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부록은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수록된 동방 및 북방 여러 나라의 정치·사회·경제·문화상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비교 분석한 총괄표와 기원전 2세기부터 3세기에 이르는 핵심 역사 연표, 주요 개념 해설을 수록하였습니다.
| 국가 / 지역 | 중심 영역 및 지리 | 정치 체제 및 관직 | 제천 행사 | 혼인 및 가족 풍속 | 상장례 풍속 | 주요 물산 및 무기 |
|---|---|---|---|---|---|---|
| 부여(夫餘) | 송화강 유역 (길림 일대), 평탄한 개활지 | 왕(王), 4출도 (마가·우가·저가·구가), 대사자, 사자 | 영고(迎鼓) (은나라 정월/음력 12월, 연일 음주가무, 형옥 중단) | 형사취수제, 투기 부인 처형 및 시신 유기 | 순장(殉葬) (많을 때는 100여 명), 곽(槨) 사용, 여름 얼음 시신 안치, 우제점(발굽 점) | 명마(名馬), 붉은 옥(赤玉), 담비, 미주(진주), 갑옷과 무기 |
| 고구려(高句麗) | 압록강·혼강 유역, 환도성 (산골짜기, 토지 척박) | 왕(王), 5부족 (소노·절노·순노·관노·계루), 상가, 대로, 패자, 고추가, 조의선인 | 동맹(東盟) (10월 제천대회, 수신/수혈 제사) | 서옥제(壻屋制) (데릴사위제, 사위의 집), 혼인 후 미리 수의 마련 | 적석총(積石塚), 후장(厚葬: 금은 재물 탕진), 무덤 가 소나무·잣나무 식재 | 맥궁(貊弓) (소수맥 산), 과하마 등 작은 말(등산용), 철기 |
| 동옥저(東沃沮) | 함경도 동해안 (개마대산 동쪽), 좁고 긴 해안 평야 | 대군왕 없음, 읍락별 장수(長帥)·삼로(三老), 고구려에 신속되어 조세·미녀 수탈당함 | 기록 없음 | 민며느리제(예부제) (10세 전후 약혼, 성장 후 매매혼적 복귀) | 골장제(骨葬制/세골장) (가매장 후 육탈 시 10여 장 거대 목곽에 가족 전체 합장, 쌀 담은 와력 매달기) | 오곡 농경, 풍부한 어염(해산물), 보병용 장창 |
| 읍루(挹婁) | 연해주 및 송화강 하류, 혹한의 산림 지대 | 대군장 없음, 읍락별 대인(大人), 부여에 복속했다가 황초 연간 반란 | 법속에 기강이 없음, 조두(俎豆) 미사용 | 돼지 사육, 돼지기름으로 전신 도포(방한), 굴집(穴居: 사다리 9단 깊이) | 기록 없음 | 독화살(毒矢), 싸리대 화살(楛矢, 1척 8치), 청석 화살촉(靑石鏃), 4척 강궁, 읍루담비 |
| 동예(濊) | 강원도 동해안 일대, 영동 7현 | 대군장 없음, 후(侯)·읍군(邑君)·삼로(三老), 낙랑·고구려에 예속 | 무천(舞天) (10월 밤낮 음주가무), 호랑이 숭배(虎神) | 동성불혼(同姓不婚) (족외혼), 질병·사망 시 가옥 폐기 및 신축 | 후장 풍속 미비, 자연 산천 숭배 | 낙랑단궁(樂浪檀弓) (박달나무 활), 과하마(果下馬) (3척 조랑말), 반어피(물범 가죽), 문표(표범) |
| 마한(馬韓) | 한반도 서남부 (경기·충청·전라), 54개 소국 | 읍락별 거수: 신지(臣智), 읍차(邑借). 목지국(월지국) 진왕(辰王)이 영도 | 5월 수릿날, 10월 상달제 (수십 명 탁무/鐸舞), 천군(天君)의 천신 제사 | 토실/초옥(무덤 모양 가옥, 남녀 혼거), 상투(불꽃머리), 문신 | 곽(槨) 사용, 소·말을 타지 않고 순장용으로 소비, 구슬(瓔珠) 숭상 | 벼농사 및 잠상(면포), 대율(배만 한 큰 밤), 세미계(긴꼬리닭) |
| 진한(辰韓) | 경북 대구·경주 일대, 12개 소국 (사로국 등) | 읍락 거수: 신지, 험측, 번예, 살해, 읍차. 진왕(마한인)에게 복속 | 마한과 유사 | 진(秦)나라 망명 유민 전승, 중국식 언어 차용 | 조우(鳥羽) 장례 (큰 새 깃털로 영혼 승천 기원), 편두(褊頭) (돌로 머리 누름) | 오곡 및 벼농사, 누에치기(비단), 철(鐵) 생산 및 화폐 통용, 가야금의 원형 슬(瑟) |
| 변한(弁韓) | 경남 낙동강 하류 및 남해안, 12개 소국 (구야국 등) | 진한과 동일한 거수 체제, 왜(倭)와 경계 접함 | 진한과 유사하나 제사법 다름, 부엌을 방 서쪽에 둠 | 진한과 거의 동일, 남녀 문신, 법속이 유달리 엄격 | 진한과 유사 | 풍부한 철(鐵) (한·예·왜 및 낙랑·대방 공급, 화폐 통용), 광폭세포(넓은 베) |
| 왜인(倭人) | 일본 열도 (규슈~기나이), 30여 개 통교국 | 여왕 비미호(히미코)의 귀도 통치, 남동생 보좌, 일대솔(一大率) 감찰관 주재 | 골복(骨卜: 뼈를 불태워 점침) | 경면문신(얼굴·몸 문신), 관두의, 일부다처(귀인 4~5처), 부인 투기 없음 | 관(棺) 사용, 상주 곡읍·조문객 음주가무, 연목(장례 후 목욕재계), 지쇠(持衰) 의례 | 벼농사, 모시·명주, 진주, 청옥, 단사, 동경(구리거울), 목궁(木弓) |
『삼국지』 위서 동이전(특히 한전과 배송지 주석) 및 관련 열전 본문에 기록된 동이 제국과 삼한의 핵심 역사 연표입니다.
