書載「蠻夷猾夏」,詩稱「玁狁孔熾」,久矣其為中國患也。秦、漢以來,匈奴久為邊害。孝武雖外事四夷,東平兩越、朝鮮,西討貳師、大宛,開邛苲、夜郎之道,然皆在荒服之外,不能為中國輕重。而匈奴最逼於諸夏,胡騎南侵則三邊受敵,是以屢遣衛、霍之將,深入北伐,窮追單于,奪其饒衍之地。後遂保塞稱藩,世以衰弱。建安中,呼廚泉南單于入朝,遂留內侍,使右賢王撫其國,而匈奴折節,過於漢舊。然烏丸、鮮卑稍更彊盛,亦因漢末之亂,中國多事,不遑外討,故得擅〔漠〕南之地,寇暴城邑,殺略人民,北邊仍受其困。會袁紹兼河北,乃撫有三郡烏丸,寵其名王而收其精騎。其後尚、熙又逃于蹋頓。蹋頓又驍武,邊長老皆比之冒頓,恃其阻遠,敢受亡命,以雄百蠻。太祖潛師北伐,出其不意,一戰而定之,夷狄懾服,威振朔土。遂引烏丸之眾服從征討,而邊民得用安息。後鮮卑大人軻比能復制御群狄,盡收匈奴故地,自雲中、五原以東抵遼水,皆為鮮卑庭。數犯塞寇邊,幽、并苦之。田豫有馬城之圍,畢軌有陘北之敗。青龍中,帝乃聽王雄,遣劍客刺之。然後種落離散,互相侵伐,彊者遠遁,弱者請服。由是邊陲差安,〔漠〕南少事,雖時頗鈔盜,不能復相扇動矣。烏丸、鮮卑即古所謂東胡也。其習俗、前事,撰漢記者已錄而載之矣。故但舉漢末魏初以來,以備四夷之變云。
【번역】 『서경(書經)』에는 “오랑캐가 중화를 어지럽힌다(蠻夷猾夏)” 하였고, 『시경(詩經)』에는 “험윤이 몹시 성하다(玁狁孔熾)” 하였으니, 이들이 중국의 우환거리가 된 지는 참으로 오래되었다. 진(秦)나라와 한(漢)나라 이래로 흉노(匈奴)는 오랫동안 북방 변경의 큰 골칫거리였다.
한 무제(孝武帝)가 비록 사방의 오랑캐를 정벌하여 동쪽으로는 양월(兩越)과 조선(朝鮮)을 평정하고, 서쪽으로는 이사(貳師)와 대완(大宛)을 토벌하며 공작(邛苲)과 야랑(夜郎)으로 통하는 길을 열었으나, 이들은 모두 중화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먼 황복(荒服) 너머에 있어 중국의 국력 흥망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흉노는 중국 본토에 가장 바짝 인접해 있어, 오랑캐 기병이 남하하여 침략하면 북방 세 국경 변경(三邊: 유주, 병주, 양주)이 일제히 적의 침략에 노출되었다. 이 때문에 무제는 위청(衛靑)과 곽거병(霍去病) 같은 명장을 거듭 파견하여 북쪽 깊숙이 원정하고 선우(單于)를 끝까지 추격하여 비옥한 초원 지대를 빼앗았다. 그 후 흉노는 변방 요새를 지키며 번국(藩國)이라 칭하였고 대를 거듭할수록 쇠약해졌다.
후한 말 건안(建安) 연간에 이르러 남선우 호주천(呼廚泉)이 입조하자 조정에 머물게 하여 시위(侍衛)로 삼고, 우현왕(右賢王)으로 하여금 본국을 다스리게 하니, 흉노는 과거 한나라 때보다 더욱 몸을 낮추어 복종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나라 말기의 극심한 혼란으로 중국 내부에 전란이 잦아 밖으로 오랑캐를 토벌할 겨를이 없자, 이번에는 오환(烏丸)과 선비(鮮卑)가 점차 강성해졌다. 그들은 막남(漠南: 고비사막 이남)의 비옥한 초원을 차지하고 국경 성읍을 약탈하며 백성들을 무참히 살육·납치하니 북방 변경은 다시금 큰 고통에 빠졌다.
마침 원소(袁紹)가 하북을 병합하면서 요서·우북평·요동 세 군(三郡)의 오환을 달래어 그들의 유명한 수령들을 총애하고 정예 기병을 휘하로 거두었다. 그 후 원소가 죽자 그의 아들 원상(袁尚)과 원희(袁熙)가 오환의 대인 답돈(蹋頓)에게 도망쳐 몸을 의탁했다. 답돈은 용맹과 무략이 뛰어나 변방의 원로들이 모두 그를 옛 흉노의 묵돌선우(冒頓單于)에 비유할 정도였다. 그는 험준하고 먼 지세를 믿고 대담하게 도망자들을 받아들이며 여러 오랑캐들 사이에서 패권을 다투었다.
이에 조조(太祖)가 은밀히 군사를 이끌고 북벌을 감행하여 적의 허를 찔러 단 한 판의 전투로 그들을 평정하니, 오랑캐들이 두려워 굴복하고 위엄이 북방 초원 전체에 떨쳤다. 마침내 조조는 오환의 뛰어난 기병을 흡수하여 정벌에 활용하였고, 변경의 백성들은 비로소 안식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선비족의 대인 가비능(軻比能)이 다시 여러 오랑캐 부족을 통솔하고 흉노의 옛 영토를 모두 차지하여, 서쪽의 운중(雲中)·오원(五原)으로부터 동쪽 요수(遼水)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영역을 선비의 본거지로 삼았다. 그가 자주 요새를 넘어 변경을 침략하니 유주와 병주가 심각한 고통을 겪었다. 그리하여 위나라 명장 전예(田豫)가 마성(馬城)에서 포위당하기도 하였고, 필궤(畢軌)는 형북(陘北)에서 크게 패퇴하기도 하였다.
청룡(靑龍) 연간에 명제(조예)가 유주자사 왕웅(王雄)의 계책을 받아들여 비밀리에 자객을 보내 가비능을 암살하였다. 그 후 선비의 여러 부족은 뿔뿔이 흩어져 서로 공격하고 약탈하였으며, 강한 자는 멀리 달아나고 약한 자는 항복을 청해왔다. 이로 말미암아 북방 국경 지대가 비로소 안정되었고 막남 지역에 전란이 잦아들었으니, 간혹 좀도둑 같은 노략질이 있었으나 다시는 대규모로 군사를 일으켜 선동하지는 못하게 되었다.
오환과 선비는 바로 옛날에 말하던 동호(東胡)의 후예이다. 그들의 고유한 습속과 이전의 내력에 대해서는 한나라의 역사를 편찬한 이들이 이미 상세히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한나라 말기부터 위나라 초기에 걸쳐 일어난 사건들을 중심으로 기록하여, 사방 오랑캐들의 변화와 형세를 구비해 밝히고자 한다.
【역주: 북방 유목민족의 직제와 기본 개념 해설 (초심자를 위한 길잡이)】
선우(單于)와 좌현왕(左賢王)·우현왕(右賢王):
선우(單于): 흉노(匈奴)의 최고 통치자이자 국가 원수를 뜻하는 칭호로, 한자 문화권의 ’황제(皇帝)’에 해당합니다. ’탱리고도 선우(撐犁孤塗單于: 하늘의 아들인 광대한 군주)’의 줄임말입니다.
좌현왕과 우현왕: 흉노는 국토와 군사를 중앙·동쪽(좌)·서쪽(우)의 3분 체제로 나누어 통치했습니다. 유목민은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바라보며 좌우를 가르므로, 좌(동쪽)를 우(서쪽)보다 높게 쳤습니다. 따라서 좌현왕(左賢王)은 대개 선우의 황태자가 맡는 제2인자였고, 우현왕(右賢王)은 서방 영토를 총괄하는 제3인자였습니다. 본문에서 조조가 남선우 호주천을 낙양 궁궐에 머물게 하고 “우현왕으로 하여금 본국을 다스리게 했다”는 것은, 선우를 사실상 볼모로 억류하고 서열 높은 부왕(副王)을 통해 흉노를 분할·통제했음을 뜻합니다.
동호(東胡)와 오환(烏丸)·선비(鮮卑):
- 몽골 고원 서중부의 흉노와 달리, 만주 서부와 내몽골 동부의 유목민을 고대에 ‘동호(東胡: 동쪽 오랑캐)’라 불렀습니다.
- 기원전 3세기 흉노의 영웅 묵돌선우에게 패망한 뒤, 동호의 유민들이 각각 숨어 들어간 산의 이름을 따서 오환(오환산)과 선비(선비산)로 나뉘었습니다. 훗날 흉노가 쇠퇴하자 이 동호계 부족들이 몽골 고원과 만주 일대를 장악하게 됩니다.
대인(大人)과 솔중왕(率眾王):
대인(大人): 유목 사회에서 혈통 세습보다는 무예, 용맹, 공평한 판결 능력 등을 인정받아 부족민들의 추대로 뽑힌 족장·수령을 가리킵니다.
솔중왕(率眾王): ’무리를 거느린 왕’이란 뜻으로, 중국 왕조(한·위)가 변방의 오랑캐 부락 수령들을 회유하기 위해 관작과 인수를 내리며 공인해 준 책봉 칭호입니다.
한퓨쳐 / 역사자료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三國志 魏書 東夷傳)