것은 3세기 중원의 이해 방식입니다.
서역과 대진의 기록에 이어 북방로와 풍문 지리, 편자 어환의 발문이 지니는 의미를 정리한다.
【역주: 북신도와 북방 이국(異國) 풍문, 어환의 발문】
- 북신도(北新道)와 차사후부왕:
- 옥문관 서북 횡갱(橫坑)→고창(高昌, 무기교위 치소)→구자(龜茲) 합류라는 신도는, 고창(투루판) 둔전 경영 이후 열린 북로(北路)입니다. 동차미·서차미·단환·필륙·포륙·오탐을 차사후부왕(거우뢰성)에 병합시키고 위 시중·대도위 호를 준 것은, 서역 소국을 위 관제 안으로 편입한 것입니다.
- 마경국(馬脛國)·단인국(短人國)의 풍문 지리:
- 무릎 아래 말 다리인 마경국, 키 석 자 단인국, 6개월 임신 황우강(黃牛羌) 등은 실측이 아니라 오손 원로·강거 상인의 전언(傳聞)임을 본문이 스스로 밝힙니다. 정령·견곤·호득 3국의 병력(1만·3만·6만)과 리수(안습수 7천리 등)도 관념적 거리이므로, 북해(바이칼) 이북 세계에 대한 3세기 중원의 인식 지평을 보여주는 사료입니다.
- 어환 발문의 세계관(대구주와 팔황):
- “정(井) 안 물고기가 강해를 모르고 조석(朝菌)이 사시를 모른다”는 비유로 시작해, 대진의 장대함을 보고 몽매가 깨어났다는 고백, 추연(鄒衍)의 대구주(大九州)와 역(易)·태현(太玄)의 우주 측량으로 시야를 넓히고, 끝내 “우두지잠(牛蹄之涔)”의 짧은 수명을 탄식하며 삼진(三辰)·팔황(八荒)으로 마음을 날린다는 결말은, 위략이 단순 지리지가 아니라 세계(世界)를 사유한 책임을 보여줍니다. 동이전의 독자 역시 이러한 거시적인 세계 인식의 안목으로 사료를 음미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퓨쳐 / 역사자료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三國志 魏書 東夷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