기원전 195년경: 연나라 사람 위만(衛滿)이 고조선으로 망명, 준왕(準王)에게 귀순하여 서쪽 변경 수비.
기원전 194년경: 위만이 난을 일으켜 왕검성을 침공. 준왕은 궁인들을 이끌고 바다를 거쳐 남쪽 한(韓)의 땅으로 남천하여 한왕(韓王)이라 칭함.
기원전 109~108년: 한 무제(漢武帝)의 고조선 침공. 우거왕 피살 및 위만조선 멸망. 한나라가 한사군(낙랑·현도·임둔·진번) 설치.
기원전 75년: 토착 예맥의 저항으로 현도군이 고구려 서북쪽(흥경 노성)으로 1차 이동, 옥저는 낙랑군 영동 7현(동부도위)으로 재편.
서기 12년: 신나라 왕망(王莽)이 고구려 군사를 강제 징발하려다 반발하자 장수 추(騊)를 살해하고 고구려를 ’하고려(下句麗)’로 격하.
서기 20~23년경: 왕망 지황 연간, 진한 우거수 염사착(廉斯鑡, 또는 염사치)이 벌목 노예로 잡혀 있던 호래(戶來) 일행을 데리고 낙랑군으로 망명.
서기 30년: 후한 광무제가 낙랑 동부도위를 폐지하고 불내·화려·옥저 등의 거수를 현후(縣侯)로 봉함.
서기 32년: 고구려 대무신왕이 낙랑국(崔理)을 기습 정벌함. 같은 해 광무제에게 사신을 보내 정식으로 ‘고구려왕’ 칭호 공인.
서기 49년: 오환 대인 학단(郝旦) 등 9천여 명이 후한에 내부(內附)하여 요서·우북평 등 북방 변경에 배치됨.
서기 54년: 선비 대인 어구분(於仇賁)이 후한 대궐에 입조하여 왕으로 책봉됨.
서기 105~121년: 고구려 태조대왕(궁)이 요동과 현도를 맹렬히 공격, 후성을 불태우고 요동태수 채풍을 전사시킴.
서기 156~180년경: 선비족의 영웅 단석괴(檀石槐)가 동호의 옛 땅을 통일하고 영토를 3부(동·중·서부)로 나누어 한나라를 압도.
서기 189년경: 공손도(公孫度)가 요동에서 자립하여 반독립 군벌 정권 수립, 부여왕 위구태와 종녀를 혼인시켜 동맹 체결.
서기 204년경: 공손강(公孫康)이 둔유현 이남을 분할하여 대방군(帶方郡)을 신설하고 삼한과 왜의 조공·통교 창구를 장악. 고구려 환도성을 침공함.
서기 206년: 조조(曹操)가 백랑산 전투에서 오환의 선우 답돈(蹋頓)을 참수하고 3군 오환을 평정.
서기 235년: 유주자사 왕웅이 보낸 자객 한룡(韓龍)이 선비족 대인 가비능(軻比能)을 암살, 선비족 분열.
서기 238년: 조위(曹魏) 사마의가 요동의 공손연을 토벌하여 공손씨 정권 멸망. 명제가 수군을 보내 낙랑·대방군 수복.
서기 238년 6월~12월: 왜 여왕 비미호(히미코)가 대방군을 거쳐 위에 조공. 조위에서 ‘친위왜왕(親魏倭王)’ 금인과 동경 100면 하사.
서기 242년: 고구려 동천왕(위궁)이 위나라의 서안평(西安平)을 공격하여 요동 교통로 차단.
서기 244~245년: 유주자사 관구검(毌丘儉)이 고구려를 침공, 환도성을 함락하고 동천왕을 북옥저까지 맹추격함. 불내예왕 투항.
서기 246년: 낙랑군과 대방군이 진한 8국 분할 문제로 충돌. 한국 신지들이 봉기하여 대방군 기리영(崎離營)을 습격, 대방태수 궁준 전사.
※ 상세 배경사 안내: 기원전 4세기 전국시대 고조선과 연나라의 칭왕(稱王) 대립, 진개(秦開)의 침공과 만번한 국경선, 그리고 위만조선의 성립과 한 무제와의 1년 왕검성 결사항전에 관한 심층 배경 연대기와 전말은 특별부록: 고조선·위만조선과 연나라의 관계사에서 별도로 상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진수(陳壽)가 쓴 『삼국지』 본문은 문장이 매우 간결하여 빠진 내용이 많았습니다. 이에 약 130년 뒤 유송(劉宋)의 학자 배송지(裵松之, 372~451)가 당시 전해지던 140여 종의 다양한 역사책과 문헌들을 집대성하여 『삼국지』 본문 구절마다 상세한 주석(註釋, 보충 설명과 인용문)을 달았습니다.
이때 배송지가 주석으로 인용한 고대 서적들(『위략』, 『위서』, 『영웅기』 등)은 세월이 흐르며 원본 책 자체가 모두 불타거나 사라져(멸실) 오늘날 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배송지가 『삼국지』에 주석으로 통째로 인용해 둔 덕분에, 그 소중한 기록들이 사라지지 않고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온전히 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본 전자책에 원문과 함께 완역하여 실은 주요 인용 사료의 내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퓨쳐 / 역사자료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三國志 魏書 東夷